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 글바람 ㉒」 지리산 화대종주, 나에게 묻다
| 지리산 능선 위에서 만난 봄의 한 장면. 연분홍 철쭉은 늦은 계절을 붙잡고 피어 있었고, 멀리 산줄기는 운무 속에 잠겨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완전하지 않은 일출처럼, 늦게 피어난 꽃도 충분히 제 계절을 살고 있었다. |
새벽 2시 30분 화엄사에서 시작한 지리산 화대종주. 노고단과 삼도봉, 연하천과 장터목을 지나 천왕봉에 오르고, 중봉과 치밭목을 거쳐 대원사로 내려오며 지리산이 던지는 오래된 질문과 마주했다.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지리산은 답을 주지 않았다. 다만 긴 능선 위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조용히 되묻게 했다.
지리산, 나에게 묻다
지리산은 말을 아끼는 산이다. 대신 사람을 걷게 만든다. 오르고, 내려가고, 또다시 오르게 하다가 마침내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게 한다. 너는 왜 여기까지 왔느냐. 그리고 더 오래 걸으면 다시 묻는다. 너는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이냐. 나는 그 질문을 만나기 위해 지리산에 갔는지도 모른다.
이번 길은 화엄사에서 시작해 노고단과 지리산 주능선을 지나 천왕봉에 오른 뒤, 중봉과 치밭목을 거쳐 대원사로 내려오는 2박 3일의 화대종주였다. 이름은 짧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길은 짧지 않았다. 지리산은 한 번에 제 속을 보여주는 산이 아니다. 오래 걸은 사람에게만 조금씩 길을 열어주고, 지친 사람에게만 자기 안의 질문을 들려주는 산이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지리산 화대종주
📅 산행 시기
2박 3일 종주 산행
🥾 주요 코스
화엄사 → 무넹기 → 노고단 → 반야봉 조망 능선 → 삼도봉 → 토끼봉 → 연하천대피소 → 벽소령 → 선비샘 → 세석 → 장터목대피소 → 천왕봉 → 중봉 → 치밭목 → 대원사
📏 산행 거리
약 47~50km 내외로 계획하는 장거리 종주 코스
⏱ 산행 시간
2박 3일 기준, 대피소 예약과 체력 안배가 필수
⭐ 난이도
★★★★★
긴 거리, 반복되는 오르내림, 대피소 도착 시간, 날씨 변화, 배낭 무게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고난도 종주 산행
🌳 산행 환경
사찰 출발 · 야간 산행 · 너덜길 · 주능선 · 대피소 숙박 · 고산 능선 · 천왕봉 일출 · 긴 하산길
🏡 숙박
연하천대피소, 장터목대피소 등 국립공원 대피소 예약 필요
🚗 이동 방법
화엄사 방면으로 접근해 대원사 방면으로 하산하는 비순환 코스이므로, 들머리와 날머리 교통 계획을 별도로 세워야 함
지리산국립공원은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경남 하동·함양·산청,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우리나라 대표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리산을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을 중심으로 수많은 봉우리와 계곡이 병풍처럼 펼쳐진 산으로 소개한다.
새벽 2시 30분, 화엄사
새벽 2시 30분. 화엄사 주차장. 어둠은 이미 산을 점령하고 있었다. 나는 그 어둠에 들어가도 좋으냐고 허락을 구하듯 배낭끈을 다시 조였다. 2박 3일. 화엄사에서 시작해 지리산 주능선을 넘어 천왕봉에 오른 뒤 중봉과 치밭목을 지나 대원사로 내려가는 긴 길이었다. 지리산 화대종주. 그 이름은 짧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길은 결코 짧지 않았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앞으로 걸어야 할 거리가 얼마나 긴지, 얼마나 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기다리는지, 밤이 되기 전 도착해야 할 대피소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상하게도 그 모든 숫자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47킬로미터든, 50킬로미터든, 숫자는 아직 몸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진짜 산행은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나는 헤드랜턴을 켰다. 작은 불빛 하나가 어둠 속에 길을 만들었다. 세상은 랜턴이 비추는 몇 미터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면 충분했다. 멀리까지 볼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내가 디뎌야 할 돌 하나, 나무뿌리 하나, 다음 발을 놓을 자리 하나만 보이면 되었다.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삶도 그랬다. 멀리 있는 미래를 모두 알고 걸어온 것이 아니었다. 한 치 앞을 몰랐지만 오늘 하루를 지나고, 다시 내일을 건너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와 있었다.
산에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나는 무엇을 얻기 위해 산에 오는 것일까. 정상 하나를 더 얻으려고, 산행 기록 하나를 더 남기려고, 사진 몇 장을 찍으려고 온 것일까. 아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무엇을 얻기 위해서보다 무엇을 내려놓기 위해 산에 온다. 도시에서 등에 지고 온 걱정, 사람들에게 하지 못한 말,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 아직 오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마음. 지리산은 시작부터 그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게 한다. 아직 아무것도 주지 않았는데, 이미 많은 것을 버리게 한다.
그래서 지리산은 이상한 산이다. 빈손으로 들어가는데 더 가벼워져서 나오는 산이다.
천 년의 절에서 시작하는 길
화엄사는 지리산 남쪽 자락에서 오랜 세월을 견뎌온 절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 절을 거쳐갔을 것이다. 도를 구하러 온 승려도 있었고, 나라가 어려울 때 산으로 들어온 사람도 있었으며, 가족의 안녕을 빌러 온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화엄사 공식 안내는 이곳을 지리산 대화엄사, 천년의 화엄성지로 소개한다.
나는 새벽의 어둠 속에서 그 오랜 시간을 모두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가끔 생각한다. 천 년이 넘는 시간을 품은 절에서 산행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오늘 하루도 길다고 생각한다. 삼 일이 길다고 생각하고, 50킬로미터 가까운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화엄사가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면 내가 걸어야 할 사흘은 얼마나 짧은가.
사람은 자기 시간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내가 힘들면 세상이 가장 힘든 것 같고, 내가 아프면 가장 깊은 고통을 겪는 것 같다. 그러나 오래된 절과 오래된 산 앞에 서면 생각이 달라진다. 내가 지나가는 이 하루도 긴 세월 속의 한 점일 뿐이다. 그 생각은 사람을 조금 겸손하게 만든다. 나는 말없이 화엄사를 뒤로했다. 이제부터는 산의 시간이었다.
무넹기로 향하는 어둠
무넹기 고개로 향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너덜길. 질서 없이 흩어진 돌들. 헤드랜턴 불빛 아래 돌의 그림자가 길게 누웠다. 발을 아무 데나 놓을 수 없었다. 한 발 디디기 전에 살펴야 했고, 돌이 흔들리는지 확인해야 했다. 숨은 쉽게 가빠졌다. 산행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몸은 벌써 긴 하루를 예감하고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돌길을 걸었다. 그러다 문득 살아온 시간들이 떠올랐다. 애써 정리하려 했지만 끝내 정리되지 않았던 관계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지 못했던 일들. 이유를 알 수 없이 무거웠던 마음. 사람은 삶을 반듯한 길로 만들고 싶어 한다. 계획을 세우고, 순서를 정하고,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한다. 하지만 실제 삶은 너덜길에 더 가까웠다.
돌은 마음대로 놓여 있지 않았고, 어떤 돌은 단단해 보이지만 밟는 순간 흔들렸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관계가 무너지기도 했고, 별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 오래 곁에 남기도 했다. 나는 점점 알게 되었다. 삶은 확신으로만 걸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조심하며, 흔들리는 돌을 밟아보고, 아니다 싶으면 발을 빼고, 다시 다른 곳에 발을 놓으며 가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걸었다.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허락된 최선이라는 듯이.
노고단을 지나며
어둠이 조금씩 걷혔다. 새벽과 아침 사이의 시간. 산의 윤곽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덩어리였던 능선이 푸른색을 띠기 시작하고, 멀리 봉우리들의 선이 보였다. 지리산은 오래전부터 영산으로 여겨져 왔다. 노고단과 천왕봉을 비롯한 여러 장소에는 오래된 산악신앙의 흔적과 이야기가 전한다.
사람들은 왜 높은 산에 올라와 하늘을 향해 기도했을까. 조금이라도 하늘에 가까이 가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일까. 옛사람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비가 오기를 바라고, 가족이 무사하기를 빌고, 전쟁이 끝나기를 소원했을 것이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사람이 마음속에 품는 근심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산에서 무엇인가를 빈다. 거창한 소원은 아니다. 건강하게 걸을 수 있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별일 없기를. 그리고 내가 앞으로의 시간을 너무 욕심내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젊을 때는 무엇을 더 얻고 싶었다. 이제는 가진 것을 오래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그것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의 크기 앞에서
지리산은 한 지역의 산이 아니다. 경남과 전남, 전북에 걸쳐 거대한 산줄기와 계곡을 품고 있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리산이 경남 하동·함양·산청,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있으며, 1967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안내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름을 붙이고 경계를 나누기 훨씬 전부터 산은 그 자리에 있었다.
경상도 사람의 산도 아니고, 전라도 사람의 산도 아니었다. 산 아래 사람들이 행정구역의 선을 그었을 뿐, 바람은 도계를 모르고 넘어갔으며 구름은 허락을 구하지 않고 능선을 건넜다. 나는 주능선을 걸으며 생각했다. 사람은 참 많은 경계를 만들고 살아간다. 내 것과 네 것, 우리 편과 상대편, 젊음과 늙음,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그러나 산 위에서 바라보면 그 경계들은 생각보다 희미하다.
어제 전남에서 출발한 발이 오늘은 전북과 경남의 경계를 지나고, 내일은 다시 다른 계곡으로 내려간다. 산은 이어져 있는데 사람만 선을 긋는다. 지리산의 크기 앞에서는 내가 붙잡고 있던 경계들도 조금씩 힘을 잃었다.
반야봉,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
긴 길 끝에서 반야봉 쪽 산세를 바라보고 능선을 걸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운무가 움직였다. 산 아래로 흘러내리는 구름은 계곡을 덮었다가 다시 걷혔다. 한순간 보였던 산이 사라지고, 조금 뒤에는 전혀 다른 능선이 나타났다. 마치 기억 같았다. 어떤 기억은 붙잡으려 할수록 흐려지고, 잊었다고 생각한 장면은 뜻하지 않은 순간에 선명하게 돌아온다.
나는 한동안 운무를 바라보았다. 삶의 불필요한 장면들이 하나씩 지워지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을 설명하려 애쓸 필요는 없었다. 왜 그랬는지, 누가 옳았는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끝까지 답을 찾지 못한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젊었을 때는 모든 질문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답을 알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세월을 살아보니 오히려 모르는 것이 많아졌다.
세상에는 끝내 설명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리산은 말 대신 장면으로 충분했다. 운무는 보여주었다. 가려졌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며,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산은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내가 볼 수 없었을 뿐이었다.
삼도봉, 경계에 서다
삼도봉에 섰다. 경남과 전남, 전북. 세 지역의 경계가 만나는 자리. 작은 지점 하나에 세 개의 이름이 만난다. 나는 그곳에서 내 삶의 경계를 생각했다. 젊음과 노년, 욕심과 체념, 집착과 포기, 용기와 두려움. 나는 그 사이 어디쯤 서 있을까.
젊다고 하기에는 세월을 많이 걸어왔고, 늙었다고 주저앉기에는 아직 가고 싶은 산이 많다. 욕심을 내려놓았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쪽에는 아직 이루고 싶은 일이 남아 있다. 사람은 어느 한쪽으로만 살아가지 않는 모양이다. 포기했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붙잡고, 이제 괜찮다고 말하면서 속으로 아파하며, 다 잊었다고 하면서 오래된 이름 하나에 마음이 흔들린다.
나는 삼도봉의 경계석 앞에서 생각했다. 경계는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쪽이 끝나는 자리에서 다른 쪽이 시작되는 곳. 나이 드는 것도 그런 것 아닐까. 젊음이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삶이 시작되는 것. 빨리 걷는 대신 오래 바라보고, 많이 갖는 대신 깊이 기억하고, 앞으로만 가는 대신 가끔 뒤를 돌아볼 줄 알게 되는 시간. 삼도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작은 봉우리는 내게 경계 너머에도 길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토끼봉을 넘어 연하천으로
길은 계속되었다. 올라가면 내려갔고, 내려가면 어김없이 다시 올랐다. 지리산 종주의 어려움은 높은 봉우리 하나를 오르는 데만 있지 않다. 끝났다고 생각하면 또 길이 나타난다는 데 있다.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잠시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멀리 다음 능선이 보인다. 저기도 넘어야 하는구나. 인생도 그랬다. 이 일만 해결되면 편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일이 나타났다.
자식 걱정이 끝나면 건강 걱정이 오고, 일이 조금 편해지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삶에는 완전한 평지가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늘 힘들기만 했던 것도 아니다. 힘든 오르막 끝에서 바람 한 줄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되었고, 차가운 물 한 모금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도 산에서 배웠다. 많이 가져야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지친 사람에게는 앉을 돌 하나가 행복이고, 목마른 사람에게는 물 한 모금이 행복이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연하천대피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하루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배낭은 아침보다 무거워진 것 같았다. 짐은 줄었는데 어깨는 더 아팠다. 사람의 몸이란 정직하다. 마음은 더 갈 수 있다고 말해도 몸은 지나온 거리를 모두 기억한다. 마침내 연하천에 도착했을 때 몸은 바닥을 요구했고, 마음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연하천의 밤
산속의 밤은 빨리 온다. 대피소의 불빛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처럼 느껴졌다. 도시에서는 작은 방 하나도 불편하다고 말한다. 침대가 단단하다, 에어컨이 시끄럽다, 베개가 맞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 종일 산길을 걸은 사람에게는 몸을 눕힐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배낭을 내려놓는 순간 몸이 갑자기 가벼워졌다. 하루 동안 내가 등에 지고 온 것이 이렇게 무거웠구나.
그때 문득 생각했다. 마음의 짐도 내려놓는 순간에야 그 무게를 알게 되는 것 아닐까. 계속 지고 있을 때는 무거운 줄도 모른다.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미움도, 후회도, 걱정도 너무 오래 가지고 있으면 자기 몸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산에 와서 잠시 내려놓고 나서야 알게 된다. 내가 이것을 이렇게 오래 지고 살았구나.
밤이 깊어졌다. 도시의 불빛이 없는 산속에서 별들이 나타났다. 나는 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마음이 탁해졌을까. 어릴 때는 작은 일에도 기뻤다. 새 운동화 한 켤레가 좋았고, 친구와 냇가에서 노는 하루가 즐거웠다. 그런데 언제부터 더 많은 것을 가져야 만족하게 되었을까. 도시의 불빛 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질문이 지리산 밤하늘 아래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선명했다.
산이 묻는 것 같았다. 너는 아직도 너 자신을 믿고 있느냐. 대답하기 어려웠다. 나는 나를 믿어왔을까. 아니면 남들이 인정해주는 나를 만들기 위해 살아온 것일까. 긴 세월을 살았지만 아직도 나 자신에게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잠은 깊지 않았다. 산장의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깨고, 몸을 뒤척일 때마다 근육이 아팠다. 그러나 산의 아침은 공평하게 찾아왔다. 잘 잔 사람에게도, 못 잔 사람에게도 같은 빛이 왔다.
다시 걷는다는 것
아침에 배낭을 다시 메었다. 어제의 피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리는 무거웠고, 어깨는 배낭끈이 닿는 곳마다 아팠다. 그런데 이상했다. 다시 걸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강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어제는 다시는 못 걸을 것 같았는데 아침이 되면 또 신발끈을 묶는다.
삶에서도 그랬다. 어떤 날은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힘들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날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아침은 왔다. 밥을 먹고, 옷을 입고, 다시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살아온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삶은 거대한 영웅적인 행동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일어나는 작은 반복이 사람을 여기까지 데려온다. 나는 그것을 지리산에서 다시 배웠다.
벽소령과 선비샘, 길 위의 사람들
연하천을 떠나 벽소령 방향으로 걸었다. 지리산 주능선의 길은 봉우리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숲도 보여주고, 돌길도 보여주고, 때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도 보여준다. 걷다 보면 마주 오는 사람이 있다. 말이 길지 않다. “힘내세요.”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산에서 ‘조금만 더’라는 말은 가끔 믿기 어렵다. 그 조금이 한 시간이 되기도 하고, 한 시간이 두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이상하게 힘이 된다.
도시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어색하지만, 산에서는 낯선 사람의 한마디가 따뜻하다. 아마 모두 같은 어려움을 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비샘을 지나며 물을 바라보았다. 산행에서 물은 단순한 물이 아니다. 생명이다. 배낭 속에 물이 있다는 것과 물이 없다는 것은 마음의 무게부터 다르다.
나는 물을 마시며 지나온 사람들을 생각했다. 이 길을 오래전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걸었을까. 선비도 걸었을 것이고, 승려도 걸었을 것이다. 장꾼도, 약초꾼도, 전쟁을 피해 산으로 든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의 나는 등산을 위해 걷지만, 누군가에게 이 산길은 생존의 길이었을 것이다. 지리산은 아름다운 산이지만 언제나 아름다운 기억만 품은 산은 아니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사람들이 숨어들었고, 쫓고 쫓기는 시간을 품었던 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산은 어느 편의 슬픔도 밀어내지 않았다. 모두 품었다.
그래서 지리산의 침묵은 가볍지 않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품어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세석을 지나 장터목으로
긴 길 끝에 세석 쪽 능선이 나타났다. 지리산 능선은 참 이상하다. 고생하며 올라가 놓으면 다시 내려가게 만들고, 이제 다 왔다 싶으면 또 먼 능선을 보여준다. 나는 예전처럼 산에 화를 내지 않는다. 젊을 때는 긴 오르막을 만나면 속으로 투덜거렸다. 왜 또 올라가는 거야. 그런데 이제는 안다. 산에는 이유가 없다. 길은 그저 그렇게 놓여 있을 뿐이다. 힘들다고 오르막이 낮아지지 않고, 불평한다고 대피소가 가까워지지도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이다. 걸어가는 것. 장터목대피소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놓였다. 장터목은 여러 번 찾은 곳이다. 그런데 같은 곳도 찾아올 때마다 다르다. 산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는 장터목에서 남은 거리를 생각했다. 천왕봉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일출 시간이 몇 시인지, 내일 얼마나 빨리 움직여야 하는지를 계산했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굳이 이렇게 힘든 길을 걸어야 할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상을 주는 것도 아니다.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걷는가. 나는 오래 생각했다.
아마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젊음을 증명하기 위해 산에 오르지 않는다. 젊은 사람과 경쟁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누구보다 빨리 걷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확인하고 싶었다. 아직 나는 걸을 수 있는가. 힘들어도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가. 그 대답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장터목에 도착한 나는 이미 조금은 답을 알고 있었다. 그래. 아직은 괜찮다. 빠르지는 않아도 나는 아직 내 길을 걸을 수 있다.
장터목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장터목은 오늘날 종주객이 쉬어가는 중요한 자리이지만, 그 이름에는 고갯마루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오가고 물건을 나누던 옛 삶의 흔적이 느껴진다. 나는 그 이름을 좋아한다. 높은 산속에도 장터가 있었다는 이야기. 사람은 어디에서나 서로 만나야 살 수 있었던 모양이다. 소금을 가져온 사람, 곡식을 가져온 사람, 산 아래와 산 너머를 오가던 사람들. 오늘의 우리는 등산복과 스틱을 들고 그 길을 지나지만, 옛사람은 생활을 등에 지고 산을 넘었을 것이다.
내가 취미로 걷는 길을 누군가는 먹고살기 위해 걸었다. 그 생각을 하면 힘들다는 말을 쉽게 하기 어려워진다. 산에는 자연의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 넘은 고개, 기도하기 위해 오른 봉우리, 전쟁을 피해 숨은 계곡,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며 넘은 능선이 있다. 지리산의 길은 사람의 역사 위에 놓여 있다.
천왕봉으로 가는 새벽
다음 날 새벽. 다시 헤드랜턴을 켰다. 장터목을 떠나 천왕봉으로 향했다. 어둠 속 능선에 작은 불빛들이 이어졌다. 앞사람의 헤드랜턴이 움직이고, 그 뒤에서 또 다른 불빛이 따라왔다. 멀리서 보면 반딧불이 산을 오르는 것 같았다. 모두 말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마다 사연 하나쯤은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처음 천왕봉에 오르는 사람일 것이고, 누군가는 부모를 생각하며 걷고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고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산이 좋아서 걷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걸었지만 각자 다른 인생을 등에 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는 나이를 알 수 없다. 직업도, 재산도, 지위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앞사람의 작은 불빛뿐이다.
산에서는 사람이 조금 평등해진다. 누구나 자기 발로 걸어야 하고,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숨을 대신 쉬어달라고 할 수 없다. 천왕봉은 돈으로 올라갈 수 없다. 한 걸음씩 걸어야 한다. 그 단순한 사실이 좋았다.
반쪽의 일출
천왕봉에 올랐다. 해발 1,915미터. 지리산의 가장 높은 자리. 그러나 정상에 섰다고 해서 하늘이 언제나 완벽한 풍경을 내어주는 것은 아니다. 천왕봉의 일출은 완전하지 않았다. 구름이 해를 가렸고, 기다리던 태양은 온몸을 드러내지 않았다. 반쪽의 해. 구름 사이로 잠시 얼굴을 내민 붉은빛.
예전 같았으면 아쉬웠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 긴 길을 걸었는데. 왜 완전한 일출을 보여주지 않는가. 그러나 그날은 이상하게도 괜찮았다. 반쪽이면 충분했다. 삶도 늘 완전하지 않았다. 내가 계획한 대로 모두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사랑도 완전하지 않았고, 관계도 완전하지 않았으며, 나 자신조차 부족한 부분투성이였다.
그런데도 여기까지 왔다. 완전하지 않은 삶을 들고 완전하지 않은 일출 앞에 서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것이면 충분했다. 완전해야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구름 사이로 잠깐 나타난 해였기에 더 오래 바라보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반쪽의 태양에게 속으로 말했다. 괜찮다. 나도 반쪽으로 여기까지 왔다.
천왕봉이 보는 시간
천왕봉에 서면 사람이 만든 경계가 다시 작아진다. 경남과 전남과 전북을 품은 지리산의 거대한 능선이 펼쳐진다. 지리산은 예로부터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 백두산에서 이어진 산줄기라는 의미를 담은 두류산이라는 이름도 전해지고, 민족의 영산으로 숭앙받아온 시간도 있다. 그러나 이름이 무엇이든 산은 같은 산이다. 사람의 왕조가 바뀌고, 전쟁이 지나가고, 행정구역이 달라져도 산은 그 자리에서 계절을 반복했다.
천왕봉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다시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 생각이 조금 허무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애쓰며 사는데 긴 시간 속에서는 한순간이라니. 하지만 다시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할 필요는 없다. 세상의 모든 짐을 질 필요도 없다. 나는 내가 살아갈 만큼의 시간을 살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걸을 수 있을 때 내 길을 걸으면 된다. 산은 오래 살아서 사람에게 그런 겸손을 가르치는지도 모른다.
오늘의 시
지리산 / 송현
그냥
엄마라서
손에 쥔 실개천이
계곡으로 변해도
묻지 않았습니다.
함박눈이 쌓이고 녹기를
수없이 반복해도
그게 세상의 이치인 줄 알았습니다.
내 마음이
비와 눈으로 바뀌는 동안
엄마는 조용히
지리산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압니다.
지리산의 함박눈이
당신이었음을.
중봉을 지나며
천왕봉에서 내려와 중봉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은 천왕봉을 목표로 오른다. 정상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간다. 그러나 종주길은 정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상을 지나야 다시 길이 시작된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우리 삶도 그렇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었다고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
정년을 맞아도 삶은 계속되고, 자식을 키워 독립시켜도 부모의 하루는 이어진다. 책 한 권을 내도 다음 문장을 쓰고 싶어질 것이다. 정상은 끝이 아니라 지나가는 지점일 뿐이다. 천왕봉을 뒤로하고 중봉으로 향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젊은 날에는 정상에 도착하는 것을 꿈꾸었다. 이제는 정상 이후의 길을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누구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그 질문이 더 중요해졌다.
늦게 피는 꽃
하산길에서 털진달래를 만났다. 산 아래에서는 이미 계절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높은 산은 아직 봄의 한 장면을 붙잡고 있었다. 늦게 피고, 늦게 보내는 꽃. 나는 그 앞에서 오래 걸음을 멈췄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빠른 것을 좋아한다. 빨리 성공하고, 빨리 자리 잡고, 남보다 먼저 이루라고 한다. 꽃도 일찍 피어야 칭찬받을 것 같은 세상이다.
하지만 산의 꽃은 남의 시간을 따라가지 않는다. 자기 고도에서, 자기 온도에서, 자기 때가 되었을 때 핀다. 나는 그 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도 조금 늦어도 괜찮지 않을까. 환갑을 넘어서 새로운 글을 쓰고, 늦은 나이에 다시 꿈을 꾸고,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누가 늦었다고 말하는가. 삶에는 모두 같은 개화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스무 살에 피고, 어떤 사람은 쉰 살에 자기 일을 만나며, 누군가는 일흔이 넘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을 시작한다. 털진달래는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늦은 것이 아니라 네 계절이 이제 온 것일 수도 있다고.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치밭목을 지나 대원사로
천왕봉과 중봉을 지나면 종주가 거의 끝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산은 쉽게 끝을 내어주지 않는다. 치밭목을 지나 대원사로 향하는 길 역시 길다. 하산은 오르는 것보다 쉽다고 생각하지만, 긴 산행 끝의 하산은 또 다른 싸움이다. 무릎은 충격을 받고, 발바닥은 뜨거워지며, 배낭은 끝까지 어깨를 누른다. 마음은 이미 산 아래에 가 있는데 몸은 아직 산속에 있다.
이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긴장이 풀리는 순간. 삶에서도 그랬다. 거의 다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실수했고, 이제 괜찮다고 방심했을 때 일이 생겼다. 끝까지 걷는 것. 마지막 한 걸음까지 자신의 발을 살피는 것. 산행은 마지막까지 가르침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내려갔다. 빨리 내려갈 이유가 없었다. 이미 이틀 넘게 걸어왔다. 여기서 몇 분 빨리 간다고 내 삶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내려가는 동안 물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높은 능선의 바람 대신 계곡의 소리가 들렸다. 산행이 끝나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대원사, 끝난 길과 남은 질문
마침내 대원사 쪽으로 내려왔다. 긴 종주가 끝났다. 배낭을 내려놓고 싶었다. 신발도 벗고 싶었다.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싶었다. 몸은 분명 끝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에는 끝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질문이었다.
지리산은 사흘 동안 내게 계속 물었다. 너는 왜 걷는가. 너는 무엇을 내려놓았는가. 너는 아직 자신을 믿고 있는가.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어느 질문에도 완벽하게 답하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정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부족했다. 여전히 흔들렸다. 아직도 욕심이 있었고, 후회도 있었으며, 마음 한쪽에는 정리하지 못한 일들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나는 살아 있었다. 새벽 2시 30분 화엄사에서 헤드랜턴을 켠 사람도 나였고, 무넹기의 돌길에서 숨을 몰아쉬던 사람도 나였다. 삼도봉의 경계에서 흔들리던 사람도, 연하천의 별 아래 자신에게 질문하던 사람도, 장터목에서 아직 걸을 수 있음을 고마워한 사람도 나였다. 반쪽의 일출을 보고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사람. 늦게 피는 털진달래 앞에서 나 역시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 사람. 그 사람도 나였다.
지리산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처음부터 답을 줄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산은 답을 주는 곳이 아니라 질문을 되돌려주는 곳인지도 모른다. 나는 대원사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걸어온 능선은 모두 보이지 않았다. 높은 산에 가려지고, 구름에 덮이고, 시야 밖으로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걷지 않은 길은 아니었다. 내 발이 알고 있었고, 무릎이 알고 있었으며, 내 마음이 기억하고 있었다.
작은 걸음들이 모여 긴 길이 된다
그 순간 알 것 같았다. 삶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지나온 모든 날이 눈앞에 보이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도 사라졌고, 젊은 날도 멀어졌다. 만났던 사람 중에는 이제 곁에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길이 되어 내 안에 남아 있다.
화엄사에서 시작한 걸음이 노고단과 반야봉을 지나고, 삼도봉과 토끼봉을 넘어, 연하천과 벽소령, 선비샘과 세석, 장터목과 천왕봉, 중봉과 치밭목을 거쳐 마침내 대원사에 닿았다. 어느 한 걸음도 혼자서는 종주가 아니었다. 작은 걸음들이 모여 긴 길이 되었다. 삶도 그랬다. 대단한 하루 하나가 나를 만든 것이 아니었다. 잘한 날과 못한 날, 웃은 날과 운 날, 포기하고 싶었던 날과 다시 일어난 날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는 지리산에서 대단한 답을 얻은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아직도 나 자신에게 질문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며, 아직 늦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앞으로의 삶을 다시 걸어볼 이유는 충분했다.
지리산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나는 배낭을 내려놓았다. 산행은 끝났지만 내 안에서는 또 하나의 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 천천히 걸어도 좋을 것이다. 남보다 늦어도 괜찮을 것이다. 완전하지 않은 일출도 아름다웠고, 늦게 피어난 꽃도 충분히 제 계절을 살고 있었다. 그러니 나 역시 남아 있는 나의 계절을 살아가면 된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화엄사 새벽의 어둠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멀리까지 모두 보려고 하지 않고 오늘 내가 디뎌야 할 자리 하나를 바라보며. 지리산은 나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다시 걸을 수 있는 질문 하나를 남겨주었다. 너는 아직 살아 있는가. 나는 이제, 조금은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나는 아직 걷고 있다.
🌿 이 산행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지리산 화대종주는 긴 거리와 높은 체력 소모, 대피소 숙박, 날씨 변화, 교통 계획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장거리 종주 산행이다. 지리산국립공원은 넓은 면적과 수많은 봉우리, 긴 능선과 계곡을 품은 산악형 국립공원이며, 천왕봉은 1,915m로 지리산의 대표 정상이다.
화엄사에서 시작해 대원사로 내려오는 길은 원점회귀가 아니므로, 출발 전 들머리와 날머리 교통을 따로 확인해야 한다. 대피소 숙박은 국립공원공단 예약 시스템을 통해 사전에 확인해야 하며, 기상특보나 탐방로 통제 여부도 산행 전 반드시 살펴야 한다. 특히 화대종주는 하루 컨디션이 아니라 사흘의 체력 안배가 중요하다.
산행 준비 메모
첫째, 대피소 예약과 도착 시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지리산 종주는 ‘가고 싶으면 가는 산행’이 아니라, 예약한 대피소까지 안전하게 도착해야 하는 산행이다.
둘째, 배낭 무게를 줄여야 한다. 사흘 동안 같은 배낭을 메고 걷기 때문에 작은 무게 차이도 시간이 지나면 어깨와 무릎에 크게 남는다.
셋째, 날씨와 체온 관리가 중요하다. 지리산 주능선은 날씨 변화가 빠르고, 고도에 따라 체감 온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 관련 사이트 및 여행 정보
① 국립공원공단 지리산국립공원
탐방로 통제, 대피소, 교통, 코스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지리산은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대표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②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
연하천대피소, 장터목대피소 등 대피소 예약과 이용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화대종주를 계획한다면 산행 일정과 대피소 예약 가능 여부를 먼저 맞춰보는 것이 좋다.
③ 지리산 화엄사
👉 구례군 문화관광 화엄사 정보 바로가기화엄사는 지리산 남쪽 자락의 오래된 사찰로, 화대종주의 대표적인 출발지 가운데 하나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화엄사를 천년의 화엄성지로 소개한다.
④ 구례 여행 정보
화엄사, 구례 산수유마을, 섬진강 일대 여행 정보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⑤ 산청 여행 정보
대원사 계곡과 산청 방면 여행 정보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 지리산 화대종주 준비물 체크리스트
□ 대피소 예약 확인
□ 탐방로 통제 및 기상 확인
□ 헤드랜턴과 예비 배터리
□ 방수·방풍 재킷
□ 보온 의류
□ 가벼운 침낭 또는 대피소용 준비물
□ 충분한 식수와 정수 계획
□ 행동식과 간단한 식사
□ 무릎 보호대 또는 스틱
□ 발에 맞는 등산화와 여분 양말
□ 보조배터리
□ 비상약과 테이핑 용품
□ 무리하지 않고 중간에 멈출 수 있는 판단
🌿 추천 숙박
🏡 구례·화엄사권
화대종주 전날 화엄사나 구례권에서 숙박하면 새벽 출발 준비가 한결 수월하다. 화엄사 주차장이나 들머리까지의 이동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야간 산행 출발 전 컨디션을 아끼는 데 도움이 된다.
🏡 산청·대원사권
종주를 마친 뒤에는 대원사나 산청 방면 숙박을 고려할 수 있다. 긴 하산 뒤 바로 먼 거리를 이동하기보다, 몸을 쉬게 하고 다음 날 천천히 귀가하는 일정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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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바람 · 글바람 ㉑」 예봉산·예빈산 산행기, 건너지 못한 다리와 다시 살아나는 숲
예봉산에서 예빈산으로 이어진 길에서는 건너지 못한 다리와 다시 살아나는 숲을 만났습니다. 견우봉과 직녀봉 앞에서는 기다림과 안부의 의미를 생각했고, 불탄 숲에서 돋아난 새잎 앞에서는 상처가 어떻게 다시 숲이 되는지를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예봉산과 예빈산이 기다림과 회복의 산이었다면, 지리산 화대종주는 삶의 긴 능선 위에서 나 자신에게 다시 묻는 길이었습니다. 상처가 숲이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듯, 사람도 긴 길을 걸으며 조금씩 자기 안의 답에 가까워지는 것인지 모릅니다.
🌄 다음 산행 이야기
「산바람 · 글바람 ㉓」 불암산 산행기
지리산 화대종주에서는 화엄사의 새벽 어둠에서 시작해 대원사의 계곡 물소리까지, 긴 능선을 따라 몸과 마음의 시간을 통과했습니다. 노고단과 삼도봉, 연하천과 장터목, 천왕봉과 중봉을 지나며 지리산은 끝내 답을 주지 않았지만, 다시 걸을 수 있는 질문 하나를 남겨주었습니다.
다음에는 불암산으로 향합니다. 지리산처럼 길고 깊은 종주는 아니지만, 도시 가까이 솟은 바위산에는 또 다른 질문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긴 능선을 지나온 뒤 만나는 불암산에서는, 거대한 산이 아니라 가까운 산이 사람에게 건네는 작고 단단한 위로를 따라 걸어보겠습니다.
🍃 산길의 끝에서
지리산은 말을 아끼는 산이었다. 사흘 동안 긴 길을 걷게 했지만, 쉽게 답을 주지는 않았다. 대신 계속 물었다. 너는 왜 걷는가. 너는 무엇을 내려놓았는가. 너는 아직 자신을 믿고 있는가.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그 질문에 완벽하게 답하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완전한 답을 찾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화엄사 새벽의 어둠 속에서 첫 불빛을 켜고, 무넹기의 돌길을 지나고, 삼도봉의 경계에 서고, 연하천의 별빛 아래 잠들고, 장터목에서 다시 천왕봉으로 향하며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 흔들리지만, 아직 걷고 있다는 것을.
천왕봉의 일출은 완전하지 않았다. 구름 사이로 잠시 얼굴을 내민 반쪽의 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반쪽이면 충분했다. 완전하지 않은 삶을 들고 완전하지 않은 일출 앞에 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반쪽이어도 빛은 빛이었다. 부족해도 삶은 삶이었다.
하산길에서 만난 털진달래도 그랬다. 남보다 늦게 피었다고 해서 꽃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자기 고도에서, 자기 온도에서, 자기 때가 되었을 때 피고 있었다. 그 꽃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늦은 것이 아니라 내 계절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대원사에 닿았을 때 산행은 끝났지만, 내 안에서는 또 하나의 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걷지 않은 길은 아니었다. 내 발이 알고 있었고, 무릎이 알고 있었으며, 마음이 기억하고 있었다. 삶도 그럴 것이다. 지나온 모든 시간이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천천히 걸어도 좋을 것이다. 남보다 늦어도 괜찮을 것이다. 완전하지 않은 일출도 아름다웠고, 늦게 피어난 꽃도 충분히 제 계절을 살고 있었다. 나 역시 남아 있는 나의 계절을 살아가면 된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화엄사 새벽의 어둠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멀리까지 모두 보려고 하지 않고 오늘 내가 디뎌야 할 자리 하나를 바라보며.
산바람 · 글바람
지리산은
말을 아끼는 산이었습니다.
대신 나를 걷게 했습니다.
오르고,
내려가고,
또다시 오르게 하다가
마침내
나 자신에게 묻게 했습니다.
너는 왜 여기까지 왔느냐.
새벽 2시 30분,
화엄사 주차장에서
나는 작은 헤드랜턴 하나를 켰습니다.
세상은
불빛이 닿는 몇 미터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면 충분했습니다.
지금 디뎌야 할 돌 하나,
다음 발을 놓을 자리 하나.
삶도 그랬습니다.
멀리 있는 미래를
다 알고 걸어온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지나고
다시 내일을 건너며
여기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노고단을 지나고,
삼도봉의 경계에 서고,
연하천의 밤 아래
나 자신을 다시 물었습니다.
나는 아직
나를 믿고 있는가.
장터목에서
다시 배낭을 메고,
천왕봉으로 향하는 새벽
작은 불빛들 사이를 걸었습니다.
천왕봉의 해는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구름 사이로 잠시 드러난
반쪽의 일출.
그런데 그날은
반쪽이면 충분했습니다.
나도 반쪽으로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중봉을 지나
늦게 핀 털진달래를 보았습니다.
그 꽃은 말하는 듯했습니다.
늦은 것이 아니라
네 계절이 이제 온 것일 수도 있다고.
대원사에 닿았을 때
산행은 끝났지만,
내 안에서는
또 하나의 길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지리산은
끝내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시 걸을 수 있는 질문 하나를
남겨주었습니다.
너는 아직 살아 있는가.
나는 이제
조금은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나는 아직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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