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 글바람 ㊻」 음성 수레의산 산행기, 가을바람 따라 오른 짧은 산행

이미지
  음성 수레의산 가을바람 따라 오른 짧은 산행 가을바람이 시원하게 불던 날, 음성 수레의산을 가볍게 올랐다. 동요의 길과 하얀 나비, 너덜길과 헬기장 갈림길을 지나 정상 정자에 앉으니 짧은 산행도 충분히 깊은 하루가 되었다.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수레의산은 짧게 올라도 허전하지 않은 산이었다. 다 걷지 못한 길은 아쉬움이 아니라, 다음에 다시 오라는 산의 조용한 약속처럼 남았다. 양 떼 같은 구름이 몰려가던 날 하늘이 구름을 양 떼처럼 몰고 다니는 가을이다.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니 산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다. 이런 날은 집에 있으면 괜히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창밖 하늘만 봐도 배낭이 먼저 어깨에 올라앉는 날이다. 오늘은 충북 음성의 수레의산을 만나보기로 하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이름부터 정겹다. 수레의산. 뭔가 삐걱삐걱 나무 수레 하나가 산길을 천천히 올라갈 것 같은 이름이다. 높고 험한 산이라기보다, 마을 가까이에서 사람들을 조용히 맞아주는 산일 것 같았다. 음성청소년수련원과 수레의산자연휴양림.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정다운 곳이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숲 냄새가 먼저 다가오는 듯했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충북 음성 수레의산 📅 산행일 가을바람이 시원하게 불던 날 🥾 산행 코스 음성청소년수련원·수레의산자연휴양림 부근 → 임도 → 동요의 길 → 산행 들머리 → A코스 → 너덜길 → 헬기장 → 정상 600m 구간 → 수레의산 정상 → 원점 방향 하산 📏 산행 거리 짧은 A코스 중심의 가벼운 산행 ⏱ 산행 시간 정상까지 약 40분 안팎, 휴식과 하산 포함 짧은 반나절 산행 ⭐ 난이도 ★★☆☆☆ 전체적으로 짧고 부담은 덜하지만, 초반 너덜길과 정상 전 마지막 깔딱고개, 하산길 비탈은 조심해야 한다. 가볍게 걷기 좋은 산이지만 등산화와 ...

「산바람 · 글바람 ㊷」 양구 봉화산 산행기, 불빛이 사라진 자리에서 양구를 바라보다

 양구 봉화산

불빛이 사라진 자리에서


강원도 양구 봉화산 정상에서 바라본 양구 산줄기와 한반도 정중앙 휘모리 표지, 봉화대 흔적과 양구 시내 풍경
십여 년 만에 다시 양구 봉화산을 찾았다. 봉화의 불빛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정상에 서니 한반도 정중앙의 상징과 한국전쟁의 기억, 그리고 양구를 견뎌온 산과 들의 시간이 조용히 다가왔다.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양구 봉화산에서 바라본 것은 풍경만이 아니었다. 불빛이 사라진 봉화대 자리에서, 나는 양구가 견뎌온 역사와 십여 년 만에 다시 돌아온 내 시간을 함께 바라보았다.


봉화산이라는 이름

봉화산이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다.

전국 어디를 가도 봉화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 하나쯤은 만날 수 있다. 지금이야 그저 동네 뒤편의 작고 평범한 산처럼 보이지만, 그 이름 속에는 한 시대의 다급했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전화도 없고 무전기도 없던 시절, 급한 소식을 가장 빨리 전하는 방법은 산 위에 불을 밝히는 것이었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외적의 침입이나 나라의 긴급한 소식은 산에서 산으로 건너갔다. 어느 봉우리에서 피어오른 연기 한 줄기가 다음 봉우리로 이어지고, 다시 그다음 산으로 넘어가며 먼 곳의 소식을 전했다.

그래서 봉화산은 단순히 높은 산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고을과 고을을 이어주던 옛날의 통신탑이었다.

지금은 손바닥만 한 휴대전화 하나면 지구 반대편까지 순식간에 소식이 닿는다. 그런 세상에 살면서 십여 년 만에 다시 양구 봉화산을 오르니, 산보다 먼저 세월이 보인다.

불빛 하나를 올리기 위해 사람들이 산에 올랐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아무 급한 소식도 없이, 다만 지나온 시간을 만나기 위해 그 산을 다시 오른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강원도 양구 봉화산

📅 산행일
십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양구 봉화산 산행

🥾 산행 코스
봉화산 들머리 → 한반도 정중앙 휘모리 표지 일대 → 봉화산 정상 → 원점 방향 하산

📏 산행 거리
정확한 거리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봉화산 정상과 주변 조망을 함께 둘러본 산행

⏱ 산행 시간
반나절 산행

⭐ 난이도
★★★☆☆

봉화산은 아주 높은 산은 아니지만, 양구의 산답게 오르막과 능선 조망이 있다. 정상에서는 양구 산줄기와 들판, 접경지역 특유의 지형을 넓게 바라볼 수 있어 역사와 풍경을 함께 느끼기 좋다.

🌳 산행환경
봉화산 · 한반도 정중앙 · 휘모리 표지 · 양구 조망 · 봉화대 흔적 · 한국전쟁의 기억 · 양구 시래기 · 접경지역 산행

🏡 숙박
양구읍권 숙박 또는 국토정중앙면·파로호·대암산 용늪 여행과 연계 가능

🚗 이동방법
자가용으로 양구 봉화산 들머리 접근


한반도 정중앙 휘모리 표지 앞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입구에서 반가운 친구 하나를 다시 만난다.

한반도 정중앙을 알리는 휘모리 표지.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 표지는 마치 내가 다시 올 줄 알았다는 듯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왔는가.’

말 한마디 없는 표지인데도 오래 만나지 못했던 친구처럼 정겹다. 양구는 국토의 정중앙이라는 상징을 품은 고장이다. 사람들은 양구를 접경지역으로 기억하기도 하고, 시래기와 펀치볼로 떠올리기도 하지만, 이곳에는 한반도의 중심이라는 묘한 울림도 함께 있다.

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사람만 변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오르막에서 숨을 한 번 더 고르고, 그때는 보이지 않던 나무 한 그루와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십 년이라는 세월이 산을 바꾼 것인지, 나를 바꾼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마 산보다 내가 더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찾은 산은 늘 처음 같고, 또 오래된 친구 같다. 길은 낯설지 않은데, 그 길을 걷는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같은 산길 위에서 전과 다른 숨을 쉬고, 전에는 지나쳤던 풍경 앞에 더 오래 멈춰 선다.

봉화산은 그런 변화를 조용히 받아주었다.


양구의 산들이 보이기 시작하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양구의 산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겹겹이 이어지는 산줄기와 그 품 안에 자리 잡은 양구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곳이 얼마나 많은 역사를 품은 땅인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양구에는 우리 현대사의 특별한 시간이 남아 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한반도가 38선을 기준으로 나뉘었을 때 양구의 많은 지역은 38선 이북에 놓이면서 북쪽 체제 아래 들어갔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양구의 운명은 다시 바뀌었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이 일대의 산과 능선에서는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다. 양구와 인제, 펀치볼 일대를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이름도 낯선 산과 골짜기에서 목숨을 걸었을까.

그 치열했던 전투를 거쳐 전선이 북쪽으로 올라갔고, 휴전 이후 양구는 대한민국의 관할 지역으로 남게 되었다. 지금 봉화산 정상에서 평화롭게 내려다보이는 저 산과 들도 한때는 남과 북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땅이었다.

풍경은 고요하지만, 그 고요는 단순하지 않다.

양구의 산들은 그냥 푸른 산줄기가 아니다. 도솔산, 펀치볼, 가칠봉 같은 이름들은 여행지의 이름이기 전에 전쟁의 기억을 품은 이름들이다. 오늘의 평화로운 조망 아래에는 많은 젊은 생명이 지나간 시간이 겹겹이 묻혀 있다.

산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의 능선을 걷다 보면 가끔 오래전의 시간이 바람에 섞여 오는 것 같다.

누군가는 이 산길을 군화를 신고 걸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살아서 돌아갈 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오늘의 시

봉화산의 불빛 / 송현

불빛은 사라졌지만
봉화산은 아직
소식을 품고 있었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산에서 산으로 건너가던 말들.

이제는 아무 봉화도 오르지 않지만
양구의 바람 속에는
오래된 시간이 남아 있었다.

휘모리 표지 앞에 서니
십여 년 전의 내가
먼저 와 기다리는 듯했고,

나는 작은 불빛 하나
마음속에 피워놓고
말없이 양구를 바라보았다.


책에서 읽는 역사와 사람에게 듣는 역사

십여 년 전 양구에 머물 때 북쪽 체제 아래에서 살았던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책에서 읽는 역사가 아니라 그 시대를 직접 살아낸 사람의 입에서 듣는 이야기는 달랐다. 어느 날 선 하나가 그어지고, 살던 땅의 체제가 바뀌고, 다시 전쟁을 겪으면서 삶의 터전이 대한민국이 되는 과정을 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이었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산 아래를 바라보니 평범해 보이는 풍경도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양구라고 하면 시래기, 땅굴, 펀치볼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양구는 그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다.

우리 국토의 정중앙이라는 상징성이 있고, 한국전쟁의 아픈 흔적이 산과 골짜기 곳곳에 남아 있다. 이름만 들어도 전쟁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산들이 양구에는 서 있다.

그 산들 사이에서 사람들은 밭을 일구고, 시래기를 말리고,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역사의 큰 흐름은 지도 위의 선으로 기록되지만, 사람의 삶은 밥상과 밭고랑과 마을길 속에 남는다.

그래서 양구의 풍경은 멀리서 보면 조용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상처 곁에서 살아난 자연

그런 아픈 역사를 품은 땅 한편에는 전혀 다른 얼굴의 자연도 살아 있다.

대암산 일원의 용늪은 오랜 세월 자연이 만들어놓은 생명의 터전이다. 전쟁과 분단으로 사람의 발길이 제한되었던 시간이 역설적으로 자연을 지켜준 곳도 있다.

사람의 상처 곁에서 자연은 그렇게 조용히 제 삶을 이어왔다.

양구의 자연은 그런 점에서 조금 특별하다. 아름답기만 한 자연이 아니라, 아픔과 경계와 기다림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연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못했던 시간 동안 풀과 나무, 습지와 물길은 자기 방식대로 시간을 견뎌냈다.

봉화산에서 양구의 산줄기를 바라보면 그 생각이 든다.

사람은 선을 긋고, 싸우고, 빼앗고, 되찾지만 산은 오래 그 자리에 남는다. 산은 승패를 기록하지 않는다. 다만 그 위를 지나간 사람들의 발소리와 숨결을 조용히 받아놓는다.

그래서 산 앞에서는 함부로 말이 많아지지 않는다.


시래기 로 유명한  양구

양구 하면 시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찬바람 부는 고랭지에서 자란 무청을 말려 만든 시래기는 화려하지 않지만 구수하다. 뜨끈한 시래깃국 한 그릇에는 산골의 겨울과 사람 사는 냄새가 함께 들어 있다.

생각해 보면 양구라는 곳도 시래기와 조금 닮았다.

겉으로는 투박하고 조용하지만 오래 들여다볼수록 깊은 맛이 난다. 처음에는 그저 산골의 작은 고장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시간을 두고 바라보면 국토의 중심, 전쟁의 기억, 접경지역의 삶, 청정한 자연과 산골 음식의 맛이 한꺼번에 다가온다.

화려한 여행지는 아니어도 오래 남는 고장이 있다.

양구가 그랬다.

봉화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동안 나는 계속 그 생각을 했다. 양구는 겉으로 크게 소리치지 않는다. 대신 산과 들, 바람과 음식,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천천히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

마치 시래깃국처럼.

처음에는 투박하지만,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뜨다 보면 속이 따뜻해지는 맛이다.


십여 년 전의 나에게 보내는 봉화

봉화산에서 내려오는 길, 십여 년 전 이 산을 올랐던 나를 생각한다.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이 길을 걸었을까. 무엇 때문에 웃었고, 무엇 때문에 마음 아파했을까. 기억은 선명하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그때의 산길은 낯설지 않다.

발끝에 밟히는 흙의 감촉도,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오는 햇빛도 오래전에 두고 간 기억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는 것 같다.

옛날 봉화산 정상에서는 불을 피워 먼 곳으로 소식을 보냈다. 오늘은 불도 없고 연기도 없다. 대신 정상에 서서 지나온 내 시간을 바라본다.

십 년 전의 나에게 무슨 말을 전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봉화를 올릴까.

잘 살아왔다고 할까.
조금 더 천천히 살아도 된다고 할까.
아니면 아무 말 없이, 다시 이 산에 왔다고 작은 불빛 하나만 피워놓을까.

봉화산의 봉화는 오래전에 꺼졌다. 지금은 모형만 남아 그 시절의 흔적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저마다 쉽게 꺼지지 않는 불빛 하나가 있는지도 모른다.

38선 이북의 땅이었던 시절과 전쟁의 포화, 대한민국의 땅이 된 뒤 이어진 긴 세월. 그 상처 곁에서 다시 살아난 자연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세월 한편에는 십여 년 만에 다시 이 산을 찾아온 나의 시간도 놓여 있다.


에필로그|불빛은 사라졌지만

봉화산이라는 이름은 흔하지만, 그 이름 안에는 오래된 긴급함이 숨어 있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소식을 전하던 시절. 봉화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고을과 고을, 사람과 사람을 잇던 옛날의 통신탑이었다.

십여 년 만에 다시 오른 양구 봉화산에서 나는 가장 먼저 세월을 보았다. 한반도 정중앙을 알리는 휘모리 표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말없이 나를 맞아주었다. 산은 그대로였지만 그 산을 오르는 나는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양구의 산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조용한 산과 들에는 한국전쟁의 기억이 남아 있다. 한때 38선과 휴전선의 변화 속에서 삶의 터전이 바뀌었고, 수많은 전투와 상처를 견딘 뒤 오늘의 양구가 되었다.

십여 년 전 양구에 머물 때 들었던 어르신들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책에서 읽는 역사가 아니라 직접 살아낸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달랐다. 어느 날 선 하나가 그어지고, 체제가 바뀌고, 전쟁이 지나간 뒤에도 사람들은 그 땅에서 다시 밭을 일구고 삶을 이어갔다.

양구의 자연도 그 세월을 함께 견뎌냈다. 대암산 용늪처럼 사람의 발길이 제한되었던 시간 속에서 오히려 지켜진 생명의 터전도 있다. 상처와 생명이 같은 땅 위에 나란히 놓여 있다는 사실이 양구의 풍경을 더 깊게 만든다.

그리고 양구에는 시래기가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구수하고, 투박하지만 오래 끓일수록 깊어지는 맛. 양구라는 고장도 그렇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오래 들여다볼수록 국토의 중심, 전쟁의 기억, 산골의 음식과 자연의 깊은 맛이 함께 우러난다.

봉화산에서 내려오며 십여 년 전 이 산을 올랐던 나를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걱정했고, 무엇을 꿈꾸었을까. 기억은 흐릿하지만, 산길은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발끝의 흙과 나무 사이의 햇빛이 오래전에 두고 온 시간을 다시 꺼내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옛날 이 산 위에서는 불을 피워 먼 곳으로 소식을 보냈다. 오늘은 불도 연기도 없었다. 대신 나는 정상에 서서 지나온 내 시간을 바라보았다. 십 년 전의 나에게 작은 봉화를 올릴 수 있다면,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잘 살아왔다고.
조금 더 천천히 살아도 된다고.
그리고 다시 이 산에 왔다고.

봉화산의 봉화는 오래전에 꺼졌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저마다 쉽게 꺼지지 않는 불빛 하나가 있다. 그 불빛은 가끔 아주 오래된 산길에서 다시 살아난다.

오늘 봉화산에서 바라본 것은 풍경만이 아니었다.

산은 그대로 있었고, 세월은 흘렀으며, 양구는 수많은 역사를 견뎌냈고, 나는 다시 그 산 앞에 서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한 하루였다.


🌿 이 산행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양구 봉화산은 해발 875m의 산으로, 양구를 조망하기 좋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정상석 설치와 등산로 정비 소식도 전해졌고, 운해와 일출을 함께 볼 수 있는 산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양구는 접경지역 특유의 역사와 자연을 함께 품은 고장이다. 한국전쟁 당시 펀치볼, 도솔산, 가칠봉 등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오늘날에는 DMZ 평화관광과 생태관광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봉화산 산행은 단순히 정상만 오르는 산행보다, 양구라는 지역의 역사와 풍경을 함께 바라볼 때 더 깊어진다. 한반도 정중앙 상징, 전쟁의 기억, 대암산 용늪과 시래기 같은 산골의 맛까지 함께 떠올리면 짧은 산행도 오래 남는 여행이 된다.

산행 준비 메모

첫째, 봉화산은 조망과 역사를 함께 보는 산이다.
정상에서 양구 산줄기를 바라볼 때 한국전쟁과 접경지역의 시간을 함께 떠올리면 풍경이 다르게 다가온다.

둘째, 군사지역과 가까운 산행지는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접경지역 산행은 통제나 훈련, 출입 제한이 있을 수 있으므로 현지 안내와 표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셋째, 양구 여행은 자연과 역사, 음식을 함께 묶으면 좋다.
봉화산 산행 뒤 한반도섬, 양구수목원, 박수근미술관, 대암산 용늪, 시래기 음식 등을 함께 계획하면 하루가 더 풍성해진다.

넷째, 다시 찾은 산에서는 예전의 나를 만날 수 있다.
십여 년 만에 찾은 봉화산처럼, 같은 산도 시간이 지나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건넨다.


🌿 관련 사이트 및 여행 정보

① 양구문화관광

👉 양구문화관광 바로가기

양구의 산, 호수, 접경지역 여행, 박수근미술관, 한반도섬 등 주요 여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② 양구군청

👉 양구군청 바로가기

양구군 소식, 교통, 문화관광, 농특산물 정보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③ 대암산 용늪

👉 양구문화관광 대암산 용늪 바로가기

대암산 용늪의 자연 생태와 탐방 정보를 살펴볼 수 있다.

④ 대한민국 구석구석 양구 DMZ 평화관광

👉 대한민국 구석구석 양구 DMZ 평화관광 바로가기

양구의 접경지역 여행, DMZ 평화의 길, 펀치볼과 두타연 관련 정보를 참고할 수 있다.

⑤ 진천관광 두타산

👉 진천관광 두타산 바로가기

다음 산행지인 충북 진천 두타산과 초평저수지, 영수암 등 주변 여행 정보를 미리 살펴볼 수 있다.


🌿 양구 봉화산 산행 준비물 체크리스트

□ 접지력 좋은 등산화
□ 등산 스틱
□ 충분한 식수
□ 간단한 행동식
□ 바람막이
□ 모자와 장갑
□ 지도 또는 산행 앱
□ 보조배터리
□ 군사통제·훈련 여부 확인
□ 기상과 운해 전망 확인
□ 양구 시래기 맛볼 시간 남기기
□ 한반도 정중앙 관련 여행지 확인
□ 대암산 용늪 탐방 가능 여부 확인
□ 십여 년 전의 나를 다그치지 않는 마음
□ 마음속 작은 봉화 하나


🌿 추천 숙박과 주변 여행

🏡 양구읍권

양구 봉화산 산행 뒤 양구읍권에서 숙박하면 박수근미술관, 양구중앙시장, 시래기 음식점, 한반도섬 등을 함께 둘러보기 좋다.

👉 양구문화관광 바로가기

🏡 국토정중앙면·한반도섬권

한반도 정중앙 상징과 양구의 지리적 의미를 함께 느끼고 싶다면 국토정중앙면과 한반도섬 일대를 함께 계획해도 좋다.

👉 양구군청 바로가기

🏡 대암산 용늪·DMZ 평화관광 연계

양구의 자연과 접경지역 역사를 깊이 보고 싶다면 대암산 용늪, DMZ 펀치볼 둘레길, 두타연 등과 연계해 여행을 계획할 수 있다. 다만 일부 구간은 사전 예약이나 출입 확인이 필요하다.

👉 양구문화관광 대암산 용늪 바로가기

🌄 이전 산행 이야기 다시보기

「산바람 · 글바람 ㊶」 김포 문수산 산행기, 산과 바다 사이에서 겨울 바람을 만나다

문수산에서는 김포대학 부근에서 시작해 문수산 정상과 문수산성, 문수사를 지나 마을길로 내려왔습니다. 높지 않은 산이었지만 병자호란 이후 강화 방어의 역사를 품은 산성과 작은 절집, 저수지의 겨울 풍경, 대명항의 바다까지 함께 만난 하루였습니다.

문수산이 산과 바다 사이에서 겨울 바람과 오래된 성곽의 역사를 만난 산이었다면, 양구 봉화산은 불빛이 사라진 봉화대 자리에서 국토의 중심과 전쟁의 시간을 바라본 산행이었습니다. 하나는 강화 길목을 지키던 산성이었고, 하나는 양구의 산줄기 위에서 오래전 소식을 전하던 봉화의 산이었습니다.


🌄 다음 산행 이야기

「산바람 · 글바람 ㊸」 충북 진천 두타산 산행기

양구 봉화산에서는 한반도 정중앙 휘모리 표지와 봉화대의 기억, 한국전쟁의 흔적과 양구가 품은 세월을 바라보았습니다. 불빛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산은 오래된 소식처럼 사람의 마음에 조용히 말을 건넸습니다.

다음 산행은 충북 진천 두타산으로 향합니다. 진천 두타산은 초평저수지를 곁에 두고 조용히 서 있는 산으로, 부처가 누워 있는 형상을 닮았다고도 전해집니다. 양구 봉화산이 역사의 불빛을 품은 산이었다면, 진천 두타산에서는 초평저수지의 물빛과 여름 끝자락의 땀, 그리고 익숙한 산길이 건네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 산길의 끝에서

봉화산이라는 이름은 흔하지만, 그 이름 안에는 오래된 긴급함이 숨어 있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소식을 전하던 시절. 봉화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고을과 고을, 사람과 사람을 잇던 옛날의 통신탑이었다.

십여 년 만에 다시 오른 양구 봉화산에서 나는 가장 먼저 세월을 보았다. 한반도 정중앙을 알리는 휘모리 표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말없이 나를 맞아주었다. 산은 그대로였지만 그 산을 오르는 나는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양구의 산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조용한 산과 들에는 한국전쟁의 기억이 남아 있다. 한때 38선과 휴전선의 변화 속에서 삶의 터전이 바뀌었고, 수많은 전투와 상처를 견딘 뒤 오늘의 양구가 되었다.

십여 년 전 양구에 머물 때 들었던 어르신들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책에서 읽는 역사가 아니라 직접 살아낸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달랐다. 어느 날 선 하나가 그어지고, 체제가 바뀌고, 전쟁이 지나간 뒤에도 사람들은 그 땅에서 다시 밭을 일구고 삶을 이어갔다.

양구의 자연도 그 세월을 함께 견뎌냈다. 대암산 용늪처럼 사람의 발길이 제한되었던 시간 속에서 오히려 지켜진 생명의 터전도 있다. 상처와 생명이 같은 땅 위에 나란히 놓여 있다는 사실이 양구의 풍경을 더 깊게 만든다.

그리고 양구에는 시래기가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구수하고, 투박하지만 오래 끓일수록 깊어지는 맛. 양구라는 고장도 그렇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오래 들여다볼수록 국토의 중심, 전쟁의 기억, 산골의 음식과 자연의 깊은 맛이 함께 우러난다.

봉화산에서 내려오며 십여 년 전 이 산을 올랐던 나를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걱정했고, 무엇을 꿈꾸었을까. 기억은 흐릿하지만, 산길은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발끝의 흙과 나무 사이의 햇빛이 오래전에 두고 온 시간을 다시 꺼내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옛날 이 산 위에서는 불을 피워 먼 곳으로 소식을 보냈다. 오늘은 불도 연기도 없었다. 대신 나는 정상에 서서 지나온 내 시간을 바라보았다. 십 년 전의 나에게 작은 봉화를 올릴 수 있다면,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잘 살아왔다고.
조금 더 천천히 살아도 된다고.
그리고 다시 이 산에 왔다고.

봉화산의 봉화는 오래전에 꺼졌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저마다 쉽게 꺼지지 않는 불빛 하나가 있다. 그 불빛은 가끔 아주 오래된 산길에서 다시 살아난다.

오늘 봉화산에서 바라본 것은 풍경만이 아니었다.

산은 그대로 있었고, 세월은 흘렀으며, 양구는 수많은 역사를 견뎌냈고, 나는 다시 그 산 앞에 서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한 하루였다.

다음 산길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 산바람 · 글바람

봉화산이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습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봉화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 하나쯤은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동네 뒤편의 평범한 산처럼 보여도,

그 이름 속에는
한 시대의 다급했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전화도 없고,
무전기도 없던 시절.

급한 소식은
산 위의 불빛으로 전해졌습니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외적의 침입과
나라의 긴급한 소식은
산에서 산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래서 봉화산은
단순히 높은 산이 아니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고을과 고을을 이어주던
옛날의 통신탑이었습니다.

십여 년 만에
양구 봉화산을 다시 올랐습니다.

한반도 정중앙을 알리는
휘모리 표지는
오래된 친구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왔는가.’

말 한마디 없는 표지인데도
그렇게 묻는 것 같았습니다.

산은 그대로였지만
사람은 변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오르막에서
숨을 한 번 더 고르고,

그때는 보이지 않던 나무 한 그루와
바위 하나가
이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양구의 산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겹겹이 이어지는 산줄기와
그 품 안에 자리 잡은 양구.

그 조용한 풍경 안에는
한국전쟁의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겹겹이 묻어 있었습니다.

책에서 읽는 역사가 아니라,
그 시대를 직접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어느 날 선 하나가 그어지고,
살던 땅의 체제가 바뀌고,

다시 전쟁을 겪으며
삶의 터전이 달라졌던 사람들.

그 이야기를 생각하며
산 아래를 바라보니
평범한 풍경도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양구에는
시래기도 있습니다.

찬바람 부는 산골에서 말린 무청은
화려하지 않지만 구수합니다.

뜨끈한 시래깃국 한 그릇에는
산골의 겨울과
사람 사는 냄새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양구라는 곳도
시래기와 닮았습니다.

겉으로는 투박하고 조용하지만,
오래 들여다볼수록
깊은 맛이 납니다.

봉화산에서 내려오는 길,
십여 년 전 이 산을 올랐던
나를 생각했습니다.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이 길을 걸었을까.

무엇 때문에 웃었고,
무엇 때문에 마음 아파했을까.

기억은 선명하지 않은데
산길은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습니다.

옛날 봉화산 정상에서는
불을 피워
먼 곳으로 소식을 보냈습니다.

오늘은
불도 없고 연기도 없습니다.

대신 정상에 서서
지나온 내 시간을 바라보았습니다.

십 년 전의 나에게
무슨 말을 전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봉화를 올릴까.

잘 살아왔다고 할까.

조금 더 천천히 살아도 된다고 할까.

아니면 아무 말 없이,
다시 이 산에 왔다고
작은 불빛 하나만
피워놓을까.

봉화산의 봉화는
오래전에 꺼졌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저마다 쉽게 꺼지지 않는
불빛 하나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봉화산에서 바라본 것은
풍경만이 아니었습니다.

산은 그대로 있었고,
세월은 흘렀으며,

양구는
수많은 역사를 견뎌냈고,

나는 다시
그 산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한 하루였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산바람 · 글바람 ㉒」 지리산 화대종주, 나에게 묻다

[산바람_글바람 ②] 비 오는 날의 설악산 공룡능선, 15시간의 사투와 성찰

[산바람글바람 ①] 눈 폭탄 속 노고단에서 지리산이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