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 글바람 ⑬」도봉산 포대능선 산행기, 바위 사이에 남아 있던 어린 손
| Y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암릉 산행 풍경 |
이십 년 만에 다시 걸은 도봉산 포대능선. 바위와 능선은 그대로였지만, 그 길 위에서 스무 해 전 어린 두 아들의 손을 잡고 걷던 젊은 아버지의 시간을 다시 만났다.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산은 그대로였지만, 바위 사이에는 오래전 어린 두 아이의 손을 잡고 걷던 한 아버지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십 년 만에 다시 걷는 길
한 이십 년 만에 도봉산 포대능선을 다시 오른다.
산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전철은 여전히 산 아래를 씩씩하게 지나가고, 등산로 입구에는 식당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사이에 자리한 등산용품 가게들까지, 모든 것이 예전의 풍경을 조금씩 닮아 있었다.
도봉산은 지금도 전철을 타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산이다. 도봉구 문화관광 안내에 따르면 도봉산역에서 도봉탐방지원센터까지는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걸린다.
산은 도시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그래서 더 묘하다.
아침에는 전철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서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바위와 계곡 사이에서 숨을 몰아쉬게 된다.
도시와 산 사이의 거리는 짧았지만,
스무 해 전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에는 긴 시간이 놓여 있었다.
변한 것은 어쩌면 산이 아니라,
그 시간을 건너온 나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서울특별시·경기도 경계의 도봉산 포대능선 일대
📅 산행 시기
겨울 끝과 봄이 만나는 시기
🥾 주요 코스
도봉산 들머리 → 계곡길 → 다락능선 → 포대능선 → Y계곡 일대 → 하산
📏 산행 거리
선택하는 들머리와 하산 방향에 따라 달라짐
⏱ 산행 시간
암릉 구간과 휴식을 고려해 충분한 여유 필요
⭐ 난이도
★★★★☆
다락능선과 포대능선은 바위와 급경사 구간이 많고, Y계곡 일대는 특히 안전에 주의해야 함
🌳 산행 환경
계곡길 · 암릉 · 철제 안전시설 · 급경사 바위길 · 능선 조망
🏡 숙박
서울 북부권 또는 의정부권 숙박시설 이용 가능
🚆 이동 방법
지하철 1호선·7호선 도봉산역에서 접근 가능
도봉산은 북한산국립공원에 포함되며, 자운봉·만장봉·선인봉을 비롯한 암봉과 여러 계곡을 품고 있다. 도봉구 문화관광도 도봉산을 기암괴석과 암봉이 이어지고 여러 계곡이 발달한 산으로 소개한다.
아직 겨울이 남아 있던 계곡
산길로 들어서자 계곡 사이에는 아직 겨울이 남아 있었다.
햇빛은 이미 봄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골짜기 바위 사이에 눌러앉은 얼음은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었다.
겨울은 멀리 가지 않았다.
그늘진 계곡 한쪽에 몸을 숨긴 채 아직 버티고 있었다.
잠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등산 스틱을 모아 쥐고 숨을 고르며 웃는다.
이십 년 만에 다시 걷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풍경이 현재인 동시에 기억처럼 보였다.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아 있는 얼음과 바람,
돌과 계곡을 통해 지나온 시간을 보여준다.
나는 아직 버티고 있는 겨울 곁에 잠시 기대어 앉아,
다가오는 봄을 기다렸다.
🍂 오늘의 시
아직 겨울 / 송현
폭포 사이에
겨울이 아직 남아 있다.
햇빛은 이미 봄의 얼굴인데
골짜기 바위에 눌러앉은 얼음은
조용히 겨울을 붙잡고 있다.
잠시 기대 앉은 자리,
등산 스틱을 모아 쥐고
숨을 고르며 웃는다.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저 그 자리에 남은 얼음과 바람으로
지나온 시간을 보여준다.
아직 버티는 겨울 위에 기대어
다가오는 봄을 기다린다.
다락능선, 몸보다 기억이 먼저 알아본 길
다락능선의 바위와 능선은 낯설지 않았다.
오래전에 이미 몸을 맡겼던 풍경이다.
발은 조심스럽게 길을 찾아가는데 기억은 먼저 바위의 모양과 능선의 굴곡을 알아보는 듯했다.
도봉산은 우람한 암봉과 바위 능선으로 유명한 산이다. 도봉구 공식 관광 안내에서는 자운봉과 만장봉, 선인봉을 비롯한 여러 암봉과 계곡을 도봉산의 특징으로 소개한다.
바위에 손을 올리고 몸을 끌어올린다.
발을 둘 곳을 찾는다.
잠시 뒤를 돌아본다.
오래전에도 아마 같은 동작을 했을 것이다.
다만 그때의 내 옆에는 지금보다 훨씬 작은 두 아이가 있었다.
능선을 오르던 발걸음 사이로 오래된 기억 하나가 천천히 떠올랐다.
포대능선, 전쟁 이후 남은 이름
포대능선이라는 이름은 오래전부터 익숙했다.
그러나 그 이름에 왜 ‘포대’라는 말이 붙었는지는 한동안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서울관광 공식 안내에 따르면 포대능선은 자운봉에서 북쪽으로 뻗어가는 능선으로, 6·25전쟁 이후 능선 중간에 대공포 진지가 주둔하면서 포대능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그 사실을 알고 능선을 바라보니 풍경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오늘의 등산객들은 그 길에서 사진을 찍고, 숨을 고르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그러나 같은 능선에는 한때 전쟁 이후의 긴장과 경계의 시간이 머물렀다.
산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시대마다 그 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유가 달랐을 뿐이다.
누군가는 경계를 위해 올라왔고,누군가는 오늘처럼 산을 걷기 위해 올라온다.
세월은 포대를 지우고 산길을 남겼지만,그 이름만은 능선에 남아 오래전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산의 지명에는 때때로 역사가 숨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부르던 이름 하나가,알고 보면 한 시대의 흔적일 때가 있다.
Y계곡보다 먼저 떠오른 작은 손
포대능선, 그리고 일명 Y계곡.이 길을 몇 번이나 넘었을까.
그런데 수많은 산행 중 유독 또렷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하나뿐이다.
십여 년보다 더 오래전,아이 둘의 손을 잡고 이 능선을 넘었던 날이다.
지금 막내가 스물다섯이니, 그때 막내는 다섯 살쯤이었고 큰아이는 일곱 살쯤이었다.
큰아이는 바위에 매달려 위로 기어올랐다.
겁이라는 감정은 아직 이름을 갖지 못한 얼굴이었다.
막내는 손도 발도 제대로 닿지 않아 내 한 손에 안긴 채 오르내렸다.
나는 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바위를 잡고,
숨을 고르며 그 길을 넘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산행이었다.
그때는 왜 그것을 몰랐을까.
도봉산 포대능선의 Y계곡은 바위 능선을 급하게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는 형태의 구간으로 알려져 있고, 험한 암릉 구간이기 때문에 실제 산행에서는 자신의 경험과 현장 여건을 고려해 안전하게 판단해야 한다. 서울관광 공식 소개 역시 Y계곡을 가파른 바위 능선 구간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길을 어린 두 아이와 함께 걸었다.
지금의 나라면,그 선택을 했을까.
아마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젊었고,산을 오르는 것보다 돌아보는 일이 서툴렀다.
묻지 않고 따라왔던 아이들
아이들은 분명 무서웠을 것이다.
하지만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빠가 시키는 일이어서였을까.
아니면 자주 곁에 있지 못하던 아빠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어리다는 이유로,혹은 믿는다는 이유로,아이들은 묻지 않고 나를 따랐다.
그 침묵이 이제 와서 오래 마음에 남는다.
부모는 아이를 자신이 이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나면 문득 깨닫게 된다.
아이들이 나를 따라준 것이 아니라,
어쩌면 오래 기다려준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나는 그날 아이들에게 산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험한 길을 걷게 하며 용기를 가르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아보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를 배우는 산행보다 아빠와 함께 있는 편안한 하루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몰랐다.
젊었기 때문에 몰랐다고 말하고 싶지만,그 말도 핑계일 것이다.
바위 사이에서 되살아나는 기억
능선을 걷다 멈출 때마다 기억이 바위 사이에서 고개를 들었다.
짧은 숨.
미끄러질 듯 움켜쥐던 작은 손.바위 위로 기어오르던 큰아이의 뒷모습.
내 한쪽 팔에 안겨 이동하던 작은아이의 몸.
그리고 어려운 구간을 지나고 나서야 아이들의 얼굴에 나타났던 안도의 기색.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날의 감각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수많은 산을 걸었고,수많은 풍경을 보았다.
어느 산 정상에서 무엇을 먹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날의 날씨도 흐릿하고,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잊었다.
그런데 작은 손의 감촉은 남아 있다.
기억은 중요한 것만 남기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뒤늦게 이해하게 된 것을 남긴다.
내려와서야 들었던 한마디
산을 다 내려와서였다.
말없이 따라오던 큰아들이 말했다.
다리가 아프다고.쉬었다가 가자고.
그때 나는 아이를 달랬다.
조금만 더 가면 아이스크림을 판다고.
그 말을 기억한다.
아이는 쉬고 싶다고 말했는데,나는 조금만 더 가자고 말했다.
아이는 다리가 아프다고 했는데,나는 아이스크림을 이야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무모한 선택으로 힘들었을 두 아이의 몸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산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내 산행에 아이들을 따라오게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빠의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아이들이 힘들어도 잘 따라온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대견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아빠를 따라오는 것은 강해서가 아닐 수도 있다.
아빠를 믿기 때문일 수 있다.
그래서 부모의 선택은 더 조심스러워야 했는데,
나는 그때 그것을 몰랐다.
산을 오르는 일보다 어려운 것
하산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날의 산행은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라기보다,
젊었던 나 자신을 증명하려던 몸부림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힘든 길을 선택하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험한 길을 넘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
아이들과 어려운 산을 걸었다는 것.
그것을 하나의 추억으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다른 생각이 든다.
추억은 힘들게 만든다고 깊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함께 걸었던 사람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면,
한 사람에게는 자랑스러운 기억이 다른 사람에게는 힘겨운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다.
산을 오르는 일보다 어려운 것은,
함께 걷는 사람의 속도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나는 이제서야 그 사실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이십 년 전의 나를 다시 만나다
포대능선은 여전히 거칠었다.
바위는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았고, 능선의 바람은 여전히 몸을 밀었다.
그러나 이번 산행에서 내가 가장 많이 바라본 것은 산이 아니었다.
오래전의 나였다.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바위를 넘던 젊은 아버지.
자신의 체력과 경험을 믿었고,
아이들도 자신처럼 산을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는 일에는 서툴렀던 아버지.
나는 그 사람을 너무 나무라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의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의 나는 안다.
사랑한다고 해서 언제나 상대의 마음을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언제나 좋은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세월이 흐른 뒤에야 볼 수 있도록.
에필로그|산은 그대로였고, 아이들은 자랐다
산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나는 그 사이를 오래 돌아 다시 이곳에 서 있었다.
아이들은 자랐다.
다섯 살이었던 막내는 스물다섯이 되었고, 바위를 기어오르던 큰아이도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다.
어린 두 아이의 손을 잡았던 아버지도 나이를 먹었다.
바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능선도 여전히 같은 방향으로 뻗어 있었다.
전철은 산 아래를 달리고,
등산객들은 식당 앞에서 산행을 준비한다.
그런데 나에게 이 산은 더 이상 같은 산이 아니었다.
스무 해 전에는 바위가 보였고,
오늘은 아이들의 손이 보였다.
스무 해 전에는 정상을 향했지만,
오늘은 지나온 시간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십 년 전의 아련한 시간을 품은 채 산을 내려왔다.
하산주 한 잔 앞에서 그 시절의 아이들,
그때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잠시 같은 자리에 앉았다.
말없이 한 잔을 마신다.
미안했다는 말도,
그래도 함께 걸어줘서 고마웠다는 말도,
그때는 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언젠가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날 포대능선을 기억하느냐고.
힘들지 않았느냐고.
그리고 많이 늦었지만,
아빠가 조금 미안했다고.
포대능선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기억은 말없이 지나간다.
🌿 이 산행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도봉산 포대능선은 도심에서 접근하기 쉬운 산길이지만, 접근성이 좋다는 것과 산행 난이도가 낮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다락능선과 포대능선에는 암릉과 경사가 있는 구간이 있고, Y계곡 일대는 바위 구간을 오르내려야 하므로 자신의 경험과 현장 상황에 맞춰 안전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관광 공식 안내도 Y계곡을 급격한 바위 능선을 오르내리는 포대능선의 대표적인 험로로 소개한다.
특히 겨울 끝과 초봄에는 양지에는 눈과 얼음이 없어 보여도 계곡이나 그늘진 바위 구간에는 결빙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바위길에서는 장갑이 손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장시간 산행을 계획한다면 충분한 식수와 행동식을 준비하는 편이 좋다.
도봉산역에서 도봉탐방지원센터까지는 공식 관광 안내 기준 도보 약 10분 정도로 안내되어 있어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 산행 준비 메모
도봉산 포대능선 산행에서는 접지력이 좋은 등산화와 장갑이 특히 중요하다. 바위와 철제 안전시설을 잡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겨울과 초봄에는 그늘진 구간의 얼음 상태를 확인하고, 결빙이 심한 날에는 현장 여건에 맞는 장비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동행자의 체력과 경험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산에서는 가장 빠른 사람의 속도보다,
가장 힘든 사람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속도가 그날의 속도가 되어야 한다.
🌿 관련 사이트 및 산행 정보
🌿 ① 북한산국립공원 정보
도봉산은 북한산과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에 포함된다. 산행 전 탐방 관련 공지와 안전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도봉구 문화관광도 도봉산을 북한산국립공원에 포함되는 산으로 안내하고 있다.
🌿 ② 도봉구 문화관광
도봉산과 둘레길, 주변 관광지와 교통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③ 서울관광 도봉산 산행 정보
포대능선의 위치와 이름의 유래, Y계곡 등 주요 산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관광 공식 자료는 포대능선의 이름이 6·25전쟁 이후 설치된 대공포 진지와 관련해 붙었다고 설명한다.
🌿 ④ 서울 대중교통 정보
지하철을 이용해 도봉산역으로 이동할 때 노선과 운행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도봉산 포대능선 준비물 체크리스트
□ 접지력이 좋은 등산화
□ 바위 구간용 등산 장갑
□ 충분한 식수
□ 간단한 행동식
□ 방풍 재킷
□ 등산 스틱
□ 결빙 시 필요한 안전장비
□ 보조배터리
□ 개인 상비약
□ 헤드랜턴
□ 계절에 따른 보온 장비
🌿 추천 숙박
🏡 서울 북부권
도봉산은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아 당일 산행으로 많이 찾지만, 먼 지역에서 이동한다면 서울 북부권을 거점으로 숙박한 뒤 이른 시간 산행을 시작하는 방법도 편리하다.
도봉구 공식 관광 안내에 따르면 도봉산역에서 도봉탐방지원센터까지 도보 약 10분 정도로 안내된다.
🏡 북한산생태탐방원 프로그램 확인
국립공원공단 북한산생태탐방원에서는 자연체험과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프로그램에 따라 체류형 이용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최신 운영 내용과 예약 조건은 국립공원 예약시스템에서 확인하는 것이 정확하다.
🌄 이전 산행 이야기 다시보기
「산바람 · 글바람 ⑪」 함백산 산행기, 떠나는 겨울을 마중하다
떠나는 겨울을 한 번 더 만나고 싶어 길을 나섰다가, 계방산에서 발길을 돌려 우연히 함백산으로 향했습니다.
만항재에서 눈길을 걷고 상고대가 핀 숲을 지나 정상에 섰습니다. 건너편 태백산을 바라보며 산과 산은 이름으로 나뉘어 있지만 능선과 바람은 오래전부터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함백산에서는 겨울을 만나러 갔다가 오히려 봄을 먼저 보았습니다. 떠나는 것을 붙잡으려 했지만, 산은 오는 계절을 함께 바라보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 다음 산행 이야기
「산바람 · 글바람 ⑬」 마니산 산행기
도봉산 포대능선에서는 이십 년 전 어린 두 아들과 걸었던 바위길을 다시 만나,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돌아보았습니다.
다음에는 강화도의 마니산으로 향합니다. 참성단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걸으며 오래된 역사와 바다를 품은 능선, 그리고 또 다른 시간의 이야기를 만나보려 합니다.
🍃 산길의 끝에서
이십 년 만에 다시 포대능선을 걸었다.
바위는 그대로였다.
능선의 바람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길을 걷는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스무 해 전에는 어린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바위를 넘었다.
그때 나는 내가 아이들을 이끈다고 생각했다.
오늘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아이들이 아빠를 믿고 힘든 길을 말없이 따라와 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큰아이는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쉬었다 가자고 했다.
그때의 나는 조금만 가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고 달랬다.
그 기억이 오래 남는다.
나는 아이의 말을 들은 것일까.
아니면 내가 듣고 싶은 말로 바꾸어 들었던 것일까.
산에는 정상보다 늦게 도착하는 깨달음이 있다.
어떤 것은 산을 내려온 뒤에야 알게 되고,
어떤 것은 이십 년이 지나서야 마음에 도착한다.
포대능선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날 내 옆에 있던 아이들은 자랐고,
아이들의 손을 잡았던 아버지는 이제 늦게나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산을 내려오며 생각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기억은 우리를 다시 그 자리로 데려간다.
그리고 때로는 아주 늦게,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을 마음속에서 다시 꺼내게 한다.
미안했다고.
고마웠다고.
함께 걸어줘서 참 고마웠다고.
다음 산길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 산바람 · 글바람
이십 년 만에
같은 능선을 다시 걸었습니다.
바위는 그대로였고,
산 아래 전철도
여전히 같은 방향으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위 사이에서
나는 오래된 손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아빠의 손을 잡고
말없이 따라오던 작은 손.
바위에 매달려
혼자 힘으로 올라가던 아이와,
손발이 닿지 않아
한쪽 팔에 안겨 있던 작은아이.
그때 나는
아이들을 이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았습니다.
아이들은
아빠를 믿고 따라온 것이었습니다.
큰아이는 말했습니다.
다리가 아프다고.
쉬었다 가자고.
나는 대답했습니다.
조금만 가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고.
그날 하지 못한 말이
이십 년을 돌아
오늘의 능선에서
다시 내 앞에 섰습니다.
많이 힘들었지.
아빠가 미안했다.
그래도 함께 걸어줘서
참 고마웠다.
산은 그대로였지만,
아이들은 자랐고,
아버지는 이제야
뒤를 돌아보는 법을 조금 배웠습니다.
포대능선에는
전쟁 이후 대공포 진지가 있었던 시간이 이름으로 남았고,
내 마음에는
어린 두 아이의 손이 남았습니다.
산은 많은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기억의 뜻을 알아듣는 데에는
때로 한 사람의 인생만큼
긴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산바람 · 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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