「산바람 · 글바람 ㊱」 운악산 산행기, 빛바랜 리본에서 지난날의 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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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쌓인 만경대능선 2005년 1월 8일, 마음이 가라앉던 날 운악산으로 향했다. 만경대와 정상, 절고개를 지나 현등사로 내려오는 길에서 한북정맥 종주 때 묶어두었던 빛바랜 빨간 리본을 다시 만나며 지난날의 나를 마주했다.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운악산에서 내가 만난 것은 겨울 산의 정상만이 아니었다. 빛바랜 리본 하나 속에 남아 있던, 혼자 길을 견디던 지난날의 나였다. 쉬어도 되는 날, 쉬지 못한 마음 산행일은 2005년 1월 8일이었다. 다음 날에는 북한산에 가기로 약속이 잡혀 있었다. 그러니 오늘 하루쯤은 집에서 쉬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자꾸 가라앉았다. 가만히 있으면 생각만 길어질 것 같았다. 원래는 혼자 치악산 종주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디서 시작해 어느 길로 내려올지 생각이 길어지는 사이 아침 시간이 흘러갔다. 치악산으로 향하려던 마음은 조금씩 빗나갔지만, 그렇다고 산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가까운 운악산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배낭에 물과 간단한 먹을거리를 주섬주섬 챙겨 넣고 현등사 쪽으로 향했다. 정상에 꼭 올라야 한다는 욕심보다는, 그저 혼자 천천히 걸으며 머릿속에 엉켜 있는 생각을 풀어내고 싶었다. 산은 늘 그런 날에 먼저 떠오른다. 특별한 해결책을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가만히 앉아 생각만 길어지는 시간을 길 위로 옮겨준다. 마음이 어수선할 때는 앉아서 정리하려고 하기보다, 차라리 걸어야 풀리는 것들이 있다. 그날의 운악산은 그런 마음으로 찾아간 산이었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운악산 📅 산행일 2005년 1월 8일 🥾 산행 코스 현등사 입구 → 만경대 → 운악산 정상 → 절고개 → 현등사 📏 산행 거리 정확한 거리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현등사 입구를 기준으로 한 원점회귀 겨울 산행 ...

「산바람 · 글바람 ㉟」 연인산 산행기, 바람처럼 넘어 백둔리에서 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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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 능선 따라 연인산 정상으로 향하는길 2013년 5월 25일, 친구 다섯 명과 함께 국수당에서 산행을 시작해 우정고개와 우정봉, 연인산 정상을 지나 백둔리로 내려왔다. 산행 뒤 계곡가 펜션에서 비 오는 저녁을 보내며, 정상보다 오래 남는 산 아래의 시간을 만난 하루였다.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연인산은 정상 하나로 끝나는 산이 아니었다. 바람처럼 산을 넘고, 백둔리 계곡에서 구름처럼 쉬며, 사람들과 나눈 저녁까지 품고 돌아온 산이었다. 산으로 가는 길도 여행이었다 산행일은 2013년 5월 25일이었다. 상봉역에서 오전 9시 2분 전철을 타고 청평역으로 향했다. 청평역에서 다시 터미널까지 걸어가 현리행 버스를 탔고, 현리에서는 택시로 국수당까지 이동했다. 여러 번 교통수단을 갈아타야 했지만, 산으로 가는 길에서는 그런 수고조차 여행의 일부가 된다. 혼자 차를 몰고 산 아래까지 가는 길도 편하지만, 전철과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며 조금씩 산에 가까워지는 시간에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역을 지나고, 터미널을 지나고, 낯선 마을길을 지나며 마음도 천천히 일상에서 멀어진다. 그날은 친구들과 함께였다. 모두 다섯 명이었다. 혼자 걷는 산은 마음의 속도를 따라가게 해주지만, 여럿이 걷는 산은 사람의 보폭을 배운다. 누군가는 앞서가고, 누군가는 뒤처지고, 누군가는 쉬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서로의 걸음을 맞추다 보면, 산행은 단순히 정상에 오르는 일이 아니라 함께 하루를 건너는 일이 된다. 오전 11시, 국수당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경기도 가평 연인산 📅 산행일 2013년 5월 25일 🥾 산행 코스 국수당 → 우정고개 → 우정봉 → 연인산 정상 → 백둔리 📏 산행 거리 약 14km ⏱ 산행 시간 약 6시간 🕰 주요 시간 상봉역 09:02 전철...

「산바람 · 글바람 ㉞」 유명산 산행기, 늦가을에 만난 나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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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산 정상에 있는 억새밭 2010년 11월 1일, 단풍의 절정이 지난 유명산을 찾았다. 화려한 가을 대신 떨어진 잎과 몸을 낮춘 억새, 맑은 계곡물 위를 떠가는 낙엽을 만나며 지나온 시간과 지금의 나를 조용히 돌아본 산행이었다.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유명산의 늦가을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오래 남았다. 그곳에서 나는 지나간 계절이 아니라, 천천히 다음 계절로 건너가는 나의 뒷모습을 보았다. 산에 가지 못한 날들이 길어지면 산에 가지 못한 날이 길어지면 이상하게도 지난 산행의 기억이 더 선명해진다. 젊은 날에는 세상에 있는 산을 모두 올라보겠다는 철없는 포부를 품고 살았다. 먼 산이라는 이유로 망설이지 않았고, 힘들다는 말은 산을 다녀온 뒤에나 생각했다. 새벽 기차에 몸을 싣고 낯선 역에 내려, 지도 한 장과 물 한 병만으로 산길을 찾아가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산을 오르는 데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산이 있으니 갔고, 길이 있으니 걸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먼 산보다 가까운 산을 먼저 찾게 되었다. 도봉산과 수락산, 때로는 아차산을 오르며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나이 탓을 하기도 했고,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기도 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인지, 마음이 먼저 늙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산을 향하던 의지는 조금씩 느슨해졌고, 그 사이 세월은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빠르게 흘러갔다. 다 가보겠다던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는데, 그곳을 향해 달려가던 나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그럴수록 지난 산행이 그리웠다. 비에 젖어 걷던 능선과 눈 속에서 길을 찾던 겨울 산, 친구들과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오르던 이름 모를 봉우리들이 불쑥 마음속으로 돌아오곤 했다. 산은 오래전에 다녀온 사람의 기억 속에서도 좀처럼 늙지 않았다. 혼자 길을 정할 수 있게 된 날 지난주에는 도봉산에...

「산바람 · 글바람 ㉝」 고금능선 산행기, 포기하고 싶은 마음 하나를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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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봉 정상에 서있는 정상석 2009년 9월 6일, 고대산 제2등산로를 따라 대광봉과 고대산 정상에 오른 뒤 보개산을 지나 금화산까지 이어 걸었다. 수풀 속에 감춰진 능선길과 군사시설의 흔적, 보개산 헬기장의 짧은 낮잠, 철원평야의 넓은 풍경이 오래 남은 하루였다.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고금능선에서 내가 넘은 것은 산봉우리만이 아니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하나를 넘고, 저녁 철원 들판에 긴 그림자 하나를 내려놓은 날이었다. 나와 한 약속을 지키러 가는 길 한동안 뜸했던 혼자만의 산행이었다. 가고 싶은 산은 많았고 해야 할 일도 태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다 모처럼 일요일 하루를 비워 산으로 가기로 했다. 운동을 무리하게 했는지 정강이 근육통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지만, 오히려 산길을 걸으며 풀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고른 길이 고대산에서 보개산을 지나 금화산까지 이어지는 종주산행이었다. 고대산은 전에 오른 적이 있었지만 보개산과 금화산은 이름만 어렴풋이 들어본 산이었다. 그러나 한번 마음먹은 일은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힘들 줄 알면서도 일부러 종주길을 찾아 나서는 내 모습이 때로는 우습기도 하다. 산행을 시작하면 정해둔 끝까지 걸어야 한다. 도중에 그만두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미련스럽게 길을 이어간다. 아마도 한 번 멈추면 다시 시작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다른 산들이 저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다리던 산행을 앞둔 설렘 때문이었을까. 토요일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두 시가 넘도록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휴대전화 알람을 두 번이나 맞춰놓았지만, 아침 여섯 시 반이 되어 저절로 눈을 떴다. 알람 소리는 듣지도 못했다. 두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으니 몸이 편할 리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른 누구도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