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 글바람 ㉝」 고금능선 산행기, 포기하고 싶은 마음 하나를 넘다
고대봉 정상에 서있는 정상석
2009년 9월 6일, 고대산 제2등산로를 따라 대광봉과 고대산 정상에 오른 뒤 보개산을 지나 금화산까지 이어 걸었다. 수풀 속에 감춰진 능선길과 군사시설의 흔적, 보개산 헬기장의 짧은 낮잠, 철원평야의 넓은 풍경이 오래 남은 하루였다.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고금능선에서 내가 넘은 것은 산봉우리만이 아니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하나를 넘고, 저녁 철원 들판에 긴 그림자 하나를 내려놓은 날이었다.
나와 한 약속을 지키러 가는 길
한동안 뜸했던 혼자만의 산행이었다. 가고 싶은 산은 많았고 해야 할 일도 태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다 모처럼 일요일 하루를 비워 산으로 가기로 했다. 운동을 무리하게 했는지 정강이 근육통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지만, 오히려 산길을 걸으며 풀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고른 길이 고대산에서 보개산을 지나 금화산까지 이어지는 종주산행이었다.
고대산은 전에 오른 적이 있었지만 보개산과 금화산은 이름만 어렴풋이 들어본 산이었다. 그러나 한번 마음먹은 일은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힘들 줄 알면서도 일부러 종주길을 찾아 나서는 내 모습이 때로는 우습기도 하다.
산행을 시작하면 정해둔 끝까지 걸어야 한다. 도중에 그만두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미련스럽게 길을 이어간다. 아마도 한 번 멈추면 다시 시작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다른 산들이 저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다리던 산행을 앞둔 설렘 때문이었을까. 토요일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두 시가 넘도록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휴대전화 알람을 두 번이나 맞춰놓았지만, 아침 여섯 시 반이 되어 저절로 눈을 떴다. 알람 소리는 듣지도 못했다.
두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으니 몸이 편할 리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과 한 약속이었다. 배낭을 챙겨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고대산 · 보개산 · 금화산, 고금능선 이어타기
📅 산행일
2009년 9월 6일
🥾 산행 코스
고대산 제2등산로 → 대광봉 → 고대산 정상 → 보개산 → 금화산 → 철원여중
📏 산행 거리
약 13km
⏱ 산행 시간
약 6시간
🕰 주요 시간
들머리 10시 50분 → 고대산 정상 12시 40분 → 보개산 15시 → 금화산 입구 15시 20분 → 금화산 정상 16시 30분 → 철원여중 약수터 17시 40분
⭐ 난이도
★★★★☆
고대산 제2등산로의 오르막과 칼바위능선, 고금능선의 희미한 들머리, 보개산 이후 금화산을 다시 치고 오르는 구간이 체력적으로 부담스럽다. 처음 걷는 사람은 길 찾기와 하산 시간을 넉넉히 잡는 것이 좋다.
🌳 산행환경
혼자 산행 · 경원선 기차 산행 · 칼바위능선 · 수풀 속 들머리 · 군사시설 흔적 · 헬기장 · 철원평야 조망 · 약수터 하산
🏡 숙박
당일 산행 가능. 연천 신탄리·철원 동송권 숙박과 연계 가능
🚆 이동방법
청량리역 → 동두천역 → 신탄리역, 하산 후 철원에서 의정부행 버스 이용
다섯 분 차이로 놓친 기차
경원선 출발지가 동두천역으로 바뀐 뒤 처음 찾아가는 고대산이었다. 서둘렀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겨우 다섯 분 차이로 오전 8시 50분 신탄리행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다음 기차는 한 시간 뒤인 9시 50분이었다.
무료하게 한 시간을 기다리면서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먼 지방도 아니고 서울 근교이니 아무리 늦어도 집에는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9시 50분, 동두천을 출발한 기차가 천천히 북쪽으로 달렸다. 창밖에는 초가을 들녘의 푸른빛과 갈색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키 큰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고 고추잠자리들이 열차 곁을 따라 날았다.
천천히 달리는 기차는 목적지에 빨리 데려다주기보다 가는 길 자체를 즐기라는 듯 여유로웠다.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 나들이에 나선 나이 든 부부들, 창밖을 바라보는 승객들의 얼굴도 모두 편안해 보였다.
기차는 마침내 마지막 종착역인 신탄리역에 도착했다. 객차 문이 열리자 기차가 품고 왔던 사람들을 역 앞에 하나둘 내려놓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산과 들을 향해 흩어졌다.
오랜만에 찾은 고대산은 거의 변한 것이 없었다. 낯익은 간판과 가게들이 그대로였다. 당시에는 입장료 천 원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산을 오르기 위해 입장료를 내던 시절의 풍경도 오래된 기억이 되었다.
칼바위능선으로 오르다
나는 조금 가파르더라도 풍경이 좋은 제2등산로를 택했다. 시멘트 길을 따라 올라가자 제2등산로 들머리가 나타났다. 초반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졌다.
바람은 거의 없었고 늦여름의 열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다행히 숲이 그늘을 만들어주었고, 하늘도 잠시 눈을 감은 듯 해를 구름 뒤로 숨겨주었다.
힘들게 흘리는 땀이었지만 이런 땀은 반가웠다. 몸속에 쌓인 무거운 것들이 땀과 함께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나무계단을 지나 전망대에 올라서자 칼바위능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발아래에는 아찔한 낭떠러지가 이어졌지만 능선에 올라서니 기다렸다는 듯 바람이 다가왔다. 오르막에서 달아오른 몸을 시원하게 쓸어주었다.
멀리 고대산 정상이 보였다. 먼저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도 눈에 들어왔다. 대광봉에 도착하자 고대산 정상은 한층 가까워졌다. 흐린 날씨였지만 노출된 정상에서 삼삼오오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고대봉 정상석에는 처음 보는 황금빛 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는 동안에도 잠자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옆에 있던 사람이 한번 건드려보라며, 그러면 날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괜히 그 평온을 깨고 싶지 않아 그대로 두었다.
잠자리도 어쩌면 나처럼 먼 길을 가기 전 잠시 쉬어가는 중이었는지 모른다.
오늘의 시
고금능선 / 송현
고대산을 내려놓자
보개산이 길을 잇고,
한숨 내려놓을 틈 없이
금화산이 다시 일어선다.
산을 넘은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싶은 마음 하나를 넘어,
저녁 철원 들판에
내 그림자 길게 내려놓았다.
수풀 속에 감춰진 길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고금능선 들머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길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점심을 먹으며 다시 지형을 살핀 끝에 계단 오른쪽 수풀 속에 희미하게 열린 길 하나를 발견했다. 금화산으로 이어지는 들머리였다.
길을 찾느라 삼십 분가량을 지체했다. 수풀을 헤치고 들어서자 비로소 사람 발길이 이어진 흔적이 나타났다.
장마에 흙이 쓸려나간 길도 있었고, 물이 고여 잠시 잠긴 구간도 있었다. 군용 벙커와 폐타이어로 만든 계단도 눈에 띄었다. 이곳이 최전방과 가까운 산이라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하는 흔적들이었다.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앞서가는 사람도, 뒤따라오는 사람도 없었다. 처음 걷는 길이어서 약간 긴장되었지만 멀리 금화산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금화산이 너무 낮은 곳에서부터 다시 치솟아 있었다. 지금 걷는 능선에서 한참 내려갔다가 처음부터 다시 올라가야 할 것처럼 보였다.
종주산행을 해본 사람은 안다. 이미 지친 몸으로 고도를 모두 내려놓은 뒤 또다시 산 하나를 처음부터 올라야 할 때의 막막함을.
그 막막함이야말로 종주의 진짜 얼굴일지도 모른다. 산 하나를 넘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은 만큼 다시 올라야 하는 길. 그래도 길은 앞에 있고, 마음먹은 이상 발은 그쪽으로 향한다.
보개산 헬기장에서 잠들다
그늘에 싸인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니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이 가끔 나타났다. 부부도 있었고 두 명, 네 명씩 짝을 이룬 일행도 있었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나를 보자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라며 반가워했다.
산길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이렇게 반가울 때가 있다. 서로 이름도 모르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지만,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오래 알던 사람처럼 인사를 나눈다.
보개산 정상 부근 헬기장에 도착했을 때도 구름은 여전히 해를 가리고 있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인지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앞에는 금화산이 어서 오라는 듯 버티고 서 있었지만 몸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배낭을 베개 삼아 헬기장에 누웠다.
얼마나 잤을까.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다. 아침에 듣지 못했던 알람 소리처럼 들렸다. 삼십 분 정도 잠든 모양이었다. 차가운 헬기장 바닥에서 잔 짧은 낮잠이었지만 신기하게도 피로가 조금 가셨다.
산이 내게 잠시 쉬어가라며 자리를 내어준 것 같았다.
산행 중의 낮잠은 묘하다. 집에서 자는 잠처럼 편하지도 않고, 제대로 눕는 것도 아니지만, 몸이 가장 절실할 때 잠깐 건네받는 선물 같다. 그날 보개산 헬기장은 내게 그런 자리였다.
나는 다시 배낭을 메고 금화산을 향했다.
다시 한 산을 오르는 마음
보개산에서 내려와 금화산 입구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대로 몸은 이미 지쳐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는 다시 올라야 할 금화산이 버티고 있었다.
네 바퀴가 달린 레저용 차량들이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주변에는 대전차 방어용 구조물과 군사시설의 흔적들이 놓여 있었다. 이 길이 단순한 산길이 아니라 오래도록 긴장을 품고 있던 땅 위의 길이라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했다.
금화산 정상까지는 약 1km라고 알고 있었다. 거리만 생각하면 짧았다. 하지만 지친 몸으로 오르는 길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발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경사는 생각보다 가팔랐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한 시간 가까이 힘겹게 올라 금화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 부근에는 공사 중인 헬기장이 있었고 초병이 근무하는 초소도 보였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곧바로 철원여중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고대산과 달리 제대로 된 이정표가 없었다. 그저 아래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 걷는 하산길은 늘 조심스럽다. 길이 맞는지, 어디로 이어지는지, 얼마나 더 내려가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왔다. 돌아갈 길도,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산행은 때로 그런 식으로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고민할 틈 없이, 눈앞의 길을 내려가게 한다.
산들이 섬처럼 떠 있는 철원평야
올라올 때의 거리를 생각하면 금세 내려갈 줄 알았다. 하지만 하산길은 예상과 달랐다. 경사는 몹시 가팔랐고 길은 가도 가도 끝나지 않았다.
중간에 매봉바위에 앉아 철원평야를 내려다보았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평야라기보다 바다에 가까웠다.
넓은 들판 위로 낮은 산들이 섬처럼 떠 있었다. 초가을 빛이 들판 위에 번지고 산들은 멀리서 조용히 물결쳤다. 오랫동안 군사적 긴장을 품어온 땅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철원평야는 이상한 울림을 주는 풍경이었다. 넓고 고요한 들판, 그 위에 드문드문 떠 있는 산들, 그리고 그 너머로 이어질 수 없는 북쪽의 땅. 이곳의 산들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오래된 시간과 경계의 기억을 함께 품고 있는 듯했다.
산을 내려와서야 하산길이 길었던 이유를 알았다. 내가 금화산으로 올라간 길은 약 1km였지만 철원여중으로 내려온 길은 약 4km였다. 어쩐지 끝없이 이어진다 싶었다.
처음 걷는 길은 늘 그렇다. 지도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직접 부딪치고 걸어봐야 비로소 길의 거리와 경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시간을 알게 된다.
내려오는 길에는 수수 이삭마다 양파망을 씌워놓은 모습이 보였다. 아마 참새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망 속에 갇힌 수수들이 어쩐지 애처롭게 보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돌아오는 행복
고금능선 산행을 마치고 약수터에 도착했다. 한없이 쏟아지는 약수로 머리를 감고 목이 찰 때까지 물을 마셨다. 땀과 먼지가 씻겨 내려가자 긴 산행도 함께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냥 돌아가기에는 아쉬웠다. 일요일이라 문을 연 식당도 많지 않았고 아는 곳도 없었다. 겨우 한 집을 찾아 막창과 삼겹살을 안주 삼아 소주 한잔을 마셨다. 신탄리행 기차 대신 의정부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마음먹었기에 조금 여유를 부렸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도 작은 착각이었다.
버스는 자주 오지 않았고 요금은 6,600원이었다. 한 시간 남짓 걸린다던 버스는 의정부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수락산 부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지나 있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늦었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무엇보다 하루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산에서는 다리가 무겁고 길이 끝없이 멀게 느껴졌지만, 돌아보면 그 고단함까지도 행복이었다. 누가 시켜서 걷는 길이 아니었다. 내가 정한 길을 내 힘으로 끝까지 걸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에필로그|내가 정한 길을 끝까지 걷는다는 것
고금능선 이어타기는 나와 한 약속을 지키러 간 산행이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정강이 근육통도 남아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고대산을 향하고 있었다. 산행 전날의 설렘은 몸보다 먼저 길 위에 나를 세워놓았다.
다섯 분 차이로 기차를 놓쳤고, 동두천역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느린 기다림 덕분에 초가을 들녘과 코스모스, 고추잠자리가 보였다. 산행은 때로 들머리에 닿기 전부터 시작된다. 기차가 느리게 북쪽으로 달리던 시간도 그날 산행의 일부였다.
고대산 제2등산로의 오르막은 힘들었지만, 칼바위능선에 올라서자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불어왔다. 정상석에 앉은 황금빛 잠자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작은 생명 하나가 정상의 풍경을 오래 붙들어주었다.
그러나 진짜 산행은 그 뒤부터였다. 고금능선 들머리는 수풀 속에 숨어 있었고, 아무도 그 길을 알려주지 않았다. 삼십 분을 헤맨 끝에 희미한 길을 찾아 들어섰다. 군용 벙커와 폐타이어 계단, 물이 고인 산길은 이 산줄기가 품고 있는 땅의 기억을 조용히 드러내고 있었다.
보개산 헬기장에서는 잠이 쏟아졌다. 앞에는 금화산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몸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배낭을 베고 누워 삼십 분쯤 잤다. 산이 잠시 쉬어가라며 내어준 자리였다. 그 짧은 낮잠 덕분에 다시 걸을 수 있었다.
금화산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이미 지친 몸으로 다시 한 산을 처음부터 오르는 기분이었다. 거리로는 짧아 보였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정한 길이었고, 내가 끝까지 가기로 한 약속이었다.
철원여중으로 내려가는 길은 예상보다 길고 가팔랐다. 중간에 매봉바위에 앉아 바라본 철원평야는 바다 같았다. 넓은 들판 위로 산들이 섬처럼 떠 있었다. 그 평화로운 풍경 속에는 오래된 긴장과 경계의 시간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하산 뒤 약수터에서 머리를 감고 목이 찰 때까지 물을 마셨다. 막창과 삼겹살을 안주 삼아 소주 한잔을 마시고, 의정부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길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돌아오는 사람의 마음은 피곤해도 밝다. 다리는 무겁고 시간은 늦었지만, 하루 동안 내가 정한 길을 내 힘으로 걸었다는 사실 하나가 충분했다.
고금능선에서 내가 넘은 것은 고대산과 보개산과 금화산만이 아니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하나를 넘었다. 그리고 저녁 철원 들판에 내 그림자를 길게 내려놓고 돌아왔다.
🌿 이 산행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고대산은 연천 신탄리와 가까워 기차 산행지로 많이 알려진 산이다. 고대산자연휴양림 안내에서도 고대산 자락의 숲길과 탐방로, 자연휴양림 시설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보개산과 이어지는 등산로도 있어, 고대산만 왕복하는 산행보다 조금 더 긴 능선 산행을 계획할 수 있다.
다만 고대산에서 보개산과 금화산까지 이어 걷는 고금능선은 일반적인 짧은 원점회귀 산행과 다르다. 들머리가 희미한 구간이 있고, 군사시설 흔적과 임도, 이정표가 부족한 하산길이 섞여 있어 산행 경험이 필요하다. 특히 금화산 이후 철원 방향 하산은 예상보다 길 수 있으므로 시간과 체력을 여유 있게 잡는 것이 좋다.
산행 준비 메모
첫째, 고금능선 들머리는 미리 확인해야 한다.
고대산 정상 이후 보개산·금화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은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다. 산행 앱이나 지도 확인이 필요하다.
둘째, 종주는 ‘다시 오르는 구간’이 힘들다.
고대산을 내려놓은 뒤 보개산과 금화산을 다시 오르는 흐름이라 체력 안배가 중요하다.
셋째, 하산 교통을 미리 계획해야 한다.
철원 방향으로 내려오면 기차역과 거리가 생길 수 있다. 버스 시간, 택시, 귀가 동선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넷째, 접경지역 산행은 정해진 등산로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군사시설 흔적이 있는 지역에서는 안내 표지와 출입 제한 구역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 관련 사이트 및 여행 정보
① 연천 고대산자연휴양림
고대산 자연휴양림, 숲길, 숙박 시설, 주변 산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② 연천군 문화관광
신탄리, 고대산, 연천 북부 여행 정보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③ 철원군 문화관광
철원평야, 노동당사, 한탄강, DMZ 평화관광 등 철원 여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④ 코레일 기차 예매
동두천, 연천, 경원선 접근과 열차 운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⑤ 가평 유명산 자연휴양림
다음 산행지인 유명산 자연휴양림과 주변 여행 정보를 미리 확인할 수 있다.
🌿 고금능선 산행 준비물 체크리스트
□ 등산 지도 또는 산행 앱
□ 보조배터리
□ 충분한 식수
□ 행동식
□ 접지력 좋은 등산화
□ 등산 스틱
□ 긴 바지와 긴팔
□ 수풀 구간 대비 장갑
□ 여벌 양말
□ 기차·버스 시간 확인
□ 하산 후 교통편 확인
□ 출입 제한 구역 확인
□ 혼자 산행 시 가족·지인에게 코스 공유
□ 잠이 부족할 때 무리하지 않는 판단
□ 그래도 내가 정한 길을 책임지는 마음
🌿 추천 숙박과 주변 여행
🏡 연천 신탄리·고대산권
고대산만 여유 있게 오르거나 고금능선을 준비한다면 연천 신탄리와 고대산자연휴양림 주변을 활용할 수 있다. 고대산자연휴양림은 고대산 자락에서 숙박과 숲 체험을 함께할 수 있는 곳이다.
🏡 철원 동송·철원읍권
금화산이나 철원 방향으로 하산한다면 철원권 숙박과 여행을 함께 계획할 수 있다. 철원평야, 노동당사, 한탄강 일대와 연계하면 접경지역의 풍경과 역사를 함께 만날 수 있다.
🌄 이전 산행 이야기 다시보기
「산바람 · 글바람 ㉜」 남덕유산 산행기, 새해 첫빛을 기다리며
남덕유산에서는 영각탐방지원센터에서 새벽 어둠을 뚫고 정상에 올라 새해 첫빛을 기다렸습니다. 구름 뒤에서 번지는 일출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월성치와 삿갓봉, 삿갓재와 황점마을로 이어지는 겨울 능선에서 예전 같지 않은 몸으로도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남덕유산이 구름 뒤의 첫빛으로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건넨 산이었다면, 고금능선은 내가 정한 길을 끝까지 걸으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 하나를 넘어선 산행이었습니다. 하나는 세월을 건너 다시 오르는 길이었고, 하나는 혼자 한 약속을 지키는 길이었습니다.
🌄 다음 산행 이야기
「산바람 · 글바람 ㉞」 유명산 산행기
고금능선에서는 고대산 제2등산로를 올라 대광봉과 고대산 정상에 섰고, 수풀 속 들머리를 찾아 보개산과 금화산까지 이어 걸었습니다. 보개산 헬기장의 짧은 낮잠, 금화산을 다시 오르던 고단함, 그리고 철원평야 위에 섬처럼 떠 있던 산들이 오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다음 산행은 유명산으로 향합니다. 유명산은 가평의 자연휴양림과 계곡, 완만한 숲길과 조망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 산입니다. 고금능선이 포기하고 싶은 마음 하나를 넘어선 긴 종주 산행이었다면, 유명산에서는 조금 더 부드러운 숲과 계곡의 길 위에서 또 다른 쉼의 문장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산길의 끝에서
고금능선 이어타기는 나와 한 약속을 지키러 간 산행이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정강이 근육통도 남아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고대산을 향하고 있었다. 산행 전날의 설렘은 몸보다 먼저 길 위에 나를 세워놓았다.
다섯 분 차이로 기차를 놓쳤고, 동두천역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느린 기다림 덕분에 초가을 들녘과 코스모스, 고추잠자리가 보였다. 산행은 때로 들머리에 닿기 전부터 시작된다. 기차가 느리게 북쪽으로 달리던 시간도 그날 산행의 일부였다.
고대산 제2등산로의 오르막은 힘들었지만, 칼바위능선에 올라서자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불어왔다. 정상석에 앉은 황금빛 잠자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작은 생명 하나가 정상의 풍경을 오래 붙들어주었다.
그러나 진짜 산행은 그 뒤부터였다. 고금능선 들머리는 수풀 속에 숨어 있었고, 아무도 그 길을 알려주지 않았다. 삼십 분을 헤맨 끝에 희미한 길을 찾아 들어섰다. 군용 벙커와 폐타이어 계단, 물이 고인 산길은 이 산줄기가 품고 있는 땅의 기억을 조용히 드러내고 있었다.
보개산 헬기장에서는 잠이 쏟아졌다. 앞에는 금화산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몸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배낭을 베고 누워 삼십 분쯤 잤다. 산이 잠시 쉬어가라며 내어준 자리였다. 그 짧은 낮잠 덕분에 다시 걸을 수 있었다.
금화산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이미 지친 몸으로 다시 한 산을 처음부터 오르는 기분이었다. 거리로는 짧아 보였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정한 길이었고, 내가 끝까지 가기로 한 약속이었다.
철원여중으로 내려가는 길은 예상보다 길고 가팔랐다. 중간에 매봉바위에 앉아 바라본 철원평야는 바다 같았다. 넓은 들판 위로 산들이 섬처럼 떠 있었다. 그 평화로운 풍경 속에는 오래된 긴장과 경계의 시간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하산 뒤 약수터에서 머리를 감고 목이 찰 때까지 물을 마셨다. 막창과 삼겹살을 안주 삼아 소주 한잔을 마시고, 의정부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길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돌아오는 사람의 마음은 피곤해도 밝다. 다리는 무겁고 시간은 늦었지만, 하루 동안 내가 정한 길을 내 힘으로 걸었다는 사실 하나가 충분했다.
고금능선에서 내가 넘은 것은 고대산과 보개산과 금화산만이 아니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하나를 넘었다. 그리고 저녁 철원 들판에 내 그림자를 길게 내려놓고 돌아왔다.
다음 산길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 산바람 · 글바람
한동안 뜸했던
혼자만의 산행이었습니다.
가고 싶은 산은 많았고,
해야 할 일도
태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그래도 모처럼
일요일 하루를 비워
산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잠은 오지 않았고,
몸은 편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이미
고대산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다섯 분 차이로
기차를 놓쳤습니다.
한 시간을 기다린 뒤
천천히 북쪽으로 달리는 기차에 올랐습니다.
창밖에는
초가을 들녘이 펼쳐지고,
코스모스와 고추잠자리가
기차 곁을 따라왔습니다.
고대산 제2등산로를 오르자
땀이 비 오듯 흘렀습니다.
칼바위능선에 올라서니
기다렸다는 듯
바람이 다가왔습니다.
고대봉 정상석에는
황금빛 잠자리 한 마리가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괜히
그 평온을 깨고 싶지 않아
그대로 두었습니다.
정상 이후
고금능선 들머리는
수풀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삼십 분을 헤맨 끝에
희미한 길 하나를 찾아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앞서가는 사람도 없고,
뒤따라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군용 벙커와
폐타이어 계단이
이곳이 품은 시간을
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고대산을 내려놓자
보개산이 길을 잇고,
한숨 내려놓을 틈 없이
금화산이 다시 일어섰습니다.
보개산 헬기장에서는
잠이 쏟아졌습니다.
배낭을 베고
삼십 분쯤 잠들었습니다.
산이 잠시
쉬어가라며
자리를 내어준 것 같았습니다.
다시 금화산을 올랐습니다.
이미 지친 몸으로
다시 한 산을 오르는 일은
생각보다 고단했습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정한 길이었고,
내가 끝까지 걷기로 한
약속이었으니까요.
철원여중으로 내려가는 길은
예상보다 길고 가팔랐습니다.
매봉바위에 앉아
철원평야를 바라보았습니다.
넓은 들판 위로
낮은 산들이
섬처럼 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긴장을 품은 땅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약수터에 도착해
쏟아지는 물로 머리를 감고,
목이 찰 때까지 물을 마셨습니다.
땀과 먼지가 씻겨 내려가자
긴 산행도 함께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듯했습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길었지만
마음은 가벼웠습니다.
누가 시켜서 걷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정한 길을
내 힘으로 끝까지 걸었습니다.
고금능선에서
내가 넘은 것은
산봉우리만이 아니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하나를 넘고,
저녁 철원 들판에
내 그림자 길게 내려놓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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