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 글바람 ㉗」 소백산 산행기, 철쭉이 떠난 능선에 바람만 남아 있었다

 철쭉은 떠났지만, 소백산 능선에는 사람과 오래된 기억이 가득했다. 지금은 폐역이 되어버린 희방사역에서 소백산을 올라갔던 기억이 나서 그때의 기억을 다시 에세이로 적어본다.

희방사역에서 희방폭포와 희방사를 지나 연화봉, 제1연화봉,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소백산 능선 산행 풍경과 천동계곡 하산길
지금은 폐역이 되버린 소백산역(희방사역)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철쭉은 이미 떠났지만, 소백산 능선에는 바람이 남아 있었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오래전의 나와 다시 마주했다.


오래된 산행을 다시 꺼내며

소백산을 다녀온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희방사 쪽 길과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깔딱고개만큼은 아직도 또렷하다. 내려가는 길조차 힘들 정도였으니, 오를 때는 얼마나 가팔랐을까.

이번 글은 새로 다녀온 산행기가 아니다. 오래전 다녀온 산행을 다시 꺼내 쓰는 회상 에세이다. 사진첩 속 날짜와 희미해진 기억을 다시 맞춰보며, 그날의 길을 마음속에서 한 번 더 걸어보는 기록이다.

산은 같은 자리에 있지만, 사람의 기억은 조금씩 흐려진다. 어떤 장면은 사라지고, 어떤 장면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희방사역의 작은 풍경, 희방폭포의 물소리, 깔딱고개에서 차오르던 숨, 사람들로 가득했던 비로봉, 그리고 단양역에서 바라본 붉은 노을. 소백산의 그 하루는 그렇게 몇 개의 선명한 장면으로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오래된 산행을 다시 쓰는 일은 단순히 지난 일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고, 더 욕심이 많았고, 조금은 무모했을지도 모를 나. 소백산은 그 오래전의 나를 조용히 다시 불러냈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소백산 비로봉

📅 산행일
2013년 6월 5일

🥾 산행 코스
희방사역 → 희방폭포 → 희방사 → 연화봉 → 제1연화봉 → 비로봉 → 천동리 주차장

📏 산행 거리
약 17km

산행 시간
약 7시간

난이도
★★★★☆

희방사 깔딱고개와 연화봉 오름길이 힘들고, 비로봉 이후 천동계곡 하산길도 길다. 특히 철쭉철이나 주말에는 탐방객이 많아 체력과 시간 안배가 필요하다.


🌳 산행 환경
기차 산행 · 희방사역 · 희방폭포 · 희방사 · 깔딱고개 · 연화봉 · 제1연화봉 · 비로봉 · 천동계곡 · 단양역 노을

🏡 숙박
당일 기차 산행으로 가능하지만, 단양이나 영주·풍기권 숙박과 연계하면 더 여유롭다.

🚆 이동방법
청량리역에서 중앙선 열차 이용, 희방사역 하차 후 산행 시작. 하산 후 천동리에서 버스와 택시를 이용해 단양역으로 이동

🚉 청량리역 도착
오후 9시 12분


국립공원공단은 소백산국립공원 탐방 안내에서 희방사코스와 천동계곡코스를 주요 탐방 코스로 안내하고 있다. 희방사코스는 희방폭포와 희방사를 거쳐 연화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천동계곡코스는 비로봉과 천동 방향을 잇는 대표 하산·탐방 코스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은 희방폭포를 연화봉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만드는 높이 28m의 폭포로 소개하며, 내륙지방의 큰 폭포 가운데 하나이자 영남의 제1폭포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한다.


새벽 기차를 타고

그 오래된 기억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 혼자 소백산으로 향하려 했다. 그런데 마침 친구가 함께하겠다고 나섰다. 둘은 청량리역에서 오전 6시 40분 안동행 중앙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원래는 풍기역까지 가는 표를 예약했지만, 알아보니 희방사역에서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오전 9시, 열차에서 내려선 희방사역은 이름 그대로 작은 간이역이었다. 시설은 세월이 흐르며 달라졌겠지만, 역 주변의 한적한 분위기와 느긋한 풍경만큼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은 폐역이 되어 기억 속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 당시 희방사역 앞에는 희방사나 죽령까지 산행객을 태워다 주려는 택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를 탈까 잠시 망설였지만 친구가 말했다.

“그냥 걸어가자.”

우리는 이정표를 따라 희방사로 향했다. 희방사까지 약 3.5킬로미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기도 전에 적지 않은 거리였지만 마음은 여유로웠다. 산행의 들머리는 언제나 조금 들뜬다. 아직 다리는 아프지 않고, 배낭은 견딜 만하며, 앞으로 펼쳐질 길은 막연히 아름다울 것만 같다.

그날의 우리도 그랬다. 앞으로 만날 깔딱고개와 비로봉의 북새통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산행의 초입에서는 누구나 조금 순진하다.


희방사로 가는 길

시골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작은 계곡에는 맑은 물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길가에는 야생화와 산나물이 자라고, 어린 시절 보았던 뱀딸기와 산딸기가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었다. 마치 산으로 향하는 우리를 맞이하려고 길 양옆에 도열한 듯했다.

길가에 앉은 할머니 몇 분은 김밥 몇 줄을 앞에 놓고 산행객들에게 말을 건넸다.

“아침 먹고 가요.”

낯선 산행객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정겨웠다. 산에 오르기도 전에 오래전 고향 마을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산행은 꼭 정상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이런 시골길에서, 김밥을 앞에 놓고 말을 건네는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이미 시작된다.

작은 오솔길과 계곡길을 지나자 희방사 주차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희방폭포의 시원한 물줄기가 눈앞에 펼쳐졌다.

반갑다, 희방폭포.

희방사역에서부터 걸어 올라온 수고가 무색하지 않았다. 바위 사이로 쏟아지는 물소리만으로도 온몸의 열기가 한순간 식는 듯했다. 폭포는 산이 산행객에게 내어주는 첫 위로 같았다. 아직 힘든 오르막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산은 먼저 물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었다.


희방사와 깔딱고개

폭포를 지나 희방사에 들어섰다. 숲속에 자리한 절집은 오랜 세월을 품은 채 묵직하게 산을 지키고 있었다. 처마 아래로 스치는 바람과 목조건물의 고요한 모습이 잠시 발걸음을 붙들었다.

희방사는 소백산 희방계곡 안에 자리한 오래된 사찰이다. 희방폭포를 지나 연화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있어, 산행객에게는 잠시 숨을 고르는 자리이기도 하다. 소백산 천문대 안내에서도 희방사 코스를 희방탐방지원센터에서 희방폭포와 희방사를 거쳐 연화봉에 이르는 가파른 코스로 소개한다.

약수 한 사발을 들이켜고 본격적으로 희방사 깔딱고개에 발을 올렸다. 역시 이름값을 하는 길이었다. 가파른 계단과 오르막이 쉴 틈 없이 이어졌다.

더구나 산길에는 사람까지 넘쳐났다. 서울의 수락산이나 도봉산 주말 풍경을 떠올리게 했지만, 어쩌면 그보다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수원, 청주, 인천. 전국 각지에서 온 산악회 사람들의 목소리가 산길을 가득 메웠다.

철쭉은 이미 절정을 지나 대부분 지고 있었지만, 소백산을 찾은 사람들의 행렬은 끝날 줄 몰랐다. 꽃은 떠났는데 사람은 남아 있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철쭉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아직 산을 오를 수 있는 자기 자신을 확인하러 온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더위와 피로, 그리고 불어난 뱃살까지 한꺼번에 발목을 잡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연화봉 능선으로

멀리 천문대가 보이고 연화봉 능선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꾸역꾸역 오르고 또 내려왔다. 좁은 길에서는 오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스칠 정도였다. 힘이 들었지만, 산길은 조금씩 우리를 위로 올려보냈다.

연화봉을 지나 제1연화봉으로, 다시 비로봉을 향해 걸었다. 시야가 트이는 능선에 올라서자 바람이 달라졌다. 답답했던 숲길을 벗어나니 소백산의 둥글고 부드러운 능선이 멀리까지 이어졌다. 철쭉은 떠났지만 초록의 능선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소백산은 이름처럼 부드러운 산이다. 산세가 거칠게 솟구치기보다 둥글고 넓게 펼쳐진다. 그러나 부드럽다고 해서 쉽다는 뜻은 아니다. 부드러운 능선 아래에는 긴 오르막과 긴 하산길이 숨어 있다. 산도 사람도 그렇다. 겉으로 순해 보이는 것들이 때로는 더 깊은 힘을 품고 있다.

산허리를 타고 흐르는 바람과 멀리 겹쳐지는 봉우리들이 힘든 걸음을 잠시 잊게 했다. 하지만 능선의 풍경을 천천히 감상할 여유는 많지 않았다. 앞에도 사람, 뒤에도 사람이었다. 철쭉이 떠난 자리를 사람들의 발걸음이 대신 채우고 있었다.

국립공원공단 자료에서도 소백산국립공원은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 일대에 걸쳐 있으며, 희방사코스와 천동계곡코스 등 여러 탐방로가 운영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소백산국립공원이 1987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주봉인 비로봉 일대에는 주목 군락과 야생화가 어우러진다고 설명한다.


사람들로 가득했던 비로봉

오후 2시 20분, 마침내 비로봉에 도착했다. 정상은 그야말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비로봉 정상석의 글자조차 제대로 읽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진 한 장을 찍으려는 사람들과 막 도착해 숨을 고르는 이들이 뒤엉켜 있었다.

정상은 조용한 성취의 자리가 아니라, 사람들로 들끓는 작은 광장 같았다. 처음에는 조금 아쉬웠다.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왔으니, 정상에서 잠시라도 바람을 맞으며 멀리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도 각자의 이유로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누군가는 철쭉을 보러 왔고, 누군가는 산악회 사람들과 약속을 지키러 왔고, 누군가는 자신이 아직 걸을 수 있는지 확인하러 왔을 것이다.

그 북새통 속에서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예전에 함께 산행하던 산악회 회원이었다. 이 많은 사람 가운데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참 신기한 일이었다. 산에서 헤어진 인연을 다시 산에서 만났으니, 인연이란 끊어진 듯하다가도 어느 길목에서 다시 이어지는 모양이다.

정상에서 오래 머물 만한 자리도 없었다. 우리는 사진 몇 장만 서둘러 남기고 천동계곡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비로봉은 높았지만, 그날 내게 더 오래 남은 것은 정상석보다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숨을 몰아쉬며 웃는 얼굴, 사진을 부탁하는 얼굴, 오래 걷고도 아직 더 갈 곳이 남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 산은 때때로 풍경보다 사람을 더 많이 보여준다.


오늘의 시

소백산 비로봉에서 / 송현

새벽 기차를 타고

희방폭포 물소리를 따라 올랐다

철쭉은 먼저 다녀가고

바람만 능선에 남아 있었다

비로봉에 서니

산은 아무 말 없는데

내가 살아온 길이

멀리까지 보였다

단양의 저녁노을 아래

산은 그대로 남고

나는 조금 늙어서

다시 내려왔다


 

천동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내려가는 길도 오가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길은 온통 돌과 바위로 이어졌다. 오르막에서 이미 지친 다리는 바위가 가득한 내리막을 만나 더욱 무거워졌다.

그나마 길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힘든 발걸음을 달래주었다. 물소리가 가까운 곳에 잠시 자리를 잡고 배낭을 내려놓았다. 차가운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땀을 식히니, 그제야 지금까지 걸어온 긴 능선이 실감 났다.

희방사에서 비로봉까지 약 11킬로미터, 비로봉에서 천동리 주차장까지 약 6.8킬로미터. 희방사역에서 걸어온 길까지 생각하면 다리가 아픈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약 17킬로미터의 산길을 무사히 걸었다는 성취감은 피로보다 컸다. 하고자 했던 일을 끝냈다는 마음이 무거운 다리마저 잠시 가볍게 했다.

천동계곡의 물소리는 하산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위로 같았다. 정상에 오를 때는 위를 보고 걷지만, 내려올 때는 자꾸 아래를 보게 된다. 발을 잘못 디디면 넘어지기 때문이다. 산행의 마지막은 늘 조심스럽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삶도 비슷하다. 거의 다 왔다고 방심할 때, 작은 돌 하나에 발이 걸린다.

우리는 천천히 내려갔다. 계곡물은 옆에서 계속 흘렀고, 사람들의 목소리도 조금씩 낮아졌다. 긴 하루의 산행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천동리에서 단양으로

천동리 주차장에 내려오니 종점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버스 한 대가 보였다. 기사에게 물어보니 단양을 지나 제천으로 가는 버스라고 했다. 산행객보다 동네 주민들이 더 많이 타고 있었고, 버스 안은 금세 사람들로 북적였다.

“단양도 가나요?”

묻는 말에 기사님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제천 가는 버스니까 단양은 지나가지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다니는 듯했다. 마침 버스를 만났으니 택시를 타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었다. 차를 가져오지 않은 산행에서 이런 우연은 작은 복권 당첨처럼 반갑다. 산에서 내려와 교통편이 잘 맞아떨어지면, 그날 산행 전체가 조금 더 순하게 기억된다.

단양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지친 몸을 쉬기로 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까지도 두 시간 이상 남아 있었다. 주변에는 철쭉제를 위해 설치했던 행사 천막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축제장을 돌아다니기보다는 가까운 전통시장을 찾아보기로 했다.

일요일이라 문을 닫은 식당이 많았다. 한참을 걷다가 순대볶음집을 발견했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 늦은 저녁을 먹으며 하루의 산행을 천천히 되짚었다.

산행 뒤에 먹는 음식은 맛보다도 상황이 만든다. 다리가 아프고, 배낭은 내려놓고 싶고, 몸에는 하루의 땀이 남아 있을 때, 따뜻한 음식 한 접시는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우리는 말이 많지 않았지만, 서로 알고 있었다. 오늘 꽤 잘 걸었다는 것을.


단양역의 저녁노을

식사를 마치고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왔지만 단양역으로 가는 버스는 다시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결국 우리는 택시를 탔다.

단양역에 도착하자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에워싸고 있었다. 산을 내려온 뒤에 만나는 노을은 언제나 조금 특별하다. 하루를 온전히 걸어온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작은 위로처럼 느껴진다.

도로는 철쭉제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량으로 막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편안한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 돌아갈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보다 더 행복한 산행의 마무리도 없었다.

열차를 기다리며 단양역 벤치에 몸을 기댔다. 고개를 돌리자 붉게 물든 하늘이 눈앞에 가득했다.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노을이 아까웠다. 나는 벤치에 기대 누운 채 휴대전화를 들어 석양을 사진 속에 담았다.

오후 7시 10분, 단양역에서 새마을호에 올랐다. 기차는 어둠 속을 달려 오후 9시 12분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그렇게 소백산의 긴 하루가 끝났다.

그날의 마지막 장면은 정상석도, 철쭉도 아니었다. 단양역 벤치에 기대 바라본 저녁노을이었다. 산행은 산에서 끝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까지 이어진다. 지친 몸을 기차에 싣고, 어둠 속을 달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하루의 산행은 조용히 마무리된다.


철쭉은 졌지만

철쭉은 이미 대부분 지고 없었지만,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산을 뒤덮고 있었다. 좁은 산길과 정상은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 듯했고, 그 모습이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특히 중년 산행객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저마다 살아온 시간과 무거운 배낭 하나씩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었다. 꽃이 지고 난 산에도 사람은 모인다. 어쩌면 사람들은 철쭉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아직 산을 오를 수 있는 자신의 두 다리를 확인하러 온 것인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랬다. 십 년 전의 희미한 기억을 따라 다시 오른 소백산에서 나는 옛길을 만났고, 오래전의 나를 만났다. 힘들었던 깔딱고개도, 사람들로 가득한 비로봉도, 천동계곡의 차가운 물소리도 하루가 지나자 모두 좋은 기억이 되었다.

산은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그래도 여전히 산을 오르고, 긴 길을 걸은 뒤 저녁노을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철쭉은 졌지만 소백산의 하루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지금은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때의 나보다 더 느려졌고, 더 조심스러워졌고, 산길에서 바라보는 것도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얼마나 높이 올랐는지, 얼마나 멀리 걸었는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어느 장면이 마음에 남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그래서 소백산을 다시 떠올린다. 희방사역의 한적함, 희방폭포의 물소리, 깔딱고개의 숨, 비로봉의 사람들, 천동계곡의 물, 단양역 노을. 그 모든 장면이 오래된 사진처럼 내 안에서 다시 빛난다.


에필로그|산은 그대로 남고

오래된 산행을 다시 쓰다 보면, 그때의 길보다 그때의 내가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2013년 6월 5일의 소백산은 철쭉이 이미 많이 진 뒤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산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꽃이 떠난 자리를 사람들의 발걸음이 대신 채우고 있었다.

나는 희방사역에서 내려 희방폭포 물소리를 따라 걸었고, 희방사 깔딱고개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연화봉과 제1연화봉을 지나 비로봉에 섰지만, 정상은 고요한 봉우리가 아니라 사람들로 가득한 작은 광장이었다. 그 속에서 오래전 산악회 인연을 다시 만났다. 산에서 헤어진 사람을 산에서 다시 만나는 일. 그것도 소백산이 내어준 작은 선물이었다.

하산길의 천동계곡은 지친 다리를 식혀주었고, 단양역의 저녁노을은 하루의 마지막을 붉게 감싸주었다. 산행의 끝에서 나는 생각했다. 산은 그대로 남고, 사람만 조금씩 달라지는구나.

그때도 나는 산을 좋아했고, 지금도 산을 좋아한다. 하지만 산을 바라보는 마음은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정상에 서야 산행이 완성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길가의 산딸기와 할머니의 김밥 한마디, 계곡물에 담근 손, 기차역 벤치에서 바라본 노을까지 모두 산행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소백산은 철쭉이 진 뒤에도 아름다웠다. 꽃이 없어서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남아 있었고, 능선이 남아 있었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오래전의 내가 남아 있었다.

언젠가 다시 소백산에 오르게 된다면, 나는 아마 그날보다 조금 더 천천히 걸을 것이다. 꽃이 피었는지 졌는지보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더 오래 느낄 것이다. 비로봉 정상석 앞에서 서둘러 사진을 찍기보다, 멀리 이어지는 능선을 조용히 바라볼 것이다.

산은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조금 늙어서 다시 내려왔고, 또 조금 늙어서 다시 올라갈 것이다.


🌿 이 산행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소백산 희방사 코스는 희방폭포와 희방사를 지나 연화봉으로 오르는 대표적인 코스다. 국립공원공단 소백산국립공원 탐방 안내에서도 희방사코스와 천동계곡코스를 주요 코스로 안내하고 있으며, 탐방 전 입산시간과 탐방로 통제 정보를 확인하라고 안내한다.

희방사에서 연화봉으로 오르는 길은 짧게 느껴질 수 있지만 가파른 구간이 이어진다. 특히 철쭉철에는 탐방객이 많아 좁은 길에서 정체가 생길 수 있다. 비로봉 이후 천동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도 길고 돌길이 이어지므로, 하산 시간과 무릎 부담을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산행 준비 메모

첫째, 희방사 깔딱고개는 체력 안배가 필요하다.
초반부터 무리하면 연화봉 이후 비로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에서 체력이 빨리 떨어질 수 있다.

둘째, 철쭉철에는 사람도 산행 변수다.
꽃이 절정을 지났더라도 탐방객이 많을 수 있다. 정상 사진이나 좁은 산길 통과에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셋째, 하산 교통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천동리에서 단양이나 제천 방향으로 이동할 경우 버스 배차 간격이 길 수 있으므로, 기차 시간과 함께 여유 있게 계획하는 것이 좋다.

🌿 관련 사이트 및 여행 정보

🌿 관련 사이트 및 여행 정보

① 국립공원공단 소백산국립공원

👉 국립공원공단 소백산국립공원 바로가기

소백산 탐방 코스, 탐방로 통제 정보, 입산시간 안내 등을 확인할 수 있다.

② 대한민국 구석구석 희방폭포

👉 대한민국 구석구석 희방폭포 바로가기

희방폭포와 희방계곡, 소백산 연화봉 방면 여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③ 대한민국 구석구석 소백산 천문대

👉 대한민국 구석구석 소백산 천문대 바로가기

연화봉 인근 소백산 천문대와 희방사 코스 정보를 함께 참고할 수 있다.

④ 단양군 문화관광

👉 단양군 문화관광 바로가기

단양역, 천동리, 단양 전통시장과 주변 여행 정보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⑤ 영주시 문화관광

👉 영주시 문화관광 바로가기

희방사, 희방폭포, 풍기, 부석사 등 영주권 여행 정보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⑥ 코레일 기차 예매

👉 코레일 기차 예매 바로가기

🌿 소백산 산행 준비물 체크리스트

충분한 식수
간단한 행동식
무릎 보호대 또는 스틱
접지력 좋은 등산화
여분 양말
바람막이
땀 닦을 수건
보조배터리
기차표와 하산 교통 확인
철쭉철 혼잡을 감안한 여유 시간
깔딱고개 앞에서 욕심 줄이는 마음
노을을 그냥 보내지 않을 여유

🌿 추천 숙박과 주변 여행

🏡 단양권

천동리로 하산하거나 단양역을 이용한다면 단양권 숙박과 여행을 함께 계획하기 좋다. 도담삼봉, 고수동굴, 단양강 잔도, 만천하스카이워크 등과 연계하면 산행 뒤 여행의 폭이 넓어진다.

👉 단양군 문화관광 바로가기

🏡 영주·풍기권

희방사, 희방폭포, 부석사, 소수서원 등을 함께 둘러보려면 영주·풍기권 숙박도 좋다. 희방사 방면 들머리 접근이 편하고, 소백산 동쪽 자락의 분위기를 느끼기 좋다.

👉 영주시 문화관광 바로가기
https://www.yeongju.go.kr/open_content/tour/index.do

🌄 이전 산행 이야기 다시보기

「산바람 · 글바람 ㉖」 청송 주왕산 산행기, 기다림 끝에 만난 전설의 산

주왕산에서는 한여름 더위 속에서 대전사와 기암, 주봉과 후리메기삼거리, 용추폭포를 지나며 오래 미뤄둔 약속 하나를 지켰습니다. 가메봉에는 가지 못했지만, 가지 않기로 한 판단 또한 산이 가르쳐준 지혜였습니다.

주왕산이 전설과 기다림의 산이었다면, 소백산은 오래된 기억을 다시 꺼내 걷는 산이었습니다. 철쭉은 이미 떠났지만, 희방폭포의 물소리와 비로봉의 바람, 단양역의 노을은 십여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 다음 산행 이야기

「산바람 · 글바람 ㉘」 덕유산 산행기

소백산에서는 희방사역에서 시작해 희방폭포와 희방사, 연화봉과 제1연화봉을 지나 비로봉에 올랐고, 천동계곡을 따라 단양으로 내려왔습니다. 철쭉은 이미 대부분 지고 없었지만, 바람만 남은 능선에서 오래전의 나를 다시 만났습니다.

다음 산행은 덕유산으로 향합니다. 덕유산은 넓은 능선과 향적봉, 겨울 상고대와 구천동 계곡으로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는 산입니다. 소백산이 철쭉이 떠난 능선 위에서 바람과 노을을 남겨준 산이었다면, 덕유산에서는 더 깊은 능선과 계곡 사이에서 또 다른 계절의 문장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산길의 끝에서

소백산을 다녀온 지 십 년이 넘었다. 그날의 모든 장면을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희방사역에서 내려 걷던 시골길, 희방폭포의 시원한 물소리,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깔딱고개,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던 비로봉, 그리고 단양역에서 바라본 붉은 노을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철쭉은 이미 대부분 지고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산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때는 그 많은 사람이 조금 버겁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들도 모두 자기만의 이유로 산에 오른 사람들이었다. 꽃을 보러 온 사람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대부분은 아직 걸을 수 있는 자신을 확인하러 온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오래전 기억을 확인하러 갔고, 산 위에서 오래전의 나를 다시 만났다. 예전보다 더 힘들어진 숨과 무거워진 다리, 불어난 뱃살까지 데리고 올랐지만, 그래도 비로봉에 섰고 천동계곡으로 내려왔다. 산은 그대로 있었고, 나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하산 뒤 단양역에서 바라본 저녁노을은 그날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산을 다녀온 사람에게 노을은 그냥 하늘빛이 아니다. 하루 종일 걸은 몸과 마음을 조용히 감싸주는 위로다. 나는 벤치에 기대 누운 채 그 붉은 하늘을 사진에 담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진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그 노을을 아까워하던 내 마음이었다.

소백산은 철쭉이 진 뒤에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꽃이 없어도 능선은 남아 있었고, 바람은 여전히 불었으며, 계곡물은 지친 발걸음을 달래주었다. 산은 꽃이 있을 때만 산이 아니다. 사람도 가장 빛나는 때만 사람인 것은 아니다. 조금 지나고, 조금 늦고, 조금 지친 모습 속에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이 있다.

지금은 그날로부터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래도 다시 가보고 싶다. 이번에는 조금 더 천천히 걸으며, 철쭉이 피었는지 졌는지보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오래 느껴보고 싶다. 산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또 조금 늙어서 오르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산을 다시 찾는다는 것은, 결국 나를 다시 찾는 일이니까.

다음 산길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 산바람 · 글바람

소백산에 다녀온 지
십 년이 넘었습니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희방사역의 작은 풍경과
희방폭포의 물소리,

그리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깔딱고개만큼은
아직도 또렷합니다.

새벽 기차를 타고
희방사역에 내렸습니다.

지금은 기억 속의 역이 되었지만,
그날의 한적한 분위기와
느긋한 풍경은
아직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택시를 탈까 망설이던 우리에게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냥 걸어가자.

그 한마디에
산행은 조금 더 길어졌고,
기억은 조금 더 깊어졌습니다.

길가에는
뱀딸기와 산딸기가 얼굴을 내밀고,

할머니들은 김밥 몇 줄을 앞에 놓고
아침 먹고 가라며
낯선 산행객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산에 오르기도 전에
오래전 고향 마을을 걷는 듯했습니다.

희방폭포의 물소리를 지나
희방사 깔딱고개에 들자,

숨은 턱까지 차올랐고
사람들의 행렬은
산길을 가득 메웠습니다.

철쭉은 이미
대부분 지고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꽃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아직 걸을 수 있는
자신의 두 다리를 확인하러
산에 오른 것인지도 모릅니다.

연화봉을 지나
제1연화봉으로,

다시 비로봉을 향해 걸었습니다.

능선 위에는
철쭉 대신 바람이 남아 있었습니다.

비로봉에 서니
산은 아무 말이 없는데,

내가 살아온 길이
멀리까지 보이는 듯했습니다.

하산길의 천동계곡은
지친 다리를 식혀주었고,

단양역의 저녁노을은
긴 하루의 끝을
붉게 감싸주었습니다.

산은 그대로 남고,
나는 조금 늙어서
다시 내려왔습니다.

지금은 그날로부터
또 십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꽃이 피었는지 졌는지보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조금 더 오래 느끼며 걷고 싶습니다.

소백산은
철쭉이 진 뒤에도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산은 그대로 남아 있고,

나는 또 조금 늙어서
다시 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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