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 글바람 ⑰」 경주 남산 산행기, 천년의 신라를 따라 걷다
담장도,종소리도 없는 산중에서 석탑은 하늘과 바람을 벗 삼아 묵묵히 서 있었다. |
으로 오른 경주 남산 산행. 소나무 숲과 계곡 사이에 남은 불상과 마애불, 석탑을 따라 걸으며 천년 신라의 시간과 마주했다.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경주 남산에서는 정상보다 오래된 시간이 먼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위에 새겨진 부처와 사라진 절터, 말없는 석탑 사이로 천년의 신라가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천년의 고도, 경주로 가다
천년의 고도 경주를 찾았다.
경주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와 왕릉들이 먼저 생각난다. 도시 전체가 신라의 시간을 품고 있어 어디를 걷든 옛사람들의 숨결과 마주하게 되는 곳이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찾은 곳은 화려한 궁궐터나 거대한 왕릉이 아니었다.
신라의 불상과 탑, 오래된 절터가 산과 계곡 곳곳에 흩어져 있다는 경주 남산이었다.
경주 남산은 경주국립공원에 속한 산이다. 남산 지구는 월성·대릉원·황룡사·산성 지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경주역사유적지구를 이루고 있으며, 국가유산청은 경주역사유적지구를 신라왕조의 수도였던 경주 주변에 남은 한국 건축과 불교 발달의 중요한 유산으로 설명한다.
경주시 문화관광 안내에서도 경주 남산은 금오산이라고도 불리며, 신라 천년의 역사 속에서 가장 신성시되어 온 곳으로 소개된다. 불교 관련 유적뿐 아니라 왕릉, 무덤, 궁궐터 등이 남아 있어 신라 문화가 집결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사실 경주 남산을 잘 알지 못한 채 산을 찾았다.
높은 정상에 오르겠다는 마음이 먼저였고, 그 산속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삼릉에서 산행을 시작해 금오봉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경상북도 경주시 경주 남산
📅 산행 시기
신라의 유적을 따라 걷기 좋은 계절
🥾 주요 코스
삼릉 → 삼릉계곡 → 마애관음보살상 → 선각육존불 일대 → 상선암 → 금오봉 → 석탑 조망지 → 포석정 연계
📏 산행 거리
선택하는 답사 동선과 유적 탐방 범위에 따라 달라짐
⏱ 산행 시간
단순 산행보다 유적 답사 시간이 많이 필요하므로 여유 있게 계획
⭐ 난이도
★★★☆☆
고도는 아주 높지 않지만, 유적을 보며 걷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일부 구간은 바위와 경사가 있음
🌳 산행 환경
소나무 숲 · 계곡길 · 마애불 · 석불 · 석탑 · 절터 · 조망 능선 · 역사유적 답사길
🏡 주변 여행
포석정 · 대릉원 · 첨성대 · 월성 · 불국사 · 석굴암 연계 가능
🚗 이동 방법
자가용 또는 경주 시내버스 연계 가능
경주 남산은 단순히 산행만을 위한 산이 아니다. 경주시 문화관광은 남산 일원에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포석정지, 남산신성 등 다양한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고 소개한다. 그래서 경주 남산은 정상에 빨리 오르는 것보다, 천천히 걸으며 바위와 계곡 속에 남은 유적을 만나는 마음이 더 어울리는 산이다.
삼릉에서 산길이 시작되다
들머리에 들어서자 소나무 사이로 세 개의 왕릉이 나란히 자리한 삼릉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의 무덤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봉긋한 능선을 닮은 왕릉과 굽은 소나무가 만들어내는 풍경만으로도 오래된 시간 속으로 들어서는 듯했다.
경주의 소나무는 이상하다.
그냥 나무가 아니라, 오래된 왕국의 기억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바람이 불면 가지가 흔들리고,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오면 마치 누군가 조용히 길을 열어주는 것 같다.
삼릉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서자 남산은 조금씩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산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얼마 걷지 않아 바위에 새겨진 불상과 머리가 없는 석불, 돌기둥 같은 암벽에 새겨진 관음보살상이 하나둘 나타났다.
유적을 찾아가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산을 오르는 길이 곧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바위에 새겨진 부처를 만나다
삼릉계곡의 마애관음보살상은 돌기둥처럼 솟은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연꽃무늬 대좌 위에 서 있는 보살의 모습은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고도 산속을 지키고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두 바위 면에 여섯 분의 부처와 보살을 선으로 새긴 삼릉계곡 선각육존불도 만날 수 있다. 돌을 깊게 파내기보다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선으로 표현한 모습이 독특했다.
나는 바위 앞에 서서 한동안 발걸음을 멈추었다.
지금처럼 정교한 장비도 없던 시대에 누군가는 이 산에 올라 바위를 고르고, 오랜 시간 정과 망치를 두드리며 부처의 얼굴을 새겼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날을 이 바위 앞에서 보냈을까.
한 번의 실수로 돌이 깨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을 것이다.
돌 속에 이미 부처가 들어 있고, 자신들은 그 모습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바라보니 바위는 더 이상 바위로만 보이지 않았다.
오래전 사람들의 믿음과 염원, 그리고 간절한 마음이 굳어 만들어진 하나의 기도처럼 느껴졌다.
남산이 왜 천년의 신라인지 알게 되다
계곡을 따라 올라갈수록 유적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남산이 왜 국립공원이고, 왜 천년의 신라라고 불릴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머리가 사라진 불상 앞에서는 세월의 무게를 생각했고, 선으로 새겨진 부처 앞에서는 돌 위를 흘러간 장인의 손길을 떠올렸다.
삼릉계곡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알려진 석조여래좌상도 남아 있다. 훼손된 부분이 있지만, 단단한 화강암 속에 새겨진 부처의 자세와 옷자락에서는 신라 석조 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산행에서는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곤 한다.
몇 킬로미터가 남았는지,
고도가 얼마나 되는지,
언제 정상에 도착할 수 있는지가 관심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남산에서는 자꾸만 걸음이 늦어졌다.
고개를 들면 바위에 부처가 있었고, 길을 벗어나 몇 걸음 다가가면 오래된 석불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르다가 멈추고,
바라보다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산행이라기보다 천천히 펼쳐 보는 오래된 역사책 같았다.
다만 책 속의 글자가 종이에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바위와 계곡, 소나무와 절터에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상선암을 지나 금오봉으로
상선암을 지나자 길은 조금씩 가팔라졌다.
숨은 거칠어지고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그러나 바위 사이로 시야가 열릴 때마다 경주의 들판과 산줄기가 멀리 펼쳐졌다.
신라 사람들도 이곳에 올라 같은 들판과 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천 년 전의 사람과 오늘의 내가 같은 산 위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산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람은 그때도 지금처럼 소나무 사이를 지나갔을 것이고, 저녁이면 산 그림자가 경주 들판 위로 길게 누웠을 것이다.
마침내 정상인 금오봉에 올랐다.
금오봉은 아주 높은 봉우리는 아니지만, 그곳까지 이어진 길에 수많은 유적과 이야기가 놓여 있어 정상의 높이보다 훨씬 깊은 산으로 느껴졌다.
정상에 서니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경주 남산은 정상 하나만을 바라보고 오르는 산이 아니었다.
한 걸음 오를 때마다 신라의 시간과 마주하고, 바위에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으며 걷는 산이었다.
정상은 그 긴 이야기를 잠시 돌아보는 쉼표에 가까웠다.
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은 석탑
금오봉을 지나 석탑이 자리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위 능선과 탁 트인 풍경 속에 서 있는 석탑은 마치 산 전체를 자신의 기단으로 삼고 있는 듯했다.
대웅전도,
담장도,
종소리도 없는 산중에서 석탑은 하늘과 바람을 벗 삼아 묵묵히 서 있었다.
절은 사라지고 스님도 신도도 떠났지만, 탑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아마도 천 년 동안 수많은 비와 눈을 맞았을 것이다.
전쟁과 혼란의 세월도 내려다보았을 것이고, 이름 없이 산을 오르던 사람들의 기도도 들었을 것이다.
세월은 탑의 모서리를 조금씩 닳게 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석탑 앞에 서니 경치가 참으로 빼어났다.
겹겹이 이어지는 산과 넓게 펼쳐진 경주의 들판, 그 위로 흐르는 구름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옛사람들이 왜 이 높은 곳에 탑을 세우고 부처를 새겼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산과 하늘이 만나는 곳에 자신들의 염원을 올려놓고 싶었을 것이다.
높은 곳에서 더 가까이 부처를 만나고, 산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안과 안녕을 빌고 싶었을 것이다.
자연과 유적이 함께 살아 있는 산
경주 남산에는 절터와 불상, 탑과 마애불이 곳곳에 남아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설명에서도 남산을 포함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 왕조의 수도였던 경주 주변에 남은 한국 불교와 건축, 예술 발전의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직접 걸어보니 남산의 진짜 가치는 유적의 숫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불상이 박물관의 유리관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처음 만들어졌던 바위와 숲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 특별했다.
새가 불상 머리 위로 날아가고,
낙엽이 무릎 위에 내려앉으며,
계절마다 햇빛과 비가 얼굴을 스쳐 간다.
자연과 유적이 서로 분리되지 않은 채 천 년을 함께 살아온 것이다.
산길을 내려오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국립공원에 속한 산 하나를 오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려올 때는 오래된 신라의 절과 불국토를 한 바퀴 돌아 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산속에 흩어진 불상들은 말이 없었다.
머리가 사라지고 몸이 닳았어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바위가 된 채 같은 자리에서 천 년의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많은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사람의 삶은 짧고 세상의 모습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남긴 흔적은 긴 세월을 건너 누군가에게 다시 말을 건넨다는 것을.
포석정, 물길 따라 흐르던 시와 달빛
산을 내려온 뒤, 포석정을 만났다.
포석정 앞에 서자 마치 왕과 신하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물길을 따라 술잔이 흐르고, 사람들은 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 시를 지으려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웃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술잔을 기다리며 짧은 시 한 줄을 마음속으로 가다듬었을 것이다.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의 포석정지 설명에 따르면, 포석정은 신라시대 연회 장소로 조성 연대는 헌강왕 때로 본다. 현재 정자는 남아 있지 않고,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 남아 있다. 이 물길은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던 유상곡수연과 관련된 공간으로 설명된다.
나는 그 물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람은 떠났고,
술잔도 사라졌고,
연회의 웃음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돌물길에는 아직 천년의 웃음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바람 한 줄기가 스쳐 지나갔다.
술향은 사라졌지만,
시향은 아직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
🍂 오늘의 시
포석정 / 송현
물길 따라 시가 흐르고
술잔 따라 달빛이 돈다.
사람은 떠났어도
돌물길에는
천년의 웃음이 남아 있다.
바람 한 줄 스쳐 가니
술향은 사라지고
시향만 굽이굽이 흐른다.
천년의 침묵이 말을 걸다
산을 내려온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속에는 한 장면이 남았다.
천년을 아무 말 없이 바위에 기대앉아 경주를 바라보고 있던 부처의 얼굴.
머리가 사라진 불상도 있었고, 마모되어 표정이 흐릿해진 석불도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완전한 것보다 그런 모습들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깨지고,
닳고,
사라진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이 보였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상처 하나 없는 삶보다,
세월을 지나며 조금 닳고 깎인 얼굴에 더 많은 이야기가 남는 법이다.
경주 남산의 불상들은 자신을 설명하지 않았다.
누가 만들었는지,
왜 만들었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텼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천년의 말처럼 느껴졌다.
산은 말이 없었지만,
그 침묵 속에서 신라의 시간이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에필로그|정상보다 깊었던 산
경주 남산은 높이로 기억되는 산이 아니었다.
바위에 새겨진 부처의 미소와 오래된 석탑,
소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과 사라진 절터의 적막으로 기억되는 산이었다.
나는 그날 산 정상 하나를 다녀온 것이 아니었다.
천 년의 시간을 걸어 올라갔다가 다시 오늘로 내려왔다.
처음에는 금오봉을 목표로 걸었다.
그러나 걷다 보니 정상보다 길 위의 불상들이 먼저 마음을 붙잡았다.
바위에 새겨진 보살,
선으로 그려진 부처,
머리가 사라진 석불,
하늘과 바람을 벗 삼아 서 있던 석탑.
그들은 모두 말이 없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신라의 시간을 품고 있었다.
경주 남산은 유적이 산속에 남아 있는 곳이 아니라,
산 전체가 하나의 오래된 기도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천 년 전 누군가가 돌에 새긴 마음이,
오늘 산길을 걷는 나에게까지 닿았다.
그것이 유산이라는 말의 진짜 뜻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떠나도 마음은 남고,
절은 사라져도 탑은 남고,
한 시대는 저물어도 바위에 새긴 기도는 남는다.
경주 남산에서 나는 그 남겨진 것들 사이를 걸었다.
그리고 산을 내려오며 생각했다.
사라진 것만 바라보면 경주는 폐허가 되지만,
남은 것을 바라보면 경주는 아직도 숨 쉬는 시간이다.
🌿 이 산행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경주 남산은 단순한 등산 코스라기보다 역사유적 답사와 산행이 함께 이루어지는 산이다. 삼릉에서 금오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삼릉계곡의 마애불과 석불, 선각육존불, 상선암, 석탑 등 다양한 유적이 이어진다.
경주시 문화관광 안내는 경주 남산 일원을 신라 천년의 역사 속에서 신성시되어 온 곳으로 소개하며, 불교 관련 유적뿐 아니라 왕릉, 무덤, 궁궐터 등이 남아 있는 신라 문화의 집결지라고 설명한다.
남산 산행은 정상 도착 시간만 계산하면 아쉬움이 크다. 유적 앞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일반 산행보다 더 넉넉하게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특히 바위 유적과 마애불은 계절과 빛의 방향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므로, 천천히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 산행 준비 메모
경주 남산은 ‘빨리 오르는 산’보다 ‘천천히 읽는 산’에 가깝다. 정상만 보고 걷기보다 삼릉계곡의 유적과 바위에 새겨진 불상들을 하나씩 만나며 걷는 것이 좋다.
문화유산이 많은 산이므로 유적 훼손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바위에 오르거나 유적을 만지는 행동은 피하고, 지정된 탐방로를 따라 걷는 것이 좋다. 사진을 찍을 때도 유적을 배경으로만 소비하기보다, 그곳에 담긴 시간과 마음을 함께 바라보면 산행이 훨씬 깊어진다.
🌿 관련 사이트 및 여행 정보
🌿 ① 경주국립공원
경주 남산은 경주국립공원에 속한 산으로, 탐방 전 국립공원 공지와 탐방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② 경주시 문화관광
경주 남산, 포석정, 삼릉, 불국사, 석굴암, 대릉원 등 경주 여행 정보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경주시 문화관광은 경주 남산 일원을 신라문화가 집결된 곳으로 소개한다.
🌿 ③ 국가유산청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남산지구를 포함한 경주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가치와 등재 기준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경주역사유적지구가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주변에 남은 불교와 건축, 예술 발전의 중요한 유산이라고 설명한다.
🌿 ④ 경주 포석정지 국가유산 정보
포석정지의 유상곡수연과 물길, 신라시대 연회 공간에 대한 설명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포석정에는 정자는 남아 있지 않고,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 남아 있다.
🌿 ⑤ 코레일 승차권 예매
경주로 이동할 때 KTX와 일반열차 시간, 승차권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경주 남산 준비물 체크리스트
□ 접지력 좋은 등산화
□ 충분한 식수
□ 간단한 행동식
□ 햇빛 대비 모자 또는 선글라스
□ 바람막이 또는 계절별 겉옷
□ 보조배터리
□ 문화유산 안내지도 또는 지도 앱
□ 유적을 천천히 바라볼 시간
□ 지정 탐방로를 지키는 마음
□ 포석정·삼릉 등 주변 유적 연계 일정
🌿 추천 숙박
🏡 경주 시내권
대릉원, 첨성대, 황리단길, 월성, 국립경주박물관 등을 함께 둘러보려면 경주 시내권 숙박이 편리하다. 경주 남산 산행 전후로 도시 속 유적과 맛집, 카페를 함께 즐기기 좋다.
🏡 보문관광단지권
가족 여행이나 1박 2일 경주 여행을 계획한다면 보문관광단지권도 좋은 선택이다. 숙박시설이 많고 불국사, 석굴암, 보문호수 등과 함께 연계하기 좋다.
🌄 이전 산행 이야기 다시보기
「산바람 · 글바람 ⑯」 곰배령 산행기, 꽃이 없는 천상화원에서
곰배령에서는 꽃이 없는 천상화원을 걸었습니다. 야생화가 피어야 할 자리에 눈이 내려 있었고, 하얀 침묵 아래에는 다시 피어날 봄의 시간이 조용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 산행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무것도 피우지 못하는 시간에도 우리 안의 어떤 씨앗은 아주 깊은 곳에서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겨울 곰배령의 눈길 위에서 천천히 배웠습니다.
🌄 다음 산행 이야기
「산바람 · 글바람 ⑱」 덕적도 비조봉 산행기
경주 남산에서는 천년의 신라를 따라 걸었습니다. 바위에 새겨진 부처와 오래된 석탑, 사라진 절터와 포석정의 물길을 지나며 사람은 떠나도 간절한 마음은 시간 속에 남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음에는 바다를 건너 덕적도 비조봉으로 향합니다. 산과 바다가 함께 열리는 섬의 능선 위에서, 육지의 산과는 또 다른 바람과 풍경을 만나보려 합니다. 경주 남산이 천년의 침묵 속에서 신라의 시간을 들려준 산이었다면, 덕적도 비조봉에서는 섬마을과 바다, 그리고 멀리 이어지는 물빛 능선이 어떤 이야기를 건네줄지 천천히 걸어보겠습니다.
🍃 산길의 끝에서
경주 남산은 정상 하나로 기억되는 산이 아니었다.
금오봉에 올랐지만,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정상석보다 산길 곳곳에서 만난 바위의 얼굴들이었다.
소나무 사이의 삼릉,
계곡 바위에 새겨진 보살,
선으로 그려진 부처,
머리가 사라진 석불,
하늘과 바람을 벗 삼아 서 있던 석탑.
그들은 모두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천 년의 시간이 들어 있었다.
오래전 누군가는 이 산에 올라 바위를 골랐고, 정과 망치로 마음속 부처를 꺼내려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탑을 세우며 산 아래 사람들의 평안을 빌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절터에 앉아 바람 소리와 함께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떠났지만, 마음은 남았다.
절은 사라졌지만, 탑은 남았다.
왕국은 지나갔지만,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포석정의 물길 앞에서는 또 다른 신라를 보았다.
술잔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떠났지만, 굽이치는 돌물길에는 아직 시와 달빛의 흔적이 남아 있는 듯했다.
경주 남산을 내려오며 생각했다.
사람의 시간은 짧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남긴 것은 생각보다 오래 간다.
천 년 전의 기도가 오늘의 산길에서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산은 말이 없었지만,
그 침묵 속에서 신라의 시간이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다음 산길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 산바람 · 글바람
경주 남산을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산 하나를 오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삼릉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서자
산은 조금씩
천년의 시간을 보여주었습니다.
바위에는 부처가 새겨져 있었고,
소나무 사이에는
오래된 왕국의 숨결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머리가 사라진 석불도,
선으로 그려진 부처도,
하늘 아래 홀로 선 석탑도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은
말보다 깊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산에 올라
돌 속의 부처를 꺼내려 했고,
누군가는 탑을 세워
산 아래 사람들의 평안을 빌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떠났지만
마음은 남았습니다.
절은 사라졌지만
탑은 남았습니다.
한 시대는 저물었지만
바위에 새긴 기도는 남았습니다.
포석정의 물길 앞에서는
술잔 따라 흐르던 달빛을 생각했습니다.
왕도,
신하도,
시를 짓던 사람들도
모두 사라졌지만,
굽이치는 돌물길에는
아직 천년의 웃음이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경주 남산은
높이로 기억되는 산이 아니었습니다.
바위에 남은 미소와
석탑의 침묵,
소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과
사라진 절터의 적막으로 기억되는 산이었습니다.
나는 그날
정상 하나를 다녀온 것이 아니라,
천년의 시간을 걸어 올라갔다가
다시 오늘로 내려왔습니다.
산은 말이 없었지만,
그 침묵 속에서
신라의 시간이 조용히 숨 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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