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 글바람 ㊺」 수원화성·칠보산 산행기, 길을 잃고서야 만난 정겨운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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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칠보산
길을 잃고서야 만난 능선
| 칠보산 정상 바람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칠보산에서 만난 것은 일곱 가지 보물보다 먼저, 길을 잃은 뒤 찾아온 안도감이었다. 제대로 된 길을 잠시 놓쳤지만, 그 덕분에 넉넉하고 정겨운 능선이 더 반갑게 다가왔다.
가볍게 오르려던 산
칠보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전국 여러 곳에 있다.
오늘은 수원 쪽에 볼일이 있어 일을 마친 뒤 가볍게 오를 만한 산을 찾다가, 수원과 화성에 걸쳐 있는 칠보산으로 향했다.
일곱 가지 보물이 있었다 하여 칠보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름만 들으면 산속 어디쯤 금은보화라도 숨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산이 그리 높지 않은 까닭인지, 산 위에는 큰 절이나 특별한 유적이 눈에 띄지는 않았다.
다만 산 아래 자리한 칠보사라는 이름이 이 산에 깃든 오랜 이야기를 대신 들려주는 듯했다.
가볍게 오를 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산은 늘 사람 마음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낮은 산이라고 얕보다가는 들머리에서부터 산에게 한 번쯤 혼이 난다. 오늘 칠보산도 그랬다.
산은 높이로만 사람을 시험하지 않는다.
가끔은 길 찾기로 먼저 장난을 친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수원·화성 칠보산
📅 산행일
수원 볼일 뒤 가볍게 오른 산행
🥾 산행 코스
칠보산 들머리 탐색 → 칠보사 부근 → 희미한 산길 진입 → 잡목 구간 → 주능선 합류 → 칠보산 정상 → 능선길 하산
📏 산행 거리
정확한 거리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들머리 알바와 능선길 산책이 함께한 짧은 산행
⏱ 산행 시간
반나절 산행
⭐ 난이도
★★☆☆☆
정상적인 등산로를 이용하면 남녀노소 걷기 좋은 편안한 산이지만, 들머리를 잘못 잡으면 희미한 길과 잡목 구간을 만날 수 있다. 처음 찾는 사람은 등산로 입구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 산행환경
도심 근교 산행 · 칠보사 · 들머리 알바 · 희미한 산길 · 부드러운 흙길 · 벤치 쉼터 · 수원·화성 경계 능선
🏡 숙박
당일 산행 가능. 수원화성, 화성 융건릉, 의왕·수원권 여행과 연계 가능
🚗 이동방법
자가용 또는 대중교통으로 칠보산 들머리 접근
들머리부터 시작된 알바
처음 찾는 산에서는 들머리를 제대로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블로그만 믿고 찾아온 탓인지 시작부터 길이 어긋났다. 안내가 분명할 줄 알았는데 막상 현장에 와보니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여기가 맞나 싶어 한 바퀴 돌고, 저쪽인가 싶어 다시 걸어갔다. 산은 보이는데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만큼 사람을 답답하게 하는 것도 없다.
들머리를 찾지 못한 채 주변을 몇 번이나 맴돌다가 칠보사를 발견했다. 그래도 절이 있으면 산길이 있겠지 싶었다. 그곳을 기준으로 길을 짐작해 산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내가 들어선 길은 정상적인 등산로가 아니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된 듯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었고, 잡목과 풀이 길을 가로막았다. 길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민망하고, 그렇다고 길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어딘가 발자국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오래전에 폐쇄된 산길인지도 몰랐다.
그때부터 산행은 가벼운 산책이 아니라 작은 모험이 되었다.
산꾼의 알바
그래도 오랫동안 산을 다닌 경험이 있으니 중턱까지만 올라가면 능선길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을 산꾼들은 흔히 ‘알바’라고 한다. 일당 받는 아르바이트는 아니지만, 땀은 꼭 그만큼 흘린다. 길을 잘못 들어 생기는 공짜 노동이다.
오늘도 뜻하지 않은 알바를 하며 길 대신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고 무작정 위쪽으로 올랐다.
잡목은 자꾸 팔을 붙잡고, 풀은 바짓가랑이를 스친다. 발밑은 분명치 않고, 길은 있는 듯 없는 듯하다. 낮은 산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산은 “그래도 나도 산이야” 하고 조용히 말하는 것 같았다.
가파른 비탈을 헤치며 한동안 올라섰다.
숨이 차고 땀이 났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가볍게 오를 산을 찾았다가, 가볍지 않은 길을 골라 들어온 셈이다. 이런 날은 산이 나를 놀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이상하게 싫지만은 않다. 산행에는 이런 엉뚱한 장면이 있어야 나중에 글이 된다.
길을 제대로 찾아 얌전히 올랐으면, 오늘 칠보산은 그냥 편안한 동네 산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길을 잃었다.
그래서 칠보산이 조금 더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갑자기 열린 신작로 같은 능선
한동안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자 예상대로 넓은 등산로가 나타났다.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신작로처럼 반듯하고 편안한 길 위로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내가 헤매던 길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아니, 여기 이렇게 좋은 길이 있었네.’
다행히 그곳은 정상에서 멀지 않은 능선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한 시간이 허망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산길을 만났다는 안도감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조금 전까지는 나 혼자 산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능선 위에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걷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운동 삼아 걷고, 어떤 사람은 벤치에 앉아 쉬고, 어떤 사람은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하듯 지나간다.
그 모습이 얼마나 반갑던지.
산길도 사람 사는 세상과 닮았다. 막막한 숲속에서는 나만 길을 잃은 것 같지만, 조금만 더 올라서면 누군가는 이미 그 길을 편안히 걷고 있다. 내가 힘들게 찾아간 길이 누군가에게는 매일 걷는 산책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산에서는 너무 억울해할 일도, 너무 잘난 척할 일도 없다.
길은 늘 여러 방식으로 사람을 받아준다.
정겨운 칠보산 능선
널찍한 등산로 곳곳에는 벤치가 놓여 있었다.
흐린 날씨 덕분에 햇볕은 뜨겁지 않았고,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땀에 젖은 몸을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능선을 따라 부드러운 흙길이 길게 이어지고, 가끔 나타나는 목재 계단마저 정겹게 느껴졌다.
길을 잃고 올라와서인지 평범한 능선길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까 잡목을 헤치던 길에서는 발밑만 보였는데, 이제는 옆 사람의 걸음도 보이고, 벤치도 보이고, 나무 사이 바람도 보인다. 마음이 놓이니 산이 비로소 산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칠보산의 주능선은 수원과 화성을 가르는 경계가 되고, 한쪽으로는 의왕과도 이어진다.
예부터 마을과 고을의 경계는 강과 산을 따라 나뉘었다. 사람들이 행정구역을 정하기 훨씬 전부터 산줄기와 물길은 저마다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왔고, 그 오래된 선이 오늘날에도 지역의 경계로 남아 있다.
산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수원 쪽 사람도 오르고, 화성 쪽 사람도 오른다. 의왕 쪽 바람도 넘어오고, 수원 쪽 햇살도 스며든다. 사람들은 경계를 긋지만 산은 그 경계 위에서 모두를 쉬게 한다.
칠보산 능선은 그런 산이었다.
크게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사람들을 품어주는 산.
오늘의 시
칠보산 / 송현
보물이 가득한 산에
바람이 먼저 끼어든다.
수풀 사이로
까치도 한마디 보태고,
길을 잃은 사람 하나
잡목을 헤치며
괜히 산에게 투덜거린다.
그러나 능선에 올라서니
벤치마다 햇살이 앉아 있고,
흙길은 잔치상처럼 환하다.
일곱 보물은 보지 못했지만
나는 오늘
길 끝에서 바람 하나를 얻었다.
정상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산에 오른 시간이 늦어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정상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비록 들머리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고 엉뚱한 길로 올랐지만, 그 덕분에 칠보산의 넉넉하고 편안한 능선이 더욱 반가웠다.
칠보산은 높거나 험한 산은 아니다.
웅장한 바위나 깊은 계곡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흙길과 곳곳의 쉼터,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산책하듯 걷고 운동할 수 있는 정겨운 산이다.
산행은 꼭 고생이 커야만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들머리에서 조금 헤매고, 잡목 사이에서 땀을 흘리고, 그러다 뜻밖에 편안한 능선을 만나 웃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날 칠보산은 거창한 보물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대신 엉뚱한 길과 반가운 능선, 그리고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내어주었다.
어쩌면 칠보산의 보물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금은보화가 아니라, 길을 잃은 사람에게 다시 길을 열어주는 산의 마음.
에필로그|길을 잃었다고 산행까지 잃는 것은 아니다
칠보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전국 여러 곳에 있다. 오늘은 수원 쪽에 볼일이 있어 일을 마친 뒤 가볍게 오를 만한 산을 찾다가 수원과 화성에 걸쳐 있는 칠보산으로 향했다.
일곱 가지 보물이 있었다 하여 칠보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름은 제법 화려했지만 산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산 위에는 큰 절이나 특별한 유적이 눈에 띄지 않았고, 산 아래 칠보사라는 이름만이 이 산에 깃든 오래된 이야기를 대신 들려주는 듯했다.
처음 찾는 산에서는 들머리를 제대로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그날은 시작부터 길이 어긋났다. 다른 사람의 블로그만 믿고 찾아온 탓인지 들머리를 쉽게 찾지 못했다. 주변을 몇 번이나 맴돌다가 칠보사를 발견했고, 그곳을 기준으로 길을 짐작해 산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 길은 정상적인 등산로가 아니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된 듯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었고, 잡목과 풀이 길을 가로막았다. 어쩌면 오래전에 폐쇄된 산길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산을 오래 다닌 경험이 있으니 중턱까지만 올라가면 능선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산꾼들이 말하는 알바를 뜻하지 않게 시작한 셈이다. 길 대신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무작정 위쪽으로 올랐다.
한동안 가파른 비탈을 헤치고 올라서자 예상대로 넓은 등산로가 나타났다. 신작로처럼 반듯하고 편안한 길 위로 산책 나온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의 고생이 허망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산길을 만났다는 안도감에 절로 웃음이 났다.
능선길은 정겨웠다. 널찍한 등산로 곳곳에는 벤치가 놓여 있었고, 흐린 날씨 덕분에 햇볕은 뜨겁지 않았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땀에 젖은 몸을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부드러운 흙길이 길게 이어지고, 가끔 나타나는 목재 계단마저 반가웠다.
칠보산의 주능선은 수원과 화성을 가르는 경계가 되고, 한쪽으로는 의왕과도 이어진다. 예부터 마을과 고을의 경계는 강과 산을 따라 나뉘었다. 사람들은 행정구역을 만들고 이름을 붙였지만, 산줄기와 물길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산에 오른 시간이 늦어 정상에서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 짧은 산행이 밋밋하지 않았던 것은 들머리에서 길을 잃은 덕분이었다.
칠보산은 높거나 험한 산은 아니다. 웅장한 바위도, 깊은 계곡도 없다. 그러나 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흙길과 곳곳의 쉼터,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산이다.
때로는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해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막막했던 숲길 끝에서 환하게 열린 능선을 만날 때가 있다. 산길도 사람의 삶도 어쩌면 그런 것인지 모른다.
오늘 칠보산은 내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길을 잠시 잃었다고 해서, 산행까지 잃는 것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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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바람 · 글바람 ㊹」 삼척 두타산 산행기, 베틀바위에 걸린 여름
삼척 두타산에서는 무릉계곡 신선교를 건너 베틀바위 산성길로 들어섰습니다. 여름 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계단을 오르고, 베틀바위 앞에 서서 세월이 깎아 만든 바위의 아름다움과 다시 찾은 산 앞에 선 지금의 나를 만났습니다.
삼척 두타산이 거친 바위와 계곡, 바다를 함께 품은 산이었다면, 칠보산은 도심 가까운 곳에서 길을 잃고서야 정겨운 능선을 만나게 해준 산이었습니다. 하나는 세월에 깎인 바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고, 하나는 헤맨 뒤에야 보이는 길의 고마움을 알려주었습니다.
🌄 다음 산행 이야기
「산바람 · 글바람 ㊻」 다음 산행 이야기
음성 수레의산 산행기** 칠보산에서는 수원 쪽 볼일을 마친 뒤 가볍게 산에 들었다가 들머리를 찾지 못해 뜻밖의 알바를 했습니다. 그러나 잡목을 헤치고 올라 만난 넓은 능선길은 길을 잃은 뒤라 더 반갑고 정겨웠습니다. 다음 산행은 충북 음성의 수레의산으로 이어집니다. 칠보산이 길을 잃은 끝에 만난 능선의 고마움을 알려준 산이었다면, 수레의산에서는 음성의 조용한 숲길과 휴양림,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산이 건네는 소박한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수레의산은 이름부터 정겹습니다.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큰 풍경보다 작은 나무 그늘, 바람 소리, 길가의 꽃과 나비 같은 것들이 먼저 마음에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다음 산행에서는 그런 소소한 장면들이 또 하나의 산행 이야기가 되어줄 것입니다.
🍃 산길의 끝에서
칠보산은 큰 산이 아니었다.
높은 정상도 아니었고, 깊은 계곡도 없었다. 산 위에 화려한 유적이 기다리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부터 길을 잘못 들었다.
들머리를 찾지 못해 주변을 맴돌았고, 칠보사를 기준으로 짐작해 들어선 길은 정상적인 등산로가 아니었다. 잡목과 풀이 길을 막았고, 사람의 발길이 끊긴 듯한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었다.
가볍게 오르려던 산에서 뜻하지 않은 알바를 한 셈이다.
그래도 중턱까지만 올라가면 능선이 나오리라 믿고 위쪽으로 올랐다. 길 대신 하늘을 보고, 등산로 대신 방향을 믿으며 잡목을 헤쳤다.
그러다 갑자기 넓은 능선길을 만났다.
신작로처럼 반듯한 길 위로 산책 나온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벤치가 놓여 있고, 흙길은 부드러웠고, 흐린 날씨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땀을 식혀주었다.
그 능선이 얼마나 반갑던지.
길을 잃고 올라왔기 때문에, 그 편안한 길이 더 고마웠다.
어쩌면 칠보산의 일곱 가지 보물은 따로 숨어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잡목 끝에서 만난 길 하나,
땀을 식혀준 바람 하나,
벤치에 앉은 짧은 쉼 하나,
나무 사이로 들리던 까치 소리 하나,
그리고 길을 잃고도 웃을 수 있었던 마음 하나.
그것들이 그날 내가 칠보산에서 만난 보물이었다.
오늘 칠보산은 내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길을 잠시 잃었다고 해서,
산행까지 잃는 것은 아니라고.
⭐ 산바람 · 글바람
칠보산이라는 이름에는
일곱 가지 보물이
숨어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나는
금은보화 같은 것은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들머리를 잃었습니다.
길을 찾겠다고
주변을 몇 번이나 맴돌았고,
칠보사를 기준으로
짐작해 들어선 산길은
잡목과 풀이 막아선
희미한 길이었습니다.
산꾼들이 말하는
알바였습니다.
일당도 없고,
점심도 없고,
땀만 받는 알바.
그래도
조금만 더 오르면
능선이 나오겠지 싶어
나무 사이 하늘을 보며
위쪽으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길이 열렸습니다.
신작로처럼 반듯한 능선길.
벤치가 놓여 있고,
사람들이 산책하듯 오가고,
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 길이
얼마나 반갑던지요.
처음부터 제대로 찾았다면
그저 평범한 산길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참을 헤매고 만난 길이라
그 능선은
잔치상처럼 환했습니다.
까치 한 마리가
수풀 사이에서 울었습니다.
마치
“그래도 올라왔구나”
하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칠보산에는
일곱 보물이 있다 했지만,
내가 만난 보물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길을 잃고도
포기하지 않은 마음.
잡목 끝에서 만난
편안한 능선.
땀을 식혀준
흐린 날의 바람.
그리고
헤맨 뒤에야 알게 되는
길의 고마움.
산길도
사람 사는 길도
그런 것인지 모릅니다.
잠시 길을 잃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막막했던 숲길 끝에서
환하게 열린 능선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날 칠보산은
내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길을 잃었다고
산행까지 잃는 것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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