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 글바람 ㉘」 덕유산 향적봉 별빛 따라 오른 무박 산행


덕유산 구천동에서 백련사를 지나 향적봉으로 오르는 겨울 새벽 산행길과 별빛, 향적봉 일출 풍경
덕유산의 주목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상고대는 없었지만, 덕유산의 새벽 하늘에는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별빛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산행이었다.

설 연휴 끝자락, 덕유산으로

모처럼 설 연휴가 이어지던 때였다. 태백산에 가자는 이야기도 들리고, 관악산에 가자는 이야기도 들리며 이러저런 산행 이야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긴 연휴 탓이었을까. 왠지 무엇인가 해결해야 할 듯, 쫓기듯 산행 계획에 매달렸다.

기왕 가는 것이라면 추억이라도 하나 제대로 만들고 싶었다.

덕유산은 내게 낯선 산이 아니었다. 종주도 두어 번 해보았고, 일출도 보았고, 나름의 추억도 있는 산이었다. 날씨가 조금 풀리긴 했지만 혹시 상고대라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 기대 하나로 덕유산 무박 산행을 결심했다.

처음에는 혼자라도 가겠다는 욕심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몇 사람이 함께하겠다고 해주었다. 덕분에 외롭지 않은 산행이 되었다. 산은 혼자 걸어도 좋지만, 새벽 산행은 함께 걷는 사람의 숨소리만으로도 든든해질 때가 있다.

군자역을 출발한 시간은 밤 10시. 이럭저럭 준비하다 보니 10시 30분이 다 되어갔다. 네 명이 일단 가기로 하고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설 연휴 끝무렵이라 길이 막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도로는 생각보다 순했다.

중부고속도로를 지나 경부고속도로, 다시 대전통영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렇게 덕유산 자락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되었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덕유산 향적봉

📅 산행일
2011년 2월 8일

🥾 산행 코스
구천동 야영장 부근 → 백련사 → 향적봉 → 백련사 → 구천동 야영장 부근

📏 산행 거리
왕복 약 17km

산행 형태
무박 새벽 산행 · 원점회귀

난이도
★★★★☆

구천동에서 백련사까지는 비교적 완만하지만 거리가 길고, 백련사 이후 향적봉까지는 겨울 새벽의 얼음 계단과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무박 산행이라 졸음과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

🌳 산행 환경
겨울 새벽 산행 · 헤드랜턴 · 별빛 · 백련사 · 향적봉 · 향적봉대피소 · 일출 · 눈길 · 얼음길

🏡 숙박
무박 산행으로 진행. 향적봉대피소 이용 시 사전 예약과 국립공원 공지 확인 필요

🚗 이동방법
서울 군자역 밤 출발, 자가용으로 덕유산 구천동 방면 이동

🌄 산행 특징
상고대 기대 산행 · 향적봉 일출 · 정상 라면 · 겨울 새벽 별빛 산행

차 안에서 보낸 짧은 밤

막상 도착해서 차 안에서 잠깐 자기로 했지만, 좁은 차 안에서 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랴. 한두 시간은 때워야 했다. 그냥 오르자니 남는 시간이 아깝고, 자자니 잠은 제대로 오지 않았다.

비몽사몽도 아닌, 얼렁뚱땅 눈을 뜨니 새벽 2시 반이었다. 아마 다들 좁은 차 안에서 눈만 감고 버틴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서로 코를 골았느니 어쩌니 정다운 핀잔을 주고받았다. 그런 농담이 반가웠다. 산행 전의 피곤함도 함께 웃으면 조금은 가벼워진다.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구멍가게로 들어섰다. 주인아주머니는 마루에 이불을 덮고 주무시다가 문 여는 소리에 일어나셨다. 그 추운 새벽, 손님도 없을 듯한데 불도 끄지 않고 문도 잠그지 않은 채 계셨다. 어찌 보면 그 새벽 시골 가게에 불이 켜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컵라면을 부탁하니 물도 부어주시고 김치까지 내어주셨다. 거기에 커피도 한 잔 곁들였다. 무박 산행에서 새벽의 컵라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몸을 깨우고, 마음을 달래고, 앞으로 오를 산길을 시작하게 해주는 작은 의식 같은 것이다.

새벽 산행을 한다는 말에 주인아주머니가 한마디 하셨다.

“무슨 추운데 일출이야. 일출은 바다 가서 봐야지.”

나는 웃으며 말했다.

“바다도 좋은데, 그래도 산에서 보는 일출도 좋아요.”

아주머니는 결국 추운데 조심하라고 하셨다. 그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따뜻했다. 산행은 때때로 산보다 사람의 말로 먼저 시작된다.

구천동 야영장으로

차를 주차장까지 가져가려니 너무 멀었다. 그때 내 말을 이해하셨는지, 아주머니는 야영장 한쪽 구석에 차를 대고 산행하라고 일러주셨다. 새벽이라 야영장 주차 차단기는 들려 있었다.

차를 몰고 야영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 추운 날씨에도 텐트를 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들어오는 소리에 새벽잠이 깼는지 텐트에 불빛이 들어왔다. 주차된 차량을 보며, 추운 겨울에도 야영을 하는 사람들이 문득 부러웠다. 추위를 견디며 자연 속에서 밤을 보내는 사람들. 산을 좋아하는 마음도 참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쪽에 차를 세우고 백련사로 향했다.

백련사까지는 약 5.8km. 차가 다니는 길이긴 하지만, 거의 눈이 녹지 않아 얼음 상태라고 해야 할 길이었다. 헤드랜턴 앞에는 어두운 덕유산의 실체가 가끔씩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기왕 온 것, 해돋이는 꼭 정상에서 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빠른 걸음을 요구하듯 앞서 나갔다.

길은 거의 평지 수준의 완만한 오르막이었다. 하지만 겨울 새벽의 길은 거리보다 분위기가 사람을 긴장하게 한다. 다들 땀이 나는 모양이었다. 여름이면 무성한 숲과 계곡의 우렁찬 물소리가 들렸을 길인데, 그날은 모든 것이 얼음 속에 갇힌 듯 고요했다.

헤드랜턴에 비친 짐승들의 발자국이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었다. 한쪽으로는 이 산에 짐승들이 많구나 싶었고, 또 한쪽으로는 혹시 어디선가 멧돼지가 뛰어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밤 산행의 상상력은 참 쓸데없이 부지런하다. 작은 발자국 하나에도 마음은 혼자 멧돼지 한 마리를 만들어낸다.

별이 쏟아지던 밤

그렇게 걷다가 잠시 길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온통 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었다.

다들 잠시 랜턴을 끄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별천지였는지 모른다. 서울에서 바라본 하늘은 중랑천을 걸으며 아무리 올려다봐도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몇 개의 별이 전부였다. 그런데 덕유산의 새벽 하늘은 달랐다. 은가루를 쏟아놓은 듯, 별들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거면 됐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상고대가 없어도, 일출이 기대만큼 화려하지 않아도, 이 밤하늘 하나면 이미 충분했다. 너무 오랜만에 본 별 탓이었을까. 벌써 마음 한구석에는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어앉았다.

산행에는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정상도 아니고, 사진으로 남길 만한 큰 풍경도 아닌데, 마음이 먼저 도착해버리는 순간. 덕유산의 그 새벽 별빛이 내게는 그런 순간이었다.

오늘의 시

별 / 송현

누구의 사주일까
총총히도 길 나섰네.

내 가는 길 반가운
별 모아 줄 세우고,

은빛 향수 가득가득
하늘에 흐른다.

속세 만세, 개똥철학
덕유산에 던지고,

어릴 적 추억처럼
별 둘, 별 셋 이어지는 숫자에

길 잃은 소달구지
살금살금
별 밟고 지나가네.


백련사에서 시작된 진짜 오르막

별빛의 탄성을 뒤로하고 다시 걸었다. 백련사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 40분. 3시 30분쯤 출발했으니 한 시간 10분 정도 걸린 셈이었다. 빠르게 온 편이었다. 정말 무식하게 앞장서서 걸어온 내 탓이기도 했고, 아무 말 없이 따라와 준 세 사람 덕분이기도 했다.

백련사부터는 진짜 깔딱고개가 이어졌다. 얼음 계단이 반갑게, 아니 무섭게 맞이했다. 눈은 녹지 않고 그대로 얼어 있었고, 나무계단 위의 눈은 녹았다 다시 얼어 단단한 얼음으로 남아 있었다.

서서히 백련사의 불빛이 주황색으로 점점 작아졌다. 우리는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보이는 것은 눈과 어둠, 그리고 가끔 골바람처럼 휘몰아치는 바람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바람을 시원하다고 말했다. 힘든 오르막에서 바람은 때로 추위가 아니라 위로가 된다.

백련사 불빛이 멀어질수록 산은 더 깊어졌다. 발밑은 얼음이고, 위로는 어둠이었다. 새벽 산행에서는 말수가 줄어든다. 각자 자기 숨을 챙기고, 자기 발밑을 살핀다. 누가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길. 산은 그 단순한 사실을 새벽마다 다시 가르쳐준다.

나는 일출을 정상에서 보고 싶었다. 그 마음 하나가 걸음을 재촉했다. 일출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산 아래에서 늦장을 부리면 해는 혼자 떠오른다. 그래서 새벽 산행의 발걸음에는 늘 약간의 조급함이 섞인다.

향적봉, 어둠 속에 도착하다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5시 50분. 구천동에서 향적봉까지 약 8.5km의 거리를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올라왔다. 세 시간도 걸리지 않고 도착한 것을 보니 다들 부지런히 올라온 셈이다. 일출을 보겠다는 욕심이 우리를 쉬지 않게 만들었고, 새벽이라 딱히 구경할 것도 없었던 것이 오히려 걸음을 빠르게 했다.

반가운 마음과 희열이 밀려왔다.

올라오는 동안 다른 새벽 산행객을 거의 보지 못했다. 향적봉 정상에 도착하니 어둠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피소의 가로등만이 그나마 우리를 아는 척했다.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6시면 해가 뜬다고 했지만, 잘 모르고 하신 모양이었다. 하늘에는 아까보다 적지만 여전히 별이 빛나고 있었다. 대피소에서 묵은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짐을 꾸려 남덕유산 쪽으로 출발하고 있었다.

전에 나도 그랬다.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라면 한 개로 배를 채운 뒤 바로 남덕유산을 향해 걸은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는 왜 그리 무모한 짓을 했을까.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그런 무모함이 있었기에 지금도 이렇게 이야기할 산행이 남아 있는 것인지 모른다.

젊은 날의 산행에는 이유보다 기세가 앞선다. 지금 돌아보면 아찔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때로는 그 믿음이 사람을 정말로 길 위에 세워준다.

정상의 라면과 반쪽 일출

취사실에 버너를 켜고 라면을 끓였다. 대피소에서 주무신 분들이 한 분 두 분 나타나 저마다 라면을 끓였다. 주식이 라면. 다들 거의 똑같았다. 말없는 침묵만이 버너의 가스 소리를 채웠고, 하늘에는 서서히 붉은빛이 돌기 시작했다.

날씨가 풀린 탓에 눈꽃은 없었다. 그래도 일출이라도 곱게 나타나주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구름도 예쁘지 않았고, 해님은 수줍은 듯 제 얼굴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았다. 잠시 반쪽 얼굴만 내밀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래도 그 반쪽 얼굴이 어디인가. 나는 그 모습이라도 다행으로 여기며 사진을 찍었다. 산에서 만나는 일출은 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구름이 가리기도 하고, 바람이 세기도 하고, 해가 늦게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하지만 산 위에서 기다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일출은 의미를 가진다.

항상 느끼지만 정상에서 끓이는 라면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같은 라면이라도 산 아래에서 먹는 것과 산 위에서 먹는 것은 다르다. 추위와 어둠을 뚫고 올라온 몸, 새벽 공기, 버너 소리, 함께 오른 사람들의 침묵이 라면 국물 속에 함께 들어간다.

정상까지 무거운 막걸리를 가져와 준 회원도 고마웠다. 덕분에 정상주도 한잔했다. 상고대는 없었고 일출도 완전하지 않았지만, 별빛과 라면과 막걸리 한 잔이 있었다. 그 정도면 덕유산은 충분히 넉넉한 아침을 내어준 셈이었다.

하산길, 우리가 올라온 길을 되돌아가다

더 있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곤도라를 탈 이유도 없었다. 올라올 때는 아이젠 없이 올라왔지만, 내려갈 때는 아이젠을 착용하고 하산했다. 겨울 산에서 내려가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더 조심스럽다. 올라갈 때의 욕심은 힘으로 버틸 수 있지만, 내려갈 때의 방심은 바로 넘어짐으로 돌아온다.

백련사를 지나자 사람들이 떼지어 덕유산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그들과 반대로 하산했다. 밤에 올라 새벽에 향적봉을 보고 내려오는 사람과, 이제 막 산으로 들어서는 사람. 같은 길 위에서도 시간은 서로 다르게 흐른다.

왕복 약 17km. 번개처럼 끝낸 산행이었다.

남보다 힘들게 밤에 와서 새벽에 올라갔고, 그렇게 산행을 마쳤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값진 추억이 된 것 같았다. 가끔은 무모한 듯하지만 해볼 만한 일이 있다. 너무 따지고 재고 계산하면 끝내 떠나지 못하는 길도 있다.

물론 무모함이 늘 좋은 것은 아니다. 겨울 산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그러나 준비를 하고, 함께 걷는 사람이 있고, 자기 몸의 상태를 살피며 걷는다면 어떤 무모함은 오래 기억되는 용기가 되기도 한다.

차에 오르니 잠이 쏟아졌다. 밤새 달려와 새벽 산을 오르고, 향적봉에서 일출을 기다리고, 다시 내려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환했다. 덕유산의 별빛이 아직 눈 안쪽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가끔은 무모해야 남는 기억

그날 덕유산에는 상고대가 없었다. 기대했던 눈꽃 터널도 없었다. 일출도 완전하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성공적인 눈꽃 산행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산행은 오래 남았다.

왜일까. 아마도 별 때문이었을 것이다. 백련사로 향하던 길에 모두 랜턴을 끄고 바라본 별빛. 서울에서는 손에 꼽을 만큼밖에 보이지 않던 별들이 덕유산 하늘에서는 은가루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산행은 기대한 것을 얻는 일이기도 하지만, 기대하지 않은 것을 받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상고대를 기대하고 갔지만 별을 받았다. 멋진 일출을 기대했지만 반쪽의 해를 받았다. 따뜻한 잠자리를 기대할 수 없는 무박 산행에서 새벽 구멍가게의 컵라면과 김치를 받았다.

생각해보면 산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사람을 가르친다. 내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주지는 않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슬쩍 내어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알게 된다. 그날 정말 오래 남은 것은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라, 뜻밖에 받은 것들이었다는 것을.

덕유산의 그 무박 산행도 그랬다. 상고대는 없었지만 별이 있었고, 완전한 일출은 없었지만 반쪽의 해가 있었다. 잠은 부족했지만 함께 웃는 사람들이 있었고, 추운 새벽에는 구멍가게 아주머니의 말 한마디가 있었다.

그것이면 됐다.

에필로그|별빛 하나면 충분했던 밤

덕유산 무박 산행은 오래전 일이다. 2011년 2월 8일, 설 연휴 끝자락의 밤이었다. 군자역에서 밤 10시에 출발해 고속도로를 달리고, 새벽 1시에 덕유산 자락에 도착했다. 좁은 차 안에서 눈만 감고 버틴 뒤, 새벽 구멍가게에서 컵라면과 김치, 커피 한 잔으로 몸을 깨웠다.

그 새벽,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말했다.

“무슨 추운데 일출이야. 일출은 바다 가서 봐야지.”

그 말이 아직도 웃음처럼 남아 있다. 산에서 보는 일출도 좋다고 말했지만, 정작 그날 향적봉의 해는 온전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산은 다른 것을 주었다.

백련사로 향하던 길, 우리는 랜턴을 끄고 별을 보았다. 하늘에는 은가루처럼 별이 쏟아져 있었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별빛이었다. 그 순간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거면 됐다.

정말 그랬다. 그날 덕유산 산행은 그 별빛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백련사 이후의 얼음 계단과 향적봉의 어둠, 대피소 취사실의 라면 냄새, 반쪽 일출과 막걸리 한 잔, 그리고 하산길에 올라오는 사람들을 거꾸로 지나치던 묘한 뿌듯함까지 모두 그 별빛 뒤에 따라오는 선물 같았다.

가끔은 무모한 듯 떠난 길이 오래 남는다. 너무 계산하면 떠나지 못하고, 너무 준비만 하면 시작하지 못한다. 물론 겨울 산에서 무모함은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날에는 조금 무모했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풍경도 있다. 덕유산의 그 밤이 그랬다.

상고대는 없었고, 일출도 반쪽이었다. 하지만 별빛은 완전했다. 그리고 그 별빛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다.

다음 산길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 이 산행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덕유산 구천동에서 백련사를 지나 향적봉으로 오르는 길은 겨울 산행지로 많은 사람이 찾는 코스다. 구천동에서 백련사까지는 비교적 완만하지만 거리가 길고, 백련사 이후 향적봉까지는 가파른 오르막과 겨울철 빙판 구간이 이어질 수 있다. 무박 산행은 졸음, 추위, 어둠, 체력 저하가 겹치므로 혼자 무리하기보다 동행과 장비를 갖추고 움직이는 것이 좋다.

겨울 덕유산은 상고대와 설경으로 유명하지만, 날씨가 풀리면 눈꽃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산행 전에는 국립공원 탐방로 통제 정보와 기상 상황, 대피소 이용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 새벽 산행은 헤드랜턴과 예비 배터리, 아이젠, 방한 장비가 필수다.

산행 준비 메모

첫째, 무박 산행은 잠을 못 잔 상태에서 걷는 산행이다.
거리보다 졸음과 체력 저하가 더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운전자는 특히 귀가길 졸음운전에 주의해야 한다.

둘째, 백련사 이후 향적봉 오름길은 겨울철 빙판에 대비해야 한다.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더 미끄럽다. 아이젠은 선택이 아니라 안전장비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셋째, 상고대와 일출은 약속된 풍경이 아니다.
기대한 풍경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별빛과 새벽 공기, 함께 걷는 사람들의 기억이 산행을 충분히 완성해준다.

🌿 관련 사이트 및 여행 정보

① 국립공원공단 덕유산국립공원

👉 국립공원공단 덕유산국립공원 바로가기

덕유산 탐방 코스, 탐방로 통제 정보, 입산시간, 대피소 관련 안내를 확인할 수 있다.

② 무주 문화관광 덕유산

👉 무주 문화관광 덕유산 바로가기

덕유산, 구천동, 백련사, 향적봉 주변 여행 정보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③ 무주구천동 관광 정보

👉 무주구천동 관광 정보 바로가기

구천동 관광단지와 백련사, 향적봉 방면 접근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④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

👉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 바로가기

향적봉대피소 등 국립공원 대피소 예약과 이용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⑤ 무주덕유산리조트 곤도라

👉 무주덕유산리조트 곤도라 안내 바로가기

설천봉 곤도라 운행 정보와 리조트 이용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덕유산 무박 산행 준비물 체크리스트

헤드랜턴
예비 배터리
아이젠
방한 장갑
넥워머 또는 바라클라바
보온 의류
방풍 재킷
따뜻한 물
간단한 행동식
컵라면 또는 따뜻한 식사 준비
보조배터리
대피소·탐방로 통제 확인
졸음운전 방지 계획
일출이 반쪽이어도 웃을 마음

🌿 추천 숙박과 주변 여행

🏡 무주 구천동권

덕유산 향적봉 산행을 여유 있게 계획한다면 무주 구천동권 숙박을 고려할 수 있다. 구천동 탐방로와 백련사, 향적봉 산행 들머리 접근이 편하고, 산행 전후로 몸을 쉬게 하기 좋다.

👉 무주 문화관광 숙박 정보 바로가기

🏡 무주덕유산리조트권

겨울 설경 여행이나 가족 여행을 함께 계획한다면 무주덕유산리조트권도 좋다. 곤도라를 이용해 설천봉에 오를 수 있어 산행이 어려운 사람도 덕유산의 겨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 무주덕유산리조트 바로가기

🌄 이전 산행 이야기 다시보기

「산바람 · 글바람 ㉗」 소백산 산행기, 철쭉이 떠난 능선에 바람만 남아 있었다

소백산에서는 희방사역에서 시작해 희방폭포와 희방사, 연화봉과 제1연화봉을 지나 비로봉에 올랐고, 천동계곡을 따라 단양으로 내려왔습니다. 철쭉은 이미 대부분 지고 없었지만, 바람만 남은 능선에서 오래전의 나를 다시 만났습니다.

소백산이 오래된 기억을 다시 꺼내 걷는 산이었다면, 덕유산은 별빛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던 무박 산행의 산이었습니다. 꽃이 떠난 소백산 능선에 바람이 남아 있었다면, 덕유산의 새벽길에는 상고대 대신 별빛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 다음 산행 이야기

「산바람 · 글바람 ㉙」 계방산 산행기

덕유산에서는 설 연휴 끝자락, 밤 10시에 서울을 출발해 새벽 구천동에서 백련사를 지나 향적봉에 올랐습니다. 상고대는 만나지 못했고 일출도 반쪽이었지만, 백련사 가는 길의 별빛과 정상에서 끓인 라면, 막걸리 한 잔이 오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다음 산행은 계방산으로 향합니다. 계방산은 겨울 눈꽃과 상고대, 그리고 넓은 조망으로 사랑받는 산입니다. 덕유산이 별빛 따라 오른 무박 산행이었다면, 계방산에서는 겨울 능선 위에서 또 다른 눈빛의 기억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산길의 끝에서

덕유산 무박 산행은 조금 무모한 듯 시작된 길이었다. 설 연휴 끝자락, 밤 10시에 군자역을 출발해 새벽 1시에 덕유산 자락에 닿았다. 좁은 차 안에서 눈만 감고 버틴 뒤, 새벽 구멍가게에서 컵라면과 김치, 커피 한 잔으로 몸을 깨웠다.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말했다. “무슨 추운데 일출이야. 일출은 바다 가서 봐야지.” 그 말이 아직도 웃음처럼 남아 있다. 산에서 보는 일출도 좋다고 말했지만, 정작 그날 향적봉의 해는 온전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산은 다른 것을 주었다.

백련사로 향하던 길, 우리는 랜턴을 끄고 별을 보았다. 하늘에는 은가루처럼 별이 쏟아져 있었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별빛이었다. 그 순간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거면 됐다. 정말 그랬다. 그날 덕유산 산행은 그 별빛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백련사 이후의 얼음 계단과 향적봉의 어둠, 대피소 취사실의 라면 냄새, 반쪽 일출과 막걸리 한 잔, 그리고 하산길에 올라오는 사람들을 거꾸로 지나치던 묘한 뿌듯함까지 모두 그 별빛 뒤에 따라오는 선물 같았다.

가끔은 무모한 듯 떠난 길이 오래 남는다. 너무 계산하면 떠나지 못하고, 너무 준비만 하면 시작하지 못한다. 물론 겨울 산에서 무모함은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날에는 조금 무모했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풍경도 있다. 덕유산의 그 밤이 그랬다.

상고대는 없었고, 일출도 반쪽이었다. 하지만 별빛은 완전했다. 그리고 그 별빛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다.

다음 산길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 산바람 · 글바람

설 연휴 끝자락,
밤 10시에
덕유산으로 떠났습니다.

상고대를 기대했고,
향적봉의 일출을 꿈꾸었습니다.

좁은 차 안에서
잠인지 아닌지 모를 시간을 보내고,

새벽 구멍가게에서
컵라면과 김치,
커피 한 잔으로
몸을 깨웠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말했습니다.

무슨 추운데 일출이야.
일출은 바다 가서 봐야지.

그 말이
아직도 웃음처럼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헤드랜턴을 켜고
백련사로 향했습니다.

계곡의 물소리는
얼음 속에 갇힌 듯 고요했고,

짐승들의 발자국만
눈 위에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랜턴을 끄자
덕유산의 밤하늘이 열렸습니다.

서울에서는 손에 꼽을 만큼만 보이던 별들이
그곳에서는 은가루처럼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이거면 됐다.

나는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백련사 불빛은
점점 작아지고,

얼음 계단과 골바람을 지나
우리는 향적봉에 올랐습니다.

상고대는 없었습니다.

기다리던 해도
온전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구름 사이로 잠시 드러난
반쪽의 일출.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정상에서 끓인 라면과
막걸리 한 잔,

함께 오른 사람들의 숨소리와
새벽 별빛이 있었으니까요.

산행은
기대한 것을 얻는 일이기도 하지만,

기대하지 않은 것을
받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상고대를 기대하고 갔지만
별을 받았습니다.

완전한 일출을 기다렸지만
반쪽의 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반쪽마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가끔은
무모한 듯 떠난 길이
삶의 한쪽을 환하게 밝힙니다.

덕유산의 그 밤도
그랬습니다.

상고대는 없었고,
일출도 반쪽이었지만,

별빛은 완전했습니다.

그 별빛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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