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_글바람 ②] 비 오는 날의 설악산 공룡능선, 15시간의 사투와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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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와 운무에 감싸인 설악산 공룡능선. 흐려진 시야 속에서도 암릉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비는 풍경을 지웠지만, 길은 더욱 선명해졌다.
🍂 오늘의 시
설악 깊은 골에
돌비늘 돋은 짐승 하나
오래 엎드려 있었다.
하늘 처음 열리던 날의
푸른 숨결을
아직도 등마루에 얹고,
칼바람은
그의 늙은 등뼈 사이로
흰 피리처럼 울었다.
마등령 지나
새벽 별 하나
신발 끝에 매달고,
사람들은
말없이 그 등허리를
한 걸음씩 건너간다.
바위는
입을 다문 채
천 년의 상처를
능선으로 세워두고,
계곡은
그 상처 밑에서
맑은 물소리로
오래 앓는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힐 즈음
먼 봉우리 하나
가슴속으로 들어와
붉은 단감처럼 익는다.
사랑도 그러하리라.
기다리지 않아도
새벽은 오고,
부르지 않아도
산은 사람을 부른다.
공룡은 아직
설악의 깊은 잠 속에
돌갑옷을 입고 누워
오늘도
사람들의 작은 꿈을
제 늙은 등에
가만히 태워 보낸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설악산 공룡능선
📅 산행 시기
가을 우중 산행
🥾 산행 코스
설악동 → 비선대 → 마등령 → 공룡능선 → 희운각 → 천불동계곡 → 설악동
📏 총거리
약 19~20km
⏱ 예상 시간
약 15시간
⭐ 난이도
★★★★★ (최상)
🌧 산행 환경
비 · 운무 · 젖은 암릉 · 강풍
🚆 이동 방법
KTX → 시외버스 → 설악동
비는 먼저 설악에 도착해 있었다.
새벽 두 시, 설악산 소공원에 도착했다.
검은 하늘 아래 빗소리는 오래전부터 설악을 적시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은 젖은 길 위로 희미하게 번졌고, 헤드랜턴을 켠 등산객들은 말없이 배낭을 메고 출발을 준비했다. 누구도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새벽에는 사람의 목소리마저 산을 조심하는 것처럼 낮아졌다.
공룡능선은 맑은 날에도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오늘은 그 위에 비까지 더해졌다. 설악산 제1경이라 불리는 능선은 짙은 운무 속으로 모습을 감춘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기대하기에는 하늘이 너무 낮았고, 빗소리는 오늘 하루가 결코 만만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용히 일러주고 있었다.
출발을 앞두고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돌아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아주 짧은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 머물지 못했다. 공룡능선을 걷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내 발걸음은 이미 설악을 향해 출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행은 발이 먼저 떠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길을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다시 한번 느꼈다.
새벽 세 시, 비선대로 향하는 탐방로가 열렸다.
헤드랜턴 불빛은 발끝만 겨우 비추고 있었고, 그 너머의 길은 안개와 어둠 속으로 조용히 이어졌다. 우비를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는 일정한 리듬을 만들었고, 젖은 흙길에서는 숲이 품은 흙내음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아직 공룡의 등은 보이지 않았지만, 설악은 이미 말없이 우리를 자신의 품 안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날 가장 먼저 만난 것은 풍경이 아니었다. 비였고, 적막이었고,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하나였다.
'나는 왜 이 길을 오르려 하는가.'
그 질문은 정상에서도 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한 걸음, 또 한 걸음 길을 걸어가는 동안 대답은 말이 아니라 발걸음으로 조금씩 완성되고 있었다.
⭐ 산바람 · 글바람
산은
길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마음을 비추는 곳이었다.
비는 풍경을 지웠지만,
내가 걸어야 할 길만은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남겨 두었다.
돌아갈 수 없는 길
비선대를 지나고 마등령을 향해 오를수록 설악은 점점 더 깊어졌다. 비는 잦아들 기색이 없었고, 젖은 바위는 한 걸음마다 긴장을 놓지 못하게 했다. 숨은 거칠어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이제부터는 공룡능선이 시작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룡능선은 한 번 들어서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길이다. 끝까지 걸어가거나,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오는 것뿐이다. 어느 쪽도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다. 그래서 이 길에서는 망설이는 시간보다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운무는 능선을 감추고 있었고, 비는 시야를 더욱 좁게 만들었다. 멀리 정상을 바라볼 여유는 없었다. 눈앞의 바위 하나, 손을 올릴 다음 홀드 하나, 발을 디딜 작은 틈 하나에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이어 가는 것이 공룡능선을 걷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도 이 길과 닮아 있었다. 언제나 멀리 있는 목표만 바라보며 살아왔지만, 결국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 것은 지금 내 앞에 놓인 한 걸음이었다. 조급해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공룡능선은 험한 암릉을 오르는 법보다 그 단순한 진실을 먼저 가르쳐 주고 있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비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날의 설악은 앞만 바라보며 걷는 법을 조용히 가르쳐 주고 있었다.
🌿 산행 메모
공룡능선은 중간 탈출로가 거의 없는 대표적인 장거리 암릉 코스입니다. 우천 시에는 암릉이 매우 미끄러워지므로 보폭을 평소보다 줄이고, 손과 발을 이용한 3점 지지를 유지하며 이동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체력 안배를 위해 초반부터 속도를 내기보다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완주에 큰 도움이 됩니다.
⭐ 산바람 · 글바람
길은
언제나
멀리 있는 정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다만,
지금 딛고 있는
한 걸음만
잃지 말라고
조용히 일러주었다.
공룡의 등에 오르다
마등령을 지나 마지막 오르막을 넘어서자, 드디어 공룡능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운무 속에서도 길게 이어진 암릉은 마치 거대한 공룡이 설악산 깊은 곳에 몸을 누인 듯 펼쳐져 있었다.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공룡능선이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긴장보다 먼저 경외감이 밀려왔다.
공룡의 등에 올라선다는 것은 단순히 능선을 걷는 일이 아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암봉을 오르고 다시 내려서기를 반복하는 길이었다. 한 봉우리를 넘으면 또 다른 봉우리가 기다렸고, 그 끝에는 다시 더 높은 바위가 나타났다. 비에 젖은 암릉은 미끄러웠고 바람은 몸을 흔들었다. 설악은 한순간도 긴장을 놓게 하지 않았다.
운무는 가까운 능선마저 가려 버렸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다음 바위와 다음 홀드뿐이었다. 발을 디딜 작은 틈을 찾고 손을 올릴 바위를 확인하며 천천히 몸을 옮겼다. 멀리 있는 정상을 바라볼 여유는 없었다. 지금 이 한 걸음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공룡능선을 건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문득 깨달았다. 삶도 늘 이렇게 흘러왔다는 것을.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고 두려워했지만,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눈앞의 한 걸음이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다시 내일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공룡의 등 위에서 나는 산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을 다시 배우고 있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풍경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가야 할 길만은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 산행 메모
공룡능선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연속 암릉 구간입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암반의 마찰력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발을 급하게 옮기기보다 중심을 낮추고, 다음 발을 디딜 위치를 충분히 확인한 뒤 움직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체력보다 침착함이 더 필요한 구간입니다.
⭐ 산바람 · 글바람
공룡의 등은
강한 사람만
건널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두려워도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사람에게
산은
조용히
길을 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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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에 젖은 공룡능선 암릉길. 운무 속에서 한 걸음씩 길을 이어가던 순간. |
끝이 보이지 않는 능선
공룡의 등에 올라선 뒤부터는 시간의 흐름이 희미해졌다. 한 봉우리를 넘으면 또 다른 봉우리가 기다렸고, 다시 내려섰다가 또 올라야 했다. 끝이 보일 것 같다가도 능선은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비는 쉬지 않고 내렸고, 운무는 먼 풍경을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공룡능선을 걷는다는 것은 멀리 보는 산행이 아니었다. 지금 발을 디딜 자리, 다음 바위, 다음 홀드. 그곳만 바라보며 걷는 길이었다. 잠시 고개를 들면 거대한 암봉들이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사라졌다. 설악은 아름다운 풍경을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조급함을 내려놓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도 생각하지 않았다. 옷이 얼마나 젖었는지, 다리에 피로가 얼마나 쌓였는지도 잊었다. 오직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공룡능선은 사람을 서두르게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속도로 걸어오라고, 오래된 시간의 등을 묵묵히 내어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 길을 걸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도 끝을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 앞에 놓인 한 걸음을 성실히 걷는 일이 아닐까.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지만, 마음은 조금씩 그 비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 산행 메모
공룡능선은 연속되는 암릉과 오르내림이 이어지는 장거리 코스입니다. 우천 시에는 체력보다 리듬이 중요합니다. 초반에 속도를 내기보다 자신의 보폭과 호흡을 유지하면 긴 산행에서 체력을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산바람 · 글바람
산은
끝을 먼저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지금 딛고 있는
한 걸음을
소중히 여기라고
비와 함께
조용히 가르쳐 주었다.
비를 맞으며 먹은 김밥
한 봉우리씩 넘을 때마다 몸은 조금씩 무거워졌다. 비는 여전히 그칠 줄 몰랐고, 젖은 옷은 체온을 조금씩 빼앗아 갔다. 손끝에는 힘이 덜 들어갔고 다리는 묵직해졌다. 공룡능선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숨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신선봉에 도착했을 때도 비는 여전히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김밥 한 줄을 꺼냈다. 이미 김밥은 조금 눌려 있었고, 김은 빗기운을 머금어 부드러워져 있었다. 평소라면 특별할 것 없는 점심이었지만, 그날의 김밥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한 끼가 되었다.
따뜻한 식탁도, 편안한 의자도 없었다. 차가운 바위 위에 잠시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김밥을 먹었다. 그 순간만큼은 정상도, 남은 거리도 생각하지 않았다. 허기를 달래는 시간이 아니라, 다시 걸어갈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었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안개는 여전히 능선을 감싸고 있었고, 풍경은 끝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쉽지 않았다. 눈앞의 절경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 또렷하게 마음속에 남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은 언제나 아름다운 풍경만 선물하는 곳이 아니었다. 때로는 비를 맞으며 먹는 김밥 한 줄로도 충분한 위로를 건네는 곳이었다.
배낭을 다시 메고 천천히 일어섰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발걸음은 처음보다 훨씬 가벼워져 있었다.
🌿 산행 메모
장거리 산행에서는 익숙한 음식이 가장 좋은 행동식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밥은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함께 보충하기 좋고, 짧은 시간 안에 허기를 달랠 수 있습니다. 우중 산행에서는 음식이 젖지 않도록 방수팩이나 지퍼백을 준비하면 도움이 됩니다.
⭐ 산바람 · 글바람
산은
거창한 선물을
준 적이 없었다.
비를 맞으며 먹은
김밥 한 줄에도
다시 걸어갈
용기를 담아
건네주었을 뿐이다.
보이지 않아도 길은 있었다
신선봉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잠시 쉬었던 몸은 다시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운무는 공룡능선의 모습을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설악산 제1경이라 불리는 풍경은 하루 종일 안개 속에 숨어 있었다.
조금은 아쉬울 법도 했다. 멀리서 찾아온 산행이었고, 누구나 한 번쯤 사진으로 보았던 공룡능선의 웅장한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쉽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풍경보다 지금 내 앞에 놓인 길이 더 소중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에 젖은 바위를 한 걸음씩 넘고, 손으로 바위를 짚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시야는 짧았지만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먼 곳을 볼 수 없으니 오히려 지금 걷는 길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살아간다는 것도 이와 닮아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늘 멀리 있는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가지만, 결국 삶은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일의 반복이다. 내일은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의 한 걸음이 모이면 결국 길이 된다는 것을 산은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날 설악은 아름다운 풍경 대신 조용한 믿음을 내게 남겨 주었다.
보이지 않아도 길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믿음이었다.
🌿 산행 메모
운무가 짙은 날에는 먼 풍경보다 가까운 발밑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공룡능선처럼 암릉이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시야 확보보다 발 디딜 위치와 손을 짚을 지점을 차분하게 확인하는 습관이 안전한 산행으로 이어집니다.
⭐ 산바람 · 글바람
보이지 않는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안개는
풍경을 감출 뿐,
내가 걸어야 할 길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한 걸음을 믿는 사람에게
산은
언제나
다음 길을 내어 주었다.
천불동, 가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룡능선을 지나 희운각을 내려서자 길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험한 암릉 대신 계곡이 가까워졌고, 거칠게 불던 바람도 어느새 잔잔해졌다. 하루 종일 함께했던 빗소리는 계곡 물소리에 스며들어 더 이상 차갑게 들리지 않았다.
천불동으로 들어서자 설악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붉게 물든 단풍은 비를 머금어 더욱 깊은 색을 띠고 있었고,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은 쉼 없이 바위를 감싸 안았다. 공룡능선에서는 끝내 만나지 못했던 풍경이 이곳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제야 조금 웃음이 났다.
오늘 하루 설악은 아름다움을 숨긴 것이 아니라, 가장 마지막까지 아껴 두고 있었던 것이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계곡을 따라 내려왔다. 지친 다리는 여전히 무거웠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힘든 구간을 모두 지나고 나니 풍경은 더 이상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었다. 오래 걸어온 시간과 함께 마음속으로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산은 늘 정상에서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설악은 하산길에서 가장 깊은 위로를 건네주었다.
오래 걸어야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법이었다.
🌿 산행 메모
공룡능선을 지난 뒤 이어지는 천불동계곡은 설악산을 대표하는 계곡 코스입니다. 장거리 산행으로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는 구간이므로, 하산할 때도 끝까지 보폭을 줄이고 무릎 부담을 고려해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 좋습니다.
⭐ 산바람 · 글바람
산은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처음부터 보여주지 않았다.
끝까지 걸어온 사람에게
조용히
가을 한 장을
선물처럼
내어 주었다.
⭐ 산바람 · 글바람
산은
끝내
모든 풍경을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끝까지 걸어온 사람에게만
보이지 않는 풍경 하나를
마음속에
조용히 남겨 주었다.
그날의 나는,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천불동계곡을 따라 설악동으로 내려오는 길, 하루 종일 함께했던 빗소리는 어느새 계곡 물소리에 섞여 잔잔하게 들려왔다. 발걸음은 무거웠고 온몸은 비에 젖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처음보다 훨씬 가벼웠다. 아침에는 두려움을 안고 산으로 들어왔지만, 저녁의 나는 그 두려움을 조금 내려놓은 채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공룡능선은 끝내 내게 완전한 풍경을 보여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설악산 제1경은 하루 종일 안개 속에 머물렀고, 웅장한 암릉도 잠깐씩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운무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아쉽지 않았다. 비록 눈으로는 다 보지 못했지만, 온몸으로 걸어낸 하루가 그 어떤 풍경보다 깊게 마음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그날 내가 넘은 것은 바위 능선만이 아니었다. 망설임을 넘었고, 두려움을 넘었으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넘어섰다. 한 걸음씩 이어진 발걸음은 결국 공룡능선을 건너게 했고, 그 길은 어느새 내 마음속에도 하나의 길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산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했다고도, 힘내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늘 그 자리에 서서 묵묵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산에서는 누구도 대신 답을 줄 수 없다. 한 걸음도, 한 번의 숨도 결국은 스스로 걸어야 한다.
그날 설악산을 내려오며 문득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알 수 없는 내일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날도 있고, 비를 맞으며 걸어야 하는 날도 있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찾아온다. 하지만 결국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것은 거창한 용기가 아니라, 오늘의 한 걸음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그날의 나는,
분명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 산행 메모
15시간 이상 이어지는 장거리 산행은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안전하게 하산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긴 산행일수록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유지하고, 무릎 부담을 줄이며 천천히 걸어야 부상 없이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 산바람 · 글바람
산은
나를 이기게 한 것이 아니라,
나를 만나게 했다.
비는
풍경을 지웠지만,
내가 걸어온 시간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날의 설악은
내 발걸음 위에
또 하나의 삶을
조용히 새겨 두었다.
🌿 이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이 글은 제가 직접 걸으며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비 오는 날의 설악산 공룡능선은 예상보다 훨씬 험하고 긴 산행이었습니다. 계절과 기상, 탐방로 통제 여부, 교통편은 수시로 변경될 수 있으므로 출발 전 반드시 최신 정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산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지만, 그날의 날씨는 단 한 번뿐입니다. 충분한 준비와 여유 있는 계획이 가장 안전한 산행을 만들어 줍니다.
🌿 관련 사이트 및 예약 정보
🌿 ① 설악산 국립공원 탐방 정보
설악산 탐방로 운영 현황, 통제 구간, 기상 정보와 탐방 안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② 대중교통 및 승차권
설악산(속초) 이동을 위한 KTX, 시외버스, 고속버스 시간과 예매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③ 공룡능선 산행 코스 지도
소공원 → 비선대 → 마등령 → 공룡능선 → 희운각 → 천불동 → 소공원 전체 코스를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④ 공룡능선 준비물 체크리스트
□ 등산화
□ 우비 또는 방수재킷
□ 여벌 옷
□ 헤드랜턴
□ 등산 스틱
□ 장갑
□ 행동식 및 충분한 식수
□ 보조배터리
□ 개인 상비약
□ 비상 보온용품
🌿 ⑤ 추천 숙소
🏡 설악산 소공원 인근 숙소
공룡능선 산행은 대부분 새벽 일찍 출발하기 때문에 설악동이나 소공원 인근에서 하루 숙박하면 보다 여유롭게 산행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 속초 시내 숙소
산행 후 휴식과 식사를 함께 계획한다면 속초 시내 숙소도 좋은 선택입니다.
🌄 이전 산행 이야기 다시보기
[산바람 · 글바람 ①]
🌄 다음 산행 이야기
「산바람 · 글바람 ③」
다음에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보려 합니다. 험한 암릉 대신 깊은 숲길을 따라, 오랜 세월 묵묵히 사람들을 품어 온 산을 찾아갑니다. 천년 은행나무와 깊은 숲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천천히 다시 걸어보려 합니다.
🍃 산길의 끝에서
산은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지만, 그 길을 걷는 우리의 마음도 계절마다 조금씩 달라집니다.
오늘의 공룡능선이 여러분의 마음에도 오래 머무는 풍경 하나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다음 산길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 산바람 · 글바람
비는 풍경을 지웠지만,
끝내 지우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한 걸음씩 걸어온 시간,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조금씩 달라진
나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바람 · 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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