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 글바람 ⑲」 수락산 산행기, 해를 넘기며 익숙한 산에게 묻다

  

수락산 탱크바위 오르는 길의 거친 화강암 바위틈에 남아 있는 눈과 바위 위 작은 소나무 풍경
탱크바위로 오르는 수락산 암릉길. 거친 바위틈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남아 있고, 그 위로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겨울 햇살을 받고 있다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한 해의 끝에서 수락산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만 익숙한 바위 하나와 겨울 햇살 한 줌을 내어주며, 여기까지 걸어온 나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익숙한 산에게 한 해의 안부를 묻다

‘밥 먹듯’이라는 말은 조금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수락산은 내게 그런 산이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고,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배낭 하나 둘러메면 찾아갈 수 있는 산. 전철에서 내려 몇 걸음 옮기면 어느새 산자락에 들어서고, 바위와 소나무가 익숙한 얼굴로 나타나는 산이다.

수락산은 내가 자주 왔다고 반가워하지도 않고, 한동안 오지 않았다고 서운해하지도 않는다.

“왜 이제 왔느냐.”

그렇게 묻지도 않는다.

그래서 좋다.

오래된 친구 가운데에는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어제 만난 사람처럼 편안한 사람이 있다. 수락산이 내게는 그런 산이다.

한때는 거의 매주 오르다시피 했다. 어느 길에 바위가 있고, 어느 모퉁이를 돌면 소나무 한 그루가 나타나는지, 어디쯤에서 숨이 차고, 어디에 앉으면 햇볕이 좋은지를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그러다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해서, 그렇게 자주 다니던 산도 어느 순간 뜸해진다. 멀리 있는 산을 찾아가고, 새로운 길을 걷고, 조금 더 높은 산과 이름난 능선을 찾아다니다 보면 가장 가까운 것은 오히려 뒤로 밀려난다.

사람 사이도 그렇지 않은가.

멀리 있는 사람은 그리워하면서도 늘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안부를 묻는 일을 자꾸 잊는다.

2025년의 끝자락.

크리스마스라는 날짜는 사실 핑계에 가까웠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가장 익숙한 풍경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수락산으로 향했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서울 노원구·경기 의정부시·남양주시 경계의 수락산

📅 산행 시기
2025년 끝자락, 크리스마스 무렵 겨울 산행

🥾 주요 코스
옛 당고개 일대 → 탱크바위 방향 → 수락산 바위길 → 겨울 햇살 쉼터 → 학림사 방향 하산

📏 산행 거리
선택한 들머리와 하산 방향에 따라 달라짐

산행 시간
겨울철 결빙과 바위길 상태를 고려해 여유 있게 계획

난이도
★★★☆☆~★★★★☆

수락산은 접근성이 좋지만 바위 구간이 많고, 겨울철 살얼음과 결빙이 있으면 체감 난이도가 높아짐

🌳 산행 환경
바위능선 · 화강암 암릉 · 소나무 · 겨울 낙엽길 · 사찰 하산길 · 도심 조망

🚆 이동 방법
지하철 4호선 불암산역, 7호선 수락산역 등에서 접근 가능

의정부시 관광 안내는 수락산을 서울 노원구, 의정부시, 남양주시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소개하며, 기차바위와 철모바위 등 다양한 기암괴석과 화강암 능선이 아름다운 바위산이라고 설명한다. 수락산의 높이는 637.7m로 안내되어 있다. 서울관광 역시 수락산을 서울 노원구와 의정부시, 남양주시에 걸쳐 있는 산으로 소개한다.


당고개라는 이름을 지나

수락산을 찾아갈 때마다 오래 기억에 남은 이름이 있다.

당고개.

지하철 4호선의 종점이던 시절부터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었다. 전철에서 내리면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배낭끈을 조여 매고 산으로 흩어지곤 했다. 누군가는 불암산으로 향하고, 누군가는 수락산으로 길을 잡았다.

불암산과 수락산 사이에 놓인 그 역은 오랫동안 산꾼들의 출발점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 당고개역이라는 이름은 불암산역으로 바뀌었다. 서울교통공사 안내에 따르면 서울시 시보 고시에 따라 4호선 당고개역의 역명이 불암산역으로 개정되었다. 앞서 노원구는 주민 의견 수렴과 지명위원회 심의를 거쳐 불암산역 명칭을 추진했고, 서울시 지명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이름 하나가 달라졌을 뿐인데 오래된 사람에게는 묘한 느낌이 든다.

역은 그 자리에 있고, 전철도 여전히 사람들을 내려놓지만, 내 기억 속에는 아직도 당고개라는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이번 주에 어디 갈까?”

“당고개에서 만나.”

그 한마디면 되던 시절이 있었다. 배낭을 메고 계단을 올라오면 겨울 바람이 먼저 얼굴을 때렸고, 역 앞에는 김밥이며 막걸리며 산행 먹거리를 챙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제 이름은 바뀌었지만 기억 속의 역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이름도,

거리의 이름도,

역의 이름도 세월을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어떤 이름은 사라진 뒤에도 오랫동안 사람의 입속에 남는다.

나 역시 아직은 불암산역보다 당고개라는 이름이 먼저 나온다.

아마 기억은 공식적인 안내판보다 늦게 바뀌는 모양이다.


겨울도 가을도 아닌 산

산에 들었다.

그제 내린 비는 녹지 못한 잔설과 뒤섞여 있었다. 산은 겨울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모호한 계절에 멈춰 서 있었다.

낙엽은 아직 갈색이었고, 바위 사이에는 얼음이 숨어 있었다. 햇볕이 드는 곳에는 물기가 흘렀고, 그늘진 곳은 밤의 추위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겨울 산에서는 이런 날이 더 위험하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은 오히려 마음의 준비를 한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발밑을 살피며 걷는다. 하지만 비가 내린 뒤 찾아온 추위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살얼음을 남긴다.

평범해 보이는 바위 하나가 갑자기 사람의 발을 밀어내기도 한다.

그날의 수락산이 그랬다.

익숙한 길이라고 방심할 수 없었다.

산은 자주 왔다는 이유로 한 번도 쉬운 길을 약속한 적이 없었다.


탱크바위로 오르는 길

탱크바위 쪽으로 발길을 잡았다.

수락산에는 바위가 많다. 탱크바위, 배낭바위, 코끼리바위, 철모바위, 기차바위라 불리는 홈통바위까지. 사람들은 바위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저마다 익숙한 사물의 이름을 붙여놓았다.

산에서는 돌도 이름을 얻는다.

그리고 그 이름 하나 때문에 사람들은 다시 그 돌을 찾아온다.

의정부시 관광 안내도 수락산의 기차바위와 철모바위처럼 생긴 모양에 따라 이름 붙은 다양한 바위들을 수락산의 특징으로 소개한다.

탱크바위로 오르는 길의 바위는 살얼음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바위가 파도처럼 출렁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발밑의 감각은 마치 잔잔한 파도 위를 걷는 것처럼 불안했다.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평소라면 무심하게 지나갈 바위에서 몸을 낮추고 발끝을 살폈다. 햇볕이 닿지 않은 홈에는 얼음이 남아 있었다. 눈 한 줌이 녹았다가 밤새 얼어붙은 듯했다.

손을 짚을 곳을 먼저 보고,

발을 놓을 자리를 다시 살폈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순간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긴장 속에서 오히려 마음은 또렷해졌다.

도시에서는 수많은 생각을 한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 누군가에게 들은 말, 앞으로 해야 할 일. 그러나 미끄러운 겨울 바위 위에서는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없다.

지금 이 발을 어디에 놓을 것인가.

그것만 생각한다.

산은 때로 사람을 위험하게 해서가 아니라 현재에 붙잡아 두어서 마음을 맑게 한다.

어쩌면 우리가 산에서 잠시 편안해지는 이유도 그것인지 모른다.


🍂 오늘의 시

수락산 / 송현

산마루
소낭구 아래
구부정하게 눌러앉은
사내 하나

봄볕은 환한데
그의 어깨에는
그늘이 먼저 내려앉는다.

남들은
꽃 따라 웃고 지나가는데

그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무슨 사연이
저 어깨를 저리 굽게 했을까.

봄은 막바지로 몰려
꽃의 목덜미까지
거칠게 흔들고,

산마루에는
바람만 오래 서 있다.

사내는
마치
봄이 지나가는 길목에
잠시 내려놓은
한 사람의 삶 같다.


바위틈의 작은 소나무

바위틈에는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다. 누가 조각해 놓은 것도 아닌데 제각각의 길이로 빛을 받고 있었다.

그 옆에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머리 위에 눈 한 점을 얹은 채 서 있었다.

반가웠다.

그리고 조금은 애처로웠다.

하필이면 왜 저런 곳에 뿌리를 내렸을까.

사람의 생각으로는 그렇게 묻게 된다. 흙이 넉넉한 곳도 있고, 바람을 덜 맞는 곳도 있을 텐데, 왜 저 단단한 바위틈에 자리를 잡았을까.

그러나 나무에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씨앗이 바람을 타고 떨어진 곳.

그곳이 자신의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흙이 조금 모이면 뿌리를 내리고, 비가 오면 물을 받아먹고, 겨울이면 눈을 견디며 살아왔을 것이다.

나는 그 작은 소나무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수락산을 셀 수 없이 오르면서도 그날따라 그 나무가 눈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한 해의 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해를 돌아보면 사람도 저 소나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하는 자리에서만 살 수는 없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곳에 뿌리를 내려야 했고, 때로는 바람을 피하지 못했으며, 얼음 위에 눈까지 얹고 견뎌야 하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살아왔다.

대단한 승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쓰러지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날이 있다.

작은 소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이 오히려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당신도 한 해를 이렇게 버텨왔지 않느냐.”


겨울 햇살에 앉아

바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겨울 햇볕은 여름 햇볕과 다르다. 여름에는 피하고 싶지만 겨울에는 한 줌이라도 더 받고 싶다.

햇살이 얼굴과 어깨 위로 내려왔다. 차가운 바위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햇볕의 온기가 몸 안에서 묘하게 섞였다.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물을 마시지도 않았고, 휴대전화를 꺼내지도 않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멀리 도시가 보였고, 가까이에는 겨울나무가 서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가지가 조금씩 움직였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니 일 년 동안 마음에 쌓아두었던 것들이 하나둘 멀어지는 것 같았다.

산에 온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산에서 내려가면 다시 만나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산에 앉아 있으면 잠시 문제와 나 사이에 거리가 생긴다.

그 거리가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처럼 보이던 것도, 한 발짝 떨어져 보면 조금은 다른 모양으로 보인다.

산은 답을 주는 곳이 아니라 거리를 주는 곳인지도 모른다.

나는 겨울 햇살 속에서 한동안 시름을 잊었다.

무엇을 결심하지도 않았다.

내년에는 더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지도 않았다.

그저 몸을 햇볕에 맡겼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하는 방법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오래 다니던 산의 바위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잠시 받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낙엽이 햇볕을 쬐는 길

다시 길을 나섰다.

낙엽들이 소리 없이 웅크린 채 햇볕을 쬐는 오솔길로 내려섰다.

한때 나무 위에 매달려 햇빛을 받던 잎들이 이제는 땅 위에 누워 있었다. 봄에는 연둣빛이었고, 여름에는 짙은 그늘을 만들었으며, 가을에는 붉고 노랗게 빛났다.

그리고 지금은 갈색 몸으로 길 위에 누워 있었다.

사람들은 낙엽을 보며 끝을 생각하지만 숲에게 낙엽은 끝이 아닐 것이다.

썩어 흙이 되고, 다시 나무의 뿌리로 돌아간다.

산에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드문지도 모른다.

형태만 바뀐다.

잎은 흙이 되고,

눈은 물이 되고,

물은 다시 구름이 된다.

사람의 시간도 그럴까.

지나간 한 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몸 어딘가에, 내 말투 속에, 생각하는 방식 속에, 사람을 바라보는 눈 속에 조금씩 쌓여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앙상한 가지 끝에 떡갈나무 잎 몇 장이 남아 있었다. 겨울바람을 빌려 바스락거렸다.

다른 잎들은 모두 떨어졌는데 끝까지 가지를 붙잡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묻는 것 같았다.

“잘 지나왔느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잘 지나왔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기쁜 일도 있었고, 아쉬운 일도 있었다. 만난 사람도 있고, 멀어진 사람도 있었다. 계획한 대로 된 것도 있고,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여기까지 왔다.

그것이면 된 것 아닐까.


자주 찾은 산에서 길을 다시 배운다는 것

수락산은 익숙한 산이다.

그래서 오히려 재미있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익숙한 것을 안다고 착각한다. 수락산을 자주 올랐다고 해서 내가 수락산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다.

계절이 달라지면 길이 달라지고, 눈이 오면 바위의 표정이 달라진다. 나무 한 그루도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젊은 날의 나는 수락산에 올라 정상만 보았을지도 모른다.

오늘의 나는 작은 소나무 앞에서 오래 멈춘다.

예전에는 얼마나 빨리 올랐는지를 생각했고, 지금은 얼마나 천천히 바라보았는지를 기억한다.

산은 같은데 산을 읽는 내가 달라졌다.

어쩌면 오래 다닌 산의 좋은 점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산의 변화를 보는 동시에 그 산을 바라보는 자신의 변화를 알게 되는 것.

수락산은 수없이 만난 나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까.

성급하던 때의 나.

힘으로 바위를 오르던 나.

친구들과 떠들며 걷던 나.

혼자 산을 찾아오던 나.

그리고 이제는 한 해의 끝에 바위틈 소나무 하나를 오래 바라보는 나.

산은 모두 보았겠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학림사로 내려가는 길

하산길에 학림사를 만났다.

겨울 산 아래의 절은 유난히 조용했다. 봄에는 꽃이 사람의 시선을 붙잡고, 여름에는 나무와 계곡이 소리를 만든다. 가을에는 단풍을 찾아온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겨울 절집은 많은 것을 덜어낸 얼굴을 하고 있다.

나뭇잎이 떨어져 지붕선이 선명했고, 산새 소리도 드물었다. 기와 위의 찬 공기와 빈 마당의 고요가 겨울 햇살 아래 머물고 있었다.

학림사는 수락산 자락에 자리한 사찰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학림사를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의 말사로 소개하며, 671년 원효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은 학림사를 산행과 함께 찾기 좋은 서울 근교 사찰로 소개한다.

나는 절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사람은 산에서 참 많은 생각을 한다.

올라갈 때는 숨이 차서 생각을 잊고, 능선에 서면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고, 절에 내려오면 다시 자기 마음을 바라보게 된다.

그날 학림사의 고요함은 내게 한 가지를 묻는 것 같았다.

“그래, 한 해를 잘 보냈느냐.”

부처의 미소도 그렇게 묻는 듯했다.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무엇이 ‘잘 보낸 한 해’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면 잘 보낸 것인가.

하고 싶은 일을 모두 이루면 잘 산 것인가.

아프지 않으면 좋은 한 해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다투지 않아야 성공한 한 해인가.

살다 보면 한 해를 점수로 매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해는 이루지 못한 것이 더 많아도 소중하고, 어떤 해는 많은 것을 얻었지만 허전하다.

그러니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여기까지 무사히 걸어왔다는 사실만 마음에 올려놓았다.

올해도 산을 걸었다.

넘어질 뻔한 날도 있었고, 숨이 차 멈춰 선 날도 있었다. 비를 맞으며 걸은 날도 있었고, 눈꽃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기뻐한 날도 있었다.

그 모든 날이 모여 나의 한 해가 되었다.


사람이 적은 겨울 산

유난히 찬 날씨 때문인지 산에는 사람이 드물었다.

평소라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사람들의 대화도 많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야.”

“거기 미끄러워요.”

“사진 한 장 찍어주세요.”

산에서 흔히 듣던 목소리가 없는 대신, 내 발소리가 크게 들렸다.

낙엽을 밟는 소리.

돌에 스틱 끝이 닿는 소리.

그리고 내 숨소리.

사람이 적으니 발소리와 숨소리 사이가 넓어졌다. 그 빈 공간 속에서 생각도 천천히 걸었다.

나는 왜 이렇게 오랫동안 산을 찾았을까.

정상 때문이었을까.

건강 때문이었을까.

풍경 때문이었을까.

아마 어느 하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산에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이루었다고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산은 내가 누구인지 관심이 없다.

직함도 묻지 않고,

나이도 묻지 않고,

얼마를 가졌는지도 묻지 않는다.

그저 걸어오면 길을 내어준다.

때로는 가파르게,

때로는 부드럽게.

그리고 돌아갈 때가 되면 아무 미련 없이 보내준다.

그래서 나는 수락산을 자주 찾았는지도 모른다.


바위산의 얼굴

수락산은 부드러운 흙산이 아니다.

바위가 많은 산이다. 거대한 화강암 능선과 기묘한 형태의 바위가 산의 인상을 만든다.

바위산은 계절에 따라 표정이 크게 달라진다.

봄이면 진달래 사이로 회색 바위가 드러나고, 여름이면 짙은 녹음 속에서 바위가 섬처럼 솟는다. 가을이면 단풍 사이에서 더욱 선명해지고, 겨울이면 모든 장식이 사라져 바위의 몸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는 겨울 수락산이 좋다.

나무가 잎을 내려놓고 나면 산의 뼈가 보인다.

산의 굴곡이 드러나고, 평소 숲에 숨어 있던 바위의 연결이 보인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조금씩 그런 얼굴이 되는 것 아닐까.

젊은 날의 장식이 하나둘 사라지고, 마지막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본래의 표정이 남는다.

그 얼굴이 꼭 아름다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깊게 팬 주름도 있고,

상처도 있고,

조금 기울어진 곳도 있다.

그러나 오래 견딘 바위가 아름다운 것처럼 오래 살아온 사람의 얼굴에는 젊음과 다른 풍경이 있다.


해를 넘긴다는 것

한 해가 끝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12월 31일 밤과 1월 1일 아침 사이에 세상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산도 그대로 있고, 해도 어제처럼 뜬다. 겨울나무도 밤새 갑자기 새잎을 피우지 않는다.

달력의 숫자 하나가 바뀌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해가 바뀌는 순간에 의미를 둔다.

지나온 것을 돌아보고,

잘못한 것을 생각하고,

새로운 마음을 품는다.

아마 사람에게는 멈추어 뒤돌아볼 작은 고개가 필요한 모양이다.

산에서 고개를 넘듯이 시간에도 고개 하나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그날 수락산에서 한 해라는 고개를 넘고 있었다.

거창한 새해 계획도 없었다.

무엇을 이루겠다는 결심도 하지 않았다.

다만 새해에도 산을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빠르게가 아니라 오래.

높게가 아니라 깊게.

많은 산을 다녀오는 것보다 한 산에서 더 많은 것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에는 산행 기록에 산 이름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이 즐거웠다.

이제는 산 하나에서 문장 하나를 얻어오는 일이 더 좋다.

그날 수락산에서는 이런 문장을 얻었다.

오래된 산은 사람의 변화를 말없이 지켜본다.


수락산의 배웅

산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뒤를 돌아보았다.

수락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오늘 내가 왔다고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내가 한 해를 돌아보았다고 해서 산이 축하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 무심함이 좋았다.

자주 오르던 산이지만 오늘의 수락산은 말을 아낀 얼굴로 나를 배웅했다.

바위틈에는 아직 얼음이 남아 있었고, 작은 소나무는 눈 한 점을 머리에 이고 서 있었으며, 떡갈나무 잎 몇 장은 여전히 가지 끝에서 겨울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학림사의 고요한 마당도 뒤에 남았다.

그리고 불암산역으로 이름이 바뀐 옛 당고개역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생각해보니 이날의 산행에는 한 해의 모습이 모두 들어 있었다.

미끄러운 길도 있었고,

따뜻한 햇볕도 있었다.

긴장해야 했던 순간이 있었고,

가만히 앉아 쉬었던 시간도 있었다.

작은 소나무에게서 위로를 받았고,

낙엽에게서 지나간 시간을 보았으며,

절집의 고요함 앞에서 잠시 내 삶을 돌아보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한 해의 끝에서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

무엇을 이루었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굳이 따져 묻지 않기로 했다.

산에 오르는 동안 여러 번 미끄러질 뻔했지만 넘어지지 않았고, 잠시 앉았다가 다시 걸었으며, 결국 내 발로 산을 내려왔다.

삶도 그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닐까.

수락산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을 내려오는 내 마음에는 이런 말이 남았다.

한 해를 잘 살았다는 것은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미끄러운 길에서도 다시 발을 딛고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전철역으로 향하며 다시 산을 돌아보았다.

2025년의 수락산은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조용히 서 있었다.

이제 역의 이름은 바뀌었고, 계절도 곧 새로운 달력으로 넘어갈 것이다.

나 역시 조금 더 늙을 것이다.

하지만 새해 어느 날, 마음이 복잡해지면 다시 이 산을 찾을 것 같다.

그때도 수락산은 묻지 않을 것이다.

왜 왔느냐고.

그동안 무엇을 이루었느냐고.

얼마나 잘 살았느냐고.

그저 바위 하나 내어주고, 소나무 그늘 하나 보여주고, 힘들면 잠시 앉았다 가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오래 다닌 산이 좋다.

말하지 않아도 되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며,

오랜만에 찾아가도 다시 처음처럼 길을 내어주는 곳.

나는 그렇게 수락산으로 한 해를 넘기고 있었다.


에필로그|한 해를 잘 살았다는 것

수락산은 익숙한 산이었다.

그래서 더 깊었다.

멀리 있는 산은 새로움을 주지만, 가까운 산은 나를 오래 지켜본다. 내가 빠르게 걷던 시절도, 힘으로 바위를 오르던 시절도, 친구들과 웃으며 오르던 날도, 혼자 조용히 찾아온 날도 수락산은 모두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해의 끝에서 수락산은 나를 평가하지 않았다.

무엇을 이루었느냐고 묻지 않았고, 얼마나 잘 살았느냐고 따지지 않았다.

다만 미끄러운 바위길을 내어주었고, 바위틈의 작은 소나무를 보여주었으며, 겨울 햇살이 드는 자리를 잠시 허락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한 해를 잘 살았다는 것은 거창한 성취를 하나 더 세웠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미끄러운 길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조심했고,

넘어질 뻔한 순간에도 다시 발을 딛고,

잠시 앉았다가 다시 걸어 내려온 것.

그 정도면 괜찮은 한 해였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수락산은 내게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새해에도 나는 아마 이 산을 다시 찾을 것이다.

그때도 산은 묻지 않을 것이다.

왜 왔느냐고.

무엇을 이루었느냐고.

그저 익숙한 바위 하나와 소나무 한 그루를 내어주며,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고 말없이 길을 열어줄 것이다.


🌿 이 산행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수락산은 도심 접근성이 좋은 산이지만, 바위 구간이 많아 계절에 따라 체감 난이도가 달라진다. 의정부시 관광 안내는 수락산을 화강암 능선이 아름다운 바위산으로 소개하며, 기차바위와 철모바위 등 다양한 기암괴석을 특징으로 든다.

특히 겨울철에는 눈이 많이 쌓인 날보다 비가 온 뒤 기온이 내려간 날을 더 조심해야 한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살얼음이 바위 홈과 그늘진 구간에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산이라도 방심하지 말고, 접지력 좋은 등산화와 장갑, 필요하면 아이젠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학림사 방향으로 하산할 경우 산행의 긴장과는 다른 고요한 분위기를 만날 수 있다. 학림사는 수락산 자락에 자리한 사찰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671년 원효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 산행 준비 메모

수락산은 가까워도 결코 가볍게만 볼 산은 아니다. 바위 구간이 많고 겨울에는 결빙 위험이 있으므로 손을 짚을 수 있는 장갑과 미끄럼에 대비한 장비가 필요하다.

해넘이·연말 산행은 마음이 앞서기 쉽다. 새해 계획보다 중요한 것은 무사히 내려오는 일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산행일수록 천천히 걷고, 오래 바라보고, 안전하게 내려오는 것이 좋다.


🌿 관련 사이트 및 여행 정보

🌿 ① 의정부시 수락산 관광 안내

👉 의정부시 수락산 관광 안내 바로가기

수락산의 위치, 높이, 화강암 능선과 기차바위·철모바위 등 주요 바위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② 서울관광 수락산 안내

👉 서울관광 수락산 안내 바로가기

서울 노원구에서 접근하는 수락산 여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③ 학림사 정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학림사 바로가기

학림사의 역사와 창건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④ 서울교통공사

👉 서울교통공사 바로가기

지하철 4호선 불암산역과 7호선 수락산역 등 대중교통 이용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수락산 겨울 산행 준비물 체크리스트

접지력 좋은 등산화
등산 장갑
겨울철 아이젠 또는 체인젠
방풍 재킷
보온 모자 또는 넥워머
충분한 식수
간단한 행동식
보조배터리
스틱
미끄러운 바위에서 서두르지 않는 마음
한 해를 조용히 돌아볼 시간


🌿 추천 숙박

🏡 서울 노원·도봉권

수락산은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아 당일 산행으로 충분하지만, 멀리서 온다면 서울 노원·도봉권을 숙박 거점으로 잡을 수 있다. 수락산뿐 아니라 불암산, 도봉산,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서울 북부권 산행과 연계하기 좋다.

🏡 의정부권

의정부 방면에서 수락산을 오르거나 기차바위·장암 방향 산행을 계획한다면 의정부권 숙박도 편리하다. 산행 뒤 의정부 시내 식사와 교통 연계가 좋다.


🌄 이전 산행 이야기 다시보기

「산바람 · 글바람 ⑱」 덕적도 비조봉 산행기, 시간을 건너는 섬의 능선

덕적도 비조봉에서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지나온 시간을 건넜습니다. 섬은 말이 없었고, 비조봉은 높지 않았지만 오래전의 나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산이었습니다.

소야교 위로 운무가 걷히고 윤슬이 번질 때, 삶의 빛나는 순간은 늘 지나간 뒤에야 보인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덕적도는 오래된 친구처럼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바람과 바다와 기억을 조용히 내어준 섬이었습니다.


🌄 다음 산행 이야기

「산바람 · 글바람 ⑳」 설악산 울산바위 산행기

수락산에서는 한 해의 끝에서 가장 익숙한 산에게 안부를 물었습니다. 미끄러운 바위길과 겨울 햇살, 바위틈의 작은 소나무와 학림사의 고요 속에서, 한 해를 잘 산다는 것이 꼭 대단한 성취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에는 설악산 울산바위로 향합니다. 거대한 바위 능선과 동해 쪽으로 열리는 풍경 앞에서, 수락산의 익숙한 바위와는 또 다른 산의 표정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수락산이 오래된 친구처럼 말없이 한 해를 배웅해준 산이었다면, 설악산 울산바위에서는 압도적인 바위의 크기와 바람 속에서 다시 한 번 사람의 작음과 산의 깊이를 마주해보려 합니다.


🍃 산길의 끝에서

수락산은 오래 다닌 산이다.

그래서 특별하지 않은 듯하지만,
오히려 그 익숙함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산이다.

한 해의 끝에서
나는 다시 그 산을 찾았다.

옛 당고개라는 이름은
불암산역으로 바뀌었지만,
기억 속의 역은 아직도
당고개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었다.

산길에는 잔설과 살얼음이 섞여 있었고,
바위는 익숙한 얼굴을 하고도
조심하라고 말하는 듯했다.

탱크바위로 오르는 길에서
나는 발끝을 살피며 걸었다.

한 발을 어디에 놓을 것인가.

그 생각 하나만 남자
마음은 오히려 맑아졌다.

바위틈의 작은 소나무는
눈 한 점을 머리에 이고 서 있었다.

원하는 자리에서만
살 수 없었던 한 해.

바람을 피하지 못했고,
뜻대로 되지 않는 곳에
뿌리를 내려야 했던 시간.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쓰러지지 않고
자기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날이 있다.

겨울 햇살 아래 앉아
나는 아무 다짐도 하지 않았다.

새해에는 더 잘 살아야겠다는 말도
마음속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햇볕을 받으며
한 해와 나 사이에
작은 거리를 두었다.

산은 답을 주지 않았다.

다만 거리를 주었다.

문제와 나 사이에,
지나온 시간과 오늘의 나 사이에,
미끄러운 길과 다시 딛는 발 사이에.

하산길의 학림사는 조용했고,
낙엽은 겨울 햇살 아래
말없이 누워 있었다.

한 해를 잘 살았다는 것은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미끄러운 길에서도
다시 발을 딛고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수락산은 끝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무심함이 좋았다.

왜 왔느냐고 묻지 않고,
무엇을 이루었느냐고 따지지 않고,

그저 바위 하나 내어주고,
소나무 그늘 하나 보여주고,
힘들면 잠시 앉았다 가라고 하는 산.

나는 그렇게
수락산으로 한 해를 넘기고 있었다.

다음 산길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산바람 · 글바람

수락산으로
한 해를 넘겼습니다.

멀리 있는 산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산.

자주 찾았지만
늘 새롭게 읽히는 산.

옛 당고개라는 이름은
불암산역으로 바뀌었지만,

내 기억 속에는 아직도
겨울바람 부는 당고개의 계단과
배낭을 멘 사람들의 뒷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산길에는
잔설과 살얼음이 섞여 있었고,

익숙한 바위도
그날만큼은 조심하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한 발,
또 한 발.

미끄러운 바위 위에서
나는 지금 이 발을
어디에 놓을 것인지만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맑아졌습니다.

바위틈 작은 소나무는
눈 한 점을 머리에 이고
묵묵히 서 있었습니다.

원하는 자리에서만
살 수 없었던 한 해.

뜻대로 되지 않는 곳에
뿌리를 내려야 했고,

바람을 피하지 못한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겨울 햇살이 드는 바위에 앉아
나는 아무 결심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 해와 나 사이에
조금의 거리를 두었습니다.

산은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거리를 주었습니다.

문제와 나 사이에,
지나온 시간과 오늘의 나 사이에,
미끄러운 길과 다시 딛는 발 사이에.

수락산은 묻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이루었느냐고,
얼마나 잘 살았느냐고,
왜 이제 왔느냐고.

그저 바위 하나 내어주고,
소나무 하나 보여주고,
힘들면 잠시 앉았다 가라고 했습니다.

한 해를 잘 살았다는 것은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미끄러운 길에서도
다시 발을 딛고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렇게
수락산으로 한 해를 넘겼습니다.

산바람 · 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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