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 글바람 ㊲」 치악산 종주 산행기, 나를 넘어 다시 길 위에 서다

 

2005년 7월 31일, 성남 매표소에서 상원사와 남대봉, 향로봉, 비로봉을 지나 구룡사 매표소까지 약 20km를 11시간 동안 걸은 치악산 나홀로 종주 산행기. 놓칠 뻔한 기차와 성남리 민박의 잠 못 이룬 밤, 새벽 상원사 계곡, 남대봉과 향로봉, 비로봉의 고단한 오름과 구룡사 계곡의 시원한 물까지 기록한 여름 종주 이야기.


성남 매표소에서 상원사와 남대봉, 향로봉, 비로봉을 지나 구룡사 매표소로 내려오는 치악산 여름 종주
비로봉정상 돌탑

2005년 7월 31일, 새벽 4시 30분 성남 매표소를 출발해 상원사와 남대봉, 향로봉, 비로봉을 지나 구룡사 매표소까지 걸었다. 약 20km, 11시간 동안 이어진 나홀로 종주에서 힘든 길을 끝까지 걸어낸 자부심과 살아가는 용기를 다시 얻었다.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치악산 종주는 산 하나를 넘은 일이 아니었다. 더위와 피로, 잠 못 이룬 밤과 흔들리는 마음을 지나, 내가 나에게 한 약속을 끝까지 지켜낸 하루였다.


한 달에 한 번, 나와 한 약속

산행일은 2005년 7월 31일이었다.

한 달에 한 번은 나 혼자 산에 가기로 스스로 약속했던 때가 있었다. 주로 종주가 목표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약속은 내 안에서 제법 단단했다.

이달 산행은 자칫하면 일 때문에 못 갈 뻔했다. 기차 시간을 놓치면 산행 자체가 어려워지는 일정이었다. 현장 마무리를 부랴부랴 확인하고 청량리로 향했다. 출발 20분 전, 택시를 타고 겨우 역에 도착했다.

오후 5시 원주행 새마을호.

일단 기차에 몸을 싣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산행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기차에 올라탄 순간 이미 반쯤은 길 위에 선 기분이었다.

원주에 도착하니 조금 연착도 되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오후 7시가 다 되어갔다. 치악산은 여러 번 가보았지만 아직 종주는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번에는 치악산을 제대로 걸어보고 싶었다.

코스는 신림 쪽 성남 매표소에서 시작해 상원사로 오르고, 남대봉과 향로봉, 비로봉을 지나 구룡사로 하산하는 길로 마음먹었다. 성남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보니 원주역 관광안내지도 아래에 성남행 23번 버스 시간표가 보였다.

7시 15분.

아직 10분 이상 여유가 있었다. 서둘러 버스정류장을 찾아가 기다렸다.

그런데 기다리던 23번 버스는 오지 않았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치악산 종주

📅 산행일
2005년 7월 31일

🥾 산행 코스
성남 매표소 → 상원사 → 남대봉 → 향로봉 → 곧은치 → 입석대 입구 → 비로봉 → 세렴폭포 → 구룡사 → 구룡사 매표소

📏 산행 거리
약 20km

산행 시간
약 11시간

🕰 주요 시간
성남 매표소 04:30 출발 → 남대봉 06:50 → 향로봉 09:20 → 비로봉 11:50 → 구룡사 매표소 14:40

난이도
★★★★☆

성남에서 상원사와 남대봉으로 오르는 새벽길, 남대봉에서 향로봉과 비로봉까지 이어지는 긴 능선, 비로봉 이후 구룡사 계곡 하산까지 체력 소모가 큰 종주 코스다. 여름에는 더위와 식수, 체력 관리가 특히 중요하다.

🌳 산행환경
나홀로 종주 · 새벽 산행 · 상원사 계곡 · 남대봉 · 향로봉 · 곧은치 · 입석대 입구 · 비로봉 · 구룡사 계곡 · 여름 산행

🏡 숙박
전날 성남 매표소 근처 민박 이용

🚆 이동방법
청량리역 → 원주역 새마을호 이동, 원주역에서 성남리까지 택시 이동. 하산 후 구룡사에서 버스로 원주역 이동


성남리로 가는 길

30분이 넘도록 버스는 오지 않았다. 마침 구두방 아저씨가 나오기에 물어보니, “리 단위 버스라 자주 없고 한 대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또 멍하니 길옆에 쭈그리고 앉아 기다렸다.

날씨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었다. 일단 신림 쪽 성남까지 가야 내일 새벽 산행이 가능했다. 어떻게든 가야 했다. 구룡사 가는 버스는 제법 보였지만 성남리 쪽으로 가는 버스는 잘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어 택시를 잡았다.

“성남까지 요금이 얼마나 나오나요?”

연세가 좀 드신 개인택시 기사님은 경기도 성남을 말하는 줄 알고 되물었다. 나는 신림에 있는 성남, 치악산 성남이라고 설명했다. 그제야 기사님은 어제 그곳에 다녀오셨다고 했다. 멀긴 먼 모양이었다.

요금은 2만 원이라고 했다. 일단 택시에 올라 23번 종점까지 부탁했다. 그러자 기사님은 자신은 유원지 입구인 줄 알았다며, 더 멀다며 5천 원을 더 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잠시 졸다 깨니 어둡고 계곡길이었다. 앞에 국립공원 매표소가 보였다. 기사님이 끝까지 올라온 모양이었다. 내려달라고 하고 미터기를 보니 2만 6천 원이 나왔다. 정말 많이 나온 요금이었다. 기사님은 약속이라며 2만 5천 원만 받았다.

내려보니 어두운 밤이었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이제 문제는 잠잘 곳이었다.

다리 하나를 건너 민박집을 찾아가는데 길가에 길고 검은 것이 지나갔다. 문득 소름이 끼쳤다. 뱀이었다.

가던 길을 돌아 다른 집을 찾았지만 방이 다 찼다고 했다. 결국 다시 돌아와 좁은 시골 골방 같은 방을 얻었다. 샤워 시설도 없었다. 어쩌랴. 빨리 자야 했다. 그런데도 3만 원을 달라고 했다.

대충 라면 하나를 끓이고 소주 한 병을 마셨다. 잠을 자야 했고, 내게는 수면제가 필요했다. 하지만 선풍기도 없고, 더위와 낯선 방 때문인지 잠은 오지 않았다.

한잠도 못 잔 것 같았다.

뒤척이다 알람 시간인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를 했다. 다행히 매표소 근처라 공중화장실과 수도가 있었다. 그곳에서 물을 뜨고 준비를 마치니 새벽 4시 30분이었다.

이제 상원사로 가야 했다.


새벽 4시 30분, 상원사 계곡으로

이쪽 길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쪽으로 시작했다. 가보지 않은 남대봉이 궁금했고, 어디든 처음 만나는 산은 좋다는 생각을 하며 길을 나섰다. 일출도 기대하고 있었다.

시작길은 시멘트 길이었다. 한 시간 정도만 가면 하늘이 밝아질 것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상원사 계곡의 물소리가 좋았다. 시원한 바람이 스쳤다.

처음에는 덕유산 백련사로 가는 길처럼 절까지 큰길이 이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걷다 보니 길은 점점 작은 산길로 바뀌었다.

문득 이 높은 곳에 절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곳까지 물자는 어떻게 운반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걸었지만 몸은 왠지 무거웠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하늘은 점점 하얗게 벗겨지고 있었다. 해가 보일 것 같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남대봉에서 일출을 보기는 힘들 것 같았다.

상원사 바로 아래에 샘이 하나 있었다. 이미 해가 뜨는 것이 보였지만, 어차피 늦어 남대봉에서 일출을 보기는 어려웠다. 샘에서 가져간 물을 교체하고 두 잔을 마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물 상태가 좋지 않았다. 물병 안에 흙이나 풀 부스러기 같은 것이 있었다. 국립공원에서 안내문 하나 없이 방치하는 것이 아쉬웠다. 수질 성적서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오르니 상원사가 나왔다. 은혜를 갚은 까치 전설이 있다는 절이다. 새벽의 상원사는 조용했다. 산속 깊은 곳에서 밤을 넘긴 절집은 말이 없었지만, 그 조용함이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제 남대봉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대봉, 기대와 달랐던 첫 봉우리

남대봉에 도착하니 오전 6시 50분이었다. 예상보다 조금 더 걸린 것 같았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헬기장 하나, 산불감시초소 하나. 거기에 남대봉 1,181m라고 써 있었다. 정상석도 없고 전망도 좋지 않았다.

너무 기대를 했던 탓일까. 조금 허탈했다.

종주 산행에서는 첫 봉우리의 인상이 중요하다. 긴 길을 앞두고 마음을 북돋아주는 조망 하나쯤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남대봉은 내 기대와 달리 덤덤했다. 산은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다.

실망한 채 다음 코스인 향로봉을 향해 출발했다.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길 한쪽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탓인지 길은 다소 거칠었다.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한참을 가다 너무 피곤해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는 길이었다. 작은 바위들 옆에 돗자리를 펴고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웠다.

어차피 혼자 온 산행이었다. 너무 힘들게만 가고 싶지는 않았다.

눈을 감았다.

다른 산과 달리 마땅히 쉴 자리조차 많지 않은 길이라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여태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치악산에 대한 생각이, 그날은 그저 풀만 무성한 산처럼 느껴져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한 30분쯤 누워 있었을까. 다시 일어나 앉으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다시 출발하자. 이러다 기차마저 놓칠라.

너무 여유를 찾다가 오히려 종주를 망칠 수 있었다. 몸은 조금 나아졌고, 마음도 다시 길 위로 올라섰다.


향로봉과 곧은치, 익숙한 길의 기억

향로봉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20분이었다. 여기 오니 몇 사람이 있었다. 상원사 쪽에서 왔다고 하니 어두운데 무섭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았다.

향로봉도 기대만큼 전망이 좋지는 않았다. 정상석도 보이지 않았다. 덩그러니 이정표 하나가 서 있었다. 그래도 사진 한 장을 부탁하고 다음 코스인 곧은치로 향했다.

곧은치를 지나 한참을 가니 전에 산행한 적이 있는 입석대 입구 간판이 보였다. 입석대는 글자 그대로 큰 바위 하나가 서 있는 곳이다. 옆에는 입석사가 있다.

입석사 코스는 치악산 비로봉을 비교적 짧게 산행하고 싶을 때 권하고 싶은 코스다. 입석사 입구에서 잠시 쉬었다.

이제 정상인 비로봉을 향해 간다. 점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산길에는 사람의 기척이 늘어난다. 혼자 긴 능선을 걸어온 뒤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기도 하고,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도 든다.

하지만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잠을 못 잔 탓인지, 전날 오전에 다녀온 수락산 탓인지, 아니면 전날 밤 소주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전부였을 것이다. 몸은 정직하다. 무리한 일정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가 가장 힘든 오르막에서 한꺼번에 계산서를 내민다.

비로봉 입구에 가까워졌지만 평소 보이던 비로봉은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일단 가봐야지.

드디어 정상 0.3km 표지가 보였다. 반가웠다. 그런데 앞에 보이는 계단은 오르기 싫었다. 이상하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랴. 정상인데 올라가야지.


비로봉, 몸이 말을 듣지 않던 정상

비로봉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50분이었다.

몇 번 와본 정상이다. 하지만 산은 계절마다 다르다. 같은 정상이어도 날씨와 몸 상태, 그날의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그날의 비로봉은 반갑기보다 고단했다. 너무 피곤해 잠시 누우려 했지만 햇살이 따가워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하산하자.

구룡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약 5km가 넘는다. 치악산을 와본 사람은 알 것이다. 구룡사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발 삐기 딱 좋은 돌길이다. 이미 긴 종주로 지친 다리에는 하산길이 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천천히 계곡 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물도 떨어지고 있었다. 시원한 계곡을 빨리 만나고 싶었다.

조심조심 내려오니 물이 시작되는 지점이 보였다. 많지는 않았지만 우선 컵에 물을 퍼 마셨다. 두 잔, 세 잔. 너무 시원했다.

양말을 벗고 물속에 발을 담갔다. 물은 시원하다 못해 차가웠다. 잠시 땀을 식혔다.

그 순간만큼은 긴 종주의 피로가 조금 사라지는 듯했다. 산에서 만나는 물은 단순한 물이 아니다. 목마름을 풀어주고, 발의 열기를 식혀주고, 마음까지 한 번 씻어준다.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세렴폭포까지는 비슷한 길이었다. 지친 몸을 조심스럽게 이끌며 내려왔다.

구룡사에 도착하니 매점이 보였다.

우선 캔맥주부터 한 잔 했다.

이제야 살 것 같았다.


구룡사 매표소, 종주의 끝

구룡사 입구 매표소에 도착하니 오후 2시 40분이었다.

점심을 먹어야 했지만, 돌아가는 차편도 문제였다. 일단 원주역에 가서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어보니 여기서 나가는 버스는 모두 원주 쪽으로 간다고 했다. 버스비는 950원이었다.

마침 오는 버스가 있어 올라탔다. 졸다 깨보니 원주역이었다. 오후 3시 30분이었다.

배도 고프고 밥은 먹어야 했다. 기차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남아 있었다. 마땅한 식당도 보이지 않았다. 해장국집에 들어가 해장국에 소주 한 병을 곁들였다.

어설프게 혼자 갑자기 계획한 산행이었지만, 기차 시간을 놓치지 않고 끝낸 산행이었다. 힘은 들었지만 또 하나의 종주를 마감했다는 행복이 있었다.

서울로 향하는 길,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매번 종주를 할 때마다 힘들다. 왜 굳이 이런 산행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런데도 다시 하게 된다. 이 무더운 더위를 이기고 내 목표에 다가가는 내 자신이 조금은 자랑스러웠다.

뭔가 남이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자부심. 또 자존심과의 싸움.

더군다나 가보지 않은 곳을 혼자 가보고 싶어 하는 내 욕망이 어쩌면 무리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찾아가고, 내 체력이 되는 한 꾸준히 걸어보고 싶었다.

나홀로 종주를 시작하는 데에는 늘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항상 시작하기 전에는 갈등한다. 그래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더 힘들지만 보람을 느낀다.

어쩌면 살아가는 용기를 나는 여기서 얻는지도 모른다.


오늘의 시

치악산 종주 / 송현

새벽 네 시 반,
성남의 어둠을 지나
상원사 계곡으로 들어갔다.

물소리는 먼저 길을 열고
몸은 잠 못 이룬 밤을
무겁게 끌고 올랐다.

남대봉은 말이 없고
향로봉은 기대만큼
멀리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도 길은 이어지고
나는 다시 배낭을 메고
비로봉으로 향했다.

정상보다 힘든 것은
정상까지 가는 마음이었고,

하산보다 긴 것은
포기하지 않으려는
내 속의 고집이었다.

구룡사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서야 알았다.

내가 넘은 것은
치악산 능선이 아니라
오늘도 흔들리던 나 자신이었다.


에필로그|살아가는 용기는 길 위에서 온다

치악산 종주는 한 달에 한 번 나 혼자 산에 가기로 한 약속에서 시작되었다. 주로 종주를 목표로 삼던 시절이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그 약속은 내 안에서 쉽게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산행은 시작부터 흔들렸다. 현장 일이 늦어져 원주행 새마을호를 놓칠 뻔했고, 원주역에 도착해서는 성남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결국 택시를 탔다. 어둠 속 성남 매표소 근처에 내려 민박집을 찾아 헤맸고, 길가에서 뱀까지 보았다. 좁은 방에서는 선풍기도 없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도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공중 수도에서 물을 뜨고, 새벽 4시 30분 상원사 계곡으로 들어섰다. 몸은 무거웠지만 길은 시작되었다. 산행은 늘 그렇다. 출발하기 전에는 갈등이 많지만, 일단 발을 들이면 그때부터는 길이 사람을 끌고 간다.

상원사 길의 물소리는 좋았고, 새벽 공기는 시원했다. 그러나 남대봉에서 기대했던 일출은 만나지 못했다. 남대봉도 향로봉도 생각만큼 큰 조망을 내어주지 않았다. 때로 산은 기대한 만큼 보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길은 계속 이어진다.

중간에 너무 피곤해 돗자리를 펴고 배낭을 베개 삼아 잠시 누웠다. 혼자 온 산행이었기에 가능한 쉼이었다. 잠시 눈을 붙이고 나니 다시 걸을 힘이 조금 생겼다. 혼자 산행은 외롭지만, 내 몸의 속도를 내가 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로봉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잠을 못 잔 탓인지, 전날 산행 탓인지, 소주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모두였을 것이다. 정상 0.3km를 앞두고 계단이 그렇게 오르기 싫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올라갔다. 정상은 코앞에 있었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비로봉에 도착했지만 오래 머물 수 없었다. 햇살은 따가웠고 몸은 지쳐 있었다. 구룡사 계곡으로 내려가는 돌길은 발목을 조심해야 하는 길이었다. 물이 떨어져갈 무렵 계곡물을 만나 컵으로 두 잔, 세 잔을 마셨다.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그니 물은 시원하다 못해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긴 종주의 피로를 잠시 씻어주었다.

구룡사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40분이었다. 성남 매표소에서 구룡사 매표소까지 약 20km, 11시간의 산행이 끝났다. 원주역으로 나와 해장국과 소주 한 병으로 허기를 달랜 뒤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힘든 산행이었다. 어설프게 계획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더위와 피로에 시달렸다. 그래도 성공한 산행이었다. 또 하나의 종주를 마감했다는 행복이 있었다.

매번 이런 종주를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굳이 걸어야 하는가. 그러나 답은 결국 비슷하다. 내가 정한 목표에 다가가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해보고 싶다는 자부심, 나 자신과 겨루는 자존심, 그리고 가보지 않은 길을 혼자 찾아가고 싶은 욕망이 나를 다시 산으로 보낸다.

어쩌면 나는 살아가는 용기를 이런 종주에서 얻는지도 모른다. 시작하기 전에는 늘 갈등하지만, 결국 배낭을 메고 길 위에 서는 일. 힘들어도 끝까지 가보는 일. 그리고 산 아래로 내려와 내가 해냈다고 조용히 웃는 일.

치악산 종주는 그래서 오래 남았다. 산 하나를 정복한 날이 아니라, 흔들리던 나를 다시 길 위에 세운 날이었다.


🌿 이 산행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치악산 종주는 성남탐방지원센터 쪽에서 상원사와 남대봉을 지나 향로봉, 비로봉, 구룡사 방향으로 이어 걷는 긴 산행이다. 국립공원공단 탐방 안내에서도 치악산의 주요 코스와 난이도, 탐방지원센터와 교통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성남에서 상원사로 오르는 길은 새벽 산행으로 시작하면 조용하지만, 초행자는 길과 시간 계산을 꼼꼼히 해야 한다. 남대봉과 향로봉을 지나 비로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생각보다 길고, 여름에는 수풀과 더위, 식수 관리가 부담이 될 수 있다.

비로봉에서 구룡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많은 사람이 찾는 구간이지만, 돌길과 계곡길이 길게 이어진다. 종주 후반부라 다리가 지쳐 있을 가능성이 크므로 발목과 무릎을 조심해야 한다.

산행 준비 메모

첫째, 성남리 접근 교통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버스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으므로 원주역 도착 시간과 성남 방향 이동 방법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둘째, 치악산 종주는 식수와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
여름에는 땀이 많이 나고 능선 구간이 길다. 물은 충분히 준비하고, 샘물은 반드시 수질 안내를 확인한 뒤 이용하는 것이 좋다.

셋째, 남대봉에서 비로봉까지의 능선은 생각보다 길다.
초반에 무리하면 비로봉 오름과 구룡사 하산길에서 크게 힘들어진다.

넷째, 하산길이 끝까지 산행이다.
비로봉에 올랐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구룡사 계곡 돌길은 발목을 삐기 쉬우므로 천천히 내려와야 한다.

🌿 관련 사이트 및 여행 정보

① 국립공원공단 치악산국립공원

👉 국립공원공단 치악산국립공원 바로가기

치악산 탐방 코스, 난이도, 탐방지원센터, 교통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② 원주관광 상원사

👉 원주관광 상원사 바로가기

치악산 남쪽 남대봉 중턱의 상원사와 관련 문화유산 정보를 참고할 수 있다.

③ 원주관광 치악산·구룡사

👉 원주관광 치악산·구룡사 정보 바로가기

구룡사, 상원사, 치악산 주변 문화자원과 원주 여행 정보를 살펴볼 수 있다.

④ 원주관광

👉 원주관광 바로가기

치악산과 원주 시내 여행, 숙박, 교통, 먹거리 정보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⑤ 관악구 문화관광

👉 관악구 문화관광 바로가기

다음 산행지인 관악산과 관악구 일대 산행·여행 정보를 미리 살펴볼 수 있다.


🌿 치악산 종주 준비물 체크리스트

충분한 식수
행동식과 간단한 식사
등산 스틱
접지력 좋은 등산화
여벌 양말
여름용 모자
방풍·방수 재킷
헤드랜턴
보조배터리
지도 또는 산행 앱
성남리 접근 교통 확인
구룡사 하산 후 버스 시간 확인
샘물 수질 확인
긴 능선에서 속도 조절
혼자 산행 시 가족·지인에게 코스 공유
끝까지 걷되 무리하지 않는 판단
살아가는 용기를 길 위에서 얻는 마음

🌿 추천 숙박과 주변 여행

🏡 성남탐방지원센터·상원사권

성남 쪽에서 새벽 산행을 시작하려면 전날 원주 신림면이나 성남리 주변에서 숙박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숙박 시설과 교통편이 제한적일 수 있으므로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 원주관광 바로가기

🏡 구룡사·소초면권

구룡사 방향으로 하산한다면 소초면과 구룡사 주변 숙박, 식당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치악산 산행 뒤 원주 시내로 이동해 식사와 숙박을 이어가기도 좋다.

👉 원주관광 치악산·구룡사 정보 바로가기


🌄 이전 산행 이야기 다시보기

「산바람 · 글바람 ㊱」 운악산 산행기, 빛바랜 리본에서 지난날의 나를 만나다

운악산에서는 쉬어도 되는 하루에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만경대와 운악산 정상, 절고개를 지나 현등사로 내려오는 길에서 한북정맥 때 묶어두었던 빛바랜 리본을 다시 만났고, 그 작은 천 조각 속에서 지난여름의 나와 마주했습니다.

운악산이 지난날의 나를 다시 만나게 한 산이었다면, 치악산 종주는 아직 만나지 못한 나를 찾아 긴 능선을 걸은 산행이었습니다. 하나는 산길에 남겨둔 흔적을 다시 만난 날이었고, 하나는 내가 나에게 한 약속을 끝까지 지켜낸 날이었습니다.

🌄 다음 산행 이야기

「산바람 · 글바람 ㊳」 관악산 산행기

치악산 종주에서는 성남 매표소에서 새벽 4시 30분 출발해 상원사와 남대봉, 향로봉, 비로봉을 지나 구룡사 매표소까지 걸었습니다. 잠 못 이룬 밤과 무더위, 기대에 못 미친 조망과 지친 몸을 지나, 결국 내가 정한 길을 끝까지 걸어냈다는 자부심을 얻은 산행이었습니다.

다음 산행은 관악산으로 향합니다. 관악산은 서울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바위와 능선, 사찰과 조망을 함께 품은 산입니다. 치악산이 긴 종주 속에서 살아가는 용기를 다시 얻게 한 산이었다면, 관악산에서는 가까운 산이 주는 익숙함 속에서도 또 다른 마음의 풍경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산길의 끝에서

치악산 종주는 한 달에 한 번 나 혼자 산에 가기로 한 약속에서 시작되었다. 주로 종주를 목표로 삼던 시절이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그 약속은 내 안에서 쉽게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산행은 시작부터 흔들렸다. 현장 일이 늦어져 원주행 새마을호를 놓칠 뻔했고, 원주역에 도착해서는 성남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결국 택시를 탔다. 어둠 속 성남 매표소 근처에 내려 민박집을 찾아 헤맸고, 길가에서 뱀까지 보았다. 좁은 방에서는 선풍기도 없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도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공중 수도에서 물을 뜨고, 새벽 4시 30분 상원사 계곡으로 들어섰다. 몸은 무거웠지만 길은 시작되었다. 산행은 늘 그렇다. 출발하기 전에는 갈등이 많지만, 일단 발을 들이면 그때부터는 길이 사람을 끌고 간다.

상원사 길의 물소리는 좋았고, 새벽 공기는 시원했다. 그러나 남대봉에서 기대했던 일출은 만나지 못했다. 남대봉도 향로봉도 생각만큼 큰 조망을 내어주지 않았다. 때로 산은 기대한 만큼 보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길은 계속 이어진다.

중간에 너무 피곤해 돗자리를 펴고 배낭을 베개 삼아 잠시 누웠다. 혼자 온 산행이었기에 가능한 쉼이었다. 잠시 눈을 붙이고 나니 다시 걸을 힘이 조금 생겼다. 혼자 산행은 외롭지만, 내 몸의 속도를 내가 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로봉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잠을 못 잔 탓인지, 전날 산행 탓인지, 소주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모두였을 것이다. 정상 0.3km를 앞두고 계단이 그렇게 오르기 싫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올라갔다. 정상은 코앞에 있었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비로봉에 도착했지만 오래 머물 수 없었다. 햇살은 따가웠고 몸은 지쳐 있었다. 구룡사 계곡으로 내려가는 돌길은 발목을 조심해야 하는 길이었다. 물이 떨어져갈 무렵 계곡물을 만나 컵으로 두 잔, 세 잔을 마셨다.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그니 물은 시원하다 못해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긴 종주의 피로를 잠시 씻어주었다.

구룡사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40분이었다. 성남 매표소에서 구룡사 매표소까지 약 20km, 11시간의 산행이 끝났다. 원주역으로 나와 해장국과 소주 한 병으로 허기를 달랜 뒤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힘든 산행이었다. 어설프게 계획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더위와 피로에 시달렸다. 그래도 성공한 산행이었다. 또 하나의 종주를 마감했다는 행복이 있었다.

매번 이런 종주를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굳이 걸어야 하는가. 그러나 답은 결국 비슷하다. 내가 정한 목표에 다가가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해보고 싶다는 자부심, 나 자신과 겨루는 자존심, 그리고 가보지 않은 길을 혼자 찾아가고 싶은 욕망이 나를 다시 산으로 보낸다.

어쩌면 나는 살아가는 용기를 이런 종주에서 얻는지도 모른다. 시작하기 전에는 늘 갈등하지만, 결국 배낭을 메고 길 위에 서는 일. 힘들어도 끝까지 가보는 일. 그리고 산 아래로 내려와 내가 해냈다고 조용히 웃는 일.

치악산 종주는 그래서 오래 남았다. 산 하나를 정복한 날이 아니라, 흔들리던 나를 다시 길 위에 세운 날이었다.

다음 산길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 산바람 · 글바람

한 달에 한 번은
나 혼자 산에 가기로
스스로 약속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주로 종주가 목표였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약속은
내 안에서 쉽게 미룰 수 없는
작은 다짐이었습니다.

그날 치악산 종주는
시작부터 흔들렸습니다.

현장 일이 늦어져
기차를 놓칠 뻔했고,

원주역에 도착해서는
성남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결국 택시를 탔습니다.

어둠 속 성남 매표소 근처에 내려
민박집을 찾아 헤매고,

길가에서 뱀을 보고
소름이 돋기도 했습니다.

좁은 시골방에서는
선풍기도 없이
한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새벽 4시에 일어났습니다.

공중 수도에서 물을 뜨고,
새벽 4시 30분
상원사 계곡으로 들어섰습니다.

물소리는 좋았고,
새벽 바람은 시원했습니다.

몸은 무거웠지만
길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남대봉에서는
기대했던 일출을 보지 못했습니다.

정상석도 없고,
전망도 시원하지 않았습니다.

향로봉도
생각만큼 멀리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길은 이어졌습니다.

수풀이 우거진 능선에서
잠시 돗자리를 펴고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웠습니다.

혼자 온 산행이었기에
가능한 쉼이었습니다.

다시 일어나
비로봉으로 향했습니다.

몸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잠을 못 잔 탓인지,
전날 산행 탓인지,
소주 한 병 탓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마 모두였을 것입니다.

정상 0.3km 앞에서
계단이 그렇게 오르기 싫었습니다.

그래도 올라갔습니다.

정상은 코앞에 있었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비로봉에 섰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햇살은 따가웠고
몸은 지쳐 있었습니다.

구룡사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발목을 조심해야 하는
긴 돌길이었습니다.

물이 떨어져갈 무렵
계곡물을 만났습니다.

컵으로 두 잔, 세 잔을 마시고
양말을 벗어
차가운 물속에 발을 담갔습니다.

그제야
긴 종주의 피로가
조금 씻겨 내려가는 듯했습니다.

구룡사 매표소에 도착했을 때,
성남에서 시작한 긴 길이
마침내 끝났습니다.

약 20킬로미터,
11시간의 산행.

어설프게 계획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더위와 피로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정한 길을
끝까지 걸었습니다.

매번 이런 종주를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굳이 걸어야 하는가.

그러나 답은
늘 비슷합니다.

내가 정한 목표에
다가가는 나 자신이
조금은 자랑스럽기 때문입니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해보고 싶다는 자부심,

나 자신과 겨루는
작은 자존심,

그리고 가보지 않은 길을
혼자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나를 다시 산으로 보냅니다.

어쩌면 나는
살아가는 용기를
이런 종주에서 얻는지도 모릅니다.

시작하기 전에는 늘 갈등하지만,
결국 배낭을 메고
길 위에 서는 일.

힘들어도
끝까지 가보는 일.

그리고 산 아래로 내려와
내가 해냈다고
조용히 웃는 일.

치악산 종주는
그래서 오래 남았습니다.

산 하나를 정복한 날이 아니라,

흔들리던 나를
다시 길 위에 세운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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