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 글바람 ㉜」 남덕유산 산행기, 새해 첫빛을 기다리며


남덕유산 정상 일출


2021년 2월 14일, 설을 보낸 뒤 새해 첫 산행처럼 남덕유산으로 향했다. 영각탐방지원센터에서 어둠 속 산길을 올라 구름 뒤로 번지는 첫빛을 기다리고, 월성치와 삿갓봉, 삿갓재대피소를 지나 황점마을로 내려온 겨울 산행이었다.

산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는 풍경이 남고,
글바람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남습니다.
산을 걸으며, 마음에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간 기록.


남덕유산의 첫빛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름 뒤에서 천천히 번지는 그 빛은, 예전 같지 않은 걸음으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새해를 다시 여는 산행

산행일은 2021년 2월 14일이었다.

2021년을 여는 산행이었다. 양력으로는 새해가 이미 한 달 넘게 지나갔지만, 설을 쇠고 나니 비로소 새로운 해가 시작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별한 취미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타고난 체질인지 모르겠지만 휴일이나 연휴만 생기면 내 마음은 늘 산으로 향했다.

그중에서도 덕유산을 향한 마음은 오래된 짝사랑과 같았다. 겨울이 오면 향적봉과 남덕유산 능선에 피어나는 상고대가 떠올랐다. 지리산과 태백산, 덕유산 같은 높은 산들은 만나기 힘든 연인처럼 언제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번 설 연휴에도 머릿속은 온통 산이었다. 날씨까지 조금 풀리자 연휴가 내게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미뤄둔 길을 다시 걸어보라고.

덕유산 향적봉은 백련사 코스로 여러 번 올랐고, 가끔은 친구들과 곤도라를 타고 설천봉을 거쳐 정상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가능하면 곤도라를 이용하지 않으려 했다. 힘이 들어도 내 발로 산을 올라 정상에 섰을 때의 기쁨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약 15년 전에는 혼자 덕유산 종주를 한 적도 있었다. 그때는 금요일 밤이면 기차나 버스를 타고 전국의 산으로 향했다. 새벽 어둠 속에서도 혼자 산을 오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산행을 마치고 새벽 네 시에 남부터미널에 도착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근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날도 많아졌다. 몸은 가까운 산이나 편안한 길을 찾는데, 마음은 여전히 한북정맥과 백두대간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예전의 발걸음을 생각하면 조금 서글프기도 했지만, 마음속 산꾼은 좀처럼 늙으려 하지 않았다.

이번 설에는 오래전 종주의 기억을 따라 남덕유산으로 가보기로 했다.


🌿 이번 산행 한눈에 보기

🏔 산행지
남덕유산

📅 산행일
2021년 2월 14일

🥾 산행 코스
영각탐방지원센터 → 남덕유산 정상 → 월성치 → 삿갓봉 → 삿갓재대피소 → 황점마을

📏 산행 거리
영각탐방지원센터에서 남덕유산 정상, 월성치와 삿갓재를 지나 황점마을로 내려오는 긴 겨울 능선 산행

산행 시간
새벽 4시 산행 시작, 오후 1시 이후 영각사 주차장 복귀

난이도
★★★★☆

영각탐방지원센터에서 남덕유산 정상까지는 가파른 계단과 오르막이 이어지고, 정상 이후 월성치와 삿갓봉 방향 능선은 겨울철 눈과 얼음으로 체력 소모가 크다. 하산길의 긴 돌계단도 발목과 무릎에 부담이 있어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 산행환경
겨울 새벽 산행 · 헤드랜턴 · 남덕유산 일출 · 눈길과 얼음길 · 월성치 · 삿갓봉 · 삿갓재대피소 · 황점마을 하산

🏡 숙박
당일 새벽 출발 산행. 삿갓재대피소 이용 시 사전 예약과 국립공원 공지 확인 필요

🚗 이동방법
서울에서 자가용으로 새벽 출발, 함양 영각사 주차 후 산행. 하산 후 황점마을에서 택시로 영각사 주차장 복귀


계획은 향적봉까지였지만

처음 계획은 영각사에서 남덕유산에 오른 뒤 삿갓재와 향적봉을 지나 백련사와 무주구천동까지 걷는 것이었다. 하지만 겨울 산에서 30킬로미터 가까운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지금의 체력으로는 무리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계획을 세울 때만큼은 15년 전의 객기가 되살아났다.

예전에는 향적봉에서 남덕유산 쪽으로 걸었으니, 이번에는 반대 방향인 영각사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등산 장비를 챙기고 산행 전날인 2월 13일 새벽 한 시, 서울을 출발했다.

설 연휴였지만 코로나19의 영향 때문인지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커다란 도로를 혼자 빌린 사람처럼 어둠을 가르며 달렸다. 함양 영각사에 도착하니 새벽 세 시 반이었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있었는지 서너 개의 불빛이 산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인기척 하나 없는 새벽 산에서 앞서가는 헤드랜턴 불빛은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영각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 준비를 했다. 헤드랜턴을 점검하고, 배낭에서 덜어낼 물건이 없는지 다시 살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영각탐방지원센터로 향하자 15년 전의 기억이 어둠 속에서 하나씩 되살아났다.


다시 만난 영각의 길

그때는 지금의 버스정류장도 없었던 것 같다. 긴 종주를 마치고 지친 몸을 끌며 이곳으로 내려왔고, 탐방센터 직원의 도움을 받아 택시를 불렀다. 함양 시내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일, 옛날 시골버스답게 운전기사 마음대로 쉬었다가 출발하던 풍경도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 시절의 나는 새벽에 서울에 도착해도 아무렇지 않게 출근했다.

같은 장소를 다시 찾았지만 길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십 년을 훌쩍 넘겼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등산로의 계단이 넓고 튼튼한 목재 계단으로 바뀌어 있었다.

예전 종주 때 남덕유산에서 내려오며 마주했던 낡은 철계단이 생각났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녹슨 좁은 계단이 매달려 있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 계단을 내려가도 되는지 불안했다.

한여름 햇볕 아래 절벽 앞에 서서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전화를 걸었다.

“이 계단, 정말 내려가도 되는 겁니까?”

직원에게 이상이 없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난간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그때 두려움 속에서 내려왔던 길을 이제는 반대로 올라가고 있었다.

산길은 달라졌지만, 그 길 위에 남아 있는 기억은 그대로였다. 사람은 길을 지나왔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길은 사람 안에 오래 남아 다시 걸어오게 한다.


새벽 네 시, 산이 시작되다

새벽 네 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처음 약 1.5킬로미터는 비교적 완만했다. 그러나 그 뒤부터는 돌계단과 목재 계단이 거의 수직으로 이어졌다. 기온은 영하였지만 심하게 춥지는 않았다. 오르막을 걷는 동안 등과 속옷은 금세 땀으로 젖었다.

산속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고요와 적막만이 길을 안내했다. 흔한 다람쥐도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시각이었다. 헤드랜턴 불빛에 야광 등산로 표지가 반사되어 반짝였다.

불과 수십 미터 간격으로 나타나는 작은 표지들이 어찌나 반갑던지, 그 불빛을 다음 이정표 삼아 한 걸음씩 올라갔다.

그날의 일출 예정 시각은 오전 7시 16분이었다. 일출을 보려면 늦어도 일곱 시 전에는 정상에 도착해야 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이미 정상에 가 있었다.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 산길을 왜 이렇게 힘들게 올라가야 하는지 나 자신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정답은 없었다. 뒤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사실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떤 길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끌림으로 남는다. 힘든 줄 알면서도 가야 하고, 가지 않으면 오래 마음에 남는 길이 있다.

남덕유산의 새벽길이 그랬다.


남덕유산 정상, 아직 어두운 첫빛 앞에서

두 시간 남짓을 올라 오전 6시 20분, 마침내 남덕유산 정상에 도착했다. 영각탐방지원센터에서 네 시에 출발했으니 두 시간 반도 걸리지 않았다.

정상은 아직 어두웠고 차가운 바람이 능선을 훑고 지나갔다. 잠시 뒤 몇 사람이 헤드랜턴 불빛을 비추며 올라왔다.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인사를 나누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물으니 육십령에서 출발한 사람들이었다.

관광버스가 산행객들을 육십령에 내려주고, 각자 정해진 코스로 산행한 뒤 다른 장소에서 다시 태워 서울로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나도 예전에 그런 산악버스를 이용한 적이 있었다.

코로나19로 모임을 자제하던 때였지만 산을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길 위에 있었다. 아마 그들이 아니었다면 그날 정상에서 사람 한 명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저녁도 제대로 먹지 않았고 잠도 자지 않은 채 올라온 산이었다. 서울막걸리 한 병도 배낭에 넣어왔지만 새벽부터 마시는 것은 무리였다. 두유와 빵 한 조각으로 허기를 달랬다.

일출까지는 거의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땀에 젖은 몸으로 정상에 가만히 서 있으니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래도 기다려야 했다.

그날 산을 서둘러 오른 목적은 오직 일출이었다. 일출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면 굳이 새벽 네 시부터 산을 오를 이유도 없었다.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왔다. 그러나 산 아래를 덮고 있는 구름이 심상치 않았다. 산에서 여러 번 일출을 맞았지만, 둥글고 선명한 해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솟아오르는 장면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오전 일곱 시가 가까워지자 동쪽 하늘은 붉어졌지만, 해는 두꺼운 구름 뒤에서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대했던 화려한 일출은 아니었다.

조금 아쉬웠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사진을 찍었다.

구름 사이로 스며 나오는 빛도 새해의 첫빛이었다. 완전하지 않아도 일출은 일출이었다. 오히려 기다린 시간과 추위, 어둠 속에서 올라온 길이 그 빛을 더욱 오래 기억하게 만들었다.


오늘의 시

남덕유산 / 송현

함양을 지나
남덕유산으로 들어서니

영각의 옛길은
그 모습 그대로인데

그 길을 오르던 사람은
세월에 밀려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산은 말없이 높고

나는 희미한 옛 발자국을 더듬어
새해 첫빛 속으로 오른다.


향적봉을 내려놓고 삿갓재로

일출을 본 뒤 앞으로의 길을 정했다.

처음에는 향적봉까지 종주할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의 몸 상태와 겨울 산길을 생각하면 무리였다. 삿갓재대피소까지 간 뒤 황점마을로 하산하기로 했다.

올라오는 동안에는 눈이 거의 없어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덕유산 정상을 지나 반대쪽 능선으로 접어들자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무 위에 상고대가 없을 뿐, 등산로는 얼어붙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육십령에서 올라온 산행객들에게 길 상태를 물어본 것이 다행이었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월성치와 삿갓봉 방향으로 걸었다.

작고 큰 봉우리를 몇 개 넘자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얼음길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을 단단히 디디며 걷다 보니 평소보다 더 많은 힘이 들었다. 한 발을 옮길 때마다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눈 덮인 겨울 산은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은 늘 조심스러운 걸음을 요구했다. 무리하면 다칠 수 있다는 생각에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능선을 걸었다.

향적봉을 향하던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 처음에는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산은 언제나 끝까지 가는 사람만 기억하지 않는다. 돌아설 줄 아는 사람도, 자신의 몸을 살피는 사람도 산은 조용히 받아준다.

그날의 나는 향적봉까지 가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삿갓재에서 내려오기로 선택한 사람이었다.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삿갓재대피소의 라면 한 냄비

오전 11시쯤 삿갓재대피소에 도착했다. 배가 몹시 고팠다. 대피소에서는 물품을 판매하고 있었지만 코로나19 때문인지 취사장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바깥의 나무 식탁에 배낭을 내려놓고 라면을 끓였다.

저녁과 아침을 건너뛴 뒤 먹는 첫 식사였다.

라면 한 냄비로 전날 저녁과 아침, 점심까지 세 끼를 한꺼번에 먹는 기분이었다. 따뜻한 국물이 몸속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조금 풀렸다.

근처에서는 젊은 연인 한 쌍이 햇반과 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들도 산악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오후 다섯 시까지 백무동으로 가야 한다고 했는데, 늦으면 설천봉에서 곤도라를 이용할 생각이라며 향적봉 방향으로 떠났다.

두 사람이 겨울 덕유산 능선을 함께 걷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대견하기도 하고 젊음이 부럽기도 했다. 예전의 나 역시 저들처럼 시간과 거리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때는 나에게도 산길의 끝을 계산하기보다 일단 걷고 보는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지금의 나는 몸의 소리를 더 오래 듣게 되었다. 허기와 피로, 무릎의 묵직함과 얼음길의 긴장까지 모두 산행의 일부가 되었다.

삿갓재의 라면은 그런 내 몸에게 건네는 늦은 사과 같았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이제 조금 쉬어가자.


황점마을로 내려가는 돌계단

식사를 마치고 황점마을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미리 택시 기사에게 연락해 마을 아래에서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지친 몸 앞에 나타난 하산길은 또다시 돌계단의 연속이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덕유산 같은 높은 산은 중턱까지 돌계단이 길게 이어지는 곳이 많다. 산을 가보지 않은 사람은 그 수많은 돌계단이 발목과 무릎에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이미 정상까지 가파른 계단을 올랐고, 얼음으로 뒤덮인 능선을 여러 킬로미터 걸은 뒤였다. 지친 몸으로 다시 끝없는 돌계단을 내려가려니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발목을 삐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돌 하나를 밟을 때마다 발의 위치를 확인하고, 무릎에 힘을 주며 천천히 내려갔다. 속도는 느렸지만 겨울 산에서는 무사히 내려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조금 내려가자 계곡물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이 물길도 남강의 발원지로 이어진다고 했다. 얼어붙은 산속에서 들리는 물소리는 봄이 멀지 않았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산 위에는 아직 눈과 얼음이 가득했지만 계곡은 이미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중간에 벤치가 보여 잠시 앉아 쉬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짧은 휴식이 또 하나의 이야기를 남기게 될 줄은.


잃어버린 안경

황점마을에 내려와 기다리던 택시에 올라타려는데 안경이 보이지 않았다. 배낭과 주머니를 몇 번이나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어디에서 벗어놓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택시 기사님은 자기 일처럼 걱정해 주었다. 삿갓재대피소에 연락해보라고 말하더니, 근처 국립공원사무소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사정을 설명하자 직원들이 나와 삿갓재대피소로 전화를 걸어주었다. 그러나 대피소에는 안경이 없었다. 혹시 나중에 발견될 수도 있으니 연락처를 남겨달라고 했다.

거의 포기한 채 택시를 타고 영각사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오후 한 시를 훌쩍 지나고 있었다.

택시 기사님의 친절이 고마웠다. 피곤했지만 해가 떨어지기 전에 서울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바로 운전대를 잡았다. 밤새 잠을 자지 않고 산행까지 했으니 운전을 시작하자 곧 졸음이 쏟아졌다.

결국 차를 세우고 잠시 새우잠을 청했다.

삼십 분쯤 잤을까. 조금 정신이 든 뒤 다시 서울로 향했다. 대전 근처를 지나고 있을 때 휴대전화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사진 한 장이 함께 와 있었다.

안경이었다.

사진 속 안경이 내 것이 맞느냐고 묻는 문자였다. 반가운 마음에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삿갓재대피소가 아니라 하산길의 벤치 근처에 벗어놓았던 모양이었다.

국립공원 직원이 내가 쉬었다고 말한 장소 주변을 살펴보다 발견한 듯했다. 산속에서 잃어버린 물건이라 찾기 어렵다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직원은 안경을 소포로 보내주겠다며 주소를 물었다.

순간 졸음이 모두 달아났다.

안경을 찾은 기쁨도 컸지만,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친절이 더 고마웠다. 택시 기사님은 국립공원사무소까지 데려다주었고, 직원들은 직접 대피소에 연락하고 하산길까지 살펴주었다.

며칠 뒤 안경은 무사히 내게 돌아왔다. 산행기를 쓰며 택시 기사님에게도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다음에 다시 남덕유산을 찾게 되면 꼭 뵙자고 했다.

산에서는 길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마음을 만난다. 정상에서 본 일출보다 하산길에서 받은 친절이 더 오래 빛나는 날도 있다.


예전 같지 않아도 다시 오를 수 있다

집에 도착하자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다. 새벽 한 시에 서울을 떠나 밤새 운전하고, 어둠 속 남덕유산을 올라 일출을 기다리고, 얼음 능선을 넘어 삿갓재와 황점마을까지 걸었다.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한 채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모든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무릎과 발목에 남은 묵직한 통증은 내가 분명 그 길을 걸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15년 전의 남덕유산과 지금의 남덕유산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영각의 길도, 정상의 바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달라진 것은 그 길을 걷는 나였다.

예전처럼 거침없이 종주할 수는 없었고, 향적봉을 향하던 마음도 삿갓재에서 내려놓아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쉽지만은 않았다.

산을 오래 다니며 알게 된 것은 끝까지 가는 것만이 용기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몸을 살피고, 무리하지 않을 곳에서 돌아서는 것 역시 산이 가르쳐준 지혜였다.

그날 남덕유산의 일출은 기대만큼 화려하지 않았다. 구름 뒤에서 어렵게 번지는 빛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지금의 나와 닮은 일출이었는지도 모른다.

젊은 날처럼 눈부시게 솟아오르지는 못해도, 구름 사이로 자신의 빛을 조금씩 내어놓는 아침.

나는 그 흐린 첫빛 앞에서 다시 한 해를 시작했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세월을 건너 다시 찾아온 사람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조금 느려진 걸음도 받아주고, 짧아진 산행도 나무라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길을 열어주었다.

아직 걸을 수 있다고.
예전과 같지는 않아도 다시 오를 수 있다고.

남덕유산에서 맞은 새해 첫빛은 그렇게 내게 오래된 용기 하나를 돌려주었다.


에필로그|구름 뒤에서도 빛은 온다

남덕유산은 오래전 종주의 기억이 남아 있는 산이었다. 15년 전의 나는 금요일 밤이면 버스와 기차를 타고 전국의 산으로 떠났고, 새벽에 서울에 도착해도 아무렇지 않게 출근하던 사람이었다. 그때의 발걸음은 빠르고 무모했으며, 피곤해도 크게 겁내지 않았다.

2021년 설 연휴 뒤 다시 찾은 남덕유산에서 나는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함께 만났다. 영각탐방지원센터에서 어둠 속 산길을 오르며 예전 철계단의 기억이 떠올랐고, 넓고 튼튼해진 계단 위에서 세월이 지나간 자리를 보았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해는 아직 뜨지 않았다. 바람은 차가웠고, 땀에 젖은 몸은 금세 식었다. 일출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다. 동쪽 하늘은 붉어졌지만, 해는 구름 뒤에서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대했던 화려한 일출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름 사이로 번지는 빛도 새해의 첫빛이었다. 완전하지 않아도 시작은 시작이었다. 어쩌면 그날의 일출은 지금의 나와 닮아 있었다. 젊은 날처럼 눈부시게 솟아오르지는 못해도, 구름 뒤에서 조금씩 빛을 내어놓는 아침.

향적봉까지 가려던 마음은 삿갓재에서 내려놓았다. 예전 같았으면 무리해서라도 더 걸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알게 되었다. 산에서 용기는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멈출 곳에서 멈추고 내려설 곳에서 내려서는 일이라는 것을.

삿갓재대피소 앞에서 끓인 라면은 전날 저녁과 아침, 점심까지 한꺼번에 채워주는 따뜻한 위로였다. 그리고 황점마을로 내려가는 길에서 잃어버린 안경은, 산행의 끝에 뜻밖의 이야기를 남겼다.

택시 기사님과 국립공원 직원들의 친절이 아니었다면 안경은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었고, 직접 연락하고 찾아주었다. 산에서는 길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만난다. 그날 남덕유산에서 받은 가장 따뜻한 빛은 어쩌면 정상의 일출보다 하산 뒤 사람들에게서 온 빛이었는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와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무릎과 발목의 통증이 남아 있었다. 그 통증은 내가 예전 같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직 걸을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남덕유산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왜 이제야 왔느냐고 묻지 않았고, 왜 향적봉까지 가지 못했느냐고 나무라지도 않았다. 다만 길을 열어주었다. 아직 걸을 수 있다고, 예전과 같지는 않아도 다시 오를 수 있다고.

그날 나는 구름 뒤의 첫빛 앞에서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웠다.


🌿 이 산행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남덕유산 영각탐방지원센터 코스는 덕유산 남쪽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대표적인 길 가운데 하나다. 초반은 비교적 완만하지만, 이후 가파른 계단과 오르막이 이어져 체력 소모가 크다. 겨울철에는 눈과 얼음이 남아 있을 수 있어 아이젠, 방한 장비, 헤드랜턴, 여분 배터리가 꼭 필요하다.

남덕유산 정상 이후 월성치와 삿갓봉, 삿갓재대피소 방향 능선은 조망이 좋지만 겨울에는 체감 난도가 높아진다. 특히 무박이나 새벽 산행으로 일출을 보려는 경우, 땀에 젖은 몸이 정상에서 빠르게 식을 수 있으므로 보온에 신경 써야 한다.

황점마을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돌계단과 계곡길이 길게 이어진다. 정상에 올랐다고 산행이 끝난 것이 아니다. 겨울 산행에서는 하산이 더 중요하다. 자신의 체력과 날씨, 길 상태를 살피며 무리하지 않는 판단이 필요하다.


산행 준비 메모

첫째, 새벽 산행은 보온과 시간 계산이 중요하다.
일출을 기다리는 시간에는 몸이 빠르게 식는다. 땀을 식히기 전 보온 의류를 챙겨 입어야 한다.

둘째, 남덕유산 이후 능선은 겨울철 아이젠이 필수다.
정상 오름길에 눈이 없어도 반대편 능선은 얼어 있을 수 있다. 길 상태를 미리 확인하고 장비를 준비해야 한다.

셋째, 향적봉까지의 욕심은 몸 상태에 따라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긴 종주보다 안전한 하산이 먼저다. 산은 다음에도 그 자리에 있다.

넷째, 하산길 물건 관리를 조심해야 한다.
벤치에서 쉬거나 옷을 갈아입을 때 안경, 휴대전화, 장갑 같은 작은 물건을 놓고 오기 쉽다.


🌿 관련 사이트 및 여행 정보

① 국립공원공단 덕유산국립공원

👉 국립공원공단 덕유산국립공원 바로가기

덕유산 탐방 코스, 탐방로 통제 정보, 입산시간, 월성재·삿갓재 코스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②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

👉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 바로가기

삿갓재대피소 등 국립공원 대피소 예약과 이용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③ 거창문화관광

👉 거창문화관광 바로가기

황점마을과 거창 북상면 일대 여행 정보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④ 함양문화관광

👉 함양문화관광 바로가기

영각사, 남덕유산 남쪽 접근과 함양 지역 여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⑤ 연천 고대산자연휴양림

👉 연천 고대산자연휴양림 바로가기

다음 산행지인 철원·연천 고대산 주변 숙박과 자연휴양림 정보를 미리 살펴볼 수 있다.


🌿 남덕유산 겨울 산행 준비물 체크리스트

헤드랜턴
예비 배터리
아이젠
스틱
방한 장갑
넥워머 또는 바라클라바
보온 재킷
방풍 재킷
따뜻한 물
행동식
라면 또는 따뜻한 식사 준비
여벌 양말
보조배터리
국립공원 탐방로 통제 확인
대피소 운영 여부 확인
하산 택시 연락처 확인
안경과 작은 물건 다시 확인하기
예전의 나와 비교하지 않는 마음
구름 뒤의 빛도 기다릴 줄 아는 마음


🌿 추천 숙박과 주변 여행

🏡 함양·영각사권

영각탐방지원센터에서 남덕유산으로 오를 계획이라면 함양권 숙박을 고려할 수 있다. 새벽 산행을 피하고 싶다면 전날 가까운 곳에서 묵고 여유 있게 출발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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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 황점마을·북상면권

삿갓재대피소에서 황점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라면 거창 북상면 방향의 교통과 숙박 정보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하산 후 택시 이동이 필요한 경우가 많으므로 사전에 연락처를 준비해두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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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 덕유산권

덕유산 향적봉, 설천봉, 무주구천동과 연계해 여행할 계획이라면 무주권 숙박도 좋다. 다만 남덕유산 영각 코스와는 거리가 있으므로 이동 동선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 무주문화관광 바로가기


🌄 이전 산행 이야기 다시보기

「산바람 · 글바람 ㉛」 홍천 공작산 산행기, 미뤄둔 산을 찾아간 가을 여행

공작산에서는 가족의 시간이 묻힌 홍천에서 친구들과 함께 오래 미뤄두었던 산을 올랐습니다. 늦가을 숲길과 정상의 바람, 군업리 마을잔치와 장작불 구들장 하룻밤까지 더해져, 한 번의 산행을 넘어 따뜻한 가을 여행으로 남았습니다.

공작산이 미뤄두었던 산을 친구들과 함께 찾아간 가을 여행이었다면, 남덕유산은 새해 첫빛을 기다리며 오래전의 나와 다시 마주한 겨울 산행이었습니다. 하나는 함께 늙어가는 보폭을 느끼게 한 산이었고, 하나는 예전 같지 않아도 다시 오를 수 있다는 용기를 돌려준 산이었습니다.


🌄 다음 산행 이야기

「산바람 · 글바람 ㉝」 철원 고대산 산행기

남덕유산에서는 영각탐방지원센터에서 새벽 어둠을 뚫고 정상에 올라 새해 첫빛을 기다렸습니다. 구름 뒤에서 번지는 일출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월성치와 삿갓봉, 삿갓재와 황점마을로 이어지는 겨울 능선에서 예전 같지 않은 몸으로도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다음 산행은 철원 고대산으로 향합니다. 고대산은 철원과 연천의 경계에 자리한 산으로, 분단의 땅과 북녘을 바라보는 조망이 오래 마음에 남는 산입니다. 남덕유산이 구름 뒤의 첫빛으로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건넨 산이었다면, 고대산에서는 북쪽 산하를 바라보며 또 다른 침묵과 바람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 산길의 끝에서

남덕유산은 오래전 종주의 기억이 남아 있는 산이었다. 15년 전의 나는 금요일 밤이면 버스와 기차를 타고 전국의 산으로 떠났고, 새벽에 서울에 도착해도 아무렇지 않게 출근하던 사람이었다. 그때의 발걸음은 빠르고 무모했으며, 피곤해도 크게 겁내지 않았다.

2021년 설 연휴 뒤 다시 찾은 남덕유산에서 나는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함께 만났다. 영각탐방지원센터에서 어둠 속 산길을 오르며 예전 철계단의 기억이 떠올랐고, 넓고 튼튼해진 계단 위에서 세월이 지나간 자리를 보았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해는 아직 뜨지 않았다. 바람은 차가웠고, 땀에 젖은 몸은 금세 식었다. 일출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다. 동쪽 하늘은 붉어졌지만, 해는 구름 뒤에서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대했던 화려한 일출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름 사이로 번지는 빛도 새해의 첫빛이었다. 완전하지 않아도 시작은 시작이었다. 어쩌면 그날의 일출은 지금의 나와 닮아 있었다. 젊은 날처럼 눈부시게 솟아오르지는 못해도, 구름 뒤에서 조금씩 빛을 내어놓는 아침.

향적봉까지 가려던 마음은 삿갓재에서 내려놓았다. 예전 같았으면 무리해서라도 더 걸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알게 되었다. 산에서 용기는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멈출 곳에서 멈추고 내려설 곳에서 내려서는 일이라는 것을.

삿갓재대피소 앞에서 끓인 라면은 전날 저녁과 아침, 점심까지 한꺼번에 채워주는 따뜻한 위로였다. 그리고 황점마을로 내려가는 길에서 잃어버린 안경은, 산행의 끝에 뜻밖의 이야기를 남겼다.

택시 기사님과 국립공원 직원들의 친절이 아니었다면 안경은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었고, 직접 연락하고 찾아주었다. 산에서는 길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만난다. 그날 남덕유산에서 받은 가장 따뜻한 빛은 어쩌면 정상의 일출보다 하산 뒤 사람들에게서 온 빛이었는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와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무릎과 발목의 통증이 남아 있었다. 그 통증은 내가 예전 같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직 걸을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남덕유산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왜 이제야 왔느냐고 묻지 않았고, 왜 향적봉까지 가지 못했느냐고 나무라지도 않았다. 다만 길을 열어주었다. 아직 걸을 수 있다고, 예전과 같지는 않아도 다시 오를 수 있다고.

그날 나는 구름 뒤의 첫빛 앞에서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웠다.

다음 산길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 산바람 · 글바람

설을 쇠고 나니
비로소 새해가 시작된 듯했습니다.

마음은 다시 산으로 향했고,
오래된 짝사랑처럼
덕유산이 떠올랐습니다.

향적봉과 남덕유산,
겨울 능선의 상고대와
새벽의 첫빛.

예전의 나는
금요일 밤이면
버스와 기차를 타고
전국의 산으로 떠났습니다.

새벽에 서울에 도착해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출근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몸과 마음이
조금씩 따로 걷습니다.

몸은 가까운 길을 찾고,
마음은 아직도
백두대간 어딘가를 걷고 있습니다.

새벽 한 시,
서울을 떠나
함양 영각사로 향했습니다.

어둠 속 산길에는
나보다 먼저 오른 사람들의
헤드랜턴 불빛이
작은 위로처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새벽 네 시,
영각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남덕유산으로 올랐습니다.

예전의 낡은 철계단은
넓고 튼튼한 계단으로 바뀌어 있었지만,

그 길을 오르는 나는
세월에 밀려
조금씩 달라져 있었습니다.

헤드랜턴 불빛에
야광 표지가 반짝였습니다.

수십 미터마다 나타나는
작은 빛 하나를 의지해
한 걸음씩 올랐습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아직 해는 뜨지 않았습니다.

땀에 젖은 몸은
차가운 바람 속에서
빠르게 식어갔습니다.

그래도 기다렸습니다.

그날 새벽,
내가 이 산에 오른 이유는
오직 일출이었으니까요.

동쪽 하늘은 붉어졌지만
해는 구름 뒤에 숨어
쉽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기대했던 화려한 일출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구름 사이로 번지는 빛도
새해의 첫빛이었습니다.

완전하지 않아도
시작은 시작이었습니다.

향적봉까지 가려던 마음은
삿갓재에서 내려놓았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무리해서라도 더 걸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산에서 용기는
끝까지 가는 것만이 아니라,

멈출 곳에서 멈추고
내려설 곳에서 내려서는 일이라는 것을.

삿갓재대피소 앞에서 끓인 라면은
전날 저녁과 아침,
점심까지 한꺼번에 채워주는
따뜻한 위로였습니다.

황점마을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안경을 잃어버렸습니다.

거의 포기했지만,
택시 기사님과 국립공원 직원들의 친절로
며칠 뒤 안경은
다시 내게 돌아왔습니다.

산에서는
길만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마음을 만납니다.

정상에서 본 일출보다
하산길에서 받은 친절이
더 오래 빛나는 날도 있습니다.

남덕유산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왜 이제야 왔느냐고 묻지 않았고,
왜 향적봉까지 가지 못했느냐고
나무라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조용히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아직 걸을 수 있다고.

예전과 같지는 않아도
다시 오를 수 있다고.

그날 나는
구름 뒤의 첫빛 앞에서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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