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_글바람 ①] 눈 폭탄 속 노고단에서 지리산이 되다

 

폭설이 내린 겨울 지리산 노고단 정상의 정상석이 짙은 안개와 눈으로 둘러싸인 모습. 눈 덮인 탐방로와 겨울 설경이 함께 보이는 실제 산행 사진.
짙은 안개와 밤새 내린 눈이 세상을 모두 하얗게 덮어 버린 아침이었다.
별 대신 눈을 만난 겨울 지리산은, 말없이 가장 깊은 풍경을 내게 건네주었다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산을 오르기 위해 떠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길을 나섰다.



겨울을 붙잡고 길을 나서다

산은 언제나 계절보다 조금 늦게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설 연휴가 지나갔다. 달력 한 장을 넘기기도 전에 1월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어느새 계절은 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아직 겨울 한가운데 머물러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겨울을 그냥 보내도 괜찮을까.'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특별한 목표도 없었다. 그저 눈이 남아 있는 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다. 밤하늘에 별이 떠 준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보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겨울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컴퓨터를 켜고 기차 시간을 찾아본다. 지리산 대피소 예약 현황도 하나씩 확인한다. 평일이라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장터목 대피소에도 빈자리가 보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노고단 대피소.

이번 여행은 정상을 정복하기 위한 산행이 아니다.

산보다 기차를 오래 타고, 목적지보다 가는 길을 더 오래 바라보는 여행이다.

겨울을 조금 더 오래 품고 싶어서 떠나는, 아주 소박한 외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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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지리산 노고단 · 화엄사 겨울 산행

🏔 산행지
지리산 노고단 · 화엄사

📅 산행 시기
1월 말 ~ 2월 초 (겨울)

🥾 산행 코스
성삼재 → 노고단대피소 → 노고단 → 무넹이 → 화엄사

📏 총거리
약 10~12km

⏱ 예상 시간
약 6~7시간

⭐ 난이도
★★★★☆ (겨울 기준)

❄ 산행 환경
폭설 · 적설 · 해빙 구간

🏡 숙박
노고단대피소 1박

🚆 이동 방법
ITX → 무궁화호 → 군내버스 →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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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공기를 가르며 집을 나섰다.

평소 같으면 전철을 타고 금세 도착했겠지만, 오늘도 일부러 시장길을 선택했다.

살 것이 있어서가 아니다.

시장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냄새와 소리, 그리고 계절이 가장 먼저 머무는 곳이 시장이다.


🍃 아직 잠이 덜 깬 시장

왼발과 오른발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듯 발걸음이 이어지고, 가게마다 피어오르는 김은 겨울 아침 공기 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햇살은 윤슬처럼 골목을 비추고, 무심코 지나던 사람들도 어느새 하루를 맞이한다.

매일 열리는 시장인데도 오늘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막 쪄낸 가래떡은 시루 위에 가지런히 누워 서로 키를 재고 있었고, 채소를 정리하는 상인의 손끝에는 겨울 끝자락의 부지런함이 묻어 있었다.

시장도 사람처럼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걷다 보면 문득 알게 된다.

조금 돌아가는 길이 가장 편안한 길일 때가 있다는 것을.

시간이 넉넉한 날이면 나는 일부러 시장을 지난다.

운동도 되고, 사람 사는 풍경도 만나고, 무엇보다 마음이 느려진다.

그 느린 마음으로 서너 정거장을 걸었다.

삼십 분쯤 지나 전철역에 도착했고, 예약해 둔 ITX 시간을 생각하며 비로소 전철에 몸을 실었다.


🍃 여행은 기다림에서 시작된다

상봉역 플랫폼에는 아직 기차보다 아침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기차는 스무 분쯤 뒤에 들어온다.

기다리는 시간은 이상하게도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급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 같았다.

배낭을 메고 출근 시간 전철을 타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용산까지 ITX를 이용한다.

조금 빠르기 때문이 아니라, 복잡한 출근길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누군가와 공간을 나누는 방식에서 먼저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8시.

ITX가 플랫폼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생각보다 객실은 붐볐다.

예약한 좌석으로 다가가 보니 이번에도 누군가 앉아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혹시 이 자리 맞으실까요?"

여학생으로 보이는 승객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히 내 자리였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더 미안해졌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이번 여행의 첫 문장을 적기 시작했다.

객실 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며칠째 감기가 낫지 않은 나 역시 마스크를 고쳐 쓰고 기침을 참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조금 있으면 용산역.

그곳에서 다시 무궁화호를 타고 네 시간이 넘는 긴 기차 여행이 이어진다.

누가 시킨 일은 아니다.

스스로 짐을 꾸리고,

스스로 짐을 메고,

그렇게 1월을 천천히 뒤로 지우러 가는 길이다.

열차는 덜컹거리는 소리를 남기며 용산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 산바람 · 글바람

열차는 덜컹거리며 남쪽으로 달리고, 
나는 산을 오르러 간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내려놓으러 길을 나섰다.




겨울은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간다


🍃 무궁화호가 가진 마지막 낭만

용산역에 도착하니 스무 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급하게 움직일 이유가 없는 시간.

그 여유는 자연스럽게 커피 한 잔을 손에 쥐게 만들었다.

뜨거운 커피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다 문득 오래전 무궁화호의 카페칸이 떠올랐다.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던 작은 공간.

언젠가 적자라는 이유로 사라졌지만, 내게는 아직도 가장 낭만적인 객차로 남아 있다.

여수행 무궁화호는 묵묵히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육중한 몸을 이끌고 긴 철길 위에 서 있는 모습은, 서두르지 않는 오래된 여행자를 닮아 있었다.

객실 안은 아직 빈자리가 많았다.

프린트한 승차권을 들고 자리를 찾던 할머니를 도와드리고 나서야 나도 내 자리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잠시 후 다시 객실을 나와 창이 가장 넓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자판기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지만, 그 넓은 창만큼은 예전 그대로였다.

기차 여행의 가장 큰 목적지는 언제나 창밖이었다.


🍃 창밖으로 흘러가는 겨울

열차는 천안을 지나고, 서대전을 향해 천천히 달렸다.

옆으로 나란히 이어지는 철길은 마치 서로 이어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함께 달리고 있었다.

창밖 풍경도 조금씩 바뀌었다.

논두렁과 밭두렁이 끝없이 이어지고,

개울에서는 고니들이 한가롭게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수확이 끝난 들판에는 하얀 볏짚 더미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겨울은 늘 그렇게 아무 말 없이 풍경을 비워 두는 계절이었다.

계룡을 지나던 어느 개울가에는 텐트 몇 동이 보였다.

한겨울인데도 그곳에서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에는 참 여러 가지 방식의 여행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강가에서 겨울을 보내고,

누군가는 기차 안에서,

그리고 나는 지금 지리산으로 가는 길 위에 앉아 있었다.


🍃 사람을 만나는 여행

잠시 졸다 눈을 뜨니 객실 뒤편이 조금 소란스러웠다.

학생 둘이 자신의 좌석을 확인하고 있었고, 그 자리에는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다.

학생들은 조심스럽게 표를 다시 확인했고, 객차를 한 바퀴 돌아온 뒤에야 알게 되었다.

할머니의 좌석은 옆 객차였다.

학생들이 조용히 말씀드리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 환자야. 조금 있다 내리면 와."

학생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빈자리를 찾아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아마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 짧은 풍경을 보며 문득 웃음이 났다.

기차는 사람을 태우기도 하지만,

이름 모를 사람들의 작은 배려도 함께 싣고 달린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구례구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40분.

이제부터는 기차 여행이 아니라,

진짜 겨울 산행이 시작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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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철 성삼재로 갈 때 꼭 알아둘 점

  • 겨울철(11월 중순~4월 말)은 성삼재행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므로 반드시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 구례구역에서 구례공용버스터미널까지 이동한 뒤 다시 교통편을 이용하게 된다.
  • 운행이 중단되면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예상보다 교통비가 늘어날 수 있다.
  • 겨울 산행은 이동 계획까지 산행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여유 있게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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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바람 · 글바람

계획은 눈 앞에서 멈췄지만,
마음은 이미 지리산을 오르고 있었다.


겨울은 계획대로 오지 않았다

역사 밖으로 나오자 서울과는 다른 겨울 공기가 천천히 얼굴을 스쳤다.

이제부터는 기차의 시간이 아니라 지리산의 시간이었다.

네 시간을 훌쩍 넘게 달려온 기차 여행은 여기서 끝이 났다.

산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마음은 이미 지리산 자락에 먼저 닿아 있었다.

이번 목적지는 노고단 대피소.

성삼재까지만 올라가면 오늘 계획은 무리 없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역 앞 관광안내소에서 다시 한번 길을 확인했다.

"구례공용버스터미널에서 성삼재행 버스를 갈아타시면 됩니다."

안내를 듣고 군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낯선 겨울 풍경을 바라보며 구례 시내를 지나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한마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에는 성삼재행 버스가 운행하지 않습니다."

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안내판을 다시 바라보니 작은 글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11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성삼재행 버스 운행 중단.

분명 눈앞에 적혀 있었지만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한 줄이었다.

겨울철 지리산은 계절에 따라 교통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특히 성삼재는 폭설이나 도로 통제로 버스 운행이 중단되는 경우가 있어 출발 전 운행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버스가 없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택시.

기사님께 성삼재까지 요금을 여쭤보니 4만 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잠시 망설였다.

서울까지 올라가는 KTX 요금이 문득 떠올랐지만, 여기까지 와서 발길을 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편의점에서 라면 두 개를 사 배낭에 넣고 택시에 올랐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차가 오르기 시작할 무렵 휴대전화가 울렸다.

061로 시작하는 번호.

노고단 대피소였다.

"지금 오시는 길이신가요?"

예약 확인 전화인 줄 알았지만, 예상 밖의 소식이 이어졌다.

"눈이 많이 내려 차량이 중간부터 통제되고 있습니다. 오시려면 남은 길은 걸어오셔야 합니다."

잠시 창밖으로 겨울 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걸어가겠습니다."

그 한마디와 함께 이번 여행은 더 이상 내 계획대로 흘러가는 길이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지리산이 허락하는 속도로, 천천히 걸어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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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철 성삼재로 갈 때 꼭 알아둘 점

• 겨울철(11월 중순~4월 말)은 성삼재행 버스 운행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 구례구역에서 구례공용버스터미널까지 이동한 뒤 성삼재행 교통편을 이용한다.

• 폭설이나 도로 통제로 버스 운행이 중단되면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예상 교통비도 함께 준비하면 좋다.

• 겨울 산행은 산행 자체뿐 아니라 이동 계획도 중요한 준비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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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고 배낭끈을 다시 한 번 고쳐 잡았다.

조금 뒤 시암재에 도착하면 남은 길은 내 두 발로 걸어야 한다.

계획은 조금씩 어긋났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더 가벼워지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겨울이 나를 어디까지 받아 줄지, 그 길을 천천히 걸어가 볼 차례였다.


산바람 · 글바람

산은 내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나는 산의 시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얀 세상으로 들어가다 

택시는 시암재에서 조용히 멈춰 섰다.

기사님께 요금을 건네고 차에서 내리자 차가운 겨울 공기가 먼저 얼굴을 스쳤다. 조금 전까지 차창 너머로 바라보던 풍경이 이제는 내가 직접 걸어가야 할 길이 되었다.

배낭을 고쳐 메고 눈 덮인 아스팔트 위에 첫 발을 내디뎠다.

오늘은 참 별일이 많은 날이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택시를 타고, 결국 마지막 길은 내 두 발로 걸어야 했다. 계획은 조금씩 어긋났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다.

지리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계획보다 자신의 계절을 먼저 보여주고 있었다.

눈길을 따라 삼십 분쯤 걸었을까.

저 멀리 성삼재휴게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끔 연인인지 부부인지 모를 사람들이 조용히 하산하며 스쳐 지나갔다. 누구도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겨울 산에서는 발자국 소리마저 풍경의 일부가 되는 것 같았다.

성삼재 주차장을 지나자 눈앞의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산 아래에서는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이곳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같은 지리산인데도 불과 몇백 미터 높이 차이만으로 완전히 다른 계절이 펼쳐지고 있었다. 산은 이렇게 한 걸음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 주는 곳이었다.

길가에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작은 눈사람 하나가 조용히 서 있었다.

혼자 걷던 길이었지만 그 작은 눈사람 덕분에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시간이 조금 더 여유로웠다면 나도 눈을 굴려 하나 만들어 보고 싶었다. 겨울은 사람을 잠시 어린아이로 돌려놓는 계절인지도 모른다.

노고단 대피소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사람의 발자국보다 눈이 더 많이 쌓인 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고개를 숙인 산죽, 그리고 조용히 흩날리기 시작한 싸락눈이 겨울 지리산의 깊이를 조금씩 보여 주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세상은 점점 더 하얗게 변해 갔다.

어느 순간 나는 눈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겨울 한가운데를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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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지리산 산행 준비 메모

• 겨울철 지리산은 성삼재 부근부터 적설량이 크게 달라질 수 있으므로 아이젠과 방한 장비를 반드시 준비하는 것이 좋다.

• 노고단 구간은 눈이 많이 쌓이면 일반 등산화만으로는 미끄러질 수 있어 스패츠와 스틱을 함께 준비하면 도움이 된다.

• 폭설이 내리는 날에는 국립공원 탐방로가 통제될 수 있으므로 출발 전 탐방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 산 아래는 비, 산 위는 눈인 경우가 많아 체감온도 차이가 매우 크므로 여벌 장갑과 방수 의류를 준비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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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바람 · 글바람

눈은 산을 하얗게 덮었지만,

내 마음은 그제야 조금씩 맑아지고 있었다.





폭설이 내리는 겨울 지리산 노고단 대피소 앞 야외 쉼터. 눈 덮인 테이블과 벤치, 대피소 건물 주변이 하얀 설경으로 뒤덮인 실제 산행 사진.

📷 오늘의 풍경

노고단 대피소 앞.

밤새 내린 눈은
산의 시간을
조금 더 천천히 흐르게 만들었다.


눈 내리는 밤, 대피소의 온기

노고단 대피소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싸락눈은 어느새 함박눈으로 바뀌어 조용히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별을 보기 위해 떠난 여행은 아니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오늘 밤만큼은 별을 만날 수 있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리산은 별 대신 눈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것이 없었다.

기차 안에서 빵으로 허기를 달랬지만 산을 오르는 동안 어느새 속이 비어 있었다. 배낭에서 라면을 꺼내 취사장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김이 가득한 취사장 안에는 먼저 저녁을 준비하는 한 분이 계셨다.

"오늘도 넘어가실 겁니까?"

갑작스러운 인사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내일 노고단만 다녀오고 바로 내려갈 생각입니다."

그분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밥을 짓고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오랫동안 지리산을 다닌 사람이라는 것이 말보다 손끝에서 먼저 느껴졌다.

잠시 뒤,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냄비 하나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같이 드세요."

낯선 산에서는 이상할 만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빨리 가까워진다.

처음 만난 사람이었지만 함께 나눈 저녁 한 끼는 오래된 산 친구와 마주 앉아 있는 것처럼 편안했다.

밖에서는 함박눈이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바라본 지리산은 소리 없이 겨울을 쌓아 가고 있었다.



그분은 종주를 자주 다니시는 듯했다.

점점 산을 다니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 여럿이 함께 산을 오르면 서로의 걸음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 혼자 다니다 보면 사람들은 친구가 없는 줄 안다며 웃으시는 이야기까지.

뜨거운 김치찌개와 함께 이런저런 산 이야기가 천천히 익어 갔다.

나는 가끔 맞장구를 치며 라면 국물을 한 숟갈 떠먹었다.

따뜻한 국물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하루 종일 쌓여 있던 피로도 함께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산에서는 이상하게도 말이 길지 않아도 마음은 충분히 전해진다.

창밖에는 여전히 함박눈이 쉼 없이 내리고 있었다.

어둠은 조금씩 깊어지고 있었고, 대피소 지붕 위에도, 난간 위에도, 산죽 위에도 하얀 눈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오늘 밤 별은 끝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별 대신 눈 내리는 지리산을 만난 것도 이번 여행이 내게 준 선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취사장을 나와 숙소동으로 향했다.

노고단 대피소는 다른 대피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휴게실과 자판기는 물론이고, 등산화 건조기와 의류 건조기, 텀블러 소독기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자리마다 전기 콘센트도 설치되어 있어 겨울 산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공간이었다.

밖은 한겨울이었지만 실내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두꺼운 옷을 하나둘 벗을 만큼 훈기가 돌았다.

문득 벽 한쪽을 스쳐 지나가는 작은 바퀴벌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움찔했지만 녀석은 금세 어디론가 사라졌다.

괜히 배낭 속으로 들어가 서울 집까지 따라오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걱정이 들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산에서는 거창한 일보다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밤 여덟 시.

대피소의 하루는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되었다.

불이 꺼지고 모두가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게 잠은 오지 않았다.

창밖에서는 눈이 내리고,

지붕 위에서는 바람이 지나가고,

대피소 안에서는 낮게 숨 쉬는 사람들의 호흡만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눈을 감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나는 지리산에 온 것이 아니라,

지리산의 겨울 속으로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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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고단 대피소 이용 메모

• 취사장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므로 늦은 시간에는 조용히 이용하는 것이 좋다.

• 겨울철에는 오후 8시 전후 소등하는 경우가 많아 저녁 식사를 조금 일찍 준비하면 여유롭다.

• 등산화와 의류 건조 시설이 있어 폭설이나 우천 시 활용하기 좋다.

• 개인 컵과 수저, 간단한 취사도구는 미리 준비하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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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바람 · 글바람

낯선 사람과 나눈 한 그릇의 온기가,
겨울밤을 가장 따뜻하게 데워 주었다.



눈으로 다시 태어난 아침

밤새 내린 눈은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있었다.

대피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하얀 눈이 밤사이 모든 풍경을 덮어 버린 듯했다. 어제 걸어 올라온 길도, 난간도, 지붕도 모두 같은 흰빛 속에 잠겨 있었다.

어젯밤에는 하늘이 흐려 별을 볼 수 없었다.

일출도 기대했지만 그것 역시 욕심이었다. 지리산은 별 대신 밤새 눈을 내려 또 다른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잠은 깊지 않았다.

초저녁 잠시 눈을 붙였지만 새벽까지 몇 번이나 뒤척였다.

시계를 보니 아침 여섯 시.

대피소 안은 아직 조용했다.

취사장으로 내려가 보니 먼저 일어난 몇 사람만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성 산행객 네 분이 따뜻한 국을 끓이고 있었다.

세 분은 같은 팀이었고 한 분은 홀로 산을 오르고 계셨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벽소령과 장터목에서 이틀을 더 묵은 뒤 중산리까지 종주할 예정이라고 하셨다.

일흔은 되어 보이는 연세였지만 표정만큼은 누구보다 밝았다.

'참 대단하시다.'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조금 뒤에는 전날 가족과 함께 올라왔던 중학생도 취사도구를 들고 들어왔다.

부모를 따라 자연스럽게 산을 오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문득 내 딸도 그 또래였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노고단의 아침은 천천히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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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노고단 탐방 준비 메모

• 겨울철 노고단 탐방은 기상 상황에 따라 출입 시간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출발 전 탐방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 새벽에는 탐방로가 얼어 있는 구간이 많아 아이젠을 착용하고 천천히 걷는 것이 안전하다.

• 정상 부근은 체감온도가 크게 떨어지므로 장갑과 방풍 의류를 마지막까지 착용하는 것이 좋다.

•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기존 발자국을 따라 이동하면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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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메모

겨울 산의 아침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오지만,

그 풍경은
같은 모습으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

그래서 겨울 산에서는
한 걸음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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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바람 · 글바람

겨울 아침은

밤을 지우는 시간이 아니라,

산이 다시 태어나는 시간이었다.



폭설이 내린 겨울 지리산 노고단 정상의 돌탑과 표지석이 눈으로 덮여 있고, 짙은 안개 속에 주변 풍경이 희미하게 보이는 모습
밤새 내린 눈과 짙은 안개가 정상을 온통 하얗게 감싸고 있었다. 시야는 짧았지만, 그 고요함 만큼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마침내 노고단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밤새 내린 눈이 탐방로를 하얗게 덮고 있었고,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국만 길을 대신하고 있었다. 한 걸음씩 눈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겨울 아침의 적막을 깨웠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걸음을 멈추게 할 만큼 거세지는 않았다.

오히려 천천히 걸을수록 눈 덮인 지리산은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계단마다 눈이 쌓여 있었고, 나뭇가지마다 하얀 눈꽃이 피어 있었다.

세상이 온통 흰빛으로 물든 풍경 앞에서 어느 순간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마침내 노고단에 닿았다.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온 세상이 눈이었다.

마치 처음 보는 세상에 들어선 것처럼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경외롭다는 말 외에는 이 풍경을 설명할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두 분이 먼저 말을 건넸다.

서로 사진을 한 장씩 찍어 주며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눈 덮인 노고단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도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웃게 되었다.

그 순간 문득 마음속으로 한 편의 시가 흘러나왔다.



🍂 노고단


오늘은 할매의 정성도 그릇 그대로

제단은 하얀 눈에 스며들고

그 위에 선 나 또한

눈이 되었다.

계단마다,

가지마다,

사연은 눈꽃으로 피어났고

어디쯤 숨었는지

내 추억도,

내 기억도,

오늘만큼은 노고단에 잠시 묻어 두었다.

노고 할매의 타령소리가

바람을 따라 들려오는 듯했다.

조금씩 그 소리에 다가가던 나도

어느새 하얀 눈꽃 속으로

파묻히듯 스며들었다.

오늘,

나도 지리산이 되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능선을 바라보았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고, 바람은 조용히 능선을 스쳐 지나갔다.

그 풍경 앞에서는 오래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잠시 뒤 배낭을 다시 둘러메었다.

이제는 노고단을 뒤로하고 화엄사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내려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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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고단 탐방 메모

• 겨울철 노고단 정상은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체감온도가 크게 떨어질 수 있으므로 방풍 의류와 장갑을 끝까지 착용하는 것이 좋다.

•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탐방로 경계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으므로 기존 발자국이나 탐방로 안내를 따라 이동하는 것이 안전하다.

• 정상에서는 사진 촬영에 집중하기보다 미끄러운 구간을 먼저 확인한 뒤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 좋다.

• 겨울 노고단은 날씨 변화가 매우 빠르므로 오래 머물기보다 기상 상황을 살피며 하산 시간을 계획하는 것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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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메모

정상은 가장 높은 곳이 아니라, 마음이 가장 조용해지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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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바람 · 글바람

산은

내가 오른 곳이 아니라,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머물렀던 곳이었다.





산은 쉽게 길을 내주지 않았다


🍃 노고단을 뒤로하며

노고단을 뒤로하고 천천히 하산을 시작했다.

어제 취사장에서 만났던 가족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서로 사진을 찍어 주며 웃고 있었고, 아이의 얼굴에도 겨울 산을 만난 기쁨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잠시 부럽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나는 처음 계획했던 대로 화엄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성삼재로 되돌아가는 길도 있었지만, 마음먹은 길을 끝까지 걸어보고 싶었다.

눈 덮인 탐방로는 여전히 조용했다.


🍃 눈길은 생각보다 깊었다

화엄사 방향 하산길은 원래도 돌이 많은 계곡 구간이다.

그런데 밤새 내린 눈이 바위를 모두 덮어 버려 길과 바위의 경계조차 쉽게 알아보기 어려웠다.

무넹이 고개를 지나며 발걸음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이름처럼 고개를 숙일 만큼 가파른 길.

아이젠을 신고 있었지만 깊게 쌓인 눈 위에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사람의 발자국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가던 순간이었다.

발밑이 미끄러지며 몸이 중심을 잃었다.

순간적으로 스틱에 몸을 의지했지만 한쪽 스틱이 그대로 부러졌다.

다른 한쪽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눈밭 저편으로 튕겨 나갔다.

잠시 숨을 고르며 눈밭에 박힌 스틱을 바라보았다.

조금만 방향이 달랐다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내 대신 스틱이 그 충격을 모두 받아 준 셈이었다.

부러진 스틱을 한 손에 들고, 휘어진 스틱에 몸을 의지한 채 다시 천천히 하산을 시작했다.

"바위님, 이번 한 번만 봐주세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한 걸음씩 발을 옮겼다.


🍃 겨울은 천천히 봄에게 길을 내주고 있었다

한동안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눈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

계곡에는 내 발자국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 고요함 속에서 가장 먼저 들려온 것은 물소리였다.

눈 아래에서 흐르던 계곡은 계절을 먼저 알고 있는 듯 쉼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조금씩 고도를 낮출수록 풍경도 함께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방이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눈 사이로 초록빛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눈을 머리에 이고 있던 나무들도 조금씩 본래의 색을 되찾고 있었다.

같은 지리산인데도 불과 몇백 미터의 높이 차이만으로 전혀 다른 계절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길가에서 힘겹게 올라오던 여성 산행객 네 분과 마주쳤다.

"위에는 눈이 많이 왔나요?"

숨을 고르며 묻는 질문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많이 쌓였습니다. 발도 푹푹 빠지고 많이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올라가세요."

짧은 대화였지만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데는 그 말이면 충분했다.

산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도 같은 길을 걷는 동행이 된다.

조금 더 내려오자 대나무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릇한 잎은 마치 긴 겨울을 견디고 다시 봄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싱그러웠다.

위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아래에서는 초록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불과 한 시간 남짓 걸었을 뿐인데, 나는 두 계절 사이를 걸어온 셈이었다.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가벼웠다.

겨울은 끝나가고 있었고, 나 역시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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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넹이 고개 하산 메모

• 겨울철 무넹이 고개는 적설량이 많으면 바위와 탐방로의 경계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으므로 발 디딜 곳을 충분히 확인하며 이동하는 것이 좋다.

• 아이젠을 착용해도 눈 아래 숨겨진 바위에서는 미끄러질 수 있으므로 보폭을 줄이고 천천히 걷는 것이 안전하다.

• 하산길은 오르막보다 피로가 많이 누적되므로 속도를 줄이고 스틱은 균형을 잡는 보조 장비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 눈이 녹기 시작하는 구간에서는 젖은 낙엽과 바위가 더욱 미끄러울 수 있으므로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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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메모

산은 넘어졌다고 나를 탓하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 한 걸음을 내딛기를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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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바람 · 글바람

산은 끝까지 긴장을 놓지 말라고 가르쳤고, 

나는 끝까지 산을 존중하며 걸어가는 법을 배웠다.




겨울은 조용히 손을 흔들었다

🍃 화엄사로 이어지는 길

한 시간 남짓 더 걸었을까.

계곡을 따라 흐르던 물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어느새 눈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불과 조금 전까지 하얀 세상이 펼쳐졌던 산은 어느새 초록빛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같은 산인데도 위와 아래가 서로 다른 계절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마지막까지 신기하게 느껴졌다.

가파른 길은 다리를 조금 무겁게 만들었지만 마음만은 한결 가벼웠다.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화엄사 입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 다시 사람들을 만나다

화엄사 입구에서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혼자 지리산 종주를 시작한다는 분이었다.

"오늘 처음 올라갑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설렘과 긴장이 함께 담겨 있었다.

나는 노고단 위에는 아직 눈이 많이 쌓여 있고 길도 많이 미끄럽다고 이야기해 드렸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 말밖에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산에서는 그런 짧은 인사 하나도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

그분도 무사히 좋은 산행을 마치셨기를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 다시 무궁화호를 타며

화엄사를 천천히 둘러본 뒤 다시 구례역으로 향했다.

플랫폼에는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여행을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잠시 후 무궁화호가 천천히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올 때와 같은 열차였지만 마음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처음 이 기차를 탔을 때는 겨울 지리산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지금은 그 겨울을 가슴에 담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내려놓았다.

창밖으로는 구례의 들판과 마을이 천천히 뒤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눈 덮인 능선도 조금씩 멀어졌다.

열차가 속도를 낼수록 지리산은 점점 작아졌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속에서는 더욱 선명해지고 있었다.

문득 화엄사 입구에서 만났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지리산 종주에 도전한다고 했던 그분.

노고단 위에는 아직 눈이 많이 쌓여 있으니 조심하시라고 전했던 짧은 인사가 문득 생각났다.

무사히 종주를 마치셨기를, 지금도 가끔 생각하게 된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달리는 차창 너머로 하얀 지리산이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나도 마음속으로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고맙습니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달리는 차창에 지리산의 하얀 눈이 손을 흔들며 멀리 사라져 갔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그곳에서 끝나지 않았다.

지리산은 서울까지 따라온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오래 머물기로 한 것 같았다.



🌿 산 메모

산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그 산을 만난 나는 올라갈 때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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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바람 · 글바람

겨울은

내게 아름다운 풍경만

보여준 것이 아니었다.

천천히 걷는 법과,

겸손하게 산을 바라보는 법도

함께 가르쳐 주었다.


에필로그

산을 기록하려고 떠났던 여행이었다.

하지만 돌아와 보니

기억에 남은 것은 높이도,

거리도,

시간도 아니었다.

기차에서 만난 사람,

대피소의 따뜻한 국물,

눈 덮인 노고단,

무넹이 고개에서 부러진 스틱,

그리고 다시 초록으로 이어지던 계곡길.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이번 겨울의 지리산이 되었다.

산은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같은 계절도,

같은 눈도,

같은 마음도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여행은

기억보다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언젠가 다시 겨울이 찾아오면,

나는 또 천천히 배낭을 메고

산바람을 따라 길을 나설 것이다.



🌿 이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이 글은 제가 직접 걸으며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다만 계절과 기상, 탐방로 통제, 교통편은 수시로 변경될 수 있으므로 출발 전 최신 정보를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관련 사이트 및 예매 정보

🌿 ① 지리산 노고단 예약 국립공원공단 공식 예약시스템입니다. 노고단 대피소 숙박 예약, 정상 탐방 예약 및 실시간 탐방로 운영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② 코레일 기차 예매 구례구역으로 가는 KTX, ITX, 무궁화호 승차권 예매 및 열차 시간표 확인이 가능합니다.

 🗺️ ③ 산행 코스 지도

이번에 다녀온 성삼재 ~ 노고단 ~ 화엄사 코스의 전체적인 등산로와 위치는 아래 네이버 지도를 통해 편리하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④ 겨울 지리산 준비물 체크리스트

□ 아이젠 □ 스패츠 □ 방풍 자켓 □ 방한 장갑 □ 보온병 □ 헤드랜턴 □ 등산 스틱 □ 여벌 양말 □ 비상식량 □ 휴대용 보조배터리 □ 개인 상비약

🌿 ⑤ 추천 숙소

🏡 호텔 지리산햇살 노고단과 화엄사 산행을 계획하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숙소입니다. 화엄사 입구와 가까워 산행 전후 머물기 좋으며, 조용한 분위기와 깔끔한 객실이 장점입니다.


🏡 구례옥잠 구례읍 중심에 위치한 한옥 감성 게스트하우스입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여행의 여운을 이어가기 좋으며, 화엄사와 지리산 국립공원으로 이동하기에도 편리합니다.

🏡 The-K 지리산 가족호텔 지리산온천지구에 위치한 대표 숙소입니다. 넓은 객실과 온천 시설을 갖추고 있어 가족 여행과 겨울 산행의 거점으로 이용하기 좋습니다.



🌄 다음 산행 이야기

[산바람 · 글바람 ②] 비 오는 날의 설악산 공룡능선, 15시간의 사투와 성찰

노고단이 눈 덮인 고요 속에서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이었다면, 다음 여정은 비를 맞으며 끝없이 이어진 암릉 위에서 자신과 마주했던 하루의 기록입니다.

예상보다 길어진 산행, 멈출 수 없었던 발걸음, 그리고 거친 능선 위에서 배운 겸손. 15시간 동안 이어진 설악산 공룡능선의 여정을 「비 오는 날의 설악산 공룡능선, 15시간의 사투와 성찰」에서 이어가겠습니다.

산은 달라도, 마음을 걸어가는 길은 계속됩니다.

🍃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우리는 저마다 다른 계절에 그 길을 걷습니다. 오늘 이 글이 여러분의 마음에도 작은 풍경 하나로 남기를 바랍니다.

다음 산길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산바람 · 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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