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 글바람 ⑳」 설악산 울산바위 산행기, 금강산으로 가지 못한 바위 앞에서
| 영하의 새벽, 설악동 소공원에서 시작해 신흥사와 흔들바위, 계조암을 지나 울산바위로 올랐다. 잔설과 얼음이 남은 계단, 강한 겨울바람 속에서 한 걸음씩 두려움을 데리고 올랐던 산행. |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울산바위는 금강산에 닿지 못했지만 설악의 얼굴이 되었다. 그 바위 앞에서 나는 뜻한 곳에 이르지 못한 삶도, 오래 그 자리에 서면 누군가의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금강산으로 가지 못한 바위와 겨울바람을 오르는 사람
흔들바위까지는 그래도 갈 만했다.
겨울바람은 차가웠지만 아직 마음까지 시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설악동을 지나 신흥사 쪽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산은 조금씩 도시의 소리를 거두어 갔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멀어지고,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스치는 겨울바람 소리가 가까워졌다.
겨울의 설악은 다른 계절보다 말이 적다.
봄에는 꽃이 말을 걸고, 여름에는 계곡물이 쉬지 않고 떠들며, 가을에는 단풍이 사람의 눈길을 붙잡는다. 그러나 겨울의 설악은 많은 것을 내려놓은 얼굴이다.
나무는 잎을 벗고,
바위는 맨몸을 드러내며,
길은 눈과 얼음 아래 자신의 성질을 숨긴다.
그래서 겨울 산에서는 눈보다 마음이 먼저 길을 살펴야 한다.
그렇게 걷다 흔들바위를 다시 만났다.
몇 번을 보았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반갑다. 산을 오래 다니다 보면 바위에도 얼굴이 생기는 모양이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나는 흔들바위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잘 있었는가.
물론 대답은 없었다.
사람들이 힘껏 밀어보고, 사진을 찍고, 웃으며 떠나도 바위는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밀면 흔들리는 듯하지만 끝내 쓰러지지 않는 바위.
그 모습 앞에서 문득 사람의 삶을 생각했다.
우리도 얼마나 많이 흔들리며 살아왔던가. 사람 때문에 흔들리고, 돈 때문에 흔들리고, 건강 때문에 흔들리고,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그런데도 여기까지 왔다.
흔들렸다고 해서 모두 쓰러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흔들바위에게 오래된 지인을 만난 사람처럼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흔들리되 쓰러지지 않는 것에 대한 묵묵한 존중 같은 인사였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설악산 울산바위
📅 산행 시기
영하의 겨울, 잔설과 얼음이 남아 있던 날
🥾 주요 코스
설악동 소공원 → 신흥사 → 흔들바위 → 계조암 → 울산바위 정상 → 원점회귀
📏 산행 거리
소공원에서 울산바위까지 왕복 기준 약 7~8km 내외
⏱ 산행 시간
왕복 약 4시간 전후, 겨울철 결빙과 강풍 시 더 여유 있게 계획
⭐ 난이도
★★★★☆
흔들바위까지는 비교적 완만하지만, 이후 울산바위로 오르는 계단과 암릉 구간은 겨울철 눈·얼음·강풍에 따라 체감 난이도가 크게 올라감
🌳 산행 환경
설악동 소공원 · 신흥사 · 흔들바위 · 계조암 · 급경사 계단 · 화강암 바위 능선 · 동해 조망
🏡 주변 여행
속초 설악동 · 신흥사 · 설악 케이블카 · 속초 해변 · 동명항 연계 가능
🚗 이동 방법
속초 시내에서 설악동 소공원 방면 버스 또는 자가용 이용
한국관광공사는 흔들바위를 설악산 소공원에서 울산바위로 오르는 중간에 위치한 명소로 소개하며, 소공원에서 흔들바위까지 약 1시간, 흔들바위에서 다시 울산바위까지 약 1시간 남짓 걸린다고 안내한다. 흔들바위는 계조암 입구의 와우암 또는 식당암이라 불리는 반석 위에 자리한 바위로, 살짝만 건드려도 흔들릴 듯 위태롭게 보이지만 혼자 밀어도 여럿이 함께 밀어도 흔들리는 정도가 비슷하다고 설명된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바위 속 절집, 계조암
흔들바위 뒤편의 계조암도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커다란 바위 속에 법당을 들인 계조암은 신흥사의 산내 암자로 알려져 있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에는 계조암이 신라시대 의상과 원효대사가 정진했다는 곳으로 소개되어 있고, 흔들바위가 이 계조암 입구에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바위 안에는 불경 소리가 머물고, 바위 밖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흘렀다.
둘은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아이들은 흔들바위를 밀며 웃고, 등산객들은 사진을 찍으며 이야기한다. 그 사이에서 불경 소리는 바람을 따라 낮게 흩어졌다.
산에서는 세속과 수행의 경계도 그렇게 선명하지 않은 모양이다.
웃음소리 곁에 목탁 소리가 있고,
땀 흘리는 등산객 곁에 합장하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산을 찾고, 누군가는 마음속 욕심 하나 내려놓기 위해 산을 찾는다.
그러나 목적은 달라도 모두 같은 길을 잠시 걷는다.
나는 계조암 앞에서 잠시 걸음을 늦췄다.
커다란 바위 안에 사람이 머물고, 그보다 더 큰 울산바위가 그 위에 버티고 있었다.
돌과 사람.
시간이 다른 두 존재가 한 공간에 함께 있었다.
사람에게 백 년은 긴 세월이지만, 바위에게는 어쩌면 한 번의 겨울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며 울산바위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금강산으로 가지 못한 바위
울산바위에는 오래된 전설이 전해진다.
조물주가 세상의 아름다운 바위들을 불러 모아 금강산의 일만이천 봉우리를 만들려 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울산의 거대한 바위도 금강산을 향해 길을 떠났다. 하지만 몸집이 너무 크고 발걸음이 느렸다. 험한 산과 강을 건너 어렵게 북쪽으로 올라왔지만, 설악산 부근에 이르렀을 때 금강산의 봉우리 수가 이미 모두 채워졌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다시 울산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너무 멀리 와버렸고, 결국 설악산에 눌러앉아 오늘의 울산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강원 고성군 관광 안내도 울산바위 전설을 소개하며, 조물주가 금강산을 빼어나게 만들기 위해 잘생긴 바위들을 불렀고, 울산의 큰 바위가 금강산을 향해 가다 이미 금강산이 모두 빚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설악산 미시령에 그대로 눌러앉았다고 설명한다. (강원고성군청)
나는 그 전설을 좋아한다.
금강산에 들어가지 못한 바위가 설악산의 얼굴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좋다.
사람의 삶과 조금 닮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처음 계획했던 곳에 도착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꿈꾸던 직장에 가지 못하고, 어떤 이는 사랑하던 사람과 함께하지 못하며, 어떤 이는 평생 바라던 곳과 다른 자리에서 삶을 꾸린다.
젊은 날에는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한다.
원하던 곳에 도착하지 못했으니 길을 잘못 걸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뒤 돌아보면 알게 된다.
금강산에 들지 못한 울산바위가 오히려 설악의 상징이 되었듯이, 사람에게도 도착하지 못한 곳보다 머물러 살아낸 자리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바위는 금강산에 가지 못했지만, 설악산에서 자신의 운명을 만들었다.
어쩌면 삶은 원하는 곳에 가는 일보다, 도착한 자리에서 자기 모습으로 살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바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흔들바위를 지나 울산바위로 향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고도를 높일수록 바람은 날을 세웠다. 처음에는 얼굴을 스치던 정도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몸 전체를 밀어냈다.
때로는 등을 떠밀었다.
빨리 올라가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능선의 방향이 바뀌면 이번에는 정면에서 달려들었다.
여기까지 와도 올라가겠느냐.
바람이 길을 막으며 묻는 것 같았다.
나는 몸을 조금 낮추고 걸었다.
정상에 과연 설 수 있을까.
걱정이 발걸음보다 먼저 정상으로 올라갔다.
겨울 산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눈만이 아니다.
눈은 보인다.
얼음도 자세히 살피면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 와서, 얼마나 강하게 사람을 밀어낼지 알 수 없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방향과 몸에 부딪히는 힘으로만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사람을 가장 긴장하게 한다.
삶에서도 그랬다.
눈앞에 보이는 어려움보다 언제 올지 모르는 일이 더 두려웠다.
겨울 계단
돌계단에는 잔설이 남아 있었다.
햇빛이 드는 곳은 녹았지만, 그늘진 구석에는 눈과 얼음이 버티고 있었다.
한쪽에는 얼음이 주저앉아 있었다.
마치 눈을 부릅뜨고 말하는 듯했다.
한눈팔지 마라.
계단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올라가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씩 시험하는 얼굴이었다.
여름에 걸었다면 그저 숨찬 계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울의 계단은 달랐다. 한 걸음을 잘못 디디면 순식간에 몸의 중심을 잃을 수 있었다.
난간을 잡고,
발끝을 살피고,
한 계단씩 올랐다.
울산바위는 흔들바위에서 가까워 보여도, 겨울에는 눈과 결빙, 강풍 때문에 체감 난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쉬운 듯 보였지만 겨울의 울산바위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몸보다 먼저 마음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야 했다.
산에서는 몸이 힘들면 쉬면 된다.
그러나 마음이 먼저 포기하면 발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눈앞에 있는 다음 계단만 보았다.
사람은 멀리 있는 목표를 바라보며 시작하지만, 정작 그곳까지 데려다주는 것은 눈앞의 한 걸음이다.
삶도 그랬다.
큰 꿈 하나로 인생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고,
해야 할 일을 하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또 하루를 건너는 작은 반복이 결국 여기까지 데려왔다.
바람이 만든 울산바위
울산바위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산이다.
민간 답사 자료는 울산바위를 6개의 큰 봉우리와 크고 작은 30여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바위산으로 소개하며, 둘레가 약 4km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그 설명을 몸으로 이해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람은 바위와 바위 사이를 빠져나오며 소리를 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고, 좁은 틈을 통과하며 휘파람처럼 울었다.
어쩌면 울산바위라는 이름이 ‘우는 산’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생긴 것도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저 바람소리를 들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울산바위의 이름에는 울산에서 왔다는 전설 외에도, 울타리처럼 생긴 형상이나 바위 사이로 부는 바람이 우는 듯한 소리를 낸 데서 비롯됐다는 여러 설명이 전해진다.
산은 이름 하나에도 여러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전설이 꼭 사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한 산을 바라본 사람들이 그 산을 어떻게 느꼈는지, 무엇을 상상했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전설이다.
금강산으로 가지 못한 바위.
울타리처럼 펼쳐진 바위.
바람이 불면 우는 산.
어느 이야기도 울산바위와 잘 어울렸다.
🍂 오늘의 시
울산바위 / 송현
금강산으로 가던 길이었다지.
너무 늦게 길을 나선 탓에
끝내 설악에 주저앉았다는 바위.
그 오래된 이야기를 만나러
영하의 새벽을 뚫고 간다.
어둠 끝에서
해 하나 붉게 떠오르고,
찬바람은 산보다 먼저 내려와
소공원의 빈자리를 쓸고 있었다.
신흥사를 지나
잠든 케이블카 곁을 지나
흔들바위에 닿는다.
바위는 흔들린다는데
정작 흔들린 것은
바람 앞의 나였다.
울산바위를 올려다본다.
저 높은 곳까지
오늘 나는
갈 수 있을까.
돌계단 구석마다
잔설이 웅크리고,
얼음은 계단 한가운데 앉아
눈을 부릅뜨고 말한다.
한눈팔지 마라.
겨울 산은
쉬운 길도 어렵게 만들고,
어려운 길에서는
먼저 사람의 마음을 시험한다.
한 계단,
또 한 계단.
바람에 등을 밀리고
추위에 손끝을 빼앗기면서도
나는 자꾸만 위로 간다.
마침내 오른 울산바위.
강풍은
사람 하나 세워둘 생각이 없다는 듯
몸을 밀어내고,
나는 오래 머물지 못한 채
잠깐 세상을 바라본다.
설악은 희고,
바다는 멀고,
바람은 살아 있었다.
그때 알았다.
시작한다고
모두 끝까지 가는 것은 아니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한 계단도 오를 수 없다는 것을.
금강산에 닿지 못하고
설악에 머문 울산바위처럼,
뜻한 곳에 이르지 못한 삶도
오래 그 자리에 서면
누군가의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람 속에서
나는 다시 한 걸음을 배운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데리고도
한 계단 더 오르는 일이라고.
정상의 바람
그렇게 정상에 도착했다.
그러나 정상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곳이 아니었다.
기다렸다는 듯 강풍이 몰아쳤다.
몸이 휘청거렸다.
잠시 서 있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사진 한 장을 남기는 일도 서둘러야 했다.
정상에 올랐으니 이제 천천히 풍경을 감상해야지 하는 마음은 바람 앞에서 사치였다.
그 순간 알았다.
정상은 언제나 오래 머무는 곳은 아니라는 것을.
어떤 정상은 다만 도착했다는 사실 하나만 확인하고 곧 물러나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상에 대해 너무 많은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곳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생각한다.
사업이 성공하면,
돈을 더 벌면,
원하는 자리에 오르면,
모든 것이 평온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산의 정상은 오히려 바람이 가장 강한 곳이다.
높이 올라간 만큼 몸을 숨길 나무도 적고, 바람을 막아줄 벽도 없다.
높은 곳에는 높은 곳의 바람이 있다.
울산바위 정상의 겨울바람은 그 사실을 온몸으로 가르쳐주고 있었다.
동해의 겨울
바람 사이로 동해가 보였다.
겨울 바다는 유난히 짙었다. 멀리서도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이 보였다. 동해의 겨울 파도는 산 위까지 손짓을 보내는 것 같았다.
어서 내려오라는 손짓인지,
조금 더 버텨보라는 손짓인지 알 수 없었다.
산과 바다는 서로 다른 세계처럼 보이지만 울산바위에 서면 한눈에 이어진다.
등 뒤에는 설악의 산줄기가 있고, 앞으로는 바다가 펼쳐진다.
바위 위에 서 있는 사람은 그 사이에서 아주 작은 점 하나가 된다.
산에서는 내가 작아지고, 바다 앞에서는 내 걱정이 작아진다.
그 작아짐이 좋다.
도시에서는 내가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산다. 내 걱정이 가장 크고, 내 일이 가장 급하며, 내 슬픔이 가장 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대한 바위 위에서 겨울바다를 바라보면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나는 그 안의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알게 된다.
그것은 초라함이 아니라 이상한 위로였다.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누구에게나 시작은 쉽지 않다.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에는 늘 두려움이 있다.
할 수 있을까.
괜히 시작한 것은 아닐까.
울산바위를 오르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람은 강했고, 계단에는 잔설과 얼음이 남아 있었다. 정상에 과연 설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러나 사람은 이상하다.
멀리 있는 정상 전체를 오르는 것은 불가능해 보여도, 눈앞의 한 계단은 오를 수 있다.
그 한 계단이 모이고,
한 걸음이 쌓여,
어느 순간 정상에 도착한다.
삶도 그렇게 익어가는 것 아닐까.
거대한 용기 하나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두려움을 하루하루 건너는 일.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한 걸음만 더 내딛는 일.
그렇게 하루가 만들어지고, 그 하루들이 모여 사람의 삶이 된다.
울산바위는 그 사실을 차가운 겨울바람으로 또렷이 가르쳐주었다.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고.
바람을 만나지 않고 오를 수 있는 정상도 없고,
미끄러운 계단 하나 밟지 않고 얻는 풍경도 없다고.
금강산에 가지 못했어도
하산길에 울산바위의 전설을 다시 생각했다.
금강산으로 가려 했지만 도착하지 못한 바위.
처음 목적지만 생각한다면 실패한 바위다.
그러나 그 바위는 지금 설악산의 상징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울산바위를 보기 위해 설악산을 찾고, 멀리 미시령 길에서도 그 거대한 모습을 바라본다.
울산바위는 그 자체의 경관과 주변 조망 가치로 명승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그렇다면 실패란 무엇일까.
처음 생각했던 곳에 도착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도착한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나도 살아오면서 수많은 길을 바꾸었다.
뜻대로 된 일보다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더 많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아보면 계획에 없던 길에서 만난 사람도 있었고, 뜻밖의 자리에서 시작된 일도 있었다.
금강산으로 가지 못한 바위가 설악의 얼굴이 되었듯, 사람 역시 가지 못한 길 때문에 꼭 불행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도 먼 훗날 돌아보면 내 삶의 울산바위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 것들
흔들바위를 다시 지나 내려왔다.
아침에 보았던 바위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웃으며 바위를 밀고 있었다.
나는 산을 오를 때와 조금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아침에는 흔들리되 쓰러지지 않는 바위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울산바위도,
흔들바위도,
계조암도,
겨울바람을 맞는 작은 소나무도
모두 제 자리에서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사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리에서 흔들린다.
어떤 날은 바람에 밀리고,
어떤 날은 얼음 위에서 중심을 잃을 뻔한다.
때로는 가고 싶었던 곳에 가지 못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머물기도 한다.
그래도 살아간다.
뿌리를 내리고,
바람을 견디고,
자기만의 이름을 얻으며 살아간다.
그날의 울산바위는 내게 정상에 오르는 법보다 오히려 한 자리에 남는 법을 보여주었다.
금강산에 가지 못했어도 설악의 울산바위가 될 수 있다는 것.
흔들려도 꼭 쓰러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상에 오래 서 있지 못했어도 그곳에 도착한 걸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에필로그|도착한 자리에서 자기 이름을 얻는 일
동해의 겨울 파도는 여전히 거세게 손짓하고 있었다.
바람은 울산바위의 틈을 지나 긴 소리를 냈다.
울음인지,
노래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산을 내려오며 생각했다.
삶은 언제나 바라던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지 못한 곳을 오래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도착한 자리에서 자기 이름을 얻는 일인지도 모른다.
울산바위는 금강산에 가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바위를 길을 잃은 바위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설악의 가장 웅장한 얼굴 가운데 하나로 남아 오늘도 바람을 맞고 있다.
나 역시 그러했으면 좋겠다.
뜻대로 되지 않았던 길까지 품고,
흔들렸던 시간까지 내 삶으로 받아들이며,
언젠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을 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잘못 온 길만은 아니었다고.
여기까지 걸어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의 산이었다고.
🌿 이 산행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설악산 울산바위 코스는 설악동 소공원에서 신흥사와 흔들바위, 계조암을 지나 울산바위로 오르는 대표 탐방 코스다. 한국관광공사 흔들바위 안내에 따르면 소공원에서 흔들바위까지 약 1시간, 흔들바위에서 울산바위까지 다시 1시간 남짓 걸리는 것으로 소개된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겨울 울산바위 산행은 특히 바람과 결빙을 조심해야 한다. 흔들바위까지는 비교적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울산바위로 오르는 계단 구간은 고도가 빠르게 올라가고 바람을 직접 맞는 구간이 많다. 잔설과 얼음이 남아 있으면 평소보다 훨씬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울산바위 전설은 금강산으로 향하다 설악에 머물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강원 고성군 관광 안내에서도 울산바위가 금강산으로 가다 설악산에 눌러앉았다는 설화를 소개한다. (강원고성군청)
🌿 산행 준비 메모
겨울 울산바위는 ‘짧은 코스’보다 ‘바람과 계단의 산행’으로 생각하는 편이 좋다. 정상부는 강풍이 심할 수 있으므로 방풍 재킷, 장갑, 모자, 넥워머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계단에 잔설과 결빙이 남아 있다면 무리하지 않는 판단이 필요하다. 정상에 오래 머물기보다 안전하게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
🌿 관련 사이트 및 여행 정보
🌿 ① 설악산국립공원
설악산 탐방로 통제, 기상특보, 안전 공지와 탐방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겨울 산행 전에는 반드시 최신 공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 ② 대한민국 구석구석 흔들바위 정보
흔들바위, 계조암, 소공원에서 울산바위로 이어지는 산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 ③ 강원 고성군 울산바위 관광 정보
울산바위 전설과 조망, 고성 8경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강원고성군청)
🌿 ④ 속초관광
설악동, 속초해변, 동명항, 중앙시장 등 설악산 산행 전후로 둘러볼 수 있는 속초 여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⑤ 설악 케이블카
권금성 방향 케이블카 운행 정보와 기상에 따른 운행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울산바위 산행과는 별도 코스지만 설악동 여행과 함께 참고하기 좋다.
🌿 설악산 울산바위 겨울 산행 준비물 체크리스트
□ 접지력 좋은 등산화
□ 아이젠 또는 체인젠
□ 방풍 재킷
□ 보온 장갑과 여벌 장갑
□ 보온 모자 또는 넥워머
□ 따뜻한 물 또는 보온병
□ 간단한 행동식
□ 보조배터리
□ 선글라스 또는 고글
□ 스틱
□ 강풍 앞에서 무리하지 않는 판단
🌿 추천 숙박
🏡 설악동 숙박권
울산바위 산행을 이른 시간에 시작하려면 설악동 숙박이 가장 편리하다. 소공원 접근이 쉽고, 산행 뒤 속초 시내나 해변으로 이동하기에도 좋다.
🏡 속초 시내권
산행과 여행을 함께 계획한다면 속초 시내 숙박도 좋은 선택이다. 중앙시장, 동명항, 속초해변, 영랑호 등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 이전 산행 이야기 다시보기
「산바람 · 글바람 ⑲」 수락산 산행기, 해를 넘기며 익숙한 산에게 묻다
수락산에서는 한 해의 끝에서 가장 익숙한 산에게 안부를 물었습니다. 미끄러운 바위길과 겨울 햇살, 바위틈의 작은 소나무와 학림사의 고요 속에서, 한 해를 잘 산다는 것이 꼭 대단한 성취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락산은 오래된 친구처럼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바위 하나 내어주고, 소나무 그늘 하나 보여주며, 힘들면 잠시 앉았다 가라고 말없이 길을 열어준 산이었습니다.
🌄 다음 산행 이야기
「산바람 · 글바람 ㉑」 예봉산 산행기
설악산 울산바위에서는 금강산으로 가지 못한 바위의 전설을 따라 겨울바람 속으로 걸었습니다. 잔설과 얼음이 남은 계단, 몸을 밀어내는 강풍 앞에서 두려움을 데리고도 한 계단 더 오르는 일이 용기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다음에는 예봉산으로 향합니다. 이름부터 조금은 낯설고 다정한 그 산길에서, 울산바위의 웅장한 바위와는 또 다른 작고 조용한 풍경을 만나보려 합니다. 울산바위가 도착하지 못한 자리에서 자기 이름을 얻은 산이었다면, 예봉산에서는 낮고 소박한 길 위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이야기를 천천히 찾아보겠습니다.
🍃 산길의 끝에서
울산바위는 금강산으로 가지 못한 바위라고 했다.
처음 목적지만 생각하면 실패한 바위다.
하지만 그 바위는 설악산에 머물러 설악의 얼굴이 되었다.
나는 그 전설 앞에서 오래 생각했다.
삶은 언제나 바라던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지 않는다. 그러나 도착하지 못했다고 해서 모든 길이 실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뜻한 곳에 이르지 못했어도,
도착한 자리에서 오래 견디고,
자기 모습으로 살아내면,
그 자리 역시 삶의 이름이 될 수 있다.
울산바위를 오르는 겨울 계단에는 잔설과 얼음이 남아 있었다.
강풍은 몸을 밀어냈고, 손끝은 추위에 얼었다.
그래도 한 계단씩 올랐다.
정상 전체를 한 번에 오를 수는 없지만, 눈앞의 한 계단은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올라선 정상에서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바람은 너무 거셌고, 동해는 멀리서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그러나 잠깐이면 충분했다.
설악은 희고,
바다는 멀고,
바람은 살아 있었다.
하산길에 다시 흔들바위를 만났다.
밀면 흔들리지만 쓰러지지 않는 바위.
금강산에 가지 못했지만 설악의 이름이 된 울산바위.
그 둘은 모두 내게 같은 말을 건네는 듯했다.
흔들렸다고 해서 쓰러진 것은 아니라고.
뜻한 곳에 닿지 못했다고 해서 잘못 온 길은 아니라고.
삶은 때때로 우리를 예상하지 못한 곳에 세워둔다.
그러나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바람을 견디고,
자기만의 이름을 얻는다면,
그 자리 또한 충분히 나의 산이 될 수 있다.
나는 울산바위를 내려오며 그렇게 생각했다.
잘못 온 길만은 아니었다고.
여기까지 걸어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의 산이었다고.
다음 산길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산바람 · 글바람
울산바위를 올랐습니다.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너무 늦어 설악에 주저앉았다는
그 오래된 바위를 만나러 갔습니다.
흔들바위는
밀면 흔들린다는데,
정작 흔들린 것은
바람 앞에 선 나였습니다.
돌계단 구석마다
잔설이 웅크리고,
얼음은 계단 한가운데 앉아
한눈팔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한 계단,
또 한 계단.
바람에 등을 밀리고,
추위에 손끝을 빼앗기면서도
나는 자꾸만 위로 갔습니다.
마침내 오른 울산바위 정상.
강풍은 사람 하나
세워둘 생각이 없다는 듯
몸을 밀어냈고,
나는 오래 머물지 못한 채
잠깐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설악은 희고,
바다는 멀고,
바람은 살아 있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시작한다고
모두 끝까지 가는 것은 아니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한 계단도 오를 수 없다는 것을.
금강산에 닿지 못하고
설악에 머문 울산바위처럼,
뜻한 곳에 이르지 못한 삶도
오래 그 자리에 서면
누군가의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데리고도
한 계단 더 오르는 일이라는 것을.
울산바위는
금강산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바위를
길을 잃은 바위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설악의 가장 웅장한 얼굴로 남아
오늘도 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나 역시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았던 길까지 품고,
흔들렸던 시간까지
내 삶으로 받아들이며,
언젠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을 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잘못 온 길만은 아니었다고.
여기까지 걸어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의 산이었다고.
산바람 · 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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