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 글바람 ㉔」 조령산 산행기, 암릉구간을 지나 만난 한 모금의 물

 

이화령에서 조령산 정상과 신선암봉 암릉구간을 지나 문경새재 제3관문으로 이어지는 여름 백두대간 산행 풍경
 신선암봉에서 이어지는  거친 암릉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조령산. 이화령에서 시작해 조령샘의 차가운 물로 목을 축이고, 신선암봉으로 이어지는 거친 암릉을 지나 제3관문에서 다시 한 모금의 물을 만났다.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조령산은 거친 바위와 오래된 고개의 산이었다. 그 길에서 나는 빠르게 오르는 기쁨보다,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한 모금의 물이 얼마나 귀한지 배웠다.


몇 년 만에 다시 이화령으로

몇 년 만에 다시 조령산을 오르기 위해 이화령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찾아왔지만 이화령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터널 입구 왼쪽으로 목재계단이 보였다. 이곳은 충북 괴산이고, 터널을 건너면 경북 문경이다. 터널을 사이에 두고 양쪽 지역에서 조령산으로 오를 수 있도록 들머리를 만들어 놓은 듯했다.

그러나 어느 쪽에도 조령산 들머리를 알려주는 뚜렷한 안내판은 보이지 않았다. 산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알아서 길을 찾아 오르겠지만, 처음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작은 이정표 하나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산행에서 안내판 하나는 단순한 표지가 아니다. 낯선 사람에게 “이 길이 맞다”고 말해주는 작은 손짓이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안내판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산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작은 배려의 아쉬움이 마음에 남았다. 산길은 자연이 내어주지만, 들머리는 사람이 정리해주는 곳이다. 산을 찾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길의 첫 문장도 조금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문경 쪽 터널을 지나 들머리를 찾아 올랐다.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괴산 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는 지점이 나타났다. 터널 양쪽에서 출발한 산길이 하나로 만나 조령산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사람은 지역의 이름을 나누지만, 산길은 결국 하나의 능선으로 이어진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충북 괴산·경북 문경 조령산

📅 산행 시기
기온이 30도 안팎까지 오른 무더운 여름날

🥾 주요 코스
이화령 → 조령샘 → 조령산 정상 → 신선암봉 방향 암릉구간 → 깃대봉 직전 갈림길 → 제3관문

📏 산행 거리
이화령에서 조령산·신선암봉 능선을 지나 제3관문으로 이어지는 장거리 능선 산행

산행 시간
암릉 통과와 휴식 시간을 포함해 여유 있게 계획해야 하는 코스

난이도
★★★★☆

조령산 정상까지는 비교적 숲길과 오르막이 이어지지만, 신선암봉 방향은 밧줄과 바위, 절벽 조망이 이어지는 험한 암릉구간이 있어 초보자는 신중해야 함

🌳 산행 환경
이화령 · 백두대간 능선 · 조령샘 · 조령산 정상 · 신선암봉 암릉 · 제3관문 · 문경새재 옛길

🏡 숙박
문경새재·괴산 연풍권 숙박 또는 당일 산행 가능

🚗 이동방법
이화령 들머리 접근 후 제3관문으로 하산하는 비순환 코스이므로 차량 회수 또는 대중교통 계획 필요

괴산군 문화관광은 조령산을 “나는 새도 쉬어 넘는다는 험준한 새재를 품에 안은 백두대간의 산”으로 소개하며,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고 이화령과 연결된다고 안내한다. 또한 이화령에서 출발해 조령샘을 지나 정상에 오르고, 산행에 자신이 있으면 삼관문까지 종주하는 코스가 있다고 설명한다.


숲길이 조용해지는 시간

합류 지점을 지나자 길은 한결 조용해졌다. 숲 사이로 난 오솔길 같은 길을 따라 천천히 고도를 높였다. 부서진 바위가 언제든지 덮칠 듯 내려다보고,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잘게 부서져 내렸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이마의 땀을 식혀주었다. 무더운 날이었지만, 산바람은 여전히 산바람이었다.

산을 다시 찾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산은 예전과 비슷한 얼굴로 서 있는데, 그 앞에 선 나는 늘 조금 달라져 있다. 몇 년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오르막이 오늘은 숨을 묻고,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였던 바위가 오늘은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산이 더 험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지나온 시간이 조금 더 많아졌을 뿐이다.

그래도 산길은 이상하게 사람을 서두르게 하지 않는다. 도시는 늘 빨리 가라고 말하지만, 산은 자주 멈추라고 말한다. 나무 사이의 빛을 보라고,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라고, 지금 이마에 흐르는 땀도 산행의 일부라고 말한다. 그렇게 한 걸음씩 조령산의 품으로 들어갔다.


조령샘, 산이 건네는 작은 위로

정상을 약 700미터 남겨둔 지점에서 조령샘을 만났다. 예전에 한 번 만났던 샘이어서인지 더욱 반가웠다. 두 번째 만남인데도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마음이 놓였다. 산행 중에 다시 만나는 샘은 사람보다 더 반갑다. 말은 하지 않지만, 지친 몸이 먼저 알아본다.

괴산군 문화관광 안내에도 이화령휴게소에서 출발해 주능선의 헬기장을 지나고, 갈림길 왼쪽 약 100m 지점에 조령샘이 흐른다고 소개되어 있다. 조령샘 주변에는 갈대와 억새가 무성하다는 설명도 함께 전해진다. 실제 산길에서 만난 조령샘은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라, 산속에 조용히 놓인 작은 쉼표에 가까웠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도 있었다. 대장균은 없는지, 수질 검사는 되었는지 표시가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산들은 사람들 발길에 오염된 탓인지, 구청 식수 검사 표시와 함께 ‘음용 불가’ 안내가 붙어 있는 곳이 많다. 산에서 만나는 샘물이 반가운 만큼, 마셔도 되는 물인지 확인할 수 있는 안내는 꼭 필요하다.

차가운 물로 목을 축이고 샘 주변의 그늘에 잠시 몸을 맡겼다. 산행 중 만나는 샘물은 단순한 물이 아니다.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남은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는 산의 작은 위로다. 숨을 고른 뒤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오늘의 시

문경새재, 조령 / 송현

봇짐 위에
붓과 먹을 얹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길,

굽이굽이 고갯마루 끝에
조령산이 말없이 기다린다.

백두대간 이어지는 산길마다
선비들의 숨결이 바람으로 남고,

닳아 빠진 짚신 한 켤레가
먼 길의 고단함을 들려준다.

급제의 꿈을 품고 넘던 고개,

돌아오지 못한 발걸음도
있었으리라.

사람은 가고
세월도 흘렀지만,

조령산 옛길에는 아직

붓끝에 맺힌 간절한 마음과
짚신이 남긴 발자국이

낙엽 아래
깊이 잠들어 있다.


문경새재라는 오래된 길

조령산을 걷다 보면 산보다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문경새재. 조령. 새도 쉬어 넘는다는 고개. 오래전 사람들은 이 고개를 넘으며 한양으로 향했고, 또 누군가는 이 고개를 넘어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의 봇짐에는 붓과 먹이 있었을 것이고, 장사꾼의 등에는 물건이 있었을 것이며, 이름 없는 나그네의 발에는 닳아버린 짚신이 있었을 것이다.

문경새재도립공원 공식 안내는 임진왜란 뒤 이곳에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세 관문을 설치해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고 설명한다. 또한 문경새재에는 옛 나그네의 숙소였던 원터와 관찰사가 관인을 주고받았다는 교귀정터, 한글 표석 ‘산불됴심’ 비 등 오래된 흔적이 남아 있다고 소개한다.

문경새재는 단순한 등산로가 아니다.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의 험한 고개였고, 사회·문화·경제의 이동과 국방상의 요충지로 기능했던 길로 설명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역시 문경새재를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고개이자, 조선시대 세 관문이 놓인 역사적 장소로 소개한다.

그래서 조령산의 길은 자연의 길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길이다. 바위와 숲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보러 가던 선비의 간절함과 장꾼의 고단함, 전쟁의 불안과 고개를 넘어야 했던 사람들의 숨이 함께 놓여 있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때로 그 길을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국 위에 오늘의 발을 조심스레 포개는 일이다.


정상에서 들려온 아기 울음소리

조령산 정상에 올라서자 어디선가 난데없이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산 정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라 주변을 살펴보니, 젊은 부부가 어린 아기를 업고 산행을 하고 있었다. 아기는 낯선 바람과 사람들 때문인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부부는 번갈아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산을 좋아하는 마음이 얼마나 크면 어린 아기까지 업고 이곳까지 올랐을까.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산은 어른에게도 만만한 곳이 아닌데, 아이에게 산의 바람과 소음은 얼마나 낯설었을까. 그래도 그 부부에게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마음은 때로 가족의 시간까지 산으로 데려온다.

나는 그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조령산 정상의 바람, 낯선 사람들의 웃음, 정상석 주변의 분주함, 그리고 그 사이로 들려오던 아기 울음소리. 산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소리가 오래 남을 때가 있다. 정상에서 들은 그 울음은 어쩌면 삶이 산속까지 따라온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신선암봉으로 향하는 길

우는 아기를 달래는 젊은 부부를 뒤로하고 나는 신선암봉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전 같았으면 계단이나 바위만 보아도 뛰어오르고 싶은 충동이 먼저 일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늘어난 뱃살 때문인지, 나이 탓인지, 보기만 해도 숨이 먼저 찬다. 한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던 계단 하나가 오늘은 유난히 높고 가파르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것이 꼭 슬픈 일만은 아니었다. 젊은 날에는 빨리 걷는 몸이 좋았다. 지금은 오래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좋아졌다. 예전에는 봉우리를 몇 개 넘었는지가 기억에 남았다면, 이제는 어디에서 물을 마셨는지, 어느 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주었는지, 어떤 낯선 사람과 짧게 웃었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조령산에서 신선암봉으로 이어지는 길에서는 백두대간 산행을 하는 사람들을 한두 팀씩 만났다.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산에서는 금세 말문이 트인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이야기하며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이름도 모르고 다시 만날 약속도 없지만, 산길에서 나눈 몇 마디는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능선을 지날 때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이 아니었다면 산행은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산행에서 바람은 보이지 않는 동행자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것 같지만, 가장 지친 순간에 등 뒤에서 조용히 밀어준다.


암릉구간, 산이 허락하지 않는 길도 있다

신선암봉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거친 바위와 장대한 풍경이 차례로 펼쳐졌다. 바위 사이로 깊은 계곡이 내려다보이고, 겹겹이 이어지는 산줄기는 여름 안개 너머로 멀리 뻗어 있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길은 험했다. 조령산에서 신선암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가파른 암릉이 계속되었다. 절벽에 매달린 밧줄을 붙잡고 오르내리기를 반복해야 했다.

손에 힘을 주고 밧줄을 당기며 바위에 발을 올렸지만, 발밑으로 떨어지는 절벽을 바라보면 긴장이 되었다. 위험한 산길을 제법 다녀본 나조차도 조심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괴산군 문화관광 안내도 조령산 정상 이후 삼관문 방향으로는 세미클라이밍 지대와 급경사지대가 있어 매우 조심스러운 산행이 시작된다고 설명하고, 칼날능선과 바위봉우리 구간에서는 발밑 절벽으로 인해 아찔한 길이 이어진다고 안내한다.

바위를 무서워하거나 암릉 경험이 적은 초보 산행자라면 쉽게 들어서서는 안 될 구간이다. 특히 비가 오거나 바위가 젖어 있을 때는 작은 실수 하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산은 누구에게나 길을 열어주지만, 모든 길을 무조건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돌아서는 판단도 산을 존중하는 방법이다.

그날 암릉은 내게 아름다움과 위험이 한 몸이라는 사실을 다시 가르쳐주었다. 멀리서 보면 장엄한 바위능선이지만, 그 위에 서면 발끝 하나가 생명과 이어진다. 풍경을 얻으려면 조심해야 하고, 산을 사랑하려면 산이 허락하지 않는 순간도 받아들여야 한다.


더 이상 깃대봉으로 가지 않기로 했다

기온은 30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능선에서 산바람이 불어왔지만 역시 여름은 여름이었다. 옷은 땀에 젖고, 준비해 온 물도 점점 줄어들었다. 암릉을 넘어 깃대봉 직전 약 50미터, 제3관문으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있는 지점에 도착했다. 같이 도착한 다른 팀도, 나도 더 이상 깃대봉 쪽으로 진행할 마음이 없었다.

산에서 “여기까지”라고 말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속에는 늘 조금 더 가고 싶은 욕심이 남는다. 저 봉우리까지 가면 더 멋진 풍경이 있지 않을까. 여기서 돌아서면 아쉬움이 남지 않을까. 그러나 몸은 이미 대답을 하고 있었다. 물은 줄었고, 더위는 계속되었고, 암릉은 충분히 긴장하게 만들었다.

나는 제3관문 방향으로 내려서기로 했다. 산에서는 포기와 판단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포기는 마음이 먼저 무너지는 것이지만, 판단은 남은 길과 자신의 몸을 함께 살피는 일이다. 그날 깃대봉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제3관문으로 내려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제3관문까지, 물이 바닥나는 시간

이제 제3관문까지는 약 2.2킬로미터. 거리만 보면 멀지 않아 보였지만, 이미 지친 몸에는 길고 힘든 하산길이었다. 준비가 부족했던 탓에 물도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남은 물을 조금씩 아껴 마시며 발걸음을 옮겼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병의 바닥은 이상하게 마음의 바닥처럼 느껴진다.

다리에 힘이 빠질수록 돌 하나, 나무뿌리 하나에도 신경이 쓰였다. 산행에서 오르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힘들 때가 있다. 몸이 지친 뒤 시작되는 하산은 체력뿐 아니라 집중력까지 시험한다. 올라갈 때는 목표가 위에 있지만, 내려갈 때는 방심이 아래에 숨어 있다. 이미 다 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산은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내려갔다. 빠르게 내려갈 수 없었다. 발바닥은 뜨거웠고, 무릎은 작은 충격에도 반응했다. 그래도 내려가야 했다. 산행은 정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산 아래에 닿을 때 끝난다. 그 단순한 사실을 하산길은 늘 몸으로 가르쳐준다.


제3관문에서 만난 한 모금의 물

마침내 제3관문에 도착했다. 관문 입구에서 샘물을 발견한 순간,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차가운 물을 한 모금 마시자 마른 목뿐 아니라 온몸의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세상에 귀한 것이 많지만, 지친 산행 끝에 만나는 물 한 모금보다 귀한 것이 또 있을까.

문경새재도립공원은 제1관문에서 제2관문, 제3관문으로 이어지는 옛길이 잘 알려져 있으며, 한국관광공사 여행 정보에서도 제1관문에서 제3관문까지 이어지는 문경새재 코스를 소개한다. 그 길은 산행자에게는 하산의 끝이지만, 옛사람들에게는 넘고 또 넘어야 했던 삶의 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물을 마시며 다시 조령샘을 떠올렸다. 산행 중간에 만난 조령샘의 물과, 하산 끝에 만난 제3관문의 물. 같은 물이었지만 느낌은 달랐다. 하나는 남은 길을 걷게 해준 물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늘의 길을 끝까지 걸어낸 몸을 달래준 물이었다. 그날 조령산의 기억은 결국 두 번의 물로 오래 남았다.


다시 오른 산에서 다시 만난 나

몇 년 만에 다시 오른 조령산은 여전히 거칠고 아름다웠다. 오솔길과 샘물, 정상에서 만난 아기 울음소리, 백두대간을 걷는 사람들, 신선암봉으로 이어지는 아찔한 암릉, 그리고 제3관문에서 만난 한 모금의 샘물까지. 조령산은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지만, 산을 오르는 나는 예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얼마나 빨리 오르는지가 중요했다. 이제는 어디에서 숨을 고르고, 무엇을 바라보았는지가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예전에는 정상에 도착한 시간이 기록이었다면, 이제는 물 한 모금을 마신 자리와 낯선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준 순간이 기억이 된다. 산행의 의미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은 변하지 않은 듯 서 있지만, 그 산을 다시 찾는 사람의 시간은 변해 있다. 그래서 몇 년 만에 다시 오른 산에서는 풍경뿐 아니라 지나온 나 자신도 함께 만나게 된다. 그날 조령산에서 나는 거친 바위산 하나를 넘은 것이 아니라, 예전보다 조금 느려진 나를 받아들이는 길을 걷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에필로그|한 모금의 물이 오래 남는 이유

조령산은 내게 거친 암릉보다 한 모금의 물로 오래 남았다. 물론 신선암봉으로 이어지는 바위길은 장대했고, 백두대간 능선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산행이 끝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제3관문에서 마신 차가운 물이었다. 목이 말랐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물은 내가 끝까지 걸어왔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산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고 말한다. 풍경을 얻고, 성취감을 얻고, 사진을 얻고, 기록을 얻는다. 그러나 때로 산은 가장 단순한 것의 귀함을 알게 한다. 한 모금의 물, 한 줄기 바람, 잠시 앉을 그늘, 낯선 사람이 건네는 짧은 인사. 도시에서는 너무 흔해서 잊고 살던 것들이 산에서는 가장 큰 위로가 된다.

그날의 조령산은 그렇게 말했다. 네가 가진 것이 부족해질 때, 비로소 무엇이 귀한지 알게 된다고. 물이 줄어들 때 물의 무게를 알고, 다리에 힘이 빠질 때 발걸음의 소중함을 알며, 숨이 찰 때 바람 한 줄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고. 그래서 산행은 몸을 힘들게 하지만 마음을 단순하게 만든다.

나는 제3관문에서 물을 마시고 오래 숨을 골랐다. 조령산은 예전처럼 거칠고 아름다웠고, 나는 예전보다 조금 느려져 있었다. 그러나 느려진 만큼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이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산을 오래 다닌다는 것은 더 빨리 걷는 일이 아니라, 한 모금의 물 앞에서 오래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 이 산행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조령산은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 경계에 있는 백두대간의 산으로, 이화령에서 조령산 정상과 신선암봉, 제3관문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행이 많이 알려져 있다. 괴산군 문화관광은 조령산이 이화령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화령에서 출발해 조령샘을 지나 정상에 오른 뒤 산행에 자신이 있으면 삼관문까지 종주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다만 조령산 정상 이후 신선암봉과 제3관문 방향은 암릉과 급경사지대가 이어지는 구간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괴산군 안내에서도 정상 이후 삼관문 방향으로 세미클라이밍 지대와 급경사지대가 이어지고, 칼날능선과 절벽길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초보 산행자라면 날씨가 좋고 바위가 마른 날에 경험자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 안전하다.


산행 준비 메모

첫째, 이화령 들머리는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현장 안내가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지도 앱과 기존 산행 기록을 함께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둘째, 물은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 조령샘과 제3관문 샘을 만날 수 있지만, 수질 상태나 계절별 상황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마실 물을 기본적으로 충분히 챙기는 것이 안전하다.

셋째, 신선암봉 암릉구간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밧줄, 바위, 절벽 구간이 이어지므로 비가 오거나 바위가 젖은 날에는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

🌿 관련 사이트 및 여행 정보

① 괴산군 문화관광 조령산

👉 괴산군 문화관광 조령산 바로가기

조령산의 위치, 이화령 출발 코스, 조령샘, 정상 이후 암릉과 삼관문 방향 산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② 문경시 문화관광 문경새재도립공원

👉 문경시 문화관광 문경새재도립공원 바로가기

문경새재의 유래, 세 관문, 옛길과 역사적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③ 대한민국 구석구석 문경새재 도립공원

👉 대한민국 구석구석 문경새재 도립공원 바로가기

문경새재 제1관문에서 제3관문까지의 걷기 코스와 주변 여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④ 문경 관광 공식 홈페이지

👉 문경시 문화관광 바로가기

문경새재, 문경읍 주변 숙박과 여행 정보, 문경의 주요 관광지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 조령산 산행 준비물 체크리스트

충분한 식수
접지력 좋은 등산화
장갑
스틱
땀 배출이 좋은 여름 산행복
모자와 선크림
행동식과 전해질 보충제
지도 앱과 보조배터리
암릉구간에서 사용할 여유 있는 시간
비상약과 테이핑 용품
젖은 바위에서는 돌아설 수 있는 판단
물 한 모금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 마음

🌿 추천 숙박과 주변 여행

🏡 문경새재권

조령산 산행 뒤 문경새재와 함께 여행을 계획한다면 문경새재권 숙박이 좋다. 제3관문으로 하산한 뒤 문경새재 옛길, 오픈세트장, 자연생태박물관 등을 함께 둘러보기 좋다. 한국관광공사 여행 정보에서도 문경새재 유스호스텔, 문경 국민여가캠핑장, 문경관광호텔 등 주변 숙박지를 함께 소개한다.

👉 대한민국 구석구석 문경새재 여행정보 바로가기

🏡 괴산 연풍권

이화령에서 산행을 시작하거나 괴산 쪽으로 접근한다면 연풍권 숙박과 연계할 수 있다. 괴산군 문화관광은 조령산을 연풍면 신풍리의 산으로 소개하며, 이화령휴게소 접근 정보도 함께 안내한다.

👉 괴산군 문화관광 바로가기

🌄 이전 산행 이야기 다시보기

「산바람 · 글바람 ㉓」 불암산 산행기, 두 번째 눈이 산에게 남긴 말

불암산에서는 서울에 내린 두 번째 눈을 따라 백세문에서 정상으로 올랐습니다. 초입은 맨살을 드러냈지만 중턱부터 산은 흰 눈으로 덮여 있었고,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길은 미끄러운 바위와 숨은 돌로 다시 조심하라고 말했습니다.

불암산이 익숙한 산 앞에서도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산이었다면, 조령산은 거친 암릉과 무더위 속에서 물 한 모금의 귀함을 가르쳐준 산이었습니다. 두 산 모두 산의 크기보다 사람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조용히 알려주었습니다.

🌄 다음 산행 이야기

「산바람 · 글바람 ㉕」 용마산 산행기

조령산에서는 이화령에서 시작해 조령샘과 정상, 신선암봉의 거친 암릉을 지나 제3관문으로 내려왔습니다. 백두대간 능선 위에서 만난 바위와 바람, 정상의 아기 울음소리, 지친 끝에 만난 한 모금의 물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다음에는 서울 중랑구와 구리 방향에 걸쳐 이어지는 용마산으로 향합니다. 조령산이 백두대간의 거친 암릉과 문경새재의 오래된 발자국을 품은 산이었다면, 용마산에서는 도시 가까운 능선 위에서 서울의 풍경과 사람의 하루가 어떻게 만나는지 천천히 걸어보겠습니다.

🍃 산길의 끝에서

몇 년 만에 다시 오른 조령산은 예전처럼 거칠고 아름다웠다. 이화령의 들머리에서 느낀 작은 아쉬움, 조령샘에서 마신 차가운 물, 정상에서 들려온 아기 울음소리, 신선암봉으로 이어지는 밧줄과 절벽, 그리고 제3관문에서 다시 만난 한 모금의 물까지 모두 한날의 산행으로 이어졌다.

산은 변하지 않은 듯 서 있었지만, 그 산을 다시 찾은 나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얼마나 빨리 오르는지가 중요했다. 이제는 어디에서 숨을 고르고, 무엇을 바라보았는지가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정상의 높이보다 조령샘의 차가움이, 암릉의 긴장보다 제3관문 물 한 모금의 고마움이 더 깊게 남는다.

조령산은 내게 말해주었다. 길이 험할수록 몸은 단순해지고, 몸이 지칠수록 마음은 중요한 것만 붙잡게 된다고. 한 모금의 물, 한 줄기 바람, 낯선 사람과 나눈 짧은 인사. 그런 것들이 산에서는 가장 큰 위로가 된다.

그날 나는 거친 바위산 하나를 넘은 것이 아니라, 예전보다 조금 느려진 나를 받아들이는 길을 걷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느려졌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힘들었지만 끝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마른 목으로 마신 한 모금의 물 앞에서, 아직도 산이 내게 가르쳐줄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 산바람 · 글바람

조령산을 다시 찾았습니다.

몇 년 만에 오른 이화령에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터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이 마주하고,

두 갈래의 들머리는
어느새 하나의 산길로 만나
조령산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숲길을 따라 오르다
조령샘을 만났습니다.

산행 중 만나는 샘물은
단순한 물이 아니었습니다.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남은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는
산의 작은 위로였습니다.

정상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업고 산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낯선 바람 속에서 우는 아기와,
그 아이를 달래는 부모를 보며

산에도 삶이 함께 오른다는 것을
잠시 생각했습니다.

신선암봉으로 향하는 길은
거칠었습니다.

밧줄을 붙잡고,
바위에 발을 올리고,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한 걸음씩 몸을 낮췄습니다.

산은 누구에게나 길을 열어주지만,
모든 길을 무조건 허락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돌아서는 판단도
산을 존중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그 암릉은 말해주었습니다.

기온은 높았고,
물은 줄어들고,

제3관문으로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마침내 관문 앞에서
샘물을 만났을 때,

차가운 한 모금은
마른 목뿐 아니라
온몸의 피로를 씻어주었습니다.

세상에 귀한 것이 많지만,

지친 산행 끝에 만나는
물 한 모금보다
귀한 것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조령산은
예전처럼 거칠고 아름다웠고,

나는 예전보다
조금 느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려진 만큼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고,

한 모금의 물 앞에서
더 깊이 고마워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산을 오래 다닌다는 것은
더 빨리 걷는 일이 아니라,

작은 것 앞에서
오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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