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 글바람 ㉑」 예봉산·예빈산 산행기, 건너지 못한 다리와 다시 살아나는 숲

예봉산 정상의 해발 683m 정상석과 미세먼지에 흐릿하게 잠긴 겨울 산정 풍경

미세먼지에 하늘과 능선이 흐릿했던 날, 예봉산 정상석 앞에 섰다. 맑은 조망은 없었지만 젖은 돌길과 잿빛 산정은 그날 산행의 무거운 공기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미세먼지 낀 하늘 아래 팔당역에서 예봉산으로 올랐다. 예빈산의 직녀봉과 견우봉을 지나며 기다림을 생각했고, 불탄 숲에서 다시 돋아난 새잎 앞에서 상처가 숲이 되는 시간을 보았다.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예봉산에서 예빈산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나는 건너지 못한 다리와 다시 살아나는 숲을 보았다. 사람의 마음도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새잎을 내며 다시 숲이 되는 것인지 모른다.

운무가 아니라 미세먼지였다


운무가 아니었다.

미세먼지가 하늘을 덮고 있었다.

산 너머 산이 희미하게 겹쳐지는 아름다운 운무라면 차라리 반가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의 하늘은 달랐다. 잿빛 먼지가 산과 강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고, 가까운 산마저 희미한 윤곽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 잿빛 하늘 아래 오랜만에 예봉산을 향했다.

팔당역이 생긴 뒤 몇 차례 찾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산들에 밀려 기억의 뒤편으로 물러나 있던 산이었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떠난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팔당역도 반가웠다. 역 밖으로 나오자 강 건너 검단산의 모습도 옛 친구처럼 눈에 들어왔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예봉산과 마주 보는 산이다.

산 하나를 오래 다니다 보면 산에도 얼굴이 생긴다. 자주 만날 때는 별것 아닌 것 같다가도, 몇 년 만에 다시 보면 문득 오래전 기억이 따라 나온다.

내가 여기를 마지막으로 찾은 것이 언제였지.

생각해보니 까마득했다.

사람의 기억은 참 이상하다. 어떤 일은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어떤 시간은 주머니 속 동전처럼 어디론가 굴러가 버린다.

예봉산을 찾았던 날들도 그랬다.

산행 날짜는 잊었지만, 가파른 오르막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산은 기억대로였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경기도 남양주시 예봉산·예빈산

📅 산행 시기
미세먼지가 짙게 낀 날, 봄과 겨울 사이의 산행

🥾 주요 코스
팔당역 → 예봉산 → 율리봉 → 예빈산 직녀봉 → 견우봉 → 팔당 방향 하산

📏 산행 거리
선택한 하산 방향과 우회 여부에 따라 달라짐

산행 시간
예봉산과 예빈산을 함께 잇는 능선 산행이므로 여유 있게 계획

난이도
★★★☆☆~★★★★☆

예봉산 초반 오르막이 가파르고, 예빈산 방향으로 이어가면 오르내림이 반복되어 체력 안배가 필요함

🌳 산행 환경
전철역 접근 · 가파른 오르막 · 한강 조망 · 강우레이더관측소 · 능선길 · 견우봉·직녀봉 · 산불 흔적의 숲

🚆 이동 방법
경의중앙선 팔당역 이용

예봉산은 남양주시 와부읍과 조안면 일대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약 683m로 알려져 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검단산과 마주하고, 동남쪽으로는 예빈산과 이어진다. 예봉산과 예빈산은 경의중앙선 팔당역에서 접근할 수 있어 수도권 전철 산행지로 많이 찾는 산이며, 예봉산에서 적갑산·운길산으로 이어가거나 예빈산으로 돌아오는 코스가 흔히 소개된다.


예봉산은 시작부터 숨을 묻는다

예봉산은 해발 683미터 남짓한 산이다.

숫자만 보면 천 미터가 넘는 산들에 비해 낮아 보이지만, 팔당 쪽에서 오르는 길은 초반부터 숨을 재촉한다. 정상으로 곧장 고도를 높이는 길이라 몸이 풀리기도 전에 심장이 먼저 산행을 시작한다.

산은 높이만으로 어려움을 말하지 않는다.

어떤 산은 천천히 높아지고,

어떤 산은 시작부터 사람의 숨을 시험한다.

예봉산은 후자에 가깝다.

가파른 길을 오르며 몇 번이나 숨을 골랐다.

예전에는 이 정도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생각이 들다가 혼자 웃었다.

산의 경사가 세월 따라 더 가팔라졌을 리 없다.

변한 것은 산이 아니라 내 몸일 것이다.

그렇다고 꼭 서글퍼할 일만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빨리 오르는 것이 중요했다. 몇 시간 만에 정상에 도착했는지, 하루에 몇 개의 봉우리를 넘었는지가 산행의 자랑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조금 다르다.

숨이 차면 멈추고,

뒤를 돌아보고,

나무 한 그루를 오래 바라본다.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산을 오르는 속도는 늦어졌지만, 산을 바라보는 시간은 길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만난 예봉산

한 걸음씩 고도를 높였다.

뒤를 돌아보면 팔당의 물길이 있어야 했지만, 이날은 미세먼지에 가려 풍경이 희미했다.

강 건너 검단산도 제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수묵화 위에 누군가 다시 회색 물감을 엷게 칠해놓은 것 같았다.

아쉬웠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산은 언제나 좋은 풍경만 보여주는 곳은 아니다.

맑은 날의 산도 산이고,

비 오는 날의 산도 산이며,

오늘처럼 먼지 속에 반쯤 얼굴을 감춘 산도 산이다.

사람의 삶이 늘 맑을 수 없듯 산에도 흐린 날은 있다.

정상 가까이 오르자 예전과는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예봉산 정상부의 강우레이더관측소였다. 환경부는 2019년 남양주시 예봉산 정상에 대형 강우레이더 관측소를 설치해 개소한다고 밝혔고, 이 시설은 반경 100km 이내 강수 정보를 생산해 홍수 예보에 활용되는 시설로 소개되었다.

둥근 시설물이 산 정상에 서 있는 모습은 자연의 풍경과는 조금 낯설지만, 시간은 산의 모습에도 새로운 표정을 하나씩 더한다.

옛날의 산을 기억하고 찾아왔지만 모든 것이 옛 모습 그대로일 수는 없다.

사람도 변하고,

마을도 변하고,

산 위의 풍경도 변한다.

그래도 발밑의 흙과 바람은 오래전의 감각을 불러왔다.

그래, 내가 이 산을 걸었었지.

그 한마디가 마음속에서 조용히 들려왔다.


🍂 오늘의 시

예봉산, 강을 바라보다 / 송현

예봉산에 올라
강을 바라본다.

말없이 흐르는 물은
목적지를 묻지 않으며

굽이치는 곳에서는
스스로를 낮추고,

막힌 지점에서는
조용히 방향을 전환한다.

나는 한동안 서서
그 강을 응시한다.

지나온 시간들 또한
저 강물과 같았을까.

장애물에 부딪히고,
외부의 영향에 흔들리며,

때로는 깊은 어둠을
통과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흐름.

팔당의 수면 위로
아침 햇살이 내려앉고,

강 건너 산들은
말없이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

바람이 스친다.

산에서 내려온 것인지
강에서 올라온 것인지
분간할 수 없지만,

내 마음 한편을
오래 흔들어 놓는다.

나는 강에게 묻는다.

그토록 많은 것을 품고도
어떻게 이처럼 고요하게 흐를 수 있는지.

강은 응답하지 않는다.

다만
햇빛 한 조각을 품은 채
다시 먼 곳을 향해 나아간다.

그제야 깨닫는다.

삶이란
모든 것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때로는 내려놓으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예봉산에 올라
강을 바라보다가

나는 오늘
산보다 강으로부터
더 많은 통찰을 얻고 내려간다.


두 개의 길 앞에서

예봉산은 한 산으로 끝나는 산이 아니다.

능선을 따라가면 철문봉과 적갑산 방면을 지나 운길산 쪽으로 이어갈 수 있고, 반대 방향으로 내려서면 율리봉을 거쳐 예빈산의 직녀봉과 견우봉으로 연결된다.

갈림길에 섰다.

적갑산과 철문봉을 지나 운길산으로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예빈산으로 갈 것인가.

산에서 만나는 갈림길은 늘 묘하다.

어느 길을 선택해도 산행은 이어진다. 그러나 한쪽을 선택하는 순간, 다른 한쪽의 풍경은 그날의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도 그랬다.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 하나를 선택했고, 선택하지 않은 길은 오래도록 마음 한편에 남았다.

그날 나는 예빈산을 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닿아본 곳보다 아직 마음에 남아 있는 이름이 더 오래 사람을 부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빈산에는 내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가 있었다.

견우봉과 직녀봉.

이름만 들어도 이야기가 먼저 따라오는 봉우리였다.


율리봉을 지나 예빈산으로

예봉산에서 예빈산으로 향하는 능선은 한 번 내려갔다가 다시 오른다.

산과 산이 이어져 있다고 해서 길이 언제나 평탄한 것은 아니다. 올라온 만큼 내려가야 할 때가 있고,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야 할 때가 있다.

인생과 닮았다는 말은 너무 흔하지만, 산에서는 그 흔한 말이 자꾸만 사실이 된다.

예봉산 정상에 올랐다고 산행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시 내려서고,

다시 숨을 모으고,

다시 한 봉우리를 향해 오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우리의 삶에도 정상은 하나가 아니었던 것 같다.

하나를 이루고 나면 또 다른 길이 나타났고,

이제 다 왔다고 생각하면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삶은 정상에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오르막과 내리막을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능선을 걸어 예빈산으로 향했다.

예빈산은 예봉산에 비해 조금 낮고 덜 알려졌지만, 견우봉과 직녀봉이라는 두 이름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는 산이다. 산행 기록들에서도 예빈산은 견우봉과 직녀봉이 이어지는 능선으로 자주 소개된다.

산 이름 하나가 사람의 상상을 얼마나 멀리 데려가는지 모른다.


견우와 직녀가 바라보는 산

직녀봉과 견우봉.

두 봉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오히려 가까웠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느껴질 만큼 산길로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의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일 년에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한다는데, 산속의 견우와 직녀는 이렇게 가까이 마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가까이 있다고 모두 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 사이의 거리도 그렇다.

천 리 밖에 있어도 마음이 닿는 사람이 있고,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으면서도 끝내 마음 하나 건너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는 어쩌면 사랑 이야기라기보다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일 년을 기다려 하루를 만나는 사람들.

칠월칠석이 되면 까마귀와 까치들이 몸을 이어 오작교를 만들고, 그 다리를 건너 두 사람이 만난다는 오래된 이야기.

어릴 때는 그저 슬픈 사랑 이야기로 들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사람은 모두 자기만의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사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말,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날을 건너지 못한 다리 앞에서 서성였던가.

직녀봉에서 견우봉을 바라보며 오래전 사람들이 왜 이 두 봉우리에 그런 이름을 붙였을까 생각했다.

아마도 산의 모양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산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연 하나쯤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장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사람,

전쟁터에 간 아들을 기다리던 어머니,

도시로 떠난 자식을 기다리던 늙은 부모.

산의 전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다림이 오래 쌓여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두 봉우리를 걸었다.

견우의 길을 걷다가 직녀의 자리를 돌아보고, 직녀의 이름 앞에서 다시 견우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칠월칠석도 아니었지만, 산길은 이미 두 봉우리를 이어주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오작교도 거창한 것이 아닐 것이다.

먼저 건네는 안부 한마디,

미안했다는 말 한마디,

보고 싶었다는 짧은 고백.

그것이면 오랫동안 끊어져 있던 마음 사이에 작은 다리 하나 놓일지도 모른다.


불을 지나온 숲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를 뒤로하고 하산길에 접어들자 숲의 표정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나무 몇 그루가 이상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검게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 그루,

두 그루.

숲 안으로 들어갈수록 불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검게 탄 나무와 쓰러진 가지.

불길이 지나간 자리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상처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나무들 앞에 서 있었다.

불은 한순간이었을 것이다.

바람을 타고 달려온 불길은 나무 한 그루가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시간을 몇 분 만에 태워버렸을 것이다.

새가 둥지를 틀던 가지도,

벌레가 숨어 살던 껍질도,

봄마다 새순을 내던 나무의 시간도 불길 속에 사라졌을 것이다.

숲을 이루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숲을 잃는 데는 몇 시간이면 충분하다.

사람의 삶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을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사랑을 키우는 데는 수많은 계절이 필요하지만 상처는 말 한마디로도 생긴다.

그러나 숲을 자세히 보니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검게 그을린 참나무의 몸에서 연둣빛 새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죽은 줄 알았던 나무가 다시 잎을 내고 있었다.

검은 껍질과 어린 잎.

죽음과 생명이 한 몸 안에 함께 있었다.

그 모습은 살아남았다는 선언이라기보다 다시 살아가겠다는 조용한 다짐처럼 보였다.

나는 그 나무 앞에서 오래 눈을 떼지 못했다.


상처는 어떻게 숲이 되는가

숲은 한순간에 타버렸지만, 다시 숲이 되는 일은 오래 걸린다.

내년 봄 한 번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몇 해의 비를 맞아야 하고,

수많은 겨울을 견뎌야 하며,

작은 풀들이 먼저 땅을 붙들고 그 뒤를 이어 어린 나무가 자라야 한다.

상처 입은 땅은 서두르지 않는다.

계절 하나가 지나간다고 갑자기 울창한 숲이 되지는 않는다.

사람의 마음도 그런 것 같다.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한다.

잊으라고.

털어버리라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지만 숲을 바라보니 그 말들이 조금 미안해졌다.

타버린 산이 하루아침에 푸른 숲으로 돌아올 수 없듯,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빨리 회복될 수는 없다.

아픈 시간에는 아파해야 한다.

무너진 자리에서는 한동안 주저앉아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아주 작은 싹 하나를 틔우는 것이다.

오늘 한 걸음.

내일 한 걸음.

남들이 보기에는 달라진 것이 없어 보여도 땅속에서는 뿌리가 조금씩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다시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상처가 없었던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가진 채 다시 잎을 내는 것.

검은 껍질을 모두 벗어버리지 않아도 그 몸에서 푸른 잎을 내는 것.

나는 그날 예빈산의 참나무에게서 그것을 보았다.


잿빛 하늘 아래의 푸른 것들

숲의 끝자락으로 내려오자 푸른 소나무 군락이 나타났다.

앞서 본 검은 숲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곧게 자란 소나무들이 바람을 받으며 서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었다.

미세먼지는 걷히지 않았고 먼 산의 능선은 흐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처음 산을 오를 때와는 마음이 달랐다.

아침에는 잿빛 하늘만 보였다.

이제는 그 아래에서 자라는 푸른 것들이 보였다.

같은 풍경인데 내가 달라져 있었다.

언젠가 저 푸름이 능선을 넘어갈 것이다.

상처 입은 숲 사이로 새로운 나무들이 자라고,

새들이 돌아오고,

잎이 겹쳐져 다시 그늘을 만들 것이다.

불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

검게 탄 오래된 나무 하나쯤은 오랜 세월 남아 과거의 일을 증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숲은 상처를 지우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처 위에 새로운 시간을 쌓으며 살아간다.

사람 역시 그렇지 않을까.

아팠던 일을 모두 잊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 기억 위에 새로운 하루를 놓고,

그 위에 또 하나의 계절을 얹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돌아보면 상처였던 자리에 작은 숲 하나가 생겨 있을지도 모른다.


예봉산에서 예빈산으로

산을 내려오며 오늘 걸었던 길을 돌아보았다.

예봉산의 가파른 오르막.

두 갈래로 나뉘던 능선의 길.

예빈산의 견우봉과 직녀봉.

그리고 불을 견디고 다시 새잎을 내던 숲.

처음에는 아무 관계도 없는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산을 내려오며 보니 모두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 있었다.

견우와 직녀는 기다림을 견뎠고,

불탄 숲은 긴 회복의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세월이라는 능선을 걷고 있었다.

예전보다 걸음은 느려졌지만 아직 산을 찾고 있다.

예전보다 숨은 빨리 차지만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젊었을 때 나는 정상만 바라보며 걸었다.

오늘의 나는 길가의 검게 탄 나무 한 그루 앞에서 오래 멈추었다.

무엇이 더 좋은 산행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산을 대하는 나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안다.

어쩌면 나이 든다는 것은 잃어가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빨리 걷는 대신 깊이 바라보게 되고,

높은 곳에 오르는 대신 오래 머물게 되고,

풍경을 보는 대신 그 속에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되는 일.

그것도 산이 가르쳐주는 또 하나의 길일 것이다.

산 아래로 내려오며 마지막으로 능선을 돌아보았다.

잿빛 미세먼지 속에서 예봉산과 예빈산이 희미하게 이어져 있었다.

어디가 예봉산이고, 어디부터 예빈산인지 멀리서는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다.

견우봉과 직녀봉도 결국 하나의 산줄기 속에 있었다.

생각해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결국 하나의 길로 이어져 있는 것.

오늘 만나지 못하면 내일을 기다리고,

다리가 없으면 작은 안부 하나라도 건네고,

불에 탄 자리가 있다면 새잎 하나 돋아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사람이 사람에게 놓아줄 수 있는 작은 오작교인지도 모른다.

나는 산을 내려오며 생각했다.

상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상처는 견디는 시간을 지나 천천히 흙이 되고,

그 흙에 뿌리가 내리고,

어느 날 작은 잎 하나를 틔운다고.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그것을 다시 숲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라고.


에필로그|상처 위에 다시 숲이 자란다

예봉산에서 예빈산으로 이어진 하루는 잿빛으로 시작했다.

하늘은 미세먼지로 흐렸고, 강 건너 검단산도 제 얼굴을 다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산은 흐린 날에도 산이었다.

가파른 예봉산의 오르막은 여전히 숨을 묻고 있었고, 정상부의 강우레이더는 예전과 달라진 산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갈림길에서 나는 예빈산을 택했다.

견우봉과 직녀봉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두 봉우리 앞에서 나는 오래된 사랑 이야기보다 기다림의 시간을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건너지 못한 다리 하나쯤 마음속에 두고 살아간다. 하지 못한 말, 만나지 못한 사람,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어쩌면 작은 안부 하나가 우리가 놓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오작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산길에서 불탄 숲을 만났다.

검게 그을린 참나무에서 연둣빛 새잎이 돋고 있었다.

그 장면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상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상처는 견디는 시간을 지나 흙이 되고, 그 흙에 다시 뿌리가 내리고, 어느 날 조용히 새잎 하나를 틔우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산에서 강보다, 정상보다, 조망보다 그 새잎을 오래 바라보았다.

예봉산에서 예빈산으로 이어진 길은 결국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건너지 못한 다리가 있어도 삶은 끝나지 않는다고.

불에 탄 숲에서도 새잎은 다시 돋는다고.

그리고 오래 기다려 다시 푸르러지는 것들을 우리는 언젠가 다시 숲이라고 부르게 된다고.


🌿 이 산행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예봉산·예빈산 산행은 경의중앙선 팔당역을 이용하면 접근이 편리하다. 예봉산은 높이가 약 683m로 알려져 있고, 한강을 사이에 두고 검단산과 마주하며, 동남쪽으로 예빈산과 이어진다.

예봉산은 초반부터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는 구간이 있어 체력 안배가 필요하다. 예봉산만 다녀오는 코스도 가능하지만, 예빈산 직녀봉·견우봉까지 이어가면 오르내림이 반복되어 산행 시간이 길어진다. 예봉산에서 적갑산·운길산으로 이어가는 길과 예빈산으로 돌아오는 길이 모두 소개되는 만큼, 자신의 체력과 날씨에 맞춰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예봉산 정상의 강우레이더관측소는 2019년 개소한 시설로, 수도권 강수 관측과 홍수 예보에 활용되는 대형 강우레이더다. 정상부 풍경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이제는 예봉산의 새로운 표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 산행 준비 메모

예봉산은 낮은 산처럼 보여도 초반 오르막이 만만하지 않다. 팔당역에서 시작하면 접근은 쉽지만, 정상까지 꾸준히 고도를 올려야 하므로 처음부터 속도를 높이지 않는 것이 좋다.

예빈산 방향으로 이어갈 경우 하산로와 시간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직녀봉과 견우봉을 지나면 조망과 이야기는 풍성해지지만, 그만큼 산행 길이도 길어진다.


🌿 관련 사이트 및 여행 정보

🌿 ① 남양주시 문화관광

👉 남양주시 문화관광 바로가기

예봉산과 팔당, 다산 정약용 유적지, 북한강·한강 주변 여행 정보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 ② 경의중앙선 팔당역 정보

👉 코레일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팔당역 열차 시간과 경의중앙선 이동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예봉산·예빈산 산행은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 ③ 예봉산 강우레이더 관련 정보

👉 예봉산 강우레이더 개소 보도자료 보기

예봉산 정상부 강우레이더관측소의 목적과 홍수 예보 활용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④ 다산 정약용 유적지

👉 남양주시 다산 정약용 유적지 안내 바로가기

예봉산·예빈산 산행 전후로 팔당과 조안면 일대 여행을 함께 계획할 수 있다.


🌿 예봉산·예빈산 준비물 체크리스트

접지력 좋은 등산화
충분한 식수
간단한 행동식
미세먼지 심한 날 사용할 마스크
바람막이 또는 계절별 겉옷
지도 앱과 보조배터리
스틱
하산로 확인
갈림길에서 서두르지 않는 마음
건너지 못한 다리 하나를 떠올려볼 여유


🌿 추천 숙박

🏡 남양주 팔당·조안면 일대

예봉산·예빈산 산행과 팔당, 다산 정약용 유적지, 북한강·한강 주변 여행을 함께 계획한다면 팔당이나 조안면 일대 숙박을 고려할 수 있다. 서울과 가까워 당일 산행도 가능하지만, 여유 있는 여행으로 묶으면 강변 풍경을 더 오래 만날 수 있다.

👉 남양주시 문화관광 바로가기

🏡 양평·두물머리 연계

산행 뒤 두물머리와 양평 방향 여행을 함께 계획한다면 양평권 숙박도 좋은 선택이다. 예봉산과 예빈산에서 바라보는 물길을 실제 강변 여행으로 이어갈 수 있다.

👉 양평문화관광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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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바람 · 글바람 ⑳」 설악산 울산바위 산행기, 금강산으로 가지 못한 바위 앞에서

설악산 울산바위에서는 금강산으로 가지 못한 바위의 전설을 따라 겨울바람 속으로 걸었습니다. 잔설과 얼음이 남은 계단, 몸을 밀어내는 강풍 앞에서 두려움을 데리고도 한 계단 더 오르는 일이 용기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울산바위는 처음 뜻한 곳에 닿지 못했지만, 설악의 가장 웅장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 산행은 도착하지 못한 길도 실패만은 아니며, 머물게 된 자리에서 자기 이름을 얻는 일이 삶의 또 다른 완성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 다음 산행 이야기

「산바람 · 글바람 ㉒」 지리산 화대종주 이야기

예봉산에서 예빈산으로 이어진 길에서는 건너지 못한 다리와 다시 살아나는 숲을 만났습니다. 견우봉과 직녀봉 앞에서는 기다림과 안부의 의미를 생각했고, 불탄 숲에서 돋아난 새잎 앞에서는 상처가 어떻게 다시 숲이 되는지를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지리산 화대종주 이야기로 향합니다. 화엄사에서 시작해 지리산의 긴 능선을 따라 대원사로 이어지는 길은 단순한 산행을 넘어 몸과 마음의 긴 시간을 통과하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예봉산과 예빈산이 기다림과 회복의 산이었다면, 지리산 화대종주에서는 긴 능선 위에서 사람이 얼마나 멀리 걸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다시 품게 되는지 천천히 풀어보겠습니다.


🍃 산길의 끝에서

예봉산으로 오른 날, 하늘은 맑지 않았다.

운무가 아니라 미세먼지가 산과 강 사이를 막고 있었다. 팔당의 물길도, 강 건너 검단산도 흐릿했다.

그래도 산은 산이었다.

맑은 날의 산만 산이 아니듯, 흐린 날의 삶도 여전히 삶이다.

예봉산은 시작부터 숨을 재촉했다.

예전에는 이 길을 조금 더 쉽게 올랐던 것 같은데, 산의 경사가 변했을 리는 없다. 변한 것은 산이 아니라 내 몸이고, 산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었다.

갈림길에서 나는 예빈산을 택했다.

견우봉과 직녀봉이라는 이름이 마음을 불렀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닿지 못하는 마음, 기다림이 오래 쌓여 만들어지는 이야기.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오작교는 거창한 다리가 아니라 먼저 건네는 안부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하산길에서는 불탄 숲을 만났다.

검게 그을린 참나무에서 연둣빛 새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상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상처는 견디는 시간을 지나 천천히 흙이 되고, 그 흙에 뿌리가 내리고, 어느 날 작은 잎 하나를 틔우는 것이었다.

사람도 그럴 것이다.

아팠던 일을 모두 잊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 위에 새로운 하루를 놓고, 그 위에 또 하나의 계절을 얹으며 살아가는 것.

그러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상처였던 자리도 다시 숲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예봉산에서 예빈산으로 이어진 길은 내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건너지 못한 다리가 있어도 삶은 끝나지 않는다고.

불에 탄 숲에서도 새잎은 다시 돋는다고.

기다림과 회복은 느리지만, 결국 자기만의 길을 찾아간다고.

다음 산길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산바람 · 글바람

예봉산으로 오른 날,
하늘은 맑지 않았습니다.

운무가 아니라
미세먼지가 산과 강 사이를 막고 있었고,

팔당의 물길도
강 건너 검단산도
흐릿한 윤곽으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산은 산이었습니다.

맑은 날의 산도 산이고,
흐린 날의 산도 산이듯

삶 역시
늘 맑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예봉산은 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며
나는 몇 번이나 숨을 골랐습니다.

예전보다 느려진 걸음이
처음에는 조금 서글펐지만,

곧 알게 되었습니다.

느려진 만큼
오래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갈림길에서
나는 예빈산을 택했습니다.

견우봉과 직녀봉.

가까이 있으면서도
이름만으로는 언제나 기다림을 품은 두 봉우리.

그 앞에서 생각했습니다.

사람에게도
건너지 못한 다리 하나쯤은 있다고.

보고 싶지만 보지 못한 사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말,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어쩌면 우리가 놓을 수 있는 오작교는
거창한 다리가 아니라

먼저 건네는 안부 한마디,
미안했다는 말 한마디,
보고 싶었다는 짧은 고백일지도 모릅니다.

하산길에서
불을 지나온 숲을 만났습니다.

검게 그을린 참나무의 몸에서
연둣빛 새잎이 돋고 있었습니다.

죽음과 생명이
한 몸 안에 함께 있었습니다.

나는 그 앞에서 오래 멈췄습니다.

상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처는
견디는 시간을 지나
천천히 흙이 되고,

그 흙에 뿌리가 내리고,

어느 날
작은 잎 하나를 틔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그것을
다시 숲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예봉산에서 예빈산으로 이어진 길은
내게 그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건너지 못한 다리가 있어도
삶은 끝나지 않는다고.

불에 탄 숲에서도
새잎은 다시 돋는다고.

기다림과 회복은
느리지만,

결국 자기만의 길을 찾아간다고.

산바람 · 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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